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8
38회. 진짜 모습이 보고 싶다는 거지?
파천마군 석무해에게는 꿈이 있다.
그것은 녹림의 힘을 하나로 모아 칠파이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
녹림의 후기지수들에게 자신의 무공을 전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들을 통해 삼십육 개의 산채와 수채를 관리하려고 한 것이다.
칠십이 채로 숫자가 늘어난 지금은 더더욱 십이마군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그래서 생각한 게 녹림대회다.
사실 녹림대회의 목적은 도적들의 친목 따위를 위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십이마군들에게 녹림에서의 공식적인 직책-이를테면 호법과 순찰 등-을 내려 주기 위해서다. 그래야 녹림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으니까.
석무해가 만면에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음풍묘군을 바라보았다.
“그래 무슨 일이냐?”
“실은 하남성 남부의 오봉산채에 초대장을 가지고 갔다가 말입니다…….”
음풍묘군은 두 달 전 자신이 당한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아직도 치료 중인 오른손을 슬그머니 내밀어 상처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니까 오봉산채의 어린 도적에게 패했다는 말이냐? 십이마군인 네가?”
석무해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십이마군이 암천수라진경을 익힌 게 벌써 십 년도 전의 일인 까닭이다.
십이마군들은 진경을 익히기 전에도 녹림의 고수였다.
진경을 익힌 뒤로 누구에게 패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런 십이마군이 오봉산채의 어린 도적에게 패했단다.
“예…….”
음풍묘군은 자기가 생각해도 한심해서 고개를 푹 떨구었다.
“어리다면 나이가 몇이나 되느냐?”
“스물이 채 못 된다고 들었습니다.”
“헐!”
그 정도 나이면 무공에 입문한 기간이 십 년 남짓일 게다. 십이마군이 진경을 익힌 기간과 비슷한데 졌다니? 그건 제아무리 무공의 기재라 해도 불가능하다.
“술에 취했었다고?”
“예, 조금…….”
“쯧! 나도 술에 취하면 너희들에게 패할 수 있느니라. 그래서 내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하지 않았더냐. 취하도록 술을 마시지 말라고.”
석무해는 음풍묘군의 패배를 술로 돌렸다. 그게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아서다. 물론 그렇다 해도 여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그 애송이에 대해 알아봤느냐?”
“예. 이름은 연적하라 하는데, 지난해에 오봉산채의 채주가 다 죽어 가는 그를 구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산채에 눌러살게 된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오봉십걸이라 불리고 있고요.”
“오봉십걸?”
“오봉산채에 있는 열 명의 도적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남성 남부를 오가는 장사치들 사이에 제법 알려진 이름입니다.”
“흠! 그들도 이번 녹림대회에 참석했더냐?”
“예, 어제 멀리서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오봉십걸의 무위는?”
“그들은 녹림에서 삼류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린놈 하나가 뛰어날 뿐, 나머지는 별 볼 일 없습니다. 감히 저와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으니까요.”
석무해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녹림에서 삼류면 그냥 널리고 널린 평범한 도적이라는 소리였다.
“결국 오봉십걸 중에 그 애송이 하나만 쓸 만하다는 말이로구나”
“그렇습니다. 따로 만나 보시겠습니까?”
“내가 나서면 괜히 그 애송이만 띄워 주는 셈이 된다. 그놈이 비무에 나가는지만 알아보거라. 만나는 것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으니.”
“예.”
이윽고 석무해는 십이마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도 들었겠지? 그 애송이가 참가할지 안 할지는 아직 모른다. 만약 참가한다면, 나이가 어리다고 방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밟아 놓겠습니다.”
십이마군들이 힘차게 답했다.
스무 살도 안 된 애송이에게 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
낙양 동쪽 언사의 와룡장.
연무장에서 누군가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다.
둘째 연승백이다. 인단의 사범인 그는 요즘 연무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낭인 출신의 제자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우연히 연무장을 지나던 연무백이 흐뭇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인단의 무술 사범이 되더니 하루도 빼 놓지 않고 수련을 하는 것 같다.
현재 와룡장에서 무술을 가르치는 사범은 셋이다. 자신이 천단, 숙부인 연지평이 지단, 그리고 동생인 연승백이 인단을 맡고 있다.
한창 검술을 펼치던 연승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연무백이 웃으며 다가갔다.
“하하, 뭘 그렇게 생각해?”
“어, 형. 팔 식이 매끄럽게 안 돼서.”
십 년 만에 보는 형이 낯설어 깍듯하게 형님이라던 연승백도 이젠 편하게 말을 했다.
“구룡번신?”
“응. 구천세법에서 유일한 운신법이잖아.”
“그렇지.”
“굳이 아홉 번이나 움직이면서 기운을 모아야 할 이유가 있나?”
연승백이 느끼는 의아함은 당연한 것이다. 아홉 번 움직인다는 것은 아홉 번 칼질할 기회를 버린다는 뜻이다. 실전에서는 한 번의 칼질도 아까운데 말이다.
연무백이 웃으며 답했다.
“그만큼 마지막 구 식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뜻이겠지. 아버지도 살아 생전에 구 식인 뢰검분형을 구명절초로 사용했다고 들었다.”
팔 식인 구룡번신은 구 식인 뢰검분형으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팔 식인 구룡번신으로 내기를 모아 구 식인 뢰검분형을 펼치는 것이다.
연승백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연무백을 바라보았다.
“형이 보기에는 어때?”
“뭐가?”
“팔 식과 구 식을 연환으로 펼치는 거랑, 구 식을 따로 펼치는 거랑. 어느 게 더 좋은 것 같아? 나는 따로 쓰는 게 훨씬 좋은 것 같던데. 보여 줄게 한번 봐 봐.”
연승백은 연무백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움직였다.
연승백의 발바닥이 지면을 스치듯 움직여 아홉 군데 방위를 밟았다.
그리고 구 식 뢰검분형의 수법으로 검을 내질렀다.
쉬이익.
대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검풍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그냥 뢰검분형을 펼쳐 볼게.”
연승백은 제자리에서 천룡무상신공의 공력을 극성으로 끌어 올린 뒤, 검을 떨쳤다.
쐐애애액.
팔 식과 구 식을 연환으로 펼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검풍이 쏟아져 나왔다. 팔 식과 구 식의 연환이 센 바람이라면, 단독으로 펼친 것은 태풍이었다.
연승백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연환으로 할 때보다 구 식을 단독으로 쓸 때 더 강맹한 이유는 집중력의 차이 같아. 어차피 우리는 천룡무상신공을 기반으로 펼치잖아. 팔 식을 배제하고, 천룡무상신공에 집중하니까 더 강해지더라고. 형 생각은 어때?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연무백은 대견함과 착잡함이 뒤섞인 눈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사실 나도 오래전에 그런 생각을 했었어. 남궁 백부님께 조언을 구해 본 적도 있고.”
“아, 형도 알고 있었구나. 백부님은 뭐라셔?”
“연씨 일족이 잃어버린 현녀경을 보기 전에는 단언하기 어렵다고 하시더라.”
“어른들은 늘 같은 소리만 하는 것 같아. 지금 있는 것에서 최선이 뭔지를 생각해야지. 안 그래?”
연무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얼마 전에 집안 어른들께 여쭤 봤는데 아버지도 뢰검분형만 사용했다고 하시더라. 팔 식과 연환하는 것 보다 구 식만 펼치는 게 더 뛰어난 건 다들 알고 계셨어.”
“결국 구룡번신은 계륵 같은 거네? 쓸 일은 없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하지만 그 속에 우리가 모르는 공능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가벼이 대하면 안 돼. 그러다가 후대에 팔 식마저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어.”
“나도 그 정도는 알아. 형에게 물어본 건 내 생각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고.”
“그래, 확인됐냐?”
“어, 뢰검분형은 정말 대단한 초식인 것 같아. 지금이야 검풍이지만 언젠가 나도 형처럼 검기를 쏟아 낼 날이 오겠지?”
“그건 네가 천룡무상신공을 얼마나 익히느냐에 달려 있어. 연 숙부님은 우리 심법이 곤륜이라는 문파에서 나온 것 같다고 하시더라.”
“곤륜?”
“어, 새외(塞外)에 있는 오래된 도가 계열의 문파래. 속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문파라고 하시더라고.”
“한마디로 훌륭하다는 거네?”
“그렇지. 우리가 익힌 심법은 잃어버린 현녀경만큼이나 대단해. 그러니 낙심할 건 없다고 봐.”
“갑자기 천룡무상신공으로 펼치는 형의 뢰검분형이 보고 싶어진다. 좀 보여 줘.”
“훗! 뢰검분형의 진짜 모습이 보고 싶다는 거지?”
“어.”
연승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검풍. 검기의 발현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잘 봐.”
연무백이 동생을 위해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천룡무상신공의 공력으로 벼락처럼 뢰검분형을 펼쳤다.
츠츠츠츠.
검 끝에서 네 개의 검기가 피어났다.
검기는 정면으로 대략 삼 장(약 9미터) 정도 날아가다 스르륵 사라졌다.
검을 거두어들인 연무백이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와아! 대단하다.”
“대단하기는……. 아버지는 한창때 아홉 개의 검기를 사용하셨다는데.”
“아직 형은 젊잖아.”
연무백은 피식 웃었다.
동생의 말마따나 자신은 아직 젊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아홉 개의 검기를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강남 만사평.
마침내 녹림대회의 날이 밝았다.
총표두 석무해는 천하에서 모여든 도적들을 향해 비무 대회를 선포했다. ‘공정하게 비무로 순찰과 호법을 뽑겠다’는 말에 도적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잔뜩 들뜬 다른 도적들과 달리 오봉십걸은 남의 일인 양 무덤덤한 얼굴들이다.
사실 연적하를 제외한 오봉십걸은 채주들과 겨룰 수 있는 수준이 못 된다. 비무 대회에 나갈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연적하뿐이다.
그가 나가면 우승도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그는 어젯밤 찾아온 음풍묘군에게 ‘비무 대회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연히 비무 대회를 보는 오봉십걸의 눈빛은 시들했다.
여섯째인 장소봉이 연적하를 힐끔 보며 물었다.
“연 아우, 정말 비무 대회에 안 나가려고?”
“예.”
“왜? 순찰이나 호법 같은 거 하면 좋을 텐데.”
“귀찮아서요. 그런 거 맡으면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잖아요. 그 지겨운 짓을 왜 해요.”
“하긴, 고생스럽기는 하겠다.”
두 달간의 여행으로 지친 장소봉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칠십이 개의 산채에서 나온 도적의 숫자는 무려 천여 명에 달했다. 빠른 진행을 위해 총사인 신주일괴 우금영이 친히 비무의 사회를 맡았다.
이번 기회에 권력을 잡아 보려고 수백 명의 마두들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그들 중에는 총표두의 제자인 십이마군도 섞여 있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오봉십걸들도 시간이 가자 비무에 빠져들었다. 대부분 좀도둑이나 화전민 출신이라 이런 규모의 비무를 본 적이 없어서다.
비무를 지켜보던 하소백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래도, 참 재밌네요.”
날품팔이 인생에서 무림인이 된 하소백에게는 모든 게 신기한 모양이다.
그때 십이마군인 광도인군이 허공으로 도약해 상대에게 도기를 뿌렸다.
그 장면에서 ‘아!’ 하고 탄성을 지르던 하소백이 연적하에게 물었다.
“오라버니, 지난번에 검은 옷 입은 강도들과 싸울 때 말이에요.”
“응?”
“공중에서 여러 번 몸을 움직이셨잖아요. 왜 그렇게 한 거예요?”
그녀는 왜 연적하가 광도인군처럼 단번에 칼을 쓰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물론 하늘을 휙휙 날아다니는 건 멋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