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78
378회. 북진은 왜 실패한 거지?
하남성.
개봉 우국사.
금의위 백호 왕무양은 호수 정원을 가로질러 접인전(接引殿)으로 서슴 없이 들어갔다.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도 그의 뒤를 따랐다.
왕무양이 돌아서서 곤혹스러운 눈으로 연적하와 심통을 번갈아 보았다.
설명을 구하는 얼굴이라 연적하가 나섰다.
“내 그림자 같은 사람이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
일순 왕무양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금의위의 비밀스러운 임무에 불청객이 끼어들어 당황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연적하가 낯선 노인과 동행한 것을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이번 임무에는 여러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다.
연적하도 그중 하나다.
그러니 그의 선택을 존중해 줘야 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왕무양은 연적하에게 읍을 해 보인 후 복도 안쪽으로 사라졌다.
일각(15분)쯤 지났을까?
왕무양이 금의위 남진무사 동유수와 삼십여 명의 무인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연적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훑었다.
‘흑의를 입은 무사가 서른에 술사가 셋이라…….’
변복을 했지만 무사들의 무장은 수춘도(繡春刀), 즉 금의위다.
하지만 술사들은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듯 복장에 통일성이 없었다.
심통을 알아본 동유수가 웃으며 왕무양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제야 굳어 있던 왕무양의 얼굴이 펴졌다.
동유수가 무리들 앞으로 나서자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쪽은 연남천 소협이오. 무공과 술법에 뛰어나 내가 초대했소. 그 옆의 노인은 연 소협을 모시는 사람이니 경계하지 않아도 되오.”
동유수의 소개에 세 명의 술사가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무공과 술법에 뛰어나다니 정체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거사는 내일, 원소절(元컬節, 음력 1월 15일)이오. 그때까지 여러분은 접인전을 벗어나지 마시오. 거듭 당부하지만 술사의 임무는 하나요. 무사들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것. 여러분은 유명교의 술법만 막으시오. 그러다 무사들이 신호하면,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피하시오. 무사들이 여러분의 퇴로를 확보해 줄 것이오.”
세 명의 술사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세부 계획까지 알고 있는 듯 누구도 임무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동유수는 몇 가지 주의를 주고 돌아갔다.
서른 명의 무사들도 다섯만 남고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남아 있는 무사들 중에 진우생이 있었지만 찾아가 알은체하지 않았다.
술사 셋이 연적하와 심통에게 다가왔다.
그중에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초로의 노인이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빈도는 전진파의 백우선이라 하오.”
깜짝 놀란 연적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칠파일문에 속하는 전진파는 왕중양을 시조로 하는 도교의 문파다.
유명교 법사를 척살하는 데 전진파가 끼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이번 임무에 자신이 있든지, 칠파일문이 유명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무당파 속가제자인 연남천입니다.”
연적하도 자신이 무당파 출신임을 밝혔다.
어차피 본산도 아닌 속가제자라 굳이 감출 이유도 없었다. 백우선이 자연스럽게 심통을 보았지만 심통은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연 소협, 동행하신 분은 누구신지 여쭤 봐도 되겠소?”
늙은이가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자 백우선은 연남천을 공략했다.
“저를 시중드는 사람이에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연적하의 간결한 대답에 백우선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시중드는 사람이라면 수하이거나 하인이니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두 명의 술사가 뒤늦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노부는 모산파의 고정원이오.”
“천선부의 월홍장이오.”
모산파와 천선부는 기환술로 천하에 명성이 드높은 정사지간의 문파였다.
비록 무공은 약하지만 기환술 분야에서는 칠파일문보다 더 유명했다.
연적하는 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통성명이 끝난 후에도 세 술사는 연적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무사들과 섞이지 못하니 술사들끼리 모인 것이다.
문득 월홍장이 물었다.
“그런데 연 소협은 이번 임무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소?”
“왜요?”
연적하의 반문에 월홍장이 백우선을 힐끔 보았다.
백우선이 괜찮다는 눈짓을 보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미 한배를 탄 거나 마찬가지였다.
“험, 우리의 목표는 황실을 드나드는 요망한 유명교 법사의 척살이오. 어지간한 실력과 담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임무라 할 수 있소. 소협에게 그만한 각오가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요.”
월홍장이 연남천을 지그시 보았다.
사실 각오가 아니라 실력이 궁금했지만 노골적으로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상대는 유명교 법사 소리에 주눅이 들지 않았다.
“예, 각오가 되어 있어요. 됐나요?”
옆에서 듣고 있던 심통이 어깨를 들썩이며 킬킬거렸다.
술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심통과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유엽도로 향했다.
유엽도만 아니었으면 욕설이 난무했을 것이다.
하지만 칼이 술사들의 분노를 잠재웠다.
월홍장은 하룻강아지 연남천과 무례한 그의 수하에 대한 관심을 접기로 했다.
이제는 동유수의 안목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저녁 식사를 마치자 금의위 천호 능가경이 사람들을 소집했다.
“무사들은 셋으로 나누겠다. 종사명은 나를, 포화명은 왕무양, 그리고 정곡천은 단여청을 따르라.”
“존명!”
총기(總旗)인 종사명과 포화명, 정곡천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그것으로 습격조의 구성은 끝났다.
총기가 각각 열 명의 소기(小旗)를 이끌고 있으니 더 할 것도 없었다.
뒤이어 능가경의 시선이 술사들을 향했다.
“백 도인은 나와 함께할 것이오. 고 노사는 왕무양, 월 노사는 단여청과 함께 행동해 주시오.”
백우선과 고정원, 월홍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백우선이 물었다.
“헌데 새로 합류한 연 소협의 자리가 정해지지 않은 것 같군요. 그를 누구와 함께 움직이게 하실 겁니까?”
“연 소협은 동 대인과 함께할 것이오.”
순간 백우선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동유수는 최고 고수이자 이번 거사의 책임자였다.
자신도 아니고 왜 연남천이 동유수를 보좌한단 말인가?
백우선은 은근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 이유를 따져 묻지 않았다.
‘흥! 어차피 실전이 벌어지면 고하가 가려지기 마련.’
큰소리는 그때 가서 쳐도 늦지 않았다.
그때 백호 왕무양이 나와서 건국사 경내 지도를 한쪽 벽에 걸었다.
능가경이 지도를 가리키며 작전을 설명했다.
연적하는 능가경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기인 진우생이 눈을 빛내며 열심히 듣고 있었다.
금의위에서 열심히 일하는 진우생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웃음이 났다.
그 모습을 본 심통이 연적하의 귓가에 속삭였다.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몰라도 돼.”
연적하가 답할 것 같지 않자 심통은 화제를 돌렸다.
“금의위가 술사들을 데리고 다니는 걸 보니 술법에 된통 당했나 봅니다?”
“그런 것 같아.”
옆에서 심통이 뭐라고 할 때마다 연적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여청이 호위를 유인해 빠지면, 왕무양은 후미를 치고 들어가라. 그때가 되면…….”
말하던 능가경이 눈을 찌푸렸다.
뒤쪽에서 속닥거리는 두 사람이 눈에 거슬려서다.
연남천과 그의 노복이라고 하던가?
동 대인은 대체 어디서 저런 물건들을 집어 왔는지 모르겠다.
딱히 맡겨진 임무가 없으니 주의가 흩어지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풀어진 모습을 보여서야 쓰나.
“거기, 연 소협. 임무와 관계된 이야기가 아니면 조용히 해 주게.”
“아, 예.”
연적하가 심통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심통은 움찔하고 몸을 움츠렸지만 여전히 긴장감 없는 얼굴이었다.
다음 날 아침.
금의위와 술사들은 열한 명씩 조를 이루어 접인전을 빠져나갔다.
***
하남성.
개봉.
건국사.
정오 무렵.
허연 수염의 노승이 화려한 깃발을 든 수백 명의 수행원과 함께 대웅보전으로 걸어갔다.
건국사의 주지와 원로들이 그들을 맞이하듯 대웅보전 앞에 도열해 섰다.
현장 법사 일행이 대웅보전 앞에 이르자 건국사 주지 만공 대사가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어서 오십시오. 아침부터 법사께서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현장 법사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만공 대사. 이처럼 맞아 주시니 감사하오. 오랜만에 대사를 만나니…….”
현장 법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대웅보전 지붕 위로 각궁을 든 십여 명의 흑의인들이 불쑥 솟아났다.
곧이어 화살이 현장 법사를 향해 날아갔다.
쉬쉬쉭-.
“암습이다!”
현장 법사의 호위들이 바람처럼 앞으로 달려나가며 도검을 휘둘렀다.
파파팟-.
화살은 현장 법사에게 미치지 못하고 중간에 모두 부러져 나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건국사 승려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 달아났다.
무공을 모르는 현장 법사의 수행원들도 메뚜기 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두가 달아난 것은 아니다.
대웅보전 앞으로 현장 법사의 호위들이 질서 정연하게 모여들었다.
그 숫자가 무려 오십여 명에 달했다.
호위대장 천지림이 검을 뽑아 들고 현장 법사의 앞을 막아섰다.
“법사님, 무도한 놈들이 전각에도 손을 썼을지 모릅니다. 그냥 돌아가시지요!”
현장 법사는 가타부타 말없이 주위를 쓸어보았다.
잠깐 숨 돌리는 동안 이십여 명의 호위가 대웅보전 뒤로 우르르 몰려갔다.
남은 호위는 서른 남짓.
일사불란한 암습자들의 행동을 볼 때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었다.
현장 법사가 떨떠름한 얼굴로 걸음을 돌렸다.
현장 법사와 호위들이 왔던 길을 돌아 나갈 때다.
이번에는 천왕전 쪽에서 십여 명의 흑의인들이 빠르게 달려왔다.
후미의 호위대가 난전에 휩싸였다.
머릿수로는 호위대가 우세했지만 전황은 좋지 않았다.
현장 법사의 호위대보다 늑대처럼 달려든 흑의인들의 무위가 뛰어난 까닭이다.
흑의인들은 승부를 걸어와 놓고 나한전 쪽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야말로 전광석화가 따로 없었다.
잔뜩 독이 오른 호위대 일부가 나한전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이제 남은 호위는 열 명에 불과했다.
현장 법사와 호위들이 종루(鐘樓)와 고루(鼓樓) 사이의 마당에 막 들어설 때다.
천호 능가경이 총기 종사명과 열 명의 소기를 이끌고 앞을 막아섰다.
호위대장 천지림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네놈들은 누구기에 현장 법사의 앞을 막는 것이냐! 유명교와 황실이 두렵지 않으냐!”
능가경은 대답 대신에 수춘도를 뽑아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총기 종사명과 열 명의 소기들이 그 뒤를 따랐다.
소기인 진우생은 고리눈을 하고 종사명의 뒤를 따라 달렸다.
‘이길 수 있다! 아니, 이긴다!’
현장 법사의 호위대는 숫자만 많았지 실력은 그저 그랬다.
소기가 이 자리에서야 말단이지만 금의위에서는 나름 유능함을 인정받은 무관이다. 자신의 아래로도 무과를 통과한 열 명의 고수가 있다.
한마디로 정예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현장 법사의 호위들은 단칼에 추풍낙엽처럼 썰려 나갔다.
한 개 조가 호위 이삼십 명 정도는 거뜬하게 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백호 왕무양과 단여청의 조는 그렇게 했다.
하물며 자신의 조에는 백호보다 훨씬 뛰어난 천호 능가경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천호 능가경보다 고수인 남진무사 동유수도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게다.
‘호위대 수준이 이 정도인데 북진은 왜 실패한 거지?’
진우생과 나란히 달리는 다른 소기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