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74
474회. 난 이기는 싸움만 해
남직례성.
합비.
여강현.
석경장이 망치 소리에 뒤덮였다.
오월 한 달 동안 여강현의 목수와 석공이 석경장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들은 십전무후 남궁연이 지정한 곳에 목책을 세운다거나, 석탑을 높게 쌓았다.
목수와 석공 들은 건축물의 용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지런히 일했다.
깜깜이 공사는 한 달 만에 끝났다.
일이 끝나자 남궁연은 목수와 석공들에게 품삯을 주고 내보냈다.
그런 뒤 연적하와 석탑을 돌아다니며 부적을 붙여 나갔다.
연적하는 새끼 오리처럼 남궁연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연신 떠들어 댔다.
“아아! 나는 바보야. 왜 진법에서 칼질할 생각만 했지? 풍운조화를 할 수 있는 부적술을 익혀 놓고서 말야. 누님, 저만 믿으세요. 제가 오룡궁 최고의 술사라고 불리는 남잡니다. 누님의 진법에 저의 부적이 합쳐지면 ‘팔문팔상진’도 부럽지 않다니까요.”
그의 호언장담에 남궁연이 제동을 걸었다.
“부적의 힘이 너무 강하면 활로가 제구실을 못 하게 될 수도 있어.”
“아, 그래요? 그럼 부적을 쓰지 말까요? 달아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그 정도는 아닐 거야. 활로는 진법이 깨지기 전까지 맡은 역할을 해내니까. 부적은 혼란을 더하기 위한 거지 깨기 위한 게 아니잖아.”
“그렇기는 하죠.”
석탑 안에 부적을 묻던 남궁연이 문득 물었다.
“주문을 외우면 ‘흑운차일부(黑雲遮日符)’가 발동한다고 했지?”
“네.”
“궁금하네. 태양을 가린다니. 그런 정도로 강력한 술법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데.”
“볼만할 거예요.”
연적하의 얼굴에 득의의 미소가 떠올랐다.
진법에 빠져 헤매는데 하늘마저 칠흑처럼 어두워진다면 놀랄 자빠질 게다.
한창 두 사람이 석탑을 점검하고 다닐 때다.
약제당의 삼보절명 당운망이 경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허겁지겁 다가왔다.
“이보게, 연 공자. 조금 전에 심가에게 들었는데…….”
흥분으로 언성을 높이던 그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죽였다.
“유명교가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면서?”
“그래서?”
“그래서라니? 석경장에 누가 있다고 유명교와 싸운단 말인가? 나는 갑자기 왜 장원에 진법을 만드나 했더니만, 그런 이유 때문인 줄은 꿈에도 몰랐네.”
“바쁘니까 본론을 말해.”
“소나기가 내리는데 그냥 서서 맞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피하고 봐야지.”
“어디로?”
“석경장만 아니면 어디든 좋겠지. 심산유곡에 숨어 죽은 듯 지내다가…….”
“쥐새끼처럼?”
“아니, 심산유곡에 쥐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안 살아. 내가 왜 잔챙이들을 피해 숨어야 돼? 고수가 하수를 피해 다니는 경우도 있어?”
“유명교를 잔챙이라니. 그럼 정의맹과 천지맹은 잔챙이에 당했다는 건가?”
“결론을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네는 어디 딴 세상에서 살다 왔나? 여하튼 수그려야 할 때는 좀 수그리자 이 말일세.”
“늙은이가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난 이기는 싸움만 해.”
“그러니까 유명교와 싸워 이길 자신이 있다?”
“두 번 말하면 잔소리지.”
“지면?”
“당연히 달아나야지. 그러라고 누님이 큰돈 들여서 진법을 만든 건데.”
“이제 보니 달아날 생각도 했구먼? 어차피 달아날 거 여유 있게 움직이자 이 말일세.”
순간 연적하가 화를 버럭 냈다.
“아니! 이 늙은이가 왜 나를 찾아와서 악담을 한데? 싸워 보기도 전에 달아날 거라니? 그게 석경장에서 먹고 자는 사람 입에서 나올 소리야? 지금 ‘적진분열’ 하자는 거야? 왜 적을 앞에 두고 한 식구를 공격해!”
“‘적진분열’이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냐! 하는 짓이 딱 그렇구만. 나에게 악담할 기력이 있으면 가서 금창약이나 하나라도 더 만들어.”
“적을 앞에 두고 같은 편끼리 싸우는 건 ‘적전분열(敵前分裂)’이라네. 적진분열이 아니라.”
“그걸 누가 몰라? 나도 적전분열이라고 했어. 이거 봐. 또 시비를 거네. 가! 그렇게 걱정이 되면 얼른 가서 금창약이나 만들라고!”
“끙! 정히 유명교와 싸울 생각이라면 금창약으로 되겠나. 내 별호가 ‘삼보절명’일세. 석경장에서는 독을 손에 대지 않으려 했는데 굳이 싸우겠다니…….”
“왜? 독이라도 만들게?”
“자네가 원한다면 ‘철질려(鐵读藝, 바닥에 뿌리는 암기)’에 ‘일촉절명산(一觸絶命酸)’을 발라 주지. 그게 바로 당가가 자랑하는 ‘독질려(毒族藝)’라네. 진법과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은데 어떤가?”
뜻밖의 제안에 머뭇거리던 연적하가 남궁연을 보았다.
“누님, 진법에 ‘독질려’를 써도 돼요?”
“활로(活路)를 피해서 설치하는 건 괜찮아.”
그러자 당운망이 급히 끼어들었다.
“활로가 어딘지만 알려 주면, 그곳을 뺀 나머지를 지옥으로 만들어 주리다.”
당운망은 저도 살고 싶은지 적극적으로 나왔다.
“당 대협, 만일에 대비해 해약이 있어야 할 거예요. 같이 준비할 수 있나요?”
남궁연이 당운망을 지그시 보았다.
월아, 금아와 일꾼들이 독질려를 밟을 수도 있으니 그에 대비해야 했다.
“물론이오. 늦어도 사흘이면 일촉절명산과 해약을 만들 수 있소.”
“그럼, 내가 활로를 가르쳐 드릴게요.”
그렇게 해서 석경장에 당가의 ‘독질려’까지 추가됐다.
사흘 후 당운망은 곳곳에 ‘독질려’를 뿌리고 일꾼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다행히 일꾼의 숫자가 적은 데다가, 진법을 두려워해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대비가 끝나자 석경장 사람들은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갔다.
***
유월.
남직례성 합비.
소호(巢湖) 무산소축(楚山小縮).
해시 초(오후 9시).
유명교 교당 중 하나인 무산소축으로 열세 개의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풍지산을 떠난 팔황과 다섯 명의 십두마병들이다.
잠시 후 총관 명조산과 호법 청녀투선 원수연이 뛰어나와 팔황을 맞이했다.
소객당(騷客堂).
늦은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술잔이 오갈 즈음, 명조산이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팔황님들께서 이곳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합비는 무산소축의 안방과도 같은 곳이니 혹여 도울 일이 있다면 돕겠습니다.”
팔황의 수좌인 태백선인(太白仙人)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교도들의 복수를 위해 석경장을 치러 왔소. 그런데 와서 보니 연적하와 십전무후, 구천노도가 전부인 것 같더이다. 내일까지 조용히 쉴 수 있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오.”
사실 지금의 무산소축은 전력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주인인 무산낭랑 이매화를 따라 십두마병들이 죄다 풍지산에 간 탓이다.
당장 명조산만 해도 십두마병인 전임 총관 혈귀 완사석이 풍지산으로 가면서 잠시 무산소축의 관리를 맡긴 사람이었다.
“예, 그러시군요. 머무시는 동안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주제를 아는 명조산은 돕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팔황은 명조산과 원수연을 내보내고 조용히 병장기를 점검했다.
무산소축 사람들 앞에서야 호기롭게 ‘석경장을 치러 왔다’고 했지만, 석경장이 만만한 상대가 아님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
소호에서 일어난 물안개가 인접한 마을까지 자욱하게 덮은 새벽.
일단의 무리가 호반을 따라 은밀하게 이동했다.
한 식경(약 30분)쯤 빠르게 걷던 그들은 갈림길이 나오자 멈춰 섰다.
대부분 초행길인 데다 물안개로 자욱해 방향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호 지리에 밝은 구궁천녀가 나서서 손끝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일각(15분)만 가면 원가산이에요.”
팔황과 십두마병들은 묵묵히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일각쯤 지났을까?
희뿌연 물안개 속에 장원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태백선인은 그것이 목표물인 석경장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는 뒤쪽의 십두마병들에게 손을 까닥였다.
십두마병들의 대표격인 상문객 임소거가 긴장한 얼굴로 다가갔다.
“팔황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담을 넘어서야 되겠느냐. 정문으로 들어갈 테니 길을 열어라.”
한마디로 십두마병이 앞장서라는 소리다.
임소거는 조금 불안했지만 감히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동료 십두마병들에게 돌아간 임소거가 태백선인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웃으면서 사람을 죽인다’는 소면살귀 전우신이 소곤거렸다.
“설마, 지금 ‘십두마병을 앞세워 연적하를 치겠다’는 소리인가?”
순간 십두마병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십두마병들 사이에 전부터 그런 묘한 소문이 떠돌았다.
윗분들이 산 십두마병보다 죽은 ‘지옥의 마신’을 더 원할 수도 있다는.
그래도 같은 교도라고 설마설마했는데, 아무래도 오늘이 그날인 것 같다.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갑시다.”
임소거가 얼른 앞장섰다.
이야기를 길게 해 봤자 뾰족한 수가 없는 까닭이다.
그러다 괜히 이곳에서 팔황의 눈 밖에 났다가는 말대로 될지도 몰랐다.
석경장의 대문 앞에 선 임소거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걷어찼다.
분풀이를 애꿎은 문짝에다가 한 셈이다.
콰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문이 뜯어져 나갔다.
그 충격으로 흩어졌던 물안개가 다시 스물스물 밀려 들었다.
‘제길! 하필 날씨마저 이렇담.’
투덜거리던 임소거는 팔황의 눈을 의식해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죽을 때 죽더라도 겁보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그의 뒤를 전우신과 세 명의 십두마병이 주춤주춤 따라갔다.
팔황은 십두마병들의 모습이 물안개에 가려 사라져 가는데도 서두르지 않았다.
사실상 십두마병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런데 이게 웬일?
요란한 싸움을 기대했건만 십두마병들의 인기척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십두마병들이 사라지자 팔황은 급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그들의 앞을 거대한 목책이 가로막았다.
방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목책의 출현에 태백선인은 가슴이 철렁했다.
“누가 석경장에 이런 목책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소?”
구궁천녀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더구나 석경장의 크기를 생각하면 이건 불가능해요.”
“맞소. 아무래도 십전무후가 기문진을 설치해 둔 모양이오.”
태백선인은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연적하에게 신경이 팔려 석경장의 안주인이 십전무후라는 걸 깜빡했다.
그러자 육통존자(六通尊者)가 앞으로 나섰다.
“흥! 십전무후의 기문진식이 얼마나 대단한지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기문진식에 밝은 육통존자는 목책을 더듬어 나갔다.
그는 한참 동안 이리저리 방향을 꺾더니 한 지점에서 우뚝 멈춰 섰다.
“흥! 고작 ‘혼천팔괘진(混天八卦陣)’이라니. 팔황을 너무 쉽게 봤군.”
그가 오연한 얼굴로 말하자 태백선인이 물었다.
“깨트릴 수가 있겠소?”
“‘혼천팔괘진’은 ‘팔문팔상진’에 비하면 어린아이 장난과도 같습니다.”
때마침 하늘이 도우려는지 물안개가 서서히 걷혔다.
조금 전까지 일 장(약 3미터) 앞도 잘 안 보이더니 이제는 십 장(약 30미터) 밖까지 보였다.
목책 너머 어딘가에서 ‘앗!’, ‘으헛!’ 하는 십두마병들의 뾰족한 비명이 들려왔다.
하지만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비파선자가 옆의 구궁천녀에게 슬쩍 물었다.
“‘혼천팔괘진’은 어떤 거예요?”
육통존자만큼이나 기문진식에 조예가 있는 구궁천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천지와 사면팔방(四面八方)을 뒤틀어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진법이에요. ‘팔문팔상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활용법이 무궁무진해서 조심해야 해요.”
그녀의 설명에 비파선자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말만 들어도 범상지 않은데 육통존자는 뭐가 저렇게 자신만만한지 모르겠다.
어느새 물안개는 완전히 사라져 주변 사물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던 비파선자가 무심코 말했다.
“왜 전각이 하나도 안 보이죠? 우리는 석경장에 들어왔잖아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건 온통 목책뿐이다.
마치 장성(長城)처럼 어디를 보아도 목책이라 그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했잖아요. 사면팔방을 뒤틀었다고. 저도 이렇게 정교한 혼천팔괘진은 처음이네요.”
구궁천녀의 눈빛이 가볍게 흔들렸다.
불현듯 십두마병을 더 많이 데리고 올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