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39
339회. 이 몸, 어떻게 할 거야?
삼보절명 당운망은 자연스럽게 관도 위의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었다.
십 장 거리에 접근하면 은밀히 낙월독정을 쓰고 묻어 나갈 작정이다.
한편 장위안은 관도 한복판에 우뚝 서 오가는 사람을 세밀하게 살폈다.
암습자를 뒤로 흘려보냈다가는 소지웅 행수마저 당할 수 있어서다. 내공이 뛰어난 연적하와 달리 일반인인 소 행수는 독공을 견디지 못할 터였다.
연적하도 그의 곁에서 행인들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마치 무림인 둘이 사람들을 검문이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다.
조금 전 장위안의 외침으로 사람들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마침내 십 장 안쪽에 이르자 당운망은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태연하게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윽!”
연적하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심장에서 격통이 느껴져서다.
뒤이어 마치 물속에 빠진 것처럼 숨이 막히고, 전신이 짜부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연적하는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빨갛게 충혈된 눈에 피가 맺혔고, 머리카락은 하늘로 솟구쳤다.
그의 옷과 피부가 재를 바른 것처럼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했다.
행인들은 그의 기괴한 몰골을 힐끔거리며 빠르게 지나쳐 갔다.
“연 소협? 괜찮소?”
장위안이 연적하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의 외형은 누가 봐도 중독되어 죽어 가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으음, 장 소협. 가까이 오지 말아요.”
연적하가 다가오는 장위안을 만류했다.
괜히 그까지 중독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장위안도 자신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연적하는 쉬지 않고 구천여일진경을 암송했다.
구천기가 반응할 때마다 단전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를 악물고 서 있던 연적하가 돌연 손을 뻗었다.
“으음, 거기 멈춰.”
죽립을 쓴 남자가 일 장(약 3미터)여 거리에 멈춰 섰다.
장위안이 긴장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연적하의 지적에 당운망이 죽립을 살짝 들어 올렸다.
“혹시 저에게 하신 말씀이십니까요?”
당운망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눈을 껌뻑이며 시골 노인 흉내를 냈다.
연적하의 눈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해약이 있는지 없는지만 말해. 없다고 하면 죽일 거야.”
갑작스러운 말에 당운망은 화들짝 놀랐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요. 해약이라니요?”
“두 번 묻지 않아. 계속 시치미를 떼면 없다는 뜻으로 알고 죽일게.”
당운망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어떻게 자신이 하독 한 걸 알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계속 아닌 척하면 진짜 죽일 기세로군.’
잠시 생각하던 당운망이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알았느냐?”
“누굴 바보로 알아? 다들 우리 눈치를 보는데 당신만 쳐다보지도 않았잖아.”
“이런 제길.”
비로소 당운망은 자신의 실책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아예 외면한 게 문제였다.
청부가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 미세한 점까지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있어? 없어?”
당운망은 연적하의 눈을 응시했다.
핏물이 흥건한 와중에도 눈에는 희미하게나마 생기가 남아 있었다.
‘놀랍군. 이미 한 줌 혈수가 됐어야 하는데…….’
천하십대고수쯤 된다면 내공으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데 그것도 아닌 어린놈이 버티다니?
‘분명히 내 몸에서 독정(毒情)이 다 빠져나갔는데 왜 멀쩡하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당운망이 마지못해 말했다.
“물론 있다. 하지만 너에게 그것을 취할 능력이 남아 있겠느냐?”
말과 함께 그가 손을 휘저었다.
슈슈슉-.
미세한 파공음과 함께 한 무더기의 우모침이 날아갔다.
연적하는 본능적으로 움찔거렸지만 피하지 않았다.
퍼퍼퍽-.
몸에 우모침 박히는 소리가 마치 망치질처럼 선명하게 들렸다.
덕분에 연적하는 아직 자신의 오감이 살아 있음을 알았다.
살아 있는 것은 오감뿐이 아니었다.
비록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뒤따랐지만 구천기의 운기도 가능했다.
우모침은 왜 피하지 않았냐고?
이미 소나기에 몸이 흠뻑 젖었으니 안개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늙은이, 따끔할 뿐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개 방귀 같은 소리.”
낙월독정에 당해 피하지도 못한 놈이 무슨 허장성세인지 모르겠다.
순간 연적하가 발검을 했다.
치릿-.
당운망이 반응하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연적하는 보란 듯 날카로운 검날을 당운망의 턱 밑에 바짝 들이댔다.
“어때? 아직 쓸 만하지?”
말과 함께 연적하가 검을 회수했다.
당운망이 귀신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어, 어떻게?”
천하십대고수도 녹일 수 있다고 자신했건만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시커멓게 변한 외형을 보면 중독이 된 게 분명하다.
저런 몸으로 어떻게 그런 움직임이 가능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늙은이를 지금까지 살려 둔 건 해약이 있다고 해서야. 내놔.”
말과 함께 연적하가 손을 내밀었다.
당운망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당가는 독과 암기로 유명해졌다.
전통적으로 당가의 제자들은 병장기 쓰는 수법을 익히지 않는다.
독과 암기를 익히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탓이다.
그 말은 지금처럼 독과 암기가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속수무책이라는 소리다.
“지금 속이 울렁거리는데, 해약을 안 주면 늙은이 얼굴에 토할 거야. 아니, 마혈을 점하고 먹일 수도 있어.”
“주겠다.”
당운망의 손이 품 안으로 들어갔다.
낙월독정이 섞인 핏덩이를 먹는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러자 장위안이 재빨리 칼끝으로 그의 목을 겨누었다.
또 허튼수작을 부릴까 봐 걱정이 돼서다.
“우웩!”
연적하가 참지 못하고 검붉은 핏덩어리를 토해 냈다.
핏덩어리는 땅 위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늙은이의 어깨 너머로 그 모습을 본 장위안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독도 대단하지만, 저런 독에 당하고도 살아 있는 연적하가 신기하기만 했다.
“해약을 주면 나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느냐?”
당운망이 품 안에 손을 넣은 채로 연적하를 빤히 보았다.
연적하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그래. 그러니까 빨리 해약이나 내놔. 속이 뒤집혀 죽을 것 같으니까.”
실제로 연적하의 배는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연적하의 얼굴과 배를 번갈아 보던 당운망이 마지못해 손을 뺐다.
그의 손에는 하얀 자기병이 들려 있었다.
연적하는 마치 매가 병아리를 잡듯 번개처럼 자기병을 낚아챘다.
“이걸 다 마시면 되는 거야?”
“그렇다. 그럼 죽지는 않을 게다.”
“무슨 헛소리야? 해약이라면서?”
“낙월독정에는 완전한 해약이 없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다.”
“이런 제길!”
나직이 투덜대던 연적하는 더 이상 참기 어려운지 해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완전한 해약이 아니라서 은근 걱정했는데 효과는 좋았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던 배가 진정됐고, 시커멓던 피부도 조금씩 옅어졌다.
그렇게 일다경(약 20분)쯤 지났을까?
조마조마한 얼굴로 지켜보던 장위안이 물었다.
“연 소협, 좀 어떻소?”
“부글거리던 건 가라앉았어요. 그런데 가슴이 조금 따끔거리네요. 운기 할 때 단전도 아프고.”
당운망이 득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해독이 덜 되어 그런 게다. 하지만 그것으로 죽을 일은 없으니 안심해라.”
“이런 씨벌! 그걸 말이라고 해?”
연적하가 당운망을 노려보았다.
해독이 덜 된 몸으로 검진강호를 살아가야 한다니!
유명교와의 일을 해결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건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
패자인 당운망은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장위안은 당운망의 목에 겨누었던 검을 거두었다.
“선배는 누구요? 나도 강호 경험이 적지 않은데 낙월독정이라는 이름은 금시초문이오.”
장위안은 노인이 다짜고짜 독을 썼기에 존대를 사용하지 않았다.
복잡한 얼굴로 입술을 물어뜯던 당운망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나의 이름은 당운망이다. 낙월독정은 내가 최근에 완성한 독의 이름이고.”
“정말 당가가 이 일에 끼어들었단 말입니까?”
장위안의 호칭이 대번에 바뀌었다.
아무리 적이라 해도 당가의 노인을 상대로 감히 하오체를 사용할 수 없어서다.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이십 년 전에 당가에서 나왔다.”
당운망은 자신이 당가에서 나와 류왕채촌에 정착했음을 실토했다.
“허면 당 선배님 홀로 저지른 일이라는 겁니까?”
“그렇다. 내가 당가와 끈이 닿아 있었다면 금불위도 나에게 청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창의 상인들도 바보가 아닌데 그렇게 하겠느냐?”
“당가에서 선배님과 같은 독공의 고수를 순순히 내보내 줬다고요?”
무림 세가의 속성을 아는 장위안은 당운망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당운망의 얼굴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적통보다 뛰어난 방계 혈족은 배척당하거나, 심할 경우 살해당할 수도 있다. 당가의 소가주보다 뛰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험한 일을 많이 당했다. 그들이 나를 내보내 준 것이 아니라, 내가 도망쳤다.”
“…….”
장위안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당운망을 보았다.
그의 독공이 대단하다는 건 알았지만 당가 가주보다 뛰어날 줄이야!
당운망의 넋두리를 듣곤 있던 연적하가 짜증을 냈다.
“썅! 나는 늙은이가 당가건 뭐건 관심 없어. 이 몸, 어떻게 할 거야?”
순간 장위안과 당운망의 시선이 연적하를 향했다.
피부는 여전히 거무죽죽하고, 칠흑처럼 검던 머리털은 잿빛으로 푸석푸석했다.
얼굴은 민망해서 차마 마주 보기 어려울 정도다.
마치 두창(痘瘡, 천연두)에 걸린 사람처럼 열꽃이 가득했는데, 그중 절반에서는 진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본래 연적하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반듯해서 봐 줄 만했다.
그런데 지금은 설사 부모라 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엉망이었다.
“독성이 아직 덜 빠져서 그런 것이다. 독성이 다 빠지면 본래대로 될 터이니…….”
“씨발! 언제 다 빠지는데? 완전한 해약도 없다면서?”
“그, 그래도 목숨을 좌우할 정도의 극독은 아니니까, 얼굴은 시간이 가면…….”
당황한 당운망은 연적하가 미처 파악하지도 못한 얼굴 이야기를 꺼냈다.
“얼굴?”
뒤늦게 두 손으로 얼굴을 더듬던 연적하의 입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헉! 이건 뭐야! 뭐가 이렇게 많이 만져져? 그리고 진물은 또 뭔데?”
“독성으로 인해 화기(火氣)가 위로 치솟아서 그렇게 된 것뿐이다. 해독이 끝나면 본래대로 돌아갈 테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언제 해독이 되는데?”
“……모른다.”
“몰라? 죽자! 죽어!”
연적하가 두 손으로 당운망의 목을 움켜잡고 미친 듯 흔들어 댔다.
“캑! 캑! 해독에 능한 약제사를 알고 있다!”
그제야 연적하는 손에서 힘을 뺐다.
“누군데?”
“백일운이라고 한때 ‘약사여래’라 불리던 사람이다. 그라면 네 몸에 남은 여독을 제거해 줄지도 모른다.”
“뭐? 제거해 줄지도 모른다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소리야?”
“독정(毒情)은 일반적인 독과는 성분이 다르다. 솔직히 만든 나도 그 실체를 다 알지 못하는데 약제사라고 다르겠느냐? 일단 백팔 독의 성분을 알려 줄 터이니 그를 찾아가 보거라.”
“어디 있는데?”
“단약의 비법을 배우기 위해 무당파로 갔다는 것까지만 알고 있다.”
“아직 무당파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 그렇다.”
“아 진짜 죽여 버리고 싶다.”
연적하가 당운망을 노려보았다.
어차피 무당파로 갈 예정이었지만 이런 꼴로 가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