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66
466회 팔황이 알아서 처리할 거예요
하남성.
정주.
중무현 가로하.
석양이 질 무렵.
풍광이 수려한 강변길을 노인과 중년의 남자가 걷고 있다.
구천노도 심통과 곡성이다.
가로하를 건너면 바로 개봉.
개운한 심통과 달리 곡성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기운이 없어 보였다.
심통이 쓰러져 가는 버려진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저곳에서 쉬어 갈 것이다. 네놈이 숙수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맞느냐?”
“예, 예.”
“실력을 발휘해 보거라. 오래 살고 싶다면 허튼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어이쿠! 허튼짓이라니요.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곧이어 두 사람은 폐가로 들어갔다.
심통은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곡성을 감시했다.
곡성은 연적하에게 했던 것처럼 가지고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음식을 만들었다.
잠시 후.
심통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자신의 앞에 차려진 요리를 보았다.
폐가에서 급하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깔끔했다.
“초반(炒飯, 볶음밥)과 규화계(叫花鷄, 닭요리)입니다.”
“흠! 보기에는 괜찮은데 맛은 어떨지.”
“드실 만하실 겁니다.”
심통에게 분근착골을 당해 본 곡성의 눈빛이 흔들렸다.
행여나 맛이 없다고 자신을 괴롭힐까 봐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심통은 초반을 조금 떠먹어 보았다.
달콤 짭짜름한 맛과 혀끝에 와 닿는 밥알 하나하나의 부드러운 느낌이 일품이다.
규화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본래 닭구이는 소금만 찍어 먹어도 맛있다.
그런데 거기에 감칠맛까지 더해져 고급 요릿집이 부럽지 않았다.
“제법이군.”
마음속으로 감탄한 것에 비하면 심통의 평가는 야박했다.
그래도 분근착골의 공포에서 벗어난 곡성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그날 밤.
심통은 곡성을 떠보려고 일찌감치 잠든 척했다.
하지만 분근착골 이후로 인생을 포기한 곡성은 달아나지 않았다.
달아나 봐야 녹림의 눈을 피할 수 없으니 그냥 현실에 순응하기로 한 것이다.
“드르렁. 드르렁-.”
자정을 넘기고 심통이 슬며시 눈을 떴다.
곡성은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진짜 잠들었군.’
자신이 잠든 틈에 달아날 줄 알았는데 의외다.
스르륵 일어난 심통은 곡성의 수혈을 찍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누웠다.
유비무환이라고, 손을 써 두자 그제야 솔솔 잠이 밀려왔다.
이윽고 심통의 코 고는 소리가 폐가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
산서성.
교구현.
풍지산 선녀암.
이른 아침.
신당 앞에 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팔황의 일인인 육통존자(六通尊者)와 서안 금일상방의 방주 백담 만수귀다.
앞마당에 진입한 만수귀가 흑기사를 보고 흠칫하자 육통존자가 말했다.
“교주님을 해할 마음이 없으면 흑기사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라.”
“예, 예.”
만수귀는 신기한 눈으로 흑기사를 힐끔거렸다.
흑마와 흑기사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기이한 존재감을 풍기고 있었다.
잠시 후 육통존자가 신당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교주님. 금일상방의 방주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굳게 닫혀 있던 신당 문이 천천히 열렸다.
육통존자와 만수귀를 본 팔황신모가 담담하게 말했다.
“수고했다. 만 방주, 먼 길을 오느라 고생했어요. 지난번에 보내 준 선물이 고마워 차를 대접하려고 불렀어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예, 예.”
만수귀가 희희낙락한 얼굴로 굽실거렸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고서를 보냈는데 이게 웬 횡재인지 모르겠다.
팔황신모가 만수귀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자 신당은 금방 차향으로 가득했다.
“항주의 교도들이 보내 준 용정차랍니다. 입맛에 맞으려나 모르겠네요.”
만수귀는 급히 입술을 축인 뒤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맞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다행이네요. 몇 꾸러미를 보내왔는데 가실 때 한 꾸러미 들고 가세요.”
“예, 예. 감사합니다.”
만수귀의 입이 귀에 걸렸다.
유명교주에게 선물을 받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서안의 상인들과 군소 방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무조건 양보하겠지?’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는 그의 귓가로 팔황신모의 음성이 들려왔다.
“고서에 대해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어요.”
“아, 예. 말씀해 주십시오. 알고 있는 건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듣자하니 대자은사의 불목하니에게 사들인 고서라고 하던데. 맞나요?”
“예, 그렇습니다. 불목하니에게 정당한 값을 치르고 구입한 것들입니다.”
만수귀는 혹시라도 불목하니를 속였다고 할까 봐 ‘정당한 값’을 강조했다.
싸게 사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헐값에 구입하지 않은 까닭이다.
“후후. 오해하지 말아요. 얼마에 구입했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니까.”
“예, 예.”
“고서가 꽤 많았다고 들었어요. ‘왕부’에도 따로 챙겨서 보낼 정도로.”
“예. 그에게 구매한 것이 두 상자나 됩니다.”
“두 상자면 몇 권이죠?”
“상자 하나에 대략 서른 권쯤 들어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쉰 권은 넘습니다.”
“쉰 권이라. 그중에 세 권을 나에게 선물한 건가요?”
“예, 널리 알려진 불경도 꽤 되어서요. 처음 보는 것들 위주로 선별해 보내 드렸습니다.”
“허면 지금 상방에 남아 있는 건 몇 권인가요?”
“한 상자가 남아 있습니다.”
“나머지는?”
“두 차례에 걸쳐 왕부로 전부 열 권쯤 보냈습니다.”
“그것도 선별한 것들이겠네요?”
“예, 그렇습니다. 유명한 불경은 죄다 뺐으니까요.”
“불경은 뺐다?”
“그렇습니다. 교주님에게 드린 것처럼 불경과 관계가 없어 보이는 고서들로 선별해 보냈습니다.”
“금일상방에서 직접 보냈나요?”
“아닙니다. 저희 상방은 남직례성까지 상행을 보낼 여력이 없어서요. 하남성까지만 저희가 운송하고, 하남성에서 거래하던 상방에 맡겼습니다.”
“거래하는 하남성의 상방이 어디죠?”
“백화상방이라고 남직례성을 오가는 상방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요?”
“그러니까 불목하니에게 구입해서, 일부는 직접 나에게 선물하고, 일부는 백화상방을 통해 남직례성으로 보냈다. 맞나요?”
“예. 정확하십니다.”
“불목하니가 누군지 궁금하군요.”
“예?”
만수귀는 팔황신모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불목하니가 누구며, 어디에 사는지 알고 싶다고 했어요.”
“아, 예, 그의 이름은 ‘모삼’이라 하는데 ‘등전로’에 집을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등전로?”
“서안에 있는 시장통입니다. 잡상 인들로 들끓는 거리지요. 대자은사의 눈을 피해 정착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고 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만 방주.”
“예.”
“나는 만 방주의 선물이 마음에 들어요.”
“어이쿠!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교주님을 향한 저의 충심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다른 고서들도 내가 가져야겠어요.”
“아, 예. 그러시다면 가지고 있는 나머지 한 상자도 바로 바치겠습니다.”
“왕부에 보낸 것들도 되찾아 오세요.”
“예?”
만수귀가 황당한 눈으로 팔황신모를 보았다.
왕부에 보낸 고서를 되찾아 오라니? 그건 불가능한 주문이었다.
“교주님, 저희 금일상방은 서안에서도 그저 그런 상방 중에 하나입니다. 고서를 되찾아 오고 싶어도……. 왕부에서 순순히 내어 주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팔황이 그대의 일을 도와줄 테니까.”
“도와준다고요?”
“그대는 고서가 누구 손에 들어갔는지만 알아내세요. 나머지는 팔황이 알아서 처리할 거예요.”
“아! 알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저희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이 잘 마무리되면 금일상방은 천하십대상방 소리를 듣게 될 거예요.”
“헉! 감사합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누가 가져갔는지 알아내겠습니다.”
그의 호들갑에 팔황신모는 피식 웃었다.
팔황의 손에서 살아남을 정도의 힘이라면 천하십대상방이 문젤까.
***
산서성.
서안.
등전로.
해시 초(오후 9시).
저녁 식사를 마친 모삼의 가족은 여느 때처럼 한자리에 모여 시시덕거렸다.
모삼은 처와 자녀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보았다.
고작 책 상자 두 개로 평생 일해 받은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대자은사 승려들의 눈을 피해 살아야 한다는 게 조금 신경 쓰이지만, 처자식을 생각하면 그 정도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덜컹.
한밤중에 갑자기 방문이 열리자 모삼의 가족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비단 장포를 걸친 중년인, 팔황의 일인인 화조선인(花鳥仙人)이 방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불청객의 난입에 모삼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누구요!”
“내가 누군지는 알 것 없고. 네가 모삼이냐?”
“그렇소. 내가 모삼이오. 나를 찾아왔소?”
모삼이 불안한 눈으로 중년인을 훑어보았다.
대자은사에서 보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화조선인은 불문곡직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모삼의 처와 아들, 딸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뒤늦게 상대가 무시무시한 무림인임을 깨달은 모삼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워, 원하는 게 뭡니까? 돈이라면 많지 않지만 모두 드리겠습니다.”
“돈은 필요 없다. 나는 대안탑에서 나온 책을 찾고 있다.”
“책이라면 금일상방에 모두 팔았습니다.”
“도리라는 게 뭔지 모르는 쥐새끼들의 특징이 있지. 그게 뭔지 아느냐?”
“모, 모릅니다.”
“그건 꼭 부스러기를 꿍쳐 둔다는 거다. 쥐새끼처럼. 돈이 떨어지면 또 흥정을 할 요량으로.”
“아, 아닙니다. 정말 없습니다. 모두 금일상방에 넘겼습니다. 믿어 주십쇼. 대협!”
그러나 화조선인은 모삼의 말을 무시했다.
그에게 모삼은 대자은사의 물건을 훔쳐다 판 좀도둑에 불과했다.
화조선인은 방 안에 있는 가재도구를 하나씩 뒤집었다.
가재도구라고 해 봐야 옷장 두 개가 전부인지라 수색은 금방 끝났다.
모삼은 처자식 때문에 달아나지도 못하고 덜덜 떨며 자리를 지켰다.
방을 뒤집어도 고서가 발견되지 않자 화조선인은 모삼에게 다가갔다.
“처자식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말해라. 책은 어디 있느냐?”
모삼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애원했다.
“대협, 정말 없습니다. 믿어 주십쇼. 금일상방에 모두 팔았습니다.”
“지금부터 네 가족을 한 사람씩 죽일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말해라.”
화조선인이 중년 여자의 머리통을 움켜잡더니 그대로 돌려 버렸다.
빠득.
목이 돌아간 여자는 바로 숨을 거두었다.
“악! 여보!”
모삼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화조선인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어린 여자아이의 앞으로 이동했다.
“이 개자식아! 다 팔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모삼이 고함을 내지르며 화조선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화조선인이 손을 흔들자 모삼의 몸은 낙엽처럼 벽으로 날아갔다.
콰앙.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머리를 흔들던 모삼의 눈이 부릅떠졌다.
중년인의 손이 어린 딸의 가녀린 목을 움켜잡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그러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중년인은 멈추지 않았다.
중년인이 주먹을 말아 쥐자 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
“우어어어!”
모삼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다시 중년인에게 달려갔다.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그의 목줄기를 화조선인이 가볍게 움켜잡았다.
“말해라. 숨겨 둔 책은 어디 있느냐. 말하지 않는다면 이놈도 죽는다.”
화조선인은 모삼의 코앞에 어린 사내아이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공포에 질린 아들의 눈을 보면서 모삼이 애원했다.
“없어요. 없습니다. 제발, 제발…….”
모삼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화조선인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없었구나. 이제는 믿겠다.”
말과 함께 그는 아이의 머리통으로 모삼의 얼굴을 짓뭉갰다.
훗날 ‘팔황의 혈사’라 불린 혈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