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69
569회. 우연과 필연
무량하같이 거대한 강은 괴수들의 천국이다.
심산유곡에 야수들이 사는 것처럼 무량하도 온갖 괴물들로 들끓었다.
크기가 삼 장(약 9미터)이나 되는 ‘가시무치’에, 크기는 일 장(약 3미터)에 불과하지만 떼지어 다니는 ‘철수호어’, 크기가 오 장이 넘는 ‘은오곽어’ 등…….
그중 ‘가시무치’와 ‘철수호어’ 같은 경우 배에 있는 사람도 공격해 잡아먹어 선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그래서 양심 있는 선주들은 아예 자신의 배에서 낚시를 하지 못하게 막는다.
하지만 대다수 선주들은 선객들이 낚시를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그런 배에서는 선원들이 낚싯대를 빌려주고 돈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위험한데 왜 낚시를 하냐고?
무량하에는 괴수들만 있는 게 아니라 보물이라 불러도 될 정도의 물고기도 있다.
예컨대 ‘금장붕어’는 한 마리에 금자 열 냥이 넘지만 없어서 못 판다.
‘은린어(銀鱗魚)’는 금자 한 냥에 거래가 된다.
종문에서도 ‘금장붕어’와 ‘은린어’를 고가에 구매할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런 이유로 아예 낚싯대를 가지고 다니는 선객들도 많았다.
선원에게 비싼 돈 주고 빌리느니 번거롭더라도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꼭 ‘금장붕어’와 ‘은린어’가 아니더라도 무량하의 물고기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았다.
당장 선착장 인근의 음식점들에 팔아도 마리당 열 푼 이상은 받았다.
무량하의 물고기들은 맛이 좋아 모든 식당에서 그것을 취급했다.
그러다 보니 선객들은 낚시가 취미거나, 자기가 먹기 위해서라거나, 혹은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무량하에 낚싯대를 드리웠다.
장지안은 통 속에 있는 마른 고기를 낚싯바늘에 펜 뒤에 무량하로 던졌다.
배가 전진하고 있기에 낚싯줄이 뒤로 흘러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좋구나!’
강바람을 맞으며 나와 있으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비록 돈이 조금 들었지만 선실에서 쿰쿰한 냄새를 맡는 것보다 백배 낫다.
이러다 운 좋게 ‘금장붕어’를 낚으면 바로 비늘을 벗겨 먹어치우리라.
‘금장붕어’를 먹고 난 이후의 일을 상상하자 불쾌했던 기분이 한 올 한 올 풀려 사라졌다.
그렇게 반 시진(1시간)이 지났다.
배가 강 중심부로 진입하자 낚시를 하던 사람들은 하나 둘 채비를 걷었다.
입질이 끊어진 것도 있지만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괴수가 두려워서다.
하지만 모두가 낚시질을 멈춘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장지안의 옆에서 낚시를 하던 중년인이 그랬다.
그는 근처의 낚시꾼들이 빠져나가 뱃전이 널널해지자 낚싯대를 하나 더 설치했다.
보는 사람이 아찔하게 강으로 상체를 기울이는 건 예사다.
남자는 저러다 죽지 싶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이 있다.
장지안은 그가 위험한 행동을 할수록 더 안전에 유의했다.
그렇다 해도 그 역시 뱃전에서 위험천만한 낚시를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보다 못한 호위 한도경이 넌지시 말했다.
“삼 공자님, 물이 깊어 입질도 없는데 그만 쉬시지요?”
그러나 장지안은 무심한 눈으로 강물만 바라볼 뿐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한도경은 조금 더 세게 밀어붙였다.
“강 중심부에서의 낚시는 위험천만한 일로 어부들도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제야 장지안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선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그러네. 나보고 설마 저 연 씨의 옆에서 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자네라면 그럴 수 있겠나?”
“…….”
순간 한도경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단지 연적하와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서 낚싯대를 잡고 있을 줄이야!
한편으로 그의 심정이 이해는 갔다.
솔직히 자신도 연적하가 보기 싫어 뱃머리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고 있었다.
미녀와 시시덕거리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까닭 모를 열패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말은 안 했지만 한도경도 그랬던 모양이다.
‘하기야 낚싯대를 놓고 좁은 뱃전에서 쉬면 그것도 체면이 서질 않지.’
그렇게 생각하면 낚시질이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었다.
뱃머리에서 연적하가 여자와 노닥거리는 걸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삼 공자님, 배 밖으로 절대 몸을 내밀지 마십시오. 저희도 물속을 잘 살피겠습니다.”
“걱정 말게. 괴수에게 눈이 있다면 나보다 저 사람을 먼저 물어갈 테니까.”
장지안의 농담에 한도경과 호위들이 피식 웃었다.
그런 와중에도 옆자리의 중년인은 엄벙덤벙 위태위태한 행동을 이어갔다.
‘우연’이라는 단어 속에는 ‘목적 없음’이 포함되어 있다.
우주와 천하 만물과 생명체의 삶과 죽음은 우연의 산물이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지만, 그조차도 따지고 보면 목적이 없다.
‘필연’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들은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덤벙거리기만 하는 중년인의 낚싯대가 갑자기 휘었다.
“어? 어?”
중년인의 기대에 찬 탄성이 정적을 깨뜨렸다.
한순간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중년인에게로 향했다.
아까부터 미끼도 없는 낚싯대를 들고 있던 장지안도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수면 위로 어른 팔뚝만 한 크기의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으로 빛나는 그건 은린어였다.
“은린어다!”
“은린어네?”
“야아! 여기서 은린어가 나온다고?”
곳곳에서 부러움과 질시 어린 탄성이 흘러나왔다.
갑판 위에 끌어 올려진 은린어가 펄떡거리자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그건 장지안과 그의 호위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도경과 호위들의 시선이 은린어를 향하고 있을 때 사고가 터졌다.
첨벙!
뭔가 물에 빠지는 소리다.
은린어의 출현에 들떠 있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좌우를 살폈다.
무슨 일인지는 금방 드러났다.
“헉! 공자님!”
“공자님!”
“공자니임!”
한도경과 두 명의 호위들이 강물을 향해 미친 듯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갑자기 튀어오른 ‘가시무치’에 물려 간 장지안은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이윽고 수면 위로 핏물이 번졌다. 배 옆에서 핏물이 올라오자 선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 ‘철수호어’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윽고 배 주변으로 시커먼 그림자들이 몰려들었다.
육식 물고기의 대명사인 ‘철수호어’였다.
뱃전에서 대기하고 있던 선원들이 장대 끝에 맨 작살로 물속을 찔러 댔다.
작살질에 상처를 입은 철수호어에게 다른 철수호어가 덤벼들었다.
철수호어들 사이에서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졌다.
선원들은 행여나 철수호어가 배를 공격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역시나 목선(木船)은 철수호어들의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쿵쿵!’ 소리와 함께 쉬지 않고 배가 흔들렸다.
강 중심부에서 철수호어와 선원들 간에 피를 말리는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선원들은 계속 철수호어를 찔러 댔고, 피 냄새에 광분한 철수호어는 목선을 들이받았다.
목선의 길이가 십 장(약 30미터)이라고 하지만 철수호어의 크기도 일 장(약 3미터)이나 된다.
어느 순간부터 배가 정신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제 배에서 가시무치에 물려 간 청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장지안의 호위들조차 선원들과 철수호어의 싸움에 집중했다.
공지유는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모두가 바짝 긴장한 얼굴인데 연적하는 평소와 같이 여유 만만하다?
“연 대협은 걱정이 안 되나 봐요?”
“지난번에도 별일 없었잖아요.”
“그때는 운이 좋았던 거예요. 지금처럼 ‘철수호어’가 목선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공 소저도 걱정하는 얼굴이 아닌데요?”
그러자 공지유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저는 연 대협을 믿으니까요. 연 대협이 안전하다고 느끼면 저도 안전한 거니까.”
연적하는 피식 웃었다.
지혜로우면서도 강단 있는 여자다.
자신을 믿더라도 막상 위기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얗게 질린 정덕행만 봐도 알 수 있다.
선천적으로 사람의 그릇이 다르다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배가 위험하리만치 흔들리자 연적하는 암암리에 공력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선체에 손을 얹고 천천히 구천기(九天氣)를 흘려보냈다.
이런 건 검에 공력을 싣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차이가 있다면 검이 두 자(약 60센티)쯤 된다면 배는 십 장(약 30미터)이라는 거?
선저(船底)를 구천기로 감싸자 충격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쿵쿵!’ 하던 소리가 ‘통통’으로 바뀌자 목선의 출렁거림도 끝났다.
자세가 안정되자 선원들은 더 힘차게 작살질을 했다.
철수호어들이 만들어 내는 피거품이 배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철수호어들의 관심도 그 거리만큼 목선에서 멀어졌다.
철수호어들이 사라지자 선원들은 하나 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조마조마한 얼굴로 지켜보던 선객들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장지안이 낚시를 하던 자리에는 다른 남자가 앉았다.
‘가시무치’에게 잡아먹힌 사람보다, 중년인이 낚아 올린 은린어가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그렇게 장지안의 죽음은 금방 잊혀졌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한도경과 두 명의 호위들은 퀴퀴한 선실에서 이를 갈았다.
그들은 장지안이 연적하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다.
연적하와 장지안이 시비만 붙지 않았다면, 그래서 장지안이 연적하와 함께 있는 걸 꺼리지 않았다면, 장지안은 살아서 ‘비승과해’에 참가했을 것이다.
마지막에 장지안은 뱃전에서 미끼도 없이 낚시를 했다.
호위들은 그게 연적하를 피하기 위한 행동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한도경의 눈에서 광망이 번득였다.
‘연적하, 이대로 끝날 거라 생각하지 마라.’
그는 소요종 고수인 주천비에게 알릴 생각이다.
왜 장지안이 평생의 꿈이던 ‘비승과해’에 참가하지 못했는지를.
***
양수현.
호미곶.
미시 말(오후 3시).
무량하를 건넌 배가 호미곶에 정박하자 연적하 일행은 다른 선객들과 함께 하선했다.
서두르느라 점심을 해결하지 못한 터라 연적하는 식당부터 찾았다.
호미곶은 다른 포구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다.
어느 식당으로 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식당 숫자도 적었다.
연적하는 그중에서 가장 큰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할 즈음 한도경과 두 명의 호위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연적하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는데 공지유는 달랐다.
여자 특유의 감이랄까?
그녀는 장지안이 죽은 뒤로 자꾸 그들이 눈에 띄는 게 영 찜찜했다.
“연 대협, 왠지 저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는 거 같지 않아요?”
“마을이 작잖아요.”
“그런가요?”
공지유가 애매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배에서 내리면서부터 선객들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근처가 집인 사람과 아직 갈 길이 먼 사람은 행동거지가 달랐다.
전자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갔다면, 후자는 호미곶을 기웃거렸다.
허기진 배를 채우거나 필수품을 재정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후자에 속한 사람들은 별 뜻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뭉쳐 다녔다.
조금 전까지 함께 다녔으니 저들도 자신들이 이곳에 들어가는 걸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들어왔다?
강을 건너기 전부터 툭탁거리던 사람들이?
‘이상하네. 지금까지 앞서가던 사람들이 왜 우리를 따라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