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63
363회. 스스로를 돌이켜 비추어 볼 때
맹주인 무극상인이 공손일랑 공손기에게 눈짓을 보낸 후 뒤로 물러났다.
총사가 회의를 주재하라는 뜻이다.
공손기가 살짝 긴장한 얼굴로 칠파일문 장문인들 앞으로 나섰다.
솔직히 자신의 무공과 경륜은 칠파일문의 장문인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병법의 조예가 깊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긴장이 됐다.
“이미 알려진 대로 유명교는 둘로 나뉘었습니다. 산서성 풍지산을 성지로 하는 유명교와 강서성 여산을 성지로 하는 명왕교입니다.”
칠파일문의 장문인들은 마치 품평이라도 하듯 공손기를 응시하기만 했다.
공손기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계속해서 말했다.
“유명교에는 교주와 세 명의 백두마군이 남아 있고, 명왕교는 네 명의 백두마군이 있습니다. 유명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으니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명왕교의 백두마군들은…….”
그가 막 명왕교를 설명하려 할 때 전진파 장문인 무종상인이 물었다.
“그 전에 그들이 왜 갈라섰는지를 알고 싶소.”
“명왕교의 말에 의하면 유명교주가 욕심을 부려 그렇게 됐다고 합니다.”
“욕심?”
“유명교주가 천두마왕이 되는 방법을 독점한 것에 대한 반발로 뛰쳐나간 게 명왕교라고 하더군요.”
“허면 명왕교는 천두마왕이 되는 방법을 알고 있소?”
“그것까지는 아직…….”
무종상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명왕교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답답했던 것이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맹주인 무극상인이 슬쩍 공손기를 편들었다.
“답답하시더라도 이해해 주십시오. 오늘 총사가 되셨으니 아직 모르는 게 많을 겁니다. 명왕교는 지난 팔월에 개파를 선언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조사하면 적절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봅니다.”
의천문 문주 군자검 이연익도 동조했다.
“공손일랑께서는 아직 추밀각의 고수들이 누군지도 모를 겁니다.”
칠파의 장문인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공손기에게 이전의 신기수사 제갈승운과 같은 정보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맹주가 다시 총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잠시 물러나 있던 공손기는 맹주에게 눈인사를 보낸 후에 입을 열었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유명교와 명왕교의 문제는 최대한 빨리 정보를 수집한 후에 다시 거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다음으로 급한 것은 호천맹의 설립을 천하에 알리는 것입니다.”
공손기는 무림첩의 발송을 제안했고, 칠파일문의 장문인들은 그것에 동의했다.
그것을 끝으로 호천맹의 회의는 끝났다.
모처럼의 모임이지만 정보의 부재로 다른 일은 손을 댈 수가 없어서다.
***
가을.
강호가 한차례 들썩였다.
갑작스러운 명왕교의 개파 선언과 호천맹의 무림첩이 발단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년지약’이 깨질 징조라고 떠들어 댔다.
하지만 칠파일문이 체면을 중시하니 ‘삼년지약’은 지켜질 것이라 믿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소란 속에서 유명교와 호천맹은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무당산.
오룡궁.
월말이 다가오자 수련자들은 또다시 부산을 떨었다.
그 와중에 남채고의 수련자들은 연적하를 의심의 눈초리로 주시했다.
그가 또다시 시험관의 이름을 빌미로 사기를 칠 거라는 소문이 나돌아서다.
대부분의 팔선각 수련자들은 그를 멀리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안 팔아요.”
전각 처마 밑에서 연적하가 팔선각 수련자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나 그는 찰거머리처럼 매달렸다.
“그러지 말고 좀 알려 주게. 돈이라면 내가 준다니까.”
“모른다고 몇 번을 말해요? 그리고 수련자들에게 돈 돌려줬다는 소문 못 들었어요? 엉터리 정보를 샀다가 개망신을 당했었다니까요.”
“그러니 부탁하는 걸세. 그거야말로 자네가 고의로 사기를 친 게 아니라는 증거니까. 나는 자네의 그 마당발로 얻어 낸 정보가 있다고 믿네.”
“아니, 어딜 봐서 내가 마당발인데요? 이 얼굴로는 누굴 만나러 다니지도 못한다고요.”
“자네가 밤마다 오룡궁을 헤집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네.”
“누, 누가 그래요?”
“새벽에 뒷간을 오가다가 자네를 본 사람이 한둘인 줄 아는가? 자네가 오룡궁 도사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네.”
“친하게 지내는 도사 없어요.”
“그러지 말고 사정 좀 봐주게. 전에도 정보를 팔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번 한 번만 알려 주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겠네.”
“와아! 돌아 버리겠네. 진짜 나한테 왜 그래요? 마음잡고 착실하게 지내는 거 안 보여요? 형님이야말로 좀 불쌍한 동생 조용히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연적하가 애원하자 그제야 수련자는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가 떠나자 연적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딱 한 번 실수했을 뿐인데 오래도 가는구나.”
아직도 저런 사람이 있는 걸 보니 팔선각의 수련자들에게 단단히 찍힌 모양이다.
그나저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이 맞나 보다.
오룡궁으로 스승을 찾아가는 것에 더 주의를 해야 할 것 같다.
잠시 후 전각의 모퉁이.
숙소를 향해 타박타박 걸어가는 연적하 앞으로 장이도가 튀어나왔다.
순간 두 사람은 무인 출신답게 신형을 틀어 충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연적하가 눈을 끔뻑이며 그를 보았지만, 장이도는 별말 없이 슥 지나쳤다.
그렇지 않아도 강론 시간에 오룡칠사를 무시한 일로 벼르고 있던 연적하가 한마디 했다.
“형씨, 갑자기 튀어나왔으면 미안하다고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바쁘게 걸어가던 장이도가 멈춰 섰다.
“지금 뭐라고 했나?”
“부닥칠 뻔했잖아. 사과 정도는 하라고.”
장이도가 스산한 눈으로 연적하를 쏘아보았다.
협잡꾼으로 유명한 어린 녀석이 사과 운운하니 기가 막혔다.
“너, 내가 누군지 아느냐?”
“‘종리권’에 있는 장이도.”
수련자들에게는 숙소가 어디냐가 굉장히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였다. 숙소만 봐도 어느 정도 출신 성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여동빈’은 속가제자로 뽑힌 수련자들의 숙소다.
그다음이 ‘종리권’.
‘종리권’은 기부금을 많이 냈거나, 전도 유망한 수련자들의 숙소였다.
“그런 나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거냐? 사고뭉치인 네 녀석이?”
“누구라도 잘못을 했으면 사과해야지.”
“못 하겠다면?”
“맞아야지.”
연적하의 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찰나지간에 쏟아져 나온 섬전 같은 눈빛에 장이도는 흠칫 놀랐다.
단순한 협잡꾼으로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다.
‘흠! 안광이 무시무시한 걸 보니 고수였구나.’
상대가 평범한 술사 지망생이 아님을 알게 되자 싸울 생각은 멀리 달아났다.
“수련자들끼리의 싸움은 금지되어 있다. 나는 너와 싸우지 않겠다.”
상대가 한발 물러서자 연적하는 뚱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사과해.”
“그러지. 급한 일로 서두르다가 너와 부닥칠 뻔했다. 미안하다. 됐느냐?”
연적하가 ‘이게 아닌데’ 하는 얼굴로 장이도를 보았다.
좀 덤벼들어야 주먹을 휘두를 텐데 노려만 봐도 알아서 수그리니 허무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사과까지 한 상대에게 계속 시비를 걸 수도 없는 노릇.
“다음부터는 조심해.”
“그러지.”
연적하의 경고를 듣고도 장이도는 여전히 차분했다.
감히 오룡칠사에게 문호를 넓히라고 요구하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제 됐나?”
머리를 숙이라고 하면 숙일 기세였다.
시비를 걸어 두드려 패려고 벼르던 연적하가 김빠진 얼굴로 물었다.
“강론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뭘 그렇게 서둘러?”
장이도가 훨씬 연상이지만 오룡칠사의 일로 속이 배배 꼬인 연적하는 그에게 말을 놓았다.
장이도는 불쾌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접객당에서 집안 어른을 만나고 왔네. 칠파일문에서 호천맹을 만들었다고 하더군. ‘종리권’의 사람들에게 속히 알리려는 마음에…….”
장이도는 말끝을 흐렸다.
‘종리권’의 사람들 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다.
입문식은 개인의 자질 문제이니 논외다.
그보다는 ‘강호에서 어느 가문의 힘이 큰가?’를 두고 은연중에 겨루었다.
굵직한 정보를 빨리 얻어 낼수록 인정을 받았다.
팔선각 수련자들 속에서 가문의 위세를 뽐낼 일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호천맹?”
“그렇다네. 며칠 전에 무림첩을 받았다고 하시더군. 칠파일문의 무림첩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네. 전에도 말했지만 오룡궁에서 문호를 넓혀야 하는 이유가 더 늘어난 셈이랄까.”
“형씨 집이 가까운가 봐?”
“십언에 있는 백검표국의 셋째가 나라네. 백검표국은 십언에서 제일 가는 표국이지. 무당파에도 해마다 큰 기부를 하는 편이고.”
“설마 형씨도 무당파 속가제자야?”
“이래 봬도 그 어렵다는 상청궁의 속가제자였다네.”
“아니, 그런 사람이 왜 오룡칠사에게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그랬대?”
“같은 무당파라고 해도 검사와 술사는 완전히 남이라고 해도 무방하네. 나를 보게. 상청궁 속가제자이지만 오룡궁에서는 잡인 취급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야 형씨가 술법을 배울 준비가 덜돼 있어서 그런 거지. 자기가 부족해서 그런 걸 왜 남 탓을 해?”
“그 기준이라는 게 알고 보면 순전히 오룡칠사의 마음에 달려 있지 않나? 지난달에 승급한 이도주보다 내가 못할 게 뭐가 있다고?”
“그야 난 모르지. 나도 떨어진 사람인데.”
“이도주는 태화궁 출신이라네. 같은 속가제자라도 상청궁이 더 어렵다는 건 누구라도 알지.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라는 말을 한 걸세.”
“무당파 제자라는 사람이 그렇게 동문을 깎아내려도 돼?”
“나는 그저 보편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이네. 태화궁보다 상청궁이 더 어렵다는.”
“쯧쯧! 그렇게 속이 옹졸하니 떨어지지. 그런 심보면 형씨는 계속 떨어질 거야.”
“옹졸의 문제가 아닐세. 호천맹이 세워졌네. 하루라도 빨리 술법을 배워서 호천맹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 그게 천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반상월 노사(老師)께서도 말씀하셨잖아. 배우고 싶으면 정진하라고. 술법은 검술만큼이나 무섭고 살 떨리는 세계야. 오룡칠사들은 아무에게나 술법을 가르치지 않을 거라고.”
“그래 봐야 술사는 무인의 보조 역할일 뿐이네. 소형제도 무공을 익혔으니 잘 알 텐데.”
연적하는 답하지 않았다.
술사가 보조라는 사람과 더 이상 무슨 말을 할까.
‘유명교의 진법에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저런 소리도 쑥 들어갈 텐데.’
정나미가 뚝 떨어진 연적하는 그만 가 보라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장이도는 군말 없이 돌아섰다.
사고뭉치 연두비보다 ‘종리권’의 지인들과 있는 게 더 중요하니 여기서 뭉그적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날 밤.
오룡궁에서 술법을 배우던 연적하가 청불노를 힐끔거렸다.
오늘따라 연로한 스승의 안색이 좋아 보여서다.
“왜 그렇게 보느냐?”
“스승님의 혈색이 좋아 보이셔서요.”
그러자 청불노가 담담하게 말했다.
“네 눈이 보배로구나. 네 말이 맞다. 아무래도 나는 오늘을 넘기기가 어려울 모양이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수도를 핑계로 오랜 세월 밖으로만 멀리 나갔다. 이제는 스스로를 돌이켜 비추어 볼 때가 된 것 같다.”
회광반조(廻光返照)라는 말에 연적하의 얼굴이 굳었다.
그것은 임종을 눈앞에 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