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40
340회. 이거 옮는 거 아냐
한참 동안 삼보절명 당운망을 노려보던 연적하는 억지로 화를 삭였다.
마음 같아서는 쳐 죽이고 싶지만 아직 해독이 끝나지 않았으니 참아야 했다.
“늙은이.”
“왜, 왜 그러나?”
“당신 돈 받으면 여길 뜰 생각이었지? 소문 듣고 당가에서 언제 올지 모르니까.”
당운망이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살 곳을 찾아 떠돌아다녀야 할 판이다.
“개봉으로 가. 화상촌에 가면 남연객점이라고 있어. 거기서 조용히 해약이나 만들고 있어. 무당파에 그 백일운이라는 사람이 없으면 늙은이가 해독해야 하니까.”
“무일푼인데…….”
“내가 거기 공동 주인이야. 그러니까 가서 내 이름 대고 방 하나 달라고 해. 거기서 해약을 만들고 있어. 당신이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놨으니까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안 그래?”
“그, 그야 물론이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해서 심독(心毒)의 경지에 오른 당운망의 다음 거주지가 정해졌다.
***
“이거 참,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원표국의 행수 소지웅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세상 모를 일이다.
반 시진(1시간) 전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저렇듯 기괴한 몰골로 변하다니.
연적하가 별일 아니라는 듯 시큰둥하게 말했다.
“해독이 덜 돼서 그래요.”
“아, 해독…….”
소지웅이 몸을 움찔거렸다.
혹시라도 자신에게도 독이 옮을까 봐 두려워서다.
“옮지 않는다니까 그렇게 놀랄 것 없어요.”
“그, 그렇군. 독을 쓴 자는 어떻게 됐나?”
“달아났어요.”
소지웅이 슬쩍 장위안을 보았다.
이미 연적하와 말을 맞춰 둔 장위안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 소협이 해약을 먹는 동안 달아났습니다.”
“저런! 일이 잘 끝났으니 망정이지, 해약이 가짜였으면 어쩌려고 그를 방치해 두었는가.”
소지웅의 날카로운 지적에 장위안이 고개를 떨구었다.
“송구합니다. 연 소협의 상태가 위중해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쯧쯧! 그럴수록 옆에 있는 사람이 냉정했어야지. 아무튼 자네도 고생했네. 이런 일에 독공의 고수까지 끌어들이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나저나 독에 관계된 문파는 흔치 않은데, 그자의 내력은 알아보았는가?”
“삼보절명 당운망이라고 당가 출신의 고수였습니다. 하지만 당가와 관련은 없어 보였습니다. 당가와 담쌓고 지낸 지 여러 해 된다고 하더군요.”
장위안은 당운망이 당가 출신임을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금불위의 입을 통해 알려질 일인 까닭이다.
“당가라고? 정말 당가가 개입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예, 당운망은 당가를 피해 숨어 지내고 있었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는 방계인데, 당가의 소가주보다 자질이 뛰어나 견제를 심하게 받았던 모양입니다.”
“아하!”
소지웅은 단번에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직계와 방계 간의 다툼은 무림 세가뿐 아니라 상계에도 흔한 일이었다.
“자네 생각에 이후로 금불위가 어떻게 나올 것 같은가?”
“그는 아직 당운망이 실패하고 달아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당운망에 대한 믿음이 확실할 테니 당분간은 결과를 기다릴 겁니다.”
“그러니 숨죽이고 있을 것이다?”
“사대세가까지 동원했으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니까요.”
“이럴 때 내가 영하대곡의 공조생을 만나는 게 옳은 일이라고 보나?”
소지웅은 청주삼협과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그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걸 알아서다.
“개업식 날 행수님의 건재함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건 건원표국이 당가 고수를 물리쳤다는 뜻이니까요.”
장위안은 ‘바깥 활동을 자제하라’는 소리를 돌려서 했다.
연적하가 저렇게 되었으니 앞으로 그를 데리고 다니기는 어렵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불필요한 싸움은 사양하고 싶었다.
소지웅이 아쉬운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청주삼협만으로 바깥 활동을 하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얼굴에서 진물이 줄줄 흐르는 사람을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고민하던 소지웅은 당분간 칩거하기로 마음먹었다.
따지고 보면 연적하가 저리된 것도 자신이 자존심을 내세워서다.
하지만 이제는 개업식까지 두문불출해도 부끄러울 게 없다.
허창 상계에 당가 고수의 습격까지도 물리쳤음이 소문날 테니까.
“쩝, 개업식까지 천지장원에 있도록 하겠네. 고생스럽겠지만 며칠만 더 수고해 주게.”
“예.”
장위안이 대표로 답했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청주삼협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어렸다.
***
개업식 당일.
눈 깜빡할 사이에 이틀이 지나갔다.
그사이 정문의 현판은 ‘천지장원’에서 ‘건원표국분점’으로 바뀌었다.
정오 무렵.
활짝 열린 건원표국분점으로 지역 유지들과 허창 상인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소지웅은 보란 듯 정문에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어제까지 물밑에서 수 싸움을 하던 상인들도 오늘은 한마음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건원표국의 명성에 걸맞게 현령까지도 참석해 꽤나 화려한 개업식이었다.
건원표국의 소개가 끝나고 만찬이 열렸다.
소지웅은 쉬지 않고 지역 유지들을 찾아다니며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바쁘게 돌아다니던 그의 눈에 해사방의 취일배 금불위가 들어왔다.
금불위의 앞으로 간 소지웅이 의미심장한 인사를 건넸다.
“금 방주께서 보내 준 선물은 잘 받았소. 조만간 본점 차원에서 보답을 할 게요. 기대해도 좋소.”
순간 금불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건원표국은 남직례성에 본점을 둔 대형 표국이다.
본점과 분점의 표사들만 수백.
삼십 명 남짓의 해사방으로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선물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시치미를 잡아떼는 그의 음성이 흔들렸다. 하나 마나 한 변명임을 알아서다.
그러자 소지웅이 금불위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금 방주가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소. 청부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 준다면 정상은 참작해 드리리다.”
바쁘게 눈알을 굴리던 금불위가 짧게 답했다.
“금일표국의 왕 국주입니다.”
“그게 전부요?”
소지웅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무려 무림 세가인 당가 출신의 고수까지 끌어들였다. 왕인국 혼자서 벌였다고 하기에는 판이 너무 컸다. 이참에 누가 적인지 명확히 알아야 했다.
머뭇거리던 금불위의 입에서 결국 적염신장 수금서의 이름까지 나왔다.
“점주님, 저는 그분들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창에서 먹고살려면 그분들 눈치를 봐야 한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소지웅은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비밀을 다 털어놓은 금불위는 상대의 처분만 기다렸다.
“앞으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나에게 알려 준다면 지난 과오를 묻지 않으리다.”
순간 금불위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박쥐처럼 양쪽을 오가는 일은 오히려 자신이 바라던 바였다.
“예, 예. 감사합니다.”
위기를 넘긴 금불위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소지웅은 담담한 얼굴로 금불위의 어깨를 다독였다.
타지인인 자신에게는 지역 일꾼이 필요하니 서로에게 잘된 일이었다.
‘어차피 해사방은 도구에 불과하니 무의미한 피를 볼 필요는 없지.’
진짜 적은 무곡산장과 금일표국이다.
전장(錢莊)과 표국.
지금까지 건원표국의 행보를 생각하면 그들의 반발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상권의 다툼은 전쟁과도 같다.
건원표국의 장수인 소지웅은 이 전쟁에서 져줄 생각이 없었다.
정오에 시작된 개업식은 신시 말(오후 5시)에야 끝났다.
일꾼들이 한창 뒤처리에 바쁠 때 연적하는 청주삼협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동년배인 백옥조가 아쉬운 얼굴로 잡았다.
“오늘 하루 더 쉬고 아침에 가는 게 낫지 않아요?”
“사람들 시선이 불편해서요. 벌써 소 행수님에게 간다고 했어요.”
백옥조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두창에 걸린 사람처럼 된 그를 보고 있으려니 남으라 하기도 어려웠다.
그녀가 머뭇거리자 둘째인 일수한이 나섰다.
“막내야, 연 소협을 위해서라도 가는 게 낫다. 하루라도 빨리 백일운이라는 약제사를 만나야지.”
그제야 백옥조는 작별 인사를 건넸다.
“연 소협, 무당파에서 약제사와 만나기를 바랄게요. 다 낫거든 건위표국 본점에 꼭 한 번 들러 주세요. 그때는 우리 청주삼협이 잘 대접해 드릴게요.”
“그럴게요. 그럼 이만.”
연적하는 백옥조, 일수한, 장위안에게 읍을 해 보인 뒤 돌아섰다.
***
남양.
점심 무렵, 한 청년이 터덜터덜 도시로 들어섰다.
푸석푸석한 잿빛 머리털과 얼굴이 열꽃과 딱지로 뒤덮인 그는 연적하였다.
“야아! 그대로네.”
연적하는 감회가 새로운 눈으로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몇 년 전 무당파로 가는 길에 들른 적이 있어서 그런지 괜히 반갑다.
상점가로 접어드니 행인과 잡상인들로 길이 미어터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쫙쫙 갈라졌다.
가물치같이 얼룩덜룩한 피부에 열꽃으로 가득한 얼굴을 보고 알아서 피한 것이다.
그럴 때마다 연적하는 속으로 절규했다.
‘이거 옮는 거 아니거든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일단 아무리 번잡한 곳에 가도 사람들과 옷깃조차 스치지 않았다.
물론 좋은 건 그거 하나뿐이다.
“안 돼요! 가요!”
출출해서 식사를 하려고 반점에 들어서자마자 어린 점소이가 밀어냈다.
“왜? 인마. 나 돈 있어.”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아저씨를 받으면 다른 손님들이 다 나간다고요.”
“이거 두창(痘瘡) 아냐. 옮는 거 아니라고.”
“뭐래도 안 돼요.”
“동생, 나도 좀 먹고살자. 배고파서 그래.”
연적하가 부탁하자 어린 점소이는 한술 더 떴다.
“형님, 저도 병든 노모와 넷이나 되는 어린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돼요. 형님을 안으로 들이면 저 쫓겨나요. 제발 제 사정도 좀 봐주세요.”
“허!”
연적하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완력을 앞세우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건 녹림의 방식이다.
맥없이 돌아선 연적하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점소이가 불렀다.
“형님.”
“왜? 들어오라고?”
“아니요. 제가 음식을 가져다 드릴 수는 있어요. 밖에서 드실래요?”
“거지처럼 길바닥에서 먹으라고?”
“배고프지 않으세요?”
연적하는 금세 태도를 바꾸었다.
“여기 뭐 잘하냐?”
“양육장막(羊肉装模, 양고기 찐빵)이랑 부판탕(不翻汤, 녹두로 만든 면 요리)이 괜찮아요.”
“찜닭도 추가해.”
“양육장막, 부판탕, 찜닭요?”
“그래.”
“돈 주세요. 백오십 문이에요.”
“더럽게 비싸네.”
연적하가 구시렁거리며 품을 뒤졌다.
이전 같으면 가격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건원표국에서 처음 받은 일당이 오십 문인 탓에 비싸게 느껴졌다.
“남양 최고의 반점이니까 그렇죠.”
돈을 건네자 어린 점소이는 쌩하니 반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연적하는 반점 옆 우묵한 곳에 쪼그리고 앉았다.
“젠장, 사흘치 일당이 한 끼 식사비로 나가는구나.”
생각해 보니 제법 큰 반점에서 낭인들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비싸니 그럴 수밖에.
할 일이 없어 오만 잡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음식 냄새가 훅 밀려왔다.
점소이가 주문한 요리를 들고 나온 것이다.
“뭐해요? 와서 좀 받아 가지.”
“야, 손님이 그런 것까지 해야 되냐?”
틀린 말은 아닌지라 점소이는 반박하지 못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연적하는 근처에서 주워 온 널빤지에 요리를 올린 뒤 먹기 시작했다.
남양 최고의 반점이라더니 맛은 그저 그랬다.
고급 요릿집답게 출중한 기도의 무인과 상방 관계자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그중에는 남양상방의 상인과 청운방 출신의 고수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상거지 꼴을 하고 앉아 있는 연적하를 알아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