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19
419회. 세상이 망할 징조
탈혼마검 노도경이 강제 운운하자 연적하가 발끈한 얼굴로 소리쳤다.
“지금 나를 뭐로 보고!”
“뭐로 보긴 조금 전에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닳고 닳은 사람이라고.”
“그, 그건…….”
“나야 순진한 사람이라서 강제로 그런 짓을 할 수 없지만 닳고 닳은 자네라면 뭐. 하지만 남궁세가나 호천맹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그러니 자네가 무림공적이 되는 건 시간 문제라고 할 수밖에.”
노도경은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헛소리 마요. 연 누님과 나는 서로 좋아하고 있으니까. 남궁세가에서도 알고 있는데 무슨.”
“헐! 정말인가? 자네와 십전무후가 이미 아는 사이라고? 검왕도 알고?”
“검왕님이 선친의 의형이에요. 이제 어떤 상황인지 알겠어요?”
“아, 그래서 혼인 어쩌고 한 거였군. 그렇다면 이해가 되네. 무당파와 남궁세가라……. 어찌 됐건 신경 쓰지 말게. 마교가 천산에서 나갈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그랬다면 그 이름이 잊혀지지도 않았을 걸세.”
어딘지 허허로운 노도경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침묵에 잠겼다.
마차는 동남 방면으로 쉬지 않고 내달렸다.
***
호광성.
무한.
교량촌.
미시 말(오후 3시).
대문 위에 천검문이라는 편액이 붙은 장원 앞에 마차가 멈춰 섰다.
노도경이 창밖을 내다보며 물었다.
“여기는 어딘가?”
“동생이 일하는 곳요.”
“동생이 있었던가?”
“의동생이에요. 여기서 대사부로 일하고 있어요. 지나는 길에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요.”
“의제라, 그도 자네처럼…….”
“뭐요?”
무위(武威)가 뛰어나냐고 물으려던 노도경은 어쩐지 구차해서 말을 돌렸다.
“닳고 닳은 사람인가?”
“그런 놈이었으면 상방에서 일하고 있을 거예요. 이 녀석은 그냥 어리바리한 놈이에요.”
“아, 어리바리.”
노도경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는 걸 보니 연남천처럼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세상에 그와 같은 남자가 또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마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천검문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 한쪽에 마련된 연무장에서 수련생들이 검법을 연마하고 있었다.
외부인들의 방문에 제자들을 지도하던 이철산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얼굴의 여드름 때문에 바로 연적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몇 번 눈을 끔뻑이던 이철산이 환하게 웃으며 연적하를 향해 달려갔다.
“형님!”
한 번 형님은 영원한 형님이다.
이십 대 후반으로 접어든 이철산이 연적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천검문의 제자들이 하던 동작을 멈추고 힐끔거렸다.
대사부가 자기보다 어린 청년을 형님으로 부르니 황당한 얼굴들이다.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거나 말거나 연적하는 이철산의 어깨를 다독였다.
“잘 지냈어?”
“예! 형님은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당연하지. 객점 주인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그런데 얼굴은 어떻게 된 겁니까? 여드름이 엄청나게 나셨네요?”
“말도 마. 지금은 사람 된 거야. 며칠 전에 만났으면 나 못 알아봤어.”
“그 정도였습니까?”
“이 아저씨에게 물어봐. 전에 내 얼굴이 어땠는지.”
돌연 연적하가 한쪽에 멀뚱멀뚱 서 있는 노도경을 끌어들였다.
노도경이 마지못한 얼굴로 답했다.
“네 의형의 얼굴은 얼마 전까지 눈 뜨고 못 볼 정도였다. 유명교주의 언령에 당해, 벌에 쏘인 돼지 대가리를 하고 다녔지. 그나마 무한에 오면서 주박(呪傳)이 풀려 이제야 좀 사람다워진 게다.”
그는 이철산의 무위가 예상했던 대로 형편없자 바로 말을 놓았다.
“돼, 돼지 대가리요? 진짜 돼지머리요?”
“쯧! 어리바리하다더니. 설마 진짜 돼지였겠느냐? 퉁퉁 부어 돼지 대가리처럼 컸다는 뜻이다.”
“아! 그랬군요. 그런데 그쪽은 누구신지? 저는 연 형님의 아우인 이철산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천검문에서 검술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나에 대해서는 알 것 없다. 명왕교에 볼일이 있어 네 의형과 잠시 동행하는 것뿐이니.”
이철산의 통성명 요구를 노도경은 칼같이 끊었다.
연남천이야 그렇다 쳐도 더 이상 근본 없는 놈들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자신이 마교도라는 게 알려지면 이 잡놈의 인생도 평탄치 못할 것이었다.
다행히 이철산은 녹림 출신이라 더 파고들지 않았다.
자신의 문제 많은 과거처럼 상대방도 그러려니 생각했던 것이다.
“형님, 시간 되시면 잠시 안으로 들어가서 차라도 한잔하시지요.”
“아니야. 얼굴 봤으니 됐어. 그냥 가면 나중에 섭섭해 할까 봐 들른 거야. 채연이와 소백이에게도 안부 전하고. 두 사람도 별일 없지?”
“예, 소백이를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좀 많은 것 빼고 별일 없습니다.”
“남자들이 왜?”
“뒷배를 믿고 지랄맞게 구는 놈들이 종종 있지 않습니까. 그런 놈이 하나 있어서요.”
“뒷배?”
“지방관의 아들놈 하나가 좀 추근거리고 있습니다.”
“나 대신 네가 꽉꽉 밟아 줘.”
“그러려고요.”
이철산이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녹림도 출신인 그는 상대가 지방관 아들이라고 해서 봐줄 마음이 없었다.
만에 하나 일이 커지면 다른 곳으로 가서 새 출발을 해도 그만이라 생각했다.
천하는 넓고 고수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았으니까.
“혹시 문제가 생기면 내 객점이나 남궁세가로 사람 보내.”
“예, 남궁세가로 가시려고요?”
“어. 하산했으니까. 백부께 인사도 드릴 겸, 겸사겸사.”
연적하가 쑥스러움에 말끝을 흐리자 이철산이 히죽 웃었다.
“오랜만에 남궁 소저도 뵙고 그러면 좋겠네요.”
“뭐 그래야지. 그럼 난 간다.”
연적하는 괜히 이철산이 다른 말을 하기 전에 서둘러 돌아섰다.
마차 안에서 노도경이 물었다.
“명왕교를 찾고 있다는 말은 왜 안 했나?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할 텐데.”
“괜히 십두마병과 얽히면 쟤는 즉사해요. 그냥 내가 발품 파는 게 나아요.”
“자네 아우도 제법 하는 것 같던데. 십두마병의 무위가 그렇게 뛰어난가?”
“나도 궁금하네요. 아저씨가 십두마병을 상대로 어떻게 싸울지.”
그러자 노도경이 자존심 상한 얼굴로 말했다.
“백두마군이면 몰라도 십두마병이라니? 이,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시답지 않은 자들과 비교한단 말인가.”
“십두마병이야 별거 아니겠죠. 하지만 그들이 죽어 마물로 변하면 고생 좀 해야 할걸요?”
“흥! 그래 봐야 십두마병이지.”
노도경은 십두마병을 잡졸 취급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위로 백두마군과 천두마왕이 있기 때문이다.
마교에서 자신의 위치는 천인.
교주와 육문의 문주 바로 다음이었다.
그건 유명교로 치면 교주와 백두마군의 중간쯤 된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그는 십두마병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에게 십두마병은 백두마군이 부리는 수하들에 불과했다.
사실 마물만 아니라면 그 생각도 틀린 건 아니었다.
“마교 순찰사자시라니 어련하시려고요.”
“비록 내가 자네에게 패했지만 마교의 무공은 절대 약하지 않네.”
“누가 뭐래요?”
그 부분은 연적하도 인정하는 바였다.
자신이 그를 놀렸지만 그의 무위는 천하십대고수에 가까웠다.
특히나 ‘빛나는 검광’은 지금 생각해도 무시무시했다.
그건 확실히 당장 천하십대고수들과 겨루어도 될 만한 경지였다.
하지만 천하십대고수인 무상도제 장무덕도 마물을 상대로 고전했다.
그걸 생각하면 노도경도 안심하기는 어려웠다.
꽁해 있던 노도경은 그래도 은근 마음에 걸렸는지 슬쩍 운을 뗐다.
“혹 자네는 십두마병을 상대한 적이 있는가?”
“있죠. 아마 내가 제일 많을걸요?”
“그래? 어떻던가?”
“십두마병의 무위는 절정고수 정도니 신경 쓸 것 없어요. 그 뒤가 문제지.”
“그 뒤라면 마물을 말하는 건가?”
“맞아요. 마물은 절대고수도 감당하기 어려워요. 천하십대고수들도 전전긍긍하더라고요.”
노도경이 반신반의한 얼굴로 연남천을 힐끔거렸다.
마치 천하십대고수가 마물을 상대로 싸우는 걸 본 것처럼 말해서다.
‘이놈은 잘 나가다가 항상 이런 식이라니까. 제 눈으로 보기라도 한 것처럼.’
십두마병만 해도 어지간한 무림인들은 만날 일이 없다.
천하십대고수는 더 하다.
하물며 십두마병과 천하십대고수가 싸우는 걸 옆에서 지켜본다?
그 말을 한 이가 연남천만 아니었으면 벌써 귀싸대기를 후려쳤다.
문득 그가 한 말 중에 사실과 다른 게 떠올랐다.
“험, 내가 들은 것과 조금 다르군. 십두마병을 가장 많이 죽인 자는 녹림의 연 뭐시기라고 하던데.”
“연적하요?”
“그래, 연적하. 과장된 소문이라 생각해 한 귀로 듣고 흘렸더니만. 어쨌든 나는 그자가 십두마병을 가장 많이 척살했다고 들었네. 그런데 자네는 ‘내가 제일 많이 상대했다’고 하지 않았나?”
연적하가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내 도호가 남천이고 본명이 적하예요.”
“…….”
한순간 노도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당파 제자 연남천’이 ‘녹림의 연적하’라니 듣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게 사실인가?”
“내가 아저씨를 속여서 뭐에 쓰게요? 아저씨가 나보다 고수예요? 나보다 돈이 많아요?”
“험, 험. 그렇지. 그럴 이유가 없지. 그동안 무당파도 많이 변했나 보군. 녹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잡으러 다녔는데 제자로 삼다니. 역시 세상이 망할 징조야.”
연적하가 푸들푸들 웃었다.
절대고수가 입만 열면 세상이 멸망한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웃나?”
“그야 아저씨가 걸핏하면 세상이 멸망한다고 하니 그러죠.”
“그런 건 본래 눈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걸세.”
“내 눈은 장식인가요?”
“사람은 아는 만큼만 보게 되어 있네. 자네도 입교하면 멸망의 징조를 볼 수 있을 걸세.”
“입교 안 하고 그냥 편하게 살려고요.”
“그러든지. 자네가 연적하라니 궁금해지는구먼. 십두마병을 어떻게 죽였나?”
“한동안 천지맹에서 법보를 구하느라 난리 친 것도 마물을 잡으려고 그런 거예요.”
“법보로 가능하다는 말인가?”
“법보가 없으면 천하십대고수라 해도 최소한 반나절은 걸릴걸요?”
“휴우! 반나절이라고?”
노도경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무리 내외공의 고수라 해도 한계라는 게 있다.
설화인(说话人, 전문 이야기꾼)들이 삼 일 밤낮을 싸운 고수들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건 과장이다.
아귀다툼이 일상인 마교에서도 한 시진(2시간)이상 가는 싸움은 없다.
그런데 반나절이라니?
‘아무리 고수라도 진기가 고갈되어 서 있지도 못할 터인데…….’
생각에 잠긴 노도경의 귀로 연남천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은 호천맹의 맹주인 무극상인이 천문산에서 마물과 싸우다가 달아났다고 하더라고요. 때려도 때려도 안 죽으니까. 사람이 먼저 나가 떨어진 거죠.”
“무극상인에게 법보가 없었나 보군?”
“맞아요. 반나절 정도 싸웠으면 죽였을지 모르죠. 그런데 함께 있던 멸사대의 피해가 너무 커서 그냥 몸을 뺐다고 하더라고요.”
“허면 자네는? 자네에게는 법보가 있었나?”
“그건 비밀.”
“비밀이라고?”
“어허, 이 아저씨가 순진하게 왜 자꾸 물어보실까. 내 사문이 어디예요?”
“무당파 아닌가. 아하! 이제 보니 무당파 법보를 가진 게로구먼.”
“그게 아니라, 무당파 제자가 마교 순찰사자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겠냐고요. 이 아저씨가 아직 세상을 모르시네. 말해 봐요. 산에서 내려온 지 얼마 안 됐죠?”
초심자 취급당한 노도경은 기가 막혔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폐관수련을 하다가 얼마 전에 하산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딱 한 번만 말해 줄 테니까 잘 들어요. 어디 가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면, 삼 푼은 감춰요. 그래야 뒤통수 맞을 때 되받아칠 수 있어요.”
“…….”
노도경은 대꾸하지 않았다.
마교 동방사자인 자신이 저따위 한심한 소리를 듣다니 확실히 멸망의 징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