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40
540회. 허심(虛心), 독보다 더 지독한 것
타인에게 자신의 내력을 전해 주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강호에서도 종종 스승이 제자에게 일신의 내력을 전해 주곤 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내공은 그 수련하는 방식, 그러니까 공법에 따라 고유의 성질을 갖는다.
이른바 음양(陰陽)과 오행(五行) 등이 그것이다.
정파는 물론 사파조차도 이 음양과 오행 등의 특징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게 같거나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충돌이 없다.
스승이 제자에게 내력을 전해 줄 때 사고가 나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질적인 변화 없이 양적으로만 늘어나기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성질의 내력이 만나면?
두 기운의 충돌로 산공(散功)이나 주화입마의 현상이 일어난다.
오래전 구천노도 심통이 ‘구천기’를 수련하다가 산공을 겪은 것도 그래서다.
연적하는 내력을 움직이기 전에 다시 물었다.
“그런데 괜찮겠어? 나야 상관없는데…….”
-설마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인가?
“그쪽처럼 남의 영기를 욕심내다가 고생한 사람을 본 적이 있거든.”
-종문의 제자들도 영기를 흡수하는데 신수(神獸)였던 내가 못할 것 같은가.
“아, 그래?”
생각해 보니 독안귀마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구주의 종문 제자들은 분명 서로 다른 공법으로 연성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종문의 영기를 흡수한다는 걸 보면 괜찮은 모양이다.
‘하기야 이 세계는 강호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다르니까.’
‘왕들의 하늘’은 법이나 도덕보다 ‘약육강식’을 앞세웠다.
이 세계의 법칙이 그렇다면, 다른 종류의 영기를 흡수하는 것도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정말 그럴까?
독안귀마의 머리에 구천기를 밀어 넣으면 알게 되리라.
자신의 영기가 특별한 것인지.
그리고 어쩌면 이 세계의 법칙이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는지까지도.
연적하는 구천기를 일으켰다.
단전에서 솟아오른 한 줄기 청량한 기운이 이내 손바닥에 도착했다.
그는 손바닥에 응집한 내력을 독안귀마의 양미간 사이로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이 말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야. 내가 누군지 알고 양미간 사이로 내력을 방출하게 해?’
그건 죽으려고 환장한 게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자신이라면 절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양미간 사이에 손을 얹지 못하게 할 것이다. 뭘 믿고 그에게 자신의 생사를 맡긴단 말인가!
-이제 되었다.
독안귀마의 말에 연적하는 즉시 손을 뗐다.
그리고 운기를 하니 본래대로 내력이 충만해졌다. 마치 우물에서 물 한 바가지를 떠낸 느낌이다.
“어때? 괜찮아?”
-굉장한 영기로구나. 네가 종문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내 영기가 종문과 많이 달라?”
-많이 다르냐고? 너의 영기는 지금껏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영지 선초와 야수는 물론 종문 제자에 이르기까지, 너와 비슷한 영기를 본 적이 없다.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좋다. 종문 제자들이 네 영기의 실체를 알게 되면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모두 네 영기를 탐낼 테니까. 너를 위해서라도 종문의 제자가 되는 게 나을 것이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종문 제자들이 탐낼 거라면서 종문으로 들어가라니?”
-종문에 들어가면 적어도 하나의 종문에서는 너를 보호해 줄 테니까. 물론 그 전에 네가 속한 종문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겠지만.
“인정을 받으면 종문에서 보호해 줘?”
-너에게 종사의 자질이 있다면 종문에서 보호해 줄 것이다. 종문이 존재하는 것은 종사를 만들어 내기 위함이니까.
“그러고 보니 너 종사와 다닌 적이 있다고 했지?”
-오래전에.
“종사는 뭐야? 종문의 최고 어른이라는 건 나도 아는데, 뭐 하는 사람이냐고.”
-‘하늘의 문’을 지키는 존재다.
“뭐? ‘하늘의 문’을 지켜? 사람들은 종사가 ‘하늘의 문’을 열고 더 좋은 세계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던데?”
-그런 종사가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모든 종사를 만나 본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곁에서 본 종사는 ‘하늘의 문’을 지켰다.
독안귀마가 아련한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 년 전.
영천주.
청산성 낙일현 유명산.
천뢰종 종단.
자정 무렵, 천뢰종 종사인 금화 진인이 흑마 화풍(和風)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화풍아, 이번 일은 나도 결과를 짐작하기 어렵구나. 나에게 일이 생기면 너는 자유다. 그동안 나를 따라다니느라 고생이 많았다.”
-결과를 짐작하기 어렵다면서 웬 작별 인사인가?
“마천(摩天)의 ‘제후’가 천관산맥을 넘어 이곳으로 오고 있다. 종사에 불과한 내가 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러니 뒷일을 생각해 둬야지.”
-마천의 ‘제후’가 천관산맥을 넘었다면 영천주의 군주는 왜 나서지 않는가?
“나도 묻고 싶다. 마조(媽祖)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푸륵! 푸륵!
화풍은 답답한 마음에 거칠게 투레질을 했다.
영천주의 동쪽에는 천관산맥이 있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은 마귀들의 땅, 마천.
마천의 마귀들은 호시탐탐 구주를 노렸다.
식량이나 재물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하늘의 문’에 욕심을 냈다.
마귀들은 엉뚱하게 ‘하늘의 문’을 통과하면 상위의 존재로 거듭난다고 믿었다.
물론 지금까지 ‘하늘의 문’을 통과한 마귀는 없지만 말이다.
여하튼 욕망에 사로잡힌 마귀들은 끊임없이 천관산맥을 넘어왔다.
당연히 구주의 지배자들은 ‘하늘의 문’을 놓고 그들과 싸워야 했다.
‘하늘의 문’은 구주의 근원과도 같으니 당연하다.
마천의 ‘군단장’은 구주의 ‘종사’가, ‘제후’는 ‘군주’가, ‘마왕’은 ‘왕’이 상대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그러니 지금도 마조가 나서서 마천의 ‘제후’를 물리쳐 주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번에는 감감 무소식이다.
종사는 아직 입신(入神)에 들지 못한 존재라 ‘제후’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데 말이다.
우르르릉-.
우렛소리와 함께 피처럼 붉은 구름이 유명산 정상을 향해 몰려왔다.
마천의 ‘제후’ 혈사자 바르마스가 이끄는 군세였다.
그 전쟁에서 천뢰종 종사 금화 진인은 혈사자 바르마스에게 죽임당했다.
천뢰종 고수들이 절반쯤 죽었을 때, 마조가 나타났다.
혈사자 바르마스는 마조와 싸우다가 달아났고, 그의 부하들은 천뢰종 고수들에게 몰살당했다.
종사인 금화 진인의 죽음만 아니었다면 천뢰종의 대승이라 불렸을 것이다.
천뢰종은 그날의 전쟁을 묻고 다시 거론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종사가 나타나기까지 수천 년이 걸리니 천뢰종으로서는 뼈 아픈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하를 잃은 혈사자 바르마스가 다시 도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날 밤, 신수인 화풍은 금화 진인의 유언대로 유명산을 떠났다.
그리고 현재.
독안귀마가 침묵하자 연적하도 생각에 잠겼다.
‘하늘의 문[天門]을 지키는 사람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종사에 대해 알 것도 같았다.
그는 독안귀마를 힐끔 보았다.
단순히 타락한 신수인 줄로만 알았는데 제법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종사는 어떤 사람이었어?”
-욕심 많은 사람.
역시나 욕계(欲界)답게 바로 욕심부터 나온다.
아무리 종사라고 해도 욕심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모양이다.
“뭐에 그렇게 욕심을 부렸는데?”
-그는 입신지경에 들기 위해 욕심을 부렸다. 끝내 이루지 못하고 갔지만.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정도 욕심은 구도자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게 욕심이야?”
-그걸 위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일을 많이 했다.
“아!”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곳이 약육강식의 원리로 움직이는 세계라는 걸 깜박했다.
그런 세계에 사는 독안귀마가 입에 담지 못할 일이라고 할 정도라니?
“그런 사람이 용케도 마지막은 이타적으로 마무리했네?”
-‘하늘의 문’을 빼앗기면 군주들에게 죽임당하니까. 그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군주들이 종사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하늘의 문’은 구주의 근원이라 군주와 왕들에게도 중요한 성물(聖物)이니까.
“성물? ‘하늘의 문’을 본 적이 있어?”
-종사와 함께한 내가 그걸 본 적이 없을까.
“그건 정말 문처럼 생겼어?”
-육안으로 보기에는 두 개의 기둥에 불과하다.
“그렇구나. 난 또 커다란 문이 있어서 열고 들어가는 건 줄 알았네.”
-하늘의 문으로 들어간 사람은 죽었다. 그래서 종사도 감히 들어가지 못했지.
“아니 왜 죽어?”
-금화 진인은 ‘자격이 없는 자가 들어가면 죽는다’고 했다.
“자격? 입신(入神)을 말하는 건가?”
-…….
독안귀마는 말하지 않았다.
자신도 그 이상은 알지 못해서다.
뭔가를 생각하던 연적하가 다시 물었다.
“혹시 입신에 든 존재가 ‘하늘의 문’으로 들어간 적은 없어?”
-모른다.
독안귀마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본 입신에 든 존재는 천 년 전의 마조가 전부다.
하지만 그녀는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홀연히 사라졌다.
그런 마조의 모습에 크게 실망한 천뢰종은 한동안 마조의 이름도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연적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데 마귀들은 뭘 믿고 하늘에 문을 노리는 거야? 상위의 존재로 거듭난다는 건 또 뭐고.”
문득 독안귀마가 머리를 들어 세 개의 달을 보며 말했다.
-너의 영기는 이상하군.
“뭐가?”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감정이 자꾸만 생기려 한다.
“어떤 감정인데?”
-없음[無]이다. 영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허’가 찾아오고 있다.
“…….”
연적하는 독안귀마가 왜 그러는지 알 것도 같았다.
구천기란 본래 그런 것이었다.
오죽하면 ‘구천기는 허무한 가운데 오는 것이니 허심(虛心)으로 기다리라’고 할까.
-큰일이군.
“또 왜?”
-‘공허’가 나의 영기를 갉아먹고 있다. 나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혹시 영기가 사라지고 있어?”
-모르겠다. 다만 갈려 나가고 있다는 건 알겠다. 너의 이상한 무공을 상대할 때처럼.
연적하가 묘한 눈으로 독안귀마를 보았다.
‘이상한 무공이라니? 아! 혹시 포룡검을 두고 하는 말인가?’
심통의 때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속에서 뭔가 충돌이 일어난 모양이다.
“이봐. 혹시 일이 잘못돼도 나를 원망하지는 마. 난 해 달라는 대로 해 준 것뿐이니까.”
-흥! 누구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천뢰종 종사 금화 진인도 그랬다.
그는 늦게 나타난 마조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탓했다.
자신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온전히 상대의 영기를 탐낸 자신의 책임이다.
“참고로 말해 주자면, 네가 느끼는 그걸 허심(虛心)이라고 해. 믿을지 모르겠지만 내 공법의 근간은 허심이야.”
약육강식이 일상인 욕망의 세계에서 ‘허심’이라니?
말을 하고도 미안하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데 어쩌란 말인가.
영기의 근원이 ‘허심’이라는 소리에 독안귀마가 쥐어짜듯 말했다.
-독보다 더 지독한 소리군.
욕망 위에 세워진 ‘왕들의 하늘’에서 ‘허심’은 극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야말로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니까.
연적하는 계면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땀을 뻘뻘 흘리는 독안귀마를 보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기, 더 볼 일이 없으면 이만 갈까 하는데. 괜찮겠어?”
-가라. 연적하는 망설임 없이 냉큼 돌아섰다.
막 걸음을 떼어 놓는 연적하의 머릿속으로 독안귀마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이대로 죽게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