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41
541회. 화해했어요
대부분의 악인이 그렇듯 독안귀마도 처음부터 독안귀마는 아니었다.
본래 그의 이름은 화풍(和風).
‘초원의 바람’이라 불리던 신수가 외눈박이[獨眼] 귀마(鬼馬)로 변한 것은 신천응(神天鷹) 때문이다.
신수 화풍은 신천응에게 패한 뒤 한쪽 눈을 잃었다.
그리고 신격을 상실한 대부분의 신수들처럼 화풍도 마물로 변해 갔다.
마물이 된 독안귀마의 목표는 단 하나.
신격을 되찾아 신천응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강한 야수를 잡아먹어 부족한 영기를 채워 나갔다.
그러던 중에 연적하라는 인간을 만났고, 어렵게 그의 영기를 얻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연적하의 영기가 애써 쌓은 독안귀마의 영기를 갈아 없애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독안귀마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신천응에게 눈알을 빼앗길 때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기는 언젠가 신격에 도달하게 해 줄 원동력이자 그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런 영기가 소멸하기 시작한 것이다.
독안귀마는 죽음을 떠올렸다.
연적하의 영기가 자신의 영기를 갈아 없앤 후에, 종국에는 자신마저도 집어삼킬 것 같았다.
문득 연적하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괜찮겠어? 나야 상관없는데…….
-그쪽처럼 영기에 욕심내다가 고생한 사람을 본 적이 있거든.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
자신만 영기를 흡수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간도 영기를 얻기 위해 영지 선초와 야수의 내단을 먹지 않던가.
그랬는데, 내부로부터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한창 고민하고 있는데 연적하의 음성이 들렸다.
“저기, 더 볼 일이 없으면 이만 갈까 하는데. 괜찮겠어?”
-가라.
기다렸다는 듯 돌아선 그의 뒤통수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착잡하다.
가란다고 그냥 가다니.
자신이 이렇게 된 데에는 그의 책임도 조금은 있을 터인데…….
금화 진인은 정말 마조(媽祖)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대로 죽게 되나?
연적하가 돌아섰다.
“무슨 소리야?”
자신의 내기(內氣)는 독이 아니다.
당연히 그것만으로는 누군가를 죽이지 못한다.
그런데 죽게 되냐니?
-영기를 갈아 없앤 후에, 나도 그렇게 되는지 묻는 것이다.
“세상에 육체를 갈아 없애는 영기가 있어?”
-…….
독안귀마는 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멍청한 소리였다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아까 말했잖아. 영기에 욕심내다가 고생한 사람을 본 적이 있다고. 죽지는 않아. 죽을 만큼 고생할 뿐이지. 한동안은 강한 야수들을 피해 다녀야 할 거야.”
-신수였던 나에게 야수 따위를 피해 다니라고 한 건가? 먹이를 피해 다니는 포식자도 있던가?
“포식자의 이빨이 부실해졌으면 피해 다녀야지. 다른 야수들은 자존심이 없어서 눈치 보며 사는 줄 알아? 약하면 숨어 살아야 하는 거야. 약육강식이라며?”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그건 나도 몰라. 내가 아는 건 하나밖에 없어. 영기가 흩어졌다고 죽는 건 아니다.”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라는 건가.
“희망을 가져. 누가 알겠어? 영기를 회복하고 다시 신수가 될 수 있을지.”
-네가 말한 인간은, 너의 영기를 탐냈었나?
“어. 그리고 늙은 나이에 나름 혹독한 대가를 치렀지.”
-그는……. 어떻게 됐나?
“골골거리던 늙은이가 어느 날 갑자기 반로환동을 하더라고. 그러니까 너도 포기하지 마.”
-위로가 되는 말이군. 만에 하나 네 말대로 된다면…….
독안귀마가 말을 흐렸다.
“되면 뭐? 영지 선초가 있는 곳이라도 더 알려 줄 거야?”
-흥! 나의 보답을 그런 하찮은 것에 비교하지 마라. 가라.
말과 함께 돌아선 독안귀마는 쌍각흑룡이 살았던 동굴로 걸어갔다.
연적하는 그런 독안귀마를 향해 격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괜히 돌아다니다가 잡아먹히지 말고 꼭꼭 숨어 지내!”
독안귀마가 사라지자 연적하도 동굴 앞을 떠났다.
환한 달빛을 받으며 한 남자가 나무 위를 바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독안귀마와 헤어진 연적하다.
한참을 달리던 그는 커다란 나무 위에 잠시 멈춰 섰다.
어디를 봐도 기기묘묘한 삼림과 붓으로 그린 듯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들이다.
기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장관이건만 연적하의 입에서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망했다.”
역시나 길을 잃었다.
처음 설산에서 벗어날 때부터 아슬아슬했다.
독안귀마와 함께 다섯 개의 봉우리를 넘은 게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동서남북으로 다섯 개의 봉우리를 넘어가 봤지만 야영지는 나오지 않았다.
사방을 다 뒤졌는데 야영지가 없다니?
자신의 뒤죽박죽인 방향감각이 원망스럽다 못해 치가 떨릴 정도다.
뒤늦게 독안귀마를 찾아가 물으려 했지만 그 협곡도 보이지 않았다.
천관산맥에 처음 뚝 떨어졌을 때처럼 막막한 느낌이다.
“생각을 해라. 생각을.”
한참 고민하던 연적하는 ‘설산’을 떠올렸다.
월악산의 수많은 봉우리 중에 오직 설산만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그래! 설산이야! 설산을 먼저 찾으면 돼!”
어차피 야영지는 설산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나오게 되어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지옥불처럼 타오르던 번뇌가 사라지며 마음이 가라앉았다.
“일단 좀 쉬자.”
어차피 밤이라 먼 곳까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날이 밝으면, 눈 덮인 설산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연적하는 나무에서 내려가 평평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야수를 쫓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그 옆에 웅크리고 잠들었다.
***
정오 무렵.
월악산 야영지.
사람으로 들끓던 야영지는 휑했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무인들이 쫓기듯 철수를 해 버린 탓이다.
넓은 야영지 귀퉁이에 대낮부터 모닥불 하나가 타올랐다.
그 모닥불 앞에 두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손을 비벼 댔다.
현천문의 삼대제자들인 공지유와 유익현이다.
유익현이 기다란 나뭇가지로 풀썩 주저앉은 모닥불을 쑤시며 말했다.
“사저, 오늘 드디어 우물이 얼었네요. 우리도 슬슬 철수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게.”
“아니 말만 하지 마시고, 진짜요. 금단문에서도 더 이상 물품을 대주기 어렵다고 했잖아요.”
유익현이 공지유를 다그쳤다.
연적하가 내악으로 들어간 지 오늘로 닷새.
처음에는 금단문에서도 군말 없이 지원을 해 줬는데 어제부터 분위기가 변했다.
연적하가 독안귀마에게 잡아먹힌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라고는 했지만 유익현도 속으로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나왔어도 진즉에 나왔어야 하니까.
월악산이 내악과 외악으로 나뉠 정도로 큰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연적하 같은 고수의 경신술이면 하루나 이틀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니 살아 있다면 닷새 동안이나 소식이 끊어질 리가 없는 것이다.
유익현의 채근에 공지유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오늘까지만 기다려 보자. 너도 연 대협이 영지 선초에 목숨 거는 거 알잖아. 분명히 영지 선초를 찾아다니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계실 거야.”
“하루 이틀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닷새는 아닌 것 같아요. 연 대협이 다른 곳으로 떠났거나…….”
유익현이 슬쩍 공지유의 눈치를 살폈다.
‘독안귀마에게 당한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사저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렴풋이 알아서다.
“뭘 그렇게 쳐다봐? 할 말 있으면 해.”
“아뇨, 내일은 정말 가실 거죠? 확실하게 말씀해 주세요. 저도 준비할 게 있어서요.”
“그래. 가자, 가. 이 추위에 닷새면 많이 기다린 거지.”
“잘 생각하셨어요.”
벌떡 일어난 유익현은 솥단지에 얼음을 주워다 넣었다.
그리고 솥단지의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쌀 한 줌과 꽁꽁 언 채소, 말린 약재 따위를 털어 넣었다.
수약주 전통의 잡탕죽이 완성될 즈음이다.
하염없이 월악산을 보고 있던 공지유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연 대협이다!”
국자로 열심히 죽을 젓고 있던 유익현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정말 저 멀리에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사람은 연적하였다.
공지유가 한달음에 연적하를 향해 달려갔다.
“연 대협!”
그녀의 외침에 연적하가 힘없이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연적하의 앞에 도달한 공지유는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살폈다.
행여나 독안귀마와의 싸움으로 큰 부상을 입어 늦게 나왔나 싶어서다.
하지만 일단 외관상 다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세요?”
“예. 괜찮아요.”
“왜 이렇게 늦게 나오셨어요? 산에 들어가신 지 닷새나 지난 거 아세요?”
“아, 예.”
연적하가 미적지근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월악산에서 설산을 찾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자신도 몰랐다.
“독안귀마 때문에 늦으신 거죠?”
“그, 그렇죠.”
“내가 그럴 줄 알았어요! 독안귀마를 피하시느라 이렇게 늦으셨구나!”
공지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외쳤다.
전에도 몇 번이나 그런 적이 있어서 그녀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혹시 독안귀마와 싸운 건 아니죠?”
“한 번?”
“아! 싸우셨구나.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러는 동안 어느새 숙영지에 도달했다.
연적하가 답하기 전에 유익현이 국자를-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들고 쪼르르 다가왔다.
“연 대협! 많이 늦으셨네요? 식사는요?”
“먹어야죠. 배고파 죽을 것 같네요.”
닷새 동안 내악과 외악을 헤맨 연적하의 시선은 솥단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유익현이 급히 그릇에 죽을 퍼 담아 연적하에게 내밀었다.
그가 뜨거운 죽 그릇을 들고 잠시 식기를 기다릴 때다.
공지유가 그의 옆에 앉으며 다시 물었다.
“독안귀마와 싸운 건 어떻게 됐어요?”
“화해했어요.”
“…….”
뜻밖의 대답에 공지유와 유익현이 눈을 끔벅였다.
마물과 화해를 하다니?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겨우 정신을 차린 공지유가 고개를 갸웃했다.
“화해요?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화해 맞아요. 저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말이 잘 통하더라고요.”
“마물하고 말이 잘 통했어요?”
공지유가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독안귀마와 대화를 한 적이 있다고 했었다.
독안귀마의 이름이 본래 ‘화풍’이라고 했던가.
“예, 그냥저냥.”
“그래서, 이제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하던가요?”
“그럴 거예요.”
“정말요? 그럼 앞으로 내악에 들어가도 되는 거예요?”
공지유의 눈이 반짝였다.
외악은 너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전 같으면 내악으로 갔어야 할 사람들까지 외악에 몰려서 그렇다.
“그건 좀…….”
연적하의 다소 부정적인 반응에 유익현이 슬쩍 끼어들었다.
“아직 거기까지는 아닌가요?”
“독안귀마잖아요.”
“아!”
그 한마디 말로 충분했다.
공지유와 유익현은 더 이상 내악의 출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잡탕죽으로 점심을 해결한 연적하 일행은 바로 월악산 야영지를 떠났다.
***
산음현.
현천문.
유시 초(오후 5시).
뉘엿뉘엿 땅거미가 질 무렵, 연적하 일행은 현천문에 도착했다.
연적하 일행이 막 마당에 들어섰을 때다.
문지기의 연락을 받았는지 현천문주 소천우와 총관이 허겁지겁 다가왔다.
소천우는 연적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원망 어린 어조로 말했다.
“연 대협, 아니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기다리다가 눈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저를요?”
연적하는 소천우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자신을 그 정도로 애타게 기다릴 이유가 없어서다.
“닷새 전에 천지문의 사람이 다녀갔습니다. 운문현에서 있었던 일로 화를 내더군요. 금부진 장로를 폐인으로 만들고, 제자들까지 상하게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