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89
389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낙양.
고성촌.
유감스럽게도 연가무관의 상승세는 하루 만에 꺾였다.
둘째 날 합류한 낭인은 고작 다섯.
삼살문과 귀도방이 본격적으로 나서자 낭인들은 연가무관의 편에 서기를 꺼려 했다.
철혈방과의 분쟁을 이끌어 가는 연씨들과 정가장 무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해가 지자 연가무관 곳곳에 화톳불이 밝혀졌다.
관주인 와룡검객 연무백은 철혈방의 기습에 대비해 조를 짜서 번을 서게 했다.
한 사람도 예외는 없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빈객인 남천과 ‘낙양삼의’까지도 투입됐다.
남천과 ‘낙양삼의’는 관주의 결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적의 숫자가 많아 한 번 밀리면 반격할 틈도 없이 끝날 거라는 걸 알아서다.
자정 무렵.
낭인 하나가 숙소로 가서 잠들어 있는 연적하를 흔들어 깨웠다.
부스스 일어난 연적하는 정신을 수습한 후에 마당으로 나갔다.
불가에 있던 낭인들이 눈인사를 보냈다.
연적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 속에 섞여 들었다.
삼십 대로 보이는 낭인 하나가 할 말이 있는지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왜요?”
“아, 무당파 속가제자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술사라던데 맞습니까?”
“맞아요.”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다른 낭인들이 귀를 쫑끗 세웠다.
가까이서 술사를 보는 게 처음인지 호기심 어린 얼굴들이다.
삼십 대 낭인, 소전광이 계면쩍은 얼굴로 말했다.
“술사들은 부적으로 천지조화를 일으킨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습니까?”
“흐음. 글쎄요. 무인이 누구나 이기어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듯 술사들도 그래요.”
“아, 도력이 높으면 된다는 말씀이 십니까?”
“그렇겠죠?”
“무당파 술사들의 도력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천지조화가 가능한가요?”
소전광은 물론 다른 낭인들까지도 연적하의 입에 주목했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강호에서 칠파일문의 술사가 냉대를 받겠어요?”
낭인들이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강호에서 술사는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정도.
눈앞에 있는 남천도 결국 그 범주라고 생각하니 호감이 뚝 떨어진 것이다.
소전광이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인들의 꿈이 이기어검에 있는 것처럼 소협에게도 목표가 있겠지요?”
“있겠죠?”
연적하가 애매하게 답하자 소전광의 눈에 안타까운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목표를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저씨의 꿈은 뭔가요?”
“부끄럽지만 연 관주님처럼 무림에서 일가(一家)를 이루는 것입니다.”
“굉장하네요.”
“사실 와룡장에서 검술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검술을 접한 것은 그때가 처음입니다. 와룡장이 망한 뒤로 강호를 전전했지요.”
“아…….”
연적하가 사내를 다시 보았다.
자기 때문에 강호를 전전한 것 같아 조금 신경이 쓰였다.
“부평초처럼 강호를 떠도는 낭인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도 와룡장처럼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제대로 된 무공을 접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 말입니다.”
사내는 진지했다.
그의 진심 어린 말에 낭인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칼 한 자루에 의지해 살아가는 낭인에게 무공이란 목숨 줄과도 같은 법.
낭인치고 제대로 된 무공에 대한 갈망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묵직한 침묵이 화톳불 주위에 내려앉았다.
화톳불이 흔들릴 때마다 메마른 나뭇가지가 춤을 추었다.
그때 연적하가 말했다.
“불청객이 오려는 모양입니다.”
갑작스러운 연적하의 말에 소전광이 눈을 끔뻑였다.
혹시나 싶어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른 낭인들도 저마다의 방법으로 인기척을 느끼려고 애를 썼다.
누군가는 땅바닥에 귀를 가져다 대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요? 바람 소리를 잘못 들은 것 아닐까요?”
소전광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연적하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백 장(약 300미터) 밖에 있네요. 사람들을 깨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낭인들은 기막힌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백 장 밖이란다.
술사의 말인지라 다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다.
그래도 안면을 텄다고 소전광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제가 가서 사람들에게 전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소전광은 부리나케 안채로 달려갔다.
잠시 후 안채와 낭인들의 숙소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와룡검객 연무백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적이 오고 있다고요?”
“예.”
연무백은 가만히 기감을 퍼트렸다.
자신의 공력으로 인기척을 파악할 수 있는 범위는 십 장(약 30미터) 남짓.
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십 장 안쪽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삼십 장(약 90미터) 밖에 있어요. 곧 들릴 겁니다.”
“…….”
연무백이 남천을 힐끔 보았다.
무당파 속가제자이니 허언은 아닐 것이다.
‘정말 삼십 장 밖의 소리를 감지했다는 건가?’
궁금했지만 상대가 무당파 제자인지라 지금은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가무관의 사람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소리에 집중했다.
타닥. 타닥-.
불꽃 튀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려 댔다.
가장 먼저 이상을 감지한 사람은 청풍검 송진월이었다.
“과연. 오고 있구려.”
연씨 형제자매와 정가장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송진월에게로 향했다.
뒤이어 비조검 홍장소와 벽력권 동화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무백의 눈빛이 깊어졌다.
‘낙양삼의’의 무위가 자신보다 높다는 것을 알게 되니 든든하면서도 착잡했다.
뒤이어 그의 귀에도 사부작사부작 사람들 발소리가 들려왔다.
연무백이 가까이에 있던 낭인에게 말했다.
“문을 열어 주십시오.”
낭인이 달려가 문을 열어젖히고는 얼른 낭인들 속으로 들어갔다.
반 각(약 7분)쯤 지났을까?
대문 밖에서 “제법이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한 떼의 무인들이 문턱을 넘어 마당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 숫자가 무려 백오십.
압도적인 숫자 앞에서 낭인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연무백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연가무관의 관주인 연무백입니다. 철혈방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철혈방의 서열 삼 위, 총관 천뢰도 조유백이 짧게 답했다.
“그렇다.”
“혹시 엊그저께 생긴 일로 오신 것입니까?”
“알면 됐다. 죽겠느냐? 폐문하겠느냐?”
막무가내로 나오는 상대 앞에서 연무백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당파 속가제자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입에 담다니?
‘저건 진심일까? 아니면 허장성세?’
진심이라면 혈풍이 몰아칠 테지만, 허장성세라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그를 지켜보던 조유백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대답이 없군. 죽여 달라는 것으로 알겠다.”
“무슨 그런…….”
연무백이 반박하려는 순간 철혈방도들 속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부방주인 거력신도 주연신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연무백을 향해 대도(大刀)를 휘둘렀다.
콰콰콰-.
대기를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희뿌연 도기가 연무백을 쓸어 갔다.
대경실색한 연무백이 막 검을 뽑으려는 순간이다.
그보다 송진월의 검이 한발 더 빨랐다.
쉬이익-.
섬전처럼 쏘아져 나간 검기와 도기가 연무백의 눈앞에서 마주쳤다.
꽈광!
얼굴로 조각난 경력이 밀려오자 연무백은 급히 한 걸음 물러났다.
“헉! 헉!”
정작 수를 교환한 사람은 주연신과 송진월인데 연무백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놀라서라기보다 그 정도로 집중한 탓이다.
기습했던 주연신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를 거두어들였다.
“제법이군. 청풍검인가?”
“그렇소. 기형의 대도를 보니 귀하가 대력신도인 것 같은데, 맞소?”
“무당파의 제자를 죽이고 싶지는 않다. 무당파 제자들은 이번 일에서 빠져라.”
“무당파 제자는 불의한 일을 보고 외면하지 않소.”
“죽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오해했나 보군. 죽이지 못한다는 소리가 아니었는데.”
“우리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면 철혈방도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오. 정녕 그러기를 바라오? 고성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소?”
“가치라. 장사치들이라면 모를까? 우리 철혈방은 그런 것에 관심 없다.”
“허면 왜 연가무관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오?”
“주제를 모르고 감히 철혈방을 건드렸으니까.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뿐이다.”
“힘이 없으니 때리면 맞고, 달라면 가진 것도 내어 줘야 한다는 거요?”
“달라고 한 적은 없다 들었다.”
“사망검 이철원이 양 부인을 바치면 고려해 보겠다고 했다 들었소. 그건 달라고 한 게 아니오?”
“…….”
말이 길어지자 주연신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무당파 속가제자들은 빠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모두 죽여야 하나.’
무당파 속가제자들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도 별것 아니다.
‘낙양삼의’ 뒤에 무당파가 있다면 자신들 뒤에도 유명교가 있다.
무당파가 책임을 물으면 유명교에 중재를 요청하면 된다.
무당파도 고작 속가제자 몇 때문에 유명교와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다.
“크크크크크.”
듣기 거북한 웃음이 연가무관을 흔들었다.
순간 기세등등하던 주연신이 움찔 놀란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뒤이어 주연신의 뒤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쳐 올랐다.
그림자는 오 장(약 15미터) 높이의 하늘에서 한 번 더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핫!”
무지막지한 잠력이 연가무관을 휩쓸었다.
연가무관은 물론 철혈방과 삼살문, 귀도방의 무인들까지 귀를 잡고 비틀거렸다.
‘낙양삼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고작 웃음소리에 이 정도 잠력이 담겨 있다니!
공력이 약한 연가무관의 낭인들은 코피를 흘리며 픽픽 쓰러졌다.
콰직. 콰지직-.
뼈가 갈라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낭인들이 튕겨 났다.
어느새 내려온 검은 그림자가 낭인들을 파죽지세로 휩쓸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낙양삼의’가 급히 그림자를 덮쳤다.
두 자루 검이 그림자를 쓸어 갔다.
차차차창-.
그림자와 송진월, 홍장소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얽혀들었다.
권장의 고수인 동화고는 기회만 엿보며 세 사람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싸움은 그가 뛰어들기도 전에 끝났다.
챙, 챙그렁-.
송진월과 홍장소의 검신이 잘려 나갔다.
뒤이어 가슴을 움켜잡은 두 사람이 비칠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달빛에 드러난 송진월과 홍장소의 모습은 처참했다.
상체는 야수가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너덜너덜하게 베어져 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동화고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구름 속에서 빠져나온 달빛에 검은 그림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백발노인이다.
그의 양쪽 손가락 끝에 손톱처럼 달린 열 개의 칼날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순간 동화고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처, 천살귀조?”
‘하늘마저도 죽인다’는 대마두 천살귀조가 혀로 귀조(鬼爪)의 날을 핥으며 말했다.
“연자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