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63
463회. 너라서 다행이다
다관의 손님들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설화인 풍수림이 득의의 표정으로 손님들을 쭉 둘러보았다.
고작 ‘왕부’와 ‘풍지산’을 ‘불로장생’으로 엮은 것에 그렇게 감탄하다니.
“진시황만 불로장생을 추구한 게 아니야. 불로장생은 모든 왕들의 꿈이라고. 황실에서 유명교를 가까이 한 것도 불로장생법을 배우기 위해서였지. 유명교주가 불로불사에 푹 빠져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니까 말하면 입만 아프고.”
풍수림이 미지근하게 식은 찻물로 목을 축였다.
“캬하! 좋다. 이 집의 차 맛은 정말 남직례성에서 손꼽는다니까. 백담은 상인이라 ‘왕부’에 먼저 보내서 간을 봤어. 이게 통할지 어떨지 반신반의했을 거야. 그런데 왕부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네? 용기백배해 진 백담은 ‘풍지산’에도 슬쩍 선물을 뿌렸지. 유명교주가 ‘왕부’만큼 좋아하면 금일상방은 천하십대상방의 자리를 노려볼지도 몰라. 왜? 누가 ‘왕부’와 유명교주의 눈에 든 금일상방을 건드리겠냐고.”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불목하니와 백담을 보면 월왕 구천과 관련된 고사가 떠올라. 어느 마을에 손 안 트는 약을 개발한 사람이 있었어. 그는 그 약으로 마을 사람들의 빨래를 하면서 근근이 살았지. 그런데 어느 날 나그네가 그 곳을 지나다가 손 안 트는 비법을 돈 주고 사들여. 그걸 사자마자 나그네는 월왕 구천을 찾아가. 이게 묘수야. 그때 월왕 구천은 강 하나를 마주하고 오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거든. 때는 겨울이라 병사들 손이 터서 제대로 싸울 수가 있나. 나그네가 월왕 구천에게 이 비법을 판 거야. 월왕 구천이 비법만 사나? 그 나그네는 바로 장군으로 딱! 대자은사의 불목하니가 유명교주에게 직접 고서를 들고 갔다면, 인생이 바뀌었을 텐데. 하여간 재주 부리는 놈 따로 있고 돈 버는 놈 따로 있다니까.”
손님들이 씁쓸한 얼굴로 한마디씩 뱉었다.
“하아! 얼마에 팔았으려나.”
“그릇의 크기지.”
“금일상방에서 많이 챙겨 줬으려나.”
“장사꾼들이 퍽도.”
사람들은 불목하니의 행운을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워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풍수림이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불목하니가 꿍쳐 둔 고서는 없을까 몰라. 그 고서가 정말 값어치 있다면, ‘왕부’나 유명교주가 그런 의심을 할 것 같은데. 아니면 말고.”
풍수림의 마지막 말에 손님들은 일행과 속닥거렸다.
‘하나쯤은 남겨 놨을 거다’와 ‘그럴 정도의 머리는 아니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렇게 설화인 풍수림은 풍성한 대화 소재를 던져 주고 다관을 떠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연적하는 식은 차를 단숨에 들이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남궁세가.
다관을 나온 연적하는 오시 초(오전 11시)쯤 남궁세가로 돌아갔다.
그가 안채로 향하는 마당을 가로지를 때다.
연무장에서 나오던 청운검 남궁천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우! 아침부터 어딜 그렇게 쏘다녀?”
“산책을 좀 다녀왔어요.”
“어디로? 안 보이던데?”
남궁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침에 잠깐 연적하를 찾아다녔지만 세가에서 발견하지 못해서다.
“아, 근처의 산에 갔다가 마을을 둘러보고 오는 길이에요.”
“아하! 나갔었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괜히 아침에 찾아다녔네.”
“저를요?”
“어. 비무나 할까 해서.”
남궁천에게 연적하는 아버지보다 더 좋은 비무 상대였다.
자신보다 열두 살이나 어린 연적하와의 비무가 투쟁심을 자극해서다.
“지금이라도 할까요? 비무?”
“괜찮겠어?”
남궁천은 사양하지 않았다.
경험상 연적하와의 비무는 그 자체로 기연이라 할 수 있었다.
그의 검로는 익숙하면서, 한편으로 망망대해처럼 종잡기 어려웠다.
분명 연무백과 같은 검법을 사용하는데 왜 그런 차이가 나는지는 모르겠다.
부친은 연적하가 이미 무초의 경지에 이르러 그럴 거라고 했다.
초식은 사용하지만 경계가 허물어져 만검(萬劍)의 이치가 담겨 있다나?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것 같다고 하자 부친은 웃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거라면서.
검의 왕이라 불리는 부친의 설명이니 틀림없으리라.
남궁천은 연적하를 데리고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연무장에서 수련하고 있던 제자들의 이목이 연적하에게 집중됐다.
그들 모두 연적하가 남궁세가의 예비 사위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연적하의 검공을 본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소문으로만 들은 상태.
그러던 차에 남궁천이 그를 데리고 오자 슬그머니 검을 거두고 연무장 밖으로 물러났다.
남궁천은 연무장에 있는 좌대에서 검 하나를 꺼내 연적하에게 건넸다.
곧이어 남궁천과 연적하의 비무가 시작됐다.
차차창-.
두 사람은 ‘일족일검의 거리’에서 쉬지 않고 검격을 주고받았다.
일족일검이란 칼끝을 마주한 거리로, 한 걸음 들어가면 상대를 벨 수 있고, 한 걸음 물러서면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거리를 의미한다.
더도 덜도 붙지 않은 거리에서 쉼 없이 불꽃이 튀었다.
숨도 쉬지 않고 몰아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관전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남궁천은 숨 쉴 틈 없이 검격을 나누던 중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생각하고 대처한다기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연적하에 맞서느라 초식과 무초식의 경계를 넘나들던 남궁천의 검에 검광이 맺혔다.
자연스럽게 검기발현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에 반해 연적하의 검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검격에는 눈곱만큼의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차차차창-.
쇠붙이가 맞닿는 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그러기를 일각(15분)여.
갑자기 남궁천의 검기가 짙어지더니 묵직한 검명이 울려 퍼졌다.
우우웅-.
뒤이어 그의 검신이 밝은 빛에 휩싸였다.
그것은 절대의 경지를 알리는 검강(劍罡)이었다.
일찌감치 청운검이라 불리며 ‘절정’의 길을 걷던 남궁천이 마침내 ‘절대’의 경지에 올라선 것이다.
절대의 경지에 들어서면 검의(劍意)를 발현할 수 있게 된다.
검의는 곧 자신의 깨달음을 형상화하는 의형검기(意形劍氣)를 의미한다.
남궁천의 검기가 검강으로 변화하자 연적하는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돌연 남궁천의 검첨이 천중(天中)을 가리켰다.
대연검법(大衍劍法)의 일 식 천동망월(天動望月)의 기수식이다.
고오오오-.
허공에서 백광(白光)이 작열하는가 싶더니 이내 연적하를 집어삼켰다.
피하거나 막을 틈도 없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아앗!”
“헉!”
구경하던 남궁세가 제자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대참사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때 잿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백광이 걷혔다.
푸스스스-.
조마조마한 얼굴로 연무장을 바라보던 제자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가슴 앞에 검을 세운 연적하가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축하드려요. 형님.”
뒤늦게 남궁천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아! 상대가 너라서 다행이다. 너무 몰입했나 봐. 한순간 절제가 되지 않았어. 다른 사람이었으면 큰 죄를 지었을 거야. 연이에게는 비밀이다.”
남궁천은 대성의 기쁨보다 동생에게 이 이야기가 들어갈까 봐 가슴을 졸였다.
“예, 말하지 않을게요. 그런데 형님 공력이 엄청 늘어난 것 같아요. 전에 비무했을 때보다 훨씬 검이 무겁더라고요.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아, 전에 팽가 애들하고 싸운 적이 있는데 그때 의기혈경(意氣血勁)의 사관(四關)을 뚫었어. 그 뒤로 기운의 수발이 자유롭게 되더라고.”
“의기혈경요?”
“몰라? ‘심도의도(心到意到)’, 마음이 가는 곳에 뜻이 간다. ‘의도기도(意到氣到)’, 뜻이 가는 곳에 기가 간다. ‘기도혈도(氣到血到)’, 기가 가는 곳에 혈이 간다. 그리고 ‘혈도경도(血到勁到)’, 혈이 가는 곳에 힘도 간다. 너는 그런 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강하냐?”
“그거 남궁세가의 비전 아니에요? 막 가르쳐 줘도 돼요?”
“네가 남이냐? 먹으러 가자. 힘썼더니 배고프다.”
씩씩하게 걷던 남궁천이 비틀거렸다.
깜짝 놀란 연적하가 황급히 주저앉으려는 그를 부축했다.
“형님, 어디 안 좋으세요?”
“기운이 쪽 빠져서 그래. 배가 고파서 현기증이 난다. 너무 배고파서 토할 것 같아.”
“무리하신 것 같아요.”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강 앞에서 살짝 욕심이 났다.
꿈에서나 그리던 검의(劍意)가, 왠지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 확신이 들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백광으로 작열하던 ‘천동망월’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게 자신이 깨달은 ‘천동망월’의 오의(奧義)였다.
“그래도 벽을 깬 게 어디냐. 평생 노력해도 벽을 깨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다 네 덕분이다. 네가 내 아우라서 참 좋다. 고맙다.”
남궁천은 진심으로 연적하에게 감사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절대의 경지는 꿈으로 그쳤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무인이 그러하듯 말이다.
“고맙긴요. 제가 뭐 해 준 게 있다고요. 다 형님 재능이 뛰어나서 그렇게 된 건데.”
“아니야. 강호에서 천재 소리 듣던 사람이 나 하나인 줄 아냐. 많았어. 하지만 그들이 모두 절대의 경지에 든 건 아니야. 오죽하면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을까.”
“아, 그런 거예요?”
“그래. 이제야 나도 네 발 뒤꿈치를 따라갈 수 있게 된 셈이지. 하하하!”
남궁천은 정말 기쁜지 호탕하게 웃었다.
***
정오 무렵.
남궁세가의 직계들이 이용하는 식당, 구주각(九州閣)에 두 남자가 들어섰다.
남궁천과 연적하다.
남궁세가의 소가주와 예비 사위를 본 찬모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잠시 후 찬모 하나가 소룡포(小籠包, 만두)를 들고 왔다.
“두 분, 이거라도 먼저 드세요. 그동안 다른 음식을 준비해 올게요.”
“예.”
“잘 먹을게요.”
남궁천은 찬모가 소룡포를 내려놓자마자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었다.
연적하는 느긋하게 소룡포를 즐겼다.
소룡포를 거의 다 먹을 무렵 밥과 금릉염수압(金陵鹽水鴨, 오리 요리), 동파육(東坡肉, 돼지고기 찜), 철판우육(铁板牛肉, 소고기 볶음), 도미 찜 등이 나왔다.
소룡포로 급한 불을 끈 남궁천이 우아하게 오리고기를 뜯으며 말했다.
“밖에 나가니 볼만한 게 있더냐?”
“사람만 많지 딱히 볼 건 없더라고요?”
“그럼, 사람 구경만 하고 온 게냐?”
“아, 다관에 들러서 차 한잔 마시고 왔어요.”
“주루가 아니라 다관에 갔다고? 네가?”
남궁천이 놀란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술이라면 모를까? 홀로 차를 마시는 그의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형님, 제가 사실 술보다는 차를 더 즐겨 마셔요.”
“그래? 믿어 줄게.”
“실은 길을 지나는데 다관에서…….”
연적하가 막 설화인 이야기를 하려는데 남궁연이 불쑥 들어왔다.
“어? 연아야. 일찍 왔네? 너도 배가 고파서 왔느냐? 아버지도 이참에 모셔 올까?”
“아버지는 모용가의 초대를 받아 나가셨어요.”
‘모용가’라는 말에 남궁천이 움찔했다.
무림세가의 지위를 상실한 모용가는 남궁세가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청운검’과 ‘항아검’을 맺어 주자고.
“그러니까 더 말 나오기 전에 빨리 아버지께 말씀드리세요. 오라버니.”
순간 남궁천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연적하에게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했지만, 그도 다를 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