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68
568회. 무료하면 낚시라도 해 보시렵니까?
양수연에게 산묘(山猫)는 야수가 아니었다.
야수라기보다는 오히려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마을 원로들이 산묘에게 제사를 지낼 때 꼬박꼬박 참석했다.
산묘를 직접 본 적도 있다.
고조할머니와의 인연 때문인지 산묘를 봐도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산묘는 겨울이면 마을 주변을 맴돌았다.
그게 먹이를 구하기 위함인지 다른 야수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함인지는 모른다.
여하튼 산묘가 나타나면 마을 어른들은 제물로 먹거리를 주었다.
산묘는 배불리 먹고 난 다음에 마을 주위를 돌며 다른 야수를 내쫓았다.
때로 산묘가 감당하기 어려운 야수가 출몰하면 자경단이 산묘를 돕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 이백여 년간 산묘와 산묘촌 사람들은 ‘공생 관계’로 지냈다.
뜨내기들이 소요종에 이상한 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산묘와 산묘촌은 무사했을 게다.
‘비승과해’ 참가자가 ‘산묘촌 사람들이 산묘를 섬긴다’고 하는 바람에 모든 게 사라졌다.
산묘는 죽고, 마을도 야수의 이빨에 유린됐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설명하는 과정에서 목소리가 올라갔던 모양이다. 뒤쪽 자리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그러니 ‘소요종’과 ‘비승과해 참가자’가 잘못했다?”
양수연은 흠칫 놀란 얼굴로 급히 고개를 돌렸다.
네 사람의 손님 중에 유독 한 사람이 날 선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뒤틀린 표정을 보니 그가 한 말 같았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오해로 산묘가 죽은 게 안타까워서…….”
그러자 사내, 장지안은 다시 양수연의 변명을 물고 늘어졌다.
“소요종이 오해해서 산묘를 죽였다고? 끝까지 소요종이 잘못했다는 거냐?”
“아니에요, 저는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니에요.”
양수연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지만 장지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긴 뭘. 여태 그렇게 말해 놓고서. 들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구먼. 그쪽 분들도 듣지 않았소?”
장지안이 연적하와 공지유에게 턱짓을 했다.
공지유는 궁지에 몰린 여점원이 불쌍해서 못 들은 척 딴청을 부렸다.
그러자 장지안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훗! 같은 여자라 이건가? 소형제는 어떻소? 소형제도 소요종을 탓하하는 점원의 말을 듣지 못했소? 보아하니 그쪽도 우리처럼 외지인 같은데.”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답했다.
“거참! 탓하긴 누가 탓했다고 그러시나? 아가씨가 아니라니 그만 물고 늘어집시다. 안타까운 마음에 푸념 좀 할 수 있지. 왜 그렇게 시비를 못 일으켜 안달이신지 모르겠네. 집안에 소요종 종사라도 나셨나?”
연적하의 말에 장지안과 그의 일행들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실 여점원의 일은 별것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이 소요종의 종사를 그런 식으로 거론한 것은 중죄였다.
“나는 추산현 현령의 삼자인 장지안이라 하오. 감히 하늘 같으신 소요종 종사의 이름을 막되게 거론한 그대는 어디의 뉘시오?”
“알아서 뭐하시게?”
“나는 ‘비승과해’의 참가자 중에 하나로 그대의 불온한 대화를 흘려 버릴 수 없소. 어디의 누군지 이름 석 자를 밝히시오.”
장지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호위들도 일사불란하게 일어섰다.
장정 넷이 노려보자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싸움도 받아 주는 사람이 있어야 성사가 된다.
연적하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싫은데? 내가 왜? 당신이 물으면 누구라도 대답을 해야 되는 거야? 그런 법이라도 있어?”
조롱당했다고 느낀 장지안이 칼 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순간 연적하가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비승과해’ 어쩌고 하더니만 애송이네. 칼을 뽑으면 그냥은 못 넘어가. 잘 생각해.”
연적하의 경고에 장지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객지에서 필승의 확신도 없이 칼을 뽑으려 했다니? 어리석은 짓을 할 뻔했다.
그는 호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호위들이 그만두라는 듯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수의 적 앞에서 저렇게 태연자약한 것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실력이든 뒷배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럴 만해서 그러는 것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이 생존의 지혜다.
장지안은 이를 갈며 천천히 손을 내렸다.
하지만 이대로 꼬리를 내리려니 울화가 치밀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소인배라 생각해도 괜찮다면 그리하시오.”
그건 그냥 던져 본 말이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유치한 도발에 넘어갈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게 먹혔다?
“뭐? 소인배? 와아! 호랑이가 산을 내려가면 똥개한테도 물린다더니. 내가 여기서 소인배 소리를 다 듣게 생겼네? 그럼 안 되지. 거기, 장 씨. 내 이름이 뭐냐고 물었지? 나, 석경장의 장주 연적하야. 이제 됐어?”
장지안이 황당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고작 ‘소인배’ 소리에 이렇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줄은 몰랐다.
“연적하라고 했소? 나는 말했다시피 ‘비승과해’의 참가자요. 종문과 관계된 일은 종문에 고하는 게 규칙이오. 귀하에게 유감은 없지만, 소요종에 귀하의 일을 고하겠소.”
절반은 협박이고 절반은 진심이다.
만약 그가 백배사죄한다면, 선심 써서 못 들은 척해 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상대의 반응이 예상을 초월했다.
“일러바치려면 일러바쳐. 뒤에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데 그게 뭔 대수라고. 참고로 나도 ‘비승과해’에 참가하러 가는 길이야. 누가 잘했는지 어디 한번 끝까지 가 보자고.”
“나라님이 누구요?”
처음 듣는 소리에 장지안이 눈살을 찡그렸다.
나라님이 누구기에 뒤에서 욕을 해도 된다는 거지?
연적하는 구주에서 나라님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댔다.
“누구긴 누구야. 성주가 나라님이지.”
“흥! 고작 성주를 소요종의 종사에 비교하다니? 소형제, 제정신이오?”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지. 예를 들면. 거 젊은 사람이 말귀를 영 못 알아듣네.”
연적하가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자 장지안이 한마디 한마디 끊어 말했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건 내가 아니라 소형제요. 그쪽도 불우산에 간다니 잘됐구려. 어디 한번 누구 말이 맞는지 두고 봅시다.”
“그러시든지.”
연적하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양수연은 불똥이 연적하에게 튀자 음식 주문을 핑계로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모두가 ‘비승과해’를 목표로 해서 그런지 시비는 흐지부지 끝났다.
사실 장지안이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아 끝났다고 보는 게 맞았다.
장지안은 ‘비승과해’에 참가하는 사람과 길게 다투고 싶지 않았다.
불편한 관계로 불우산까지 가는 것도 그렇고, 불우산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그것도 골치가 아픈 탓이다.
‘주천비 님께 살짝 귀띔해 주면 알아서 처리하시겠지.’
주천비는 추산현 출신의 소요종 제자다.
백 년 전 그가 원영의 경지를 돌파할 때 당시 현령이던 증조부께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뒤로 그는 장씨 가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그분이라면 종사에 대한 연적하의 망발도 알아서 잘 처리해 주실 게다.
***
피하려고 하면 자꾸만 만나지는 사람이 있다.
연적하와 장지안이 그랬다.
둘은 식당에서 헤어졌지만, 해가 질 즈음 객점에서 다시 만났다.
산묘촌에 객점이 하나니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다음 날.
장지안 일행은 연적하를 의식해서 아침 일찍 객점을 떠났다.
그리고 점심 무렵, 그들은 마침내 비승포에 도달했다.
무량하를 끼고 발달한 비승포에는 정박한 배가 수십 척이나 됐다.
장지안은 행여나 연적하와 만날까 싶어 가장 빨리 도하(渡河)하는 선표를 물색했다.
반 시진(1시간) 후에 출발하는 십 장(약 30미터) 길이의 배가 가장 빨랐다.
크기가 좀 작아 내키지 않았지만 장지안은 그 배의 선표를 샀다.
십 장 길이의 배만 해도 다섯 척이나 되니 연적하와 만날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장지안과 호위들은 강둑에서 시간을 보내다 승선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언제 탔는지 연적하 일행이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장지안은 그와 얼굴 마주치는 게 불편해 선실로 들어가 움직이지 않았다.
무량하를 건너는 데는 대략 한 시진(2시간) 정도가 걸린다.
갑판 위가 소위 능력 있는 사람들의 자리라면 선실은 어중이떠중이들 차지였다.
“우웩!”
장지안의 옆에 있던 남자가 멀미로 토악질을 했다.
선실에 있던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는 얼굴이지만 장지안은 달랐다.
시큼한 냄새에 속이 울렁거리자 그는 도망치듯 갑판 위로 나갔다.
시원한 강바람이 폐부를 말끔하게 청소해 주는 기분이다.
이 순간만큼은 연적하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방이 시원하게 뚫린 것을 보니 ‘괜히 선실에 처박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뿌듯한 얼굴로 강물을 응시하고 있을 때다.
지나가던 선원 하나가 자연스럽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소협, 무료하면 낚시라도 해 보시렵니까?”
“낚시가 되나?”
“오늘처럼 물살이 잠잠할 때에는 어렵지 않습니다. 저분들을 보십시오.”
선원이 양편 뱃전에 쪼그리고 앉아 낚시하는 남자들을 가리켜 보였다.
“무량하의 금장붕어를 노리는 분들이지요. 금장붕어 한 마리만 남아도 팔자가 바뀌니까요.”
“금장붕어?”
“예, 황금 열 냥과도 안 바꾼다는 귀물(貴物)이지요. 남자 몸에 그렇게 좋다는 거 아닙니까.”
장지안은 귀가 솔깃했다.
황금 열 냥이라는 말보다, ‘남자 몸에 그렇게 좋다’는 소리가 더 당겼다.
“낚싯대가 없는데 어떻게.”
그러자 선원이 기다렸다는 듯 한쪽 구석에 얌전히 놓인 낚싯대를 가리 켰다.
“오십 푼만 내시면 배에서 내리시기 전까지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미끼는 낚싯대 옆의 통에 있는 말린 물고기를 쓰면 됩니다.”
“헐! 오십 푼이라고?”
장지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관(茶館)에서 차 한 잔 값이 스무 푼이다.
그런데 고작 낚싯대 한 시진 빌리는 데 차 두 잔 반 값이라니?
폭리도 이런 폭리가 없다.
선원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대신에 여기에는 큰 거 한 방이 있지 않습니까? 금장붕어가 금자 열 냥입니다. 물론 소협 같은 분들이야 그냥 즉석에서 드시겠지만요.”
장지안이 호위, 한도경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한도경이 품에서 오십 푼을 꺼내 선원의 손에 건넸다.
선원은 오십 푼을 챙긴 뒤에 장지안에게 흑죽으로 만든 낚싯대를 넘겼다.
“소협, 커다란 놈으로 하나 잡으셔서 소원 성취하십쇼.”
그는 능글맞게 농을 던진 후에 어딘지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선원의 걸음걸이를 보던 장지안이 중얼거렸다.
“이거 괜한 꼬임에 넘어간 거 아닌가 몰라. 눈 깜짝할 사이에 오십 푼을 날렸네?”
그러자 한도경이 격려하듯 말했다.
“삼 공자님, 이왕 이렇게 된 거 금장붕어를 낚으십시오. 삼 공자님의 실력이라면 문제없을 겁니다.”
“그러는 게 낫겠지? 딱 네 마리만 잡아야겠다. 무량하에 왔으니 한 마리씩들 먹어 보자고.”
장지안이 호기롭게 말하고 뱃전에 자리를 잡았다.
세 사람의 호위는 그의 좌우편에 서서 범의 눈으로 강물을 살폈다.
행여나 ‘가시무치’나 ‘철수호어’ 같은 게 나올까 봐 감시하는 것이다.
선수(船首)에 앉아 강바람을 쐬고 있는 연적하에게 공지유가 다가갔다.
“연 대협. 저 사람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누구요? 아, 장 씨?”
“예, 전에 보니 ‘가시무치’가 뱃전까지 뛰어올라 사람을 물어가던데.”
연적하는 공지유가 염려하는 바를 금방 알아차렸다.
지난해 천관산맥에서 현천문으로 돌아가는 길에 벌어졌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선원들이 못 하게 안 해요?”
“그동안 수입이 없어서 그런지 오히려 낚싯대를 빌려주는 것 같던데요?”
“치열하게들 사네요.”
녹림 출신인 연적하에게는 선원들의 일탈이 치열함으로 보였다.
“치열한 게 아니라 나쁜 짓이죠. 저러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겨우내 굶주렸던 야수들이 봄에 얼마나 식탐을 부리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