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41
341회. 눈먼 칼이 천하제일이다.
개방의 이결 제자 만강수는 구걸해서 얻은 음식을 싸 들고 자신의 쉼터로 향했다.
음식이 담긴 바가지를 애지중지 쓰다듬으며 걸어가던 그가 우뚝 멈춰 섰다.
미락반점 옆쪽 우묵한 곳을 누군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 저곳이 자신의 자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노점상들도 저곳에는 좌판을 깔지 않는다.
그런데 웬 거지 같은 놈이 자신의 쉼터에서 음식을 처먹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가관이다.
이 척(약 60센티) 길이의 널빤지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은 미락반점의 요리였다.
‘뭐 하는 놈이지?’
미락반점은 값이 비싸서 보통 사람들은 냄새만 맡고 지나간다.
그런 고급 요리를 길바닥에서 처먹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찜닭을 뜯어 먹던 연적하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거지 하나가 우두커니 자신을 보고 있었다.
바가지에 담긴 수북한 밥을 보니 무슨 상황인지 알 법도 하다.
그는 닭 날개 하나를 들어 거지에게 내밀었다.
연적하의 얼굴에 가득한 열꽃과 굳은 진물 딱지를 본 만강수가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연적하가 가져가라는 듯 닭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아저씨, 나 ‘두창(遠瘡, 천연두)’ 아니니까 받아요. 그냥 ‘두창(頭瘡, 머리에 나는 부스럼)’이 어쩌다 얼굴까지 내려온 거예요.”
뒤늦게 자신의 실태를 깨달은 만강수가 헛기침을 터뜨렸다.
“험, 험, 괜찮네. 그처럼 심한 부스럼은 처음 보는군. 나는 개방의 제자인 만강수라고 하네.”
만강수가 노골적으로 청년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힐끔거렸다.
너도 무림인이면 통성명에 응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그러나 연적하는 차마 이런 몰골로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
“연두비라고 해요.”
“연두비? 처음 듣는 이름이로군. 소형제는 남양 사람이 아닌가?”
“예, 지나가는 길이에요.”
“무인인 것 같은데 사문은 어디인가?”
“관인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요?”
연적하의 반문에 만강수는 말을 얼버무렸다.
“관인들만 그런 걸 물어봐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같은 무도를 걷는 처지에서 궁금할 수도 있지.”
“가전 무공이니까 신경 끄세요.”
가전 무공이라는 말에 만강수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칠파일문이나 사대세가의 사람이 아니라면 개방보다 나을 게 없어서다.
“신경을 끄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군. 소형제가 앉아 있는 곳이 내 자리거든.”
“요즘은 거지가 땅도 사요?”
“내가 샀다는 게 아니라, 빌어먹던 자리라는 소리네. 그래서 다른 노점상들도 그 자리만은 비워 두고 있지.”
그제야 연적하는 만강수의 말을 알아들었다.
일종의 텃세였다.
“알았어요. 식사만 하고 바로 갈게요.”
“어허, 식사만 하고 가다니. 그럼 나는 어디서 먹으라고?”
만강수가 자꾸 엉겨붙자 연적하는 짜증이 났다.
반점에서 쫓겨난 것도 열받는데 이젠 거지까지 땅 주인 행세다.
울컥한 연적하는 물고 있던 닭 다리를 거칠게 뱉어 냈다.
그리고 막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다.
미락반점을 중심으로 양쪽 길 끝에 병장기를 빼는 무림인들이 나타났다.
살기등등한 그들의 모습에 거리를 메우고 있던 일반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한 걸음씩 전진하던 양쪽 진영의 사람들은 미락반점 앞에서 멈춰 섰다.
만강수가 자연스럽게 연적하 옆에 쪼그려 앉으며 탄식했다.
“오늘내일하더니 결국 정사대전이 벌어지는구나!”
연적하의 시선이 만강수에서 정체 불명의 무인들에게로 옮겨 갔다.
“정사대전요?”
“흰옷이 장락방이고, 붉은 옷이 혈주문이라네. 장락방이 정파라면 혈주문은 사파지.”
“왜 싸워요?”
“왜긴 왠가? 먹고살자고 그러는 거지. 서로가 미락반점에 주류를 공급하겠다며 한 달째 저러고 있네.”
“굉장하군요.”
곧이어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양쪽이 격돌했다.
연적하는 싸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시퍼렇게 날 선 병장기를 들고 싸우는데 의외로 피는 튀기지 않았다.
병장기를 든 자들이 몸통을 뒤로 쭉 빼고 손만 앞으로 내밀어서다.
그 바람에 서로의 칼끝만 닿았다.
그래도 날붙이 부딪치는 소리만큼은 무림 고수의 싸움 저리가라였다.
차차차창!
진짜 격렬한 싸움은 어쩌다 몸이 엉킨 사람들이다.
그들은 도검을 내팽개치고 한데 엉켜, 마치 바람에 날리는 덤불처럼 굴러다녔다.
그 와중에 손으로 서로의 머리털을 잡아 뜯거나, 입과 콧구멍은 물론 눈까지도 후벼 팠다.
“끄아아악!”
“아악!”
간헐적으로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처참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팔다리가 잘린 게 아니라 누군가 팔이나 허벅지를 물린 탓이다.
개싸움이 눈에 익자 연적하는 부판탕을 후루룩 먹으며 관전했다.
만강수도 더 이상 자리로 시비를 걸지 않고 바가지의 음식을 퍼먹었다.
그때 흰옷과 붉은 옷이 한데 엉겨 두 사람에게 굴러왔다.
만강수가 발끝으로 붉은 옷을 밀어 냈다.
순간 붉은 옷의 남자, 장경대가 살기 어린 눈으로 만강수를 째려보았다.
그는 개방 제자인 만강수가 정파인 장락방도를 간접적으로 도왔다고 생각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장경대가 만강수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개방이 언제부터 장락방의 편에 선 거요!”
장경대가 길길이 날뛰자 흰옷의 남자는 슬그머니 다른 상대를 찾아 떠나갔다.
만강수는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서둘러 부인했다.
“오해요, 오해! 나는 그저 바가지가 깨질까 봐 밀어낸 것뿐이오.”
무림의 방파 중에 제자들 숫자는 개방이 가장 많다.
하지만 지역의 분타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남양 분타의 개방 방도 숫자는 혈주문과 비슷해서 군소 방파에 속한다.
그렇다고 무공이 뛰어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개방의 무공은 무결(無結, 노끈에 매듭이 없음)인 ‘백의개’부터 배우지만 그건 하오문 수준이다.
절학이라 할 만한 무공은 삼결 이상에게만 전해진다.
하지만 만강수는 이결 제자.
남양 분타에서 삼결 제자는 분타주 하나뿐이니 혈주문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장경대가 눈알을 부라리며 한마디 했다.
“형씨, 지금 우린 눈에 뵈는 게 없으니 조심하쇼. 개방이라 그냥 넘어가 주는 거요.”
말을 마친 그는 다시 싸움판으로 뛰어들었다.
후루룩- 후룩-.
가벼운 말다툼이 끝나자 연적하는 다시 부판탕을 흡입했다.
만강수가 불편한 얼굴로 그런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험, 본래 우리 개방은 의를 숭상하기에 이권 다툼에는 끼지 않는다네. 분타주님께서도 정사대전에는 관여하지 말라고 하셨고.”
“그런데 혈주문 사람을 왜 발로 찍었어요?”
연적하는 만강수가 밀어낼 때 뒷꿈치로 은근히 가격하는 걸 보았다.
그건 분명히 사심이 실린 밀쳐내기였다.
“흐, 가재는 게 편이라고 하지 않나. 장락방은 동도인데 그렇게라도 도와줘야지.”
“아…….”
연적하가 묘한 눈으로 만강수를 보았다.
같은 정파라고 그런 식으로라도 돕는 걸 보니 마음이 짠했다.
또다시 막싸움을 벌이던 혈주문도 장경대의 눈에 한 자루 박도가 들어왔다.
난전 중에 누군가 흘린 것이었다.
그는 박도를 집어 들고 미친놈처럼 소리 지르며 앞으로 달려갔다.
그런 장경대의 앞을 흰옷이 가로막았다.
장경대와 흰옷의 장락방도는 손목을 앞으로 쭉 뻗고 미친 듯 돌려 댔다.
차차차차차창-.
그 요란한 소리에 드잡이질을 하던 사람들이 뒷걸음질 쳤다.
싸움에 몰입한 장경대와 장락방도는 상대의 칼끝만 보며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차차차창-.
요란하게 불꽃을 튀기며 두 사람이 다가오자 만강수는 애가 탔다.
하필이면 또 같은 놈이다.
자리를 피하자니 어린 녀석 앞에서 개방 제자의 면이 서질 않는다.
‘가! 이 새끼들아! 저리 가서 싸워!’
그런 만강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흰옷과 붉은 옷은 점점 가까이 왔다.
일단 살고 볼 생각에 만강수는 바가지를 내려놓고 타구봉을 꺼내 들었다.
연적하가 닭 날개를 입에 물고 만강수를 빤히 보았다.
그는 이번에도 혈주문 사람을 때릴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사달이 일어날 터였다.
한편 뒤늦게 개방 제자와 괴상한 청년을 발견한 혈주문의 장경대는 옆으로 돌아가, 장락방도의 등짝이 개방 제자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일단 자리가 잡히자 그는 미친 듯 상대를 몰아붙였다.
차차차차창-.
상대의 갑작스러운 발광에 장락방도는 연신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하필 재수 없게 자신의 발에 걸려 벌러덩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헉!”
순간 허공을 한 바퀴 돈 박도의 칼끝이 벼락처럼 만강수의 안면으로 향했다.
타구봉을 들고 엉거주춤 일어나려던 만강수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윽!”
만강수의 입에서 신음이 먼저 나왔다.
동시에 ‘땅’ 소리와 함께 박도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정신없이 바닥을 구르던 장락방도가 놀란 눈으로 만강수를 보았다.
분명히 칼끝에 거지의 얼굴이 걸린 걸 보았는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장락방도와 만강수의 눈이 박도로 향했다.
박도의 도신 중앙에 작은 뼛조각 하나가 박혀 있었다.
‘헛! 저건!’
만강수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는 단번에 뼈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저건 분명 연두비라는 녀석이 뜯어먹던 닭 날개의 잔해 중 일부였다.
그때다.
멍하니 서 있는 장락방도의 등짝을 향해 장경대가 도를 휘둘렀다.
그걸 본 연적하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의 손에 남아 있던 날개 뼈가 화살처럼 날아가 장경대의 도를 때렸다.
땅-.
맑은 쇳소리와 함께 장경대의 도신이 뚝 부러졌다. 장경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부러진 자신의 도와 장락방도를 번갈아 보았다.
그런 장경대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아저씨, 여기 식사 중이니까 다른 데 가서 싸워. 안 그러면 다음에는 다리에 박아 줄 거야.”
말과 함께 연적하가 널빤지에 버려 두었던 닭뼈를 가볍게 집어 던졌다.
찡-.
부러진 박도를 쥐고 있던 장경대의 팔이 뒤로 ‘휙!’하고 젖혀졌다.
깜짝 놀란 장경대는 급히 도를 확인했다.
반으로 똑 부러졌던 도신에 이번에는 뼈 하나가 박혀 있었다.
그제야 장경대는 저 기괴한 몰골의 청년이 어마무시한 고수라는 걸 알고 뒷걸음질 쳐 달아났다.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던 장락방 방도도 슬그머니 자신들의 무리로 돌아갔다.
머뭇거리던 만강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고맙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 보다시피 가진 게 없는 처지라.”
“그냥 아저씨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아까 그 한 수는 나라도 막기 어려웠어요.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얼굴이 꿰뚫려 죽었을 거예요.”
사실이다.
연적하는 자기가 그의 자리에 있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천하십대고수라 해도 저런 칼은 피하지 못하리라.
자신이 옆에서 보고 있었고, 마침 손에 닭뼈가 있어 구할 수 있었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만강수는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린 것 같다.
만약 두 사람의 자리가 바뀌었다면?
누구도 천하의 연적하가 거리에서 눈먼 박도에 맞아 죽은 걸 모를 게다.
‘그냥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 알겠지?’
세상은 자신이 없어진 뒤에도 여전히 지금처럼 바쁘게 돌아갈 테고.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인생이 덧없다.
‘제길, 눈먼 칼이 천하제일이로구나!’
마치 천지운행의 비밀 한 조각을 엿본 기분이다.
오봉산 시절에 풍연초는 ‘싸움은 운칠기삼(運七技三, 운이 칠이면 재주가 삼)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 경험해 보니 틀렸다.
‘운구기일(運九技一)’이다.
정사대전이 일으킨 먼지가 자욱하게 밀려왔다.
입맛이 떨어진 연적하는 그릇을 포개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