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67
567회. 그러니 ‘소요종’이 잘못했다?
공지유는 다섯 살에 처음 야수를 보았다.
그 이전에도 봤을지 모르지만, 여하튼 기억하는 것은 다섯 살 이후 야수를 경험한 사람은 대부분 두 부류로 나뉜다.
미치거나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거나.
마음이 약한 사람은 미치광이가 되어 떠돌아다니다가 죽는데, 다행히 공지유는 후자였다.
그녀는 일찌감치 야수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무슨 처참한 상황을 봐도-대부분의 구주 사람들이 그렇듯-덤덤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호랑이나 사자가 양을 물어가도 남은 양 떼들이 금방 일상으로 돌아가듯.
공지유도 적안금저에게 잡혀가기 전까지는 그런 삶을 살았다.
분명 그랬는데, 연적하와 함께 다니면서 상식이 무너졌다.
그는 공포의 대상인 야수를 사냥감처럼 여겼다.
‘동급’의 야수인 구렁이 고기로 요리를 하게 한 것만 봐도 그렇다.
종문 제자들도 저럴까?
하지만 그런 소문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종문 제자들도 ‘동급’ 이상의 야수는 피해 다닌다고 들었다.
그런데 연적하는 ‘철급’은 물론 심지어 ‘은급’까지도 때려잡는다.
그의 무위가 ‘연허’라는 걸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결과다.
연적하와 나란히 공도(公道)를 걸어가던 공지유가 넌지시 물었다.
“연 대협.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요?”
“연 대협의 경지는 ‘연허’잖아요?”
“그렇다고 하데요.”
연적하가 남의 말 하듯 답했다.
‘왕들의 하늘’에서 말하는 경지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제가 ‘연허’의 경지에서는 ‘동급’까지 죽일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요?”
연적하는 공지유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연허’에 불과한 자신이 ‘철급’은 물론 ‘은급’과 ‘마물’까지도 물리쳤기 때문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공지유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연 대협은 ‘철급’ 야수들도 때려잡잖아요. 무산백랑도 그렇고, 저번에 혈랑도 그랬고.”
혈랑의 얘기가 나오자 연적하가 생각난 듯 물었다.
“참! 그 혈랑 말인데요. 그건 어떤 야수예요?”
“어떤 야수냐고요?”
“무산백랑하고 느낌이 완전히 달라서요. 무산백랑은 그래도 야수 같았는데, 혈랑은 기운이 좀 더럽다고 할까? 악하다고 할까? 여하튼 좀 구질구질한 느낌이더라고요.”
“아, 그건 모르셨나 보구나. 혈랑은 마천(魔天)에서 넘어온 야수예요.”
“마천요?”
“네, 가끔씩 마천의 마귀들이 구주를 넘어올 때가 있거든요. 그때 덩달아 넘어온 야수예요. 종문 제자들에게 마귀들이 쫓겨 갈 때 따라가지 못하고 남겨진 잔재들이죠.”
“마천의 마귀들이 자주 넘어와요?”
“글쎄요. 최소한 한 세대에 한 번은 넘어온다고 들었어요. 제 부모님 세대에 한 번 경험했다니까, 우리 세대에도 한 번은 넘어오겠죠?”
“와아! 겨울에 야수도 벅찬데 그런 것까지 넘어오면 진짜 살기 빡빡하겠다.”
“그렇죠. 야수야 뭐 일상이지만, 마천의 마귀들은 어른들도 끔찍한가 보더라고요.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어떻게 생겼대요? 마귀라는 건 너무 추상적이라서.”
“사람을 닮은 마귀도 있지만, 삼두육비(三頭六臂, 머리가 셋, 팔이 여섯)의 괴물이 더 많대요.”
“진짜요?”
연적하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공지유를 힐끔 보았다.
지옥의 마물들까지 보았지만 삼두육비라니? 그건 좀 과장이 심하다 싶다.
“저도 부모님에게 들은 이야기라서요.”
연적하가 정덕행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 씨, 그쪽도 마천의 마귀에 대해 들은 게 있어? 정말 삼두육비의 괴물이래?”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정덕행이 급히 답했다.
“예, 그보다 더한 괴물도 보셨다고 합니다.”
“아니, 삼두육비보다 더한 괴물이면 대체 어떻게 생겼다는 거야?”
“…….”
정덕행도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못 들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마천의 마귀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없자 공지유가 말했다.
“저어, 연 대협. 조금 전에 하던 이야기 마저 해도 되나요?”
“아, 네. 하세요.”
“연 대협은 ‘철급’은 물론 ‘은급’과 월악산의 ‘마물’인 독안귀마까지도 물리치셨잖아요?”
“그랬죠.”
“‘연허’의 경지에서는 ‘철급’을 죽이기 어렵다고 들었거든요? 사실은 ‘연허’보다 더 위에 계신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연적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종문에서 무공의 경지 나누는 걸 잘 몰라요. ‘의형검기를 쓰면 연허다’라고 하니까 ‘연허’인가 보다 하는 거거든요.”
“아…….”
“그 위로 올라가면 ‘진검강(眞劍罡)’이라는 걸 쓴다면서요? 그런데 난 아직 ‘진검강’이 뭔지도 모르거든요.”
“…….”
공지유가 알쏭달쏭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철급’ 이상의 야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그것들이 기이한 외기(外氣)를 두르고 있어서다.
천년호리의 홍염(江焰)이나, 적안금저의 금광(金光)이 그것이다.
그걸 깨부술 수 있는 게 ‘진검강’인지라, ‘원영’의 고수만이 죽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혹시……. 아니에요.”
공지유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혹시 모르지만 무심코 쓰는 거 아니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자신이 모르면서 쓰는 무공은 없다.
더구나 연적하처럼 ‘연허’의 경지에 오른 이가 그걸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럼 뭘까?’
연적하는 생각에 잠긴 공지유를 힐끔 보았다.
자신이 ‘철급’ 이상의 야수를 어떻게 죽였는지 고민하는 얼굴이다.
자신은 짚이는 게 있다.
언젠가 현천문으로 찾아왔던 은하고검 천승학에게 구천현녀의 이름을 꺼낸 적이 있다.
강호에서 ‘스승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종종 했던 답이었기에 고민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천승학의 반응이 지금까지의 사람들과 달랐다.
-오랜만에 듣는 ‘진선(眞仙)’의 이름이로군. 설마 그분에게 직접 배웠느냐?
천승학은 자신이 도가의 신(神)인 구천현녀에게 배웠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직접 배웠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강호에서 농담으로 치부되던 이야기가 ‘왕들의 하늘’에서는 가능한 것 같았다.
진선(眞仙)이라는 이름도 그것과 관계된 것이리라.
자신이 종문 제자들과 다른 점은 ‘구천현녀에게 배웠다’는 정도다.
진검강이 뭔지도 모르지만, ‘은급’ 야수는 물론 ‘마물’까지 제압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걸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했지만 참았다.
천승학이 ‘소요종에 들어오면 가르쳐 주겠다’고 할 정도면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 걸 아무에게나 떠벌릴 수는 없지 않은가.
땅거미가 질 무렵, 공도 옆에 ‘산묘촌(山猫村)’이라는 표지목이 보였다.
“산묘촌?”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공지유가 말했다.
“‘동급’ 야수인 산묘와 관계가 있는 마을인가 봐요.”
“산묘요?”
“어쩌다 영기를 얻은 고양이는 덩치가 호랑이만 해져요. 그런 고양이는 산에서 살아가는데 그걸 산묘라고 해요.”
“그런데 왜 마을 이름이 산묘촌일까요?”
“글쎄요. 이 마을에 살던 고양이가 산묘가 됐을지도 모르죠.”
공지유가 알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공 소저도 처음 와 보는 마을인가 봐요?”
“네, 이쪽으로는 안 다녀 봐서요. 수미성은 저도 처음이거든요.”
“아하! 어이, 정 씨. 삼 년 전에 갔댔지? 그쪽은 뭐 아는 거 없어?”
연적하가 묻자 정덕행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공 사매 말이 맞습니다. 본래 양가촌이었는데 이백 년쯤 전에 산묘촌으로 바꾸었다고 들었습니다.”
“왜 바꿨대?”
“고양이가 산묘가 된 뒤로 야수의 습격에서 마을을 지켜 주었답니다.”
“그런 게 가능해?”
“전설이니까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만.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산묘가 되었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들고양이가 산묘가 됐다면 오히려 사람을 잡아먹었겠지만 말입니다.”
“정 씨는 저 마을에서 들었어?”
“예.”
“그럼 오늘은 저 마을에서 쉬어야겠다. 야수와 인간의 정을 기리는 마을이라. 거참.”
연적하가 기이한 눈으로 표지목을 보았다.
‘먹고 먹히는 관계’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산묘촌.
마을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였다.
겨우내 야수의 습격을 많이 받았는지 목책 곳곳이 박살 나 있었다.
입구를 통과해 번화가로 향하던 연적하가 정덕행에게 슬쩍 물었다.
“이봐, 사람들 눈빛이 왜 이렇게 까칠해? 원래 이런 마을이라고 말해 주지 그랬어. 물 먹어 보라고 일부러 안 가르쳐 준 거야?”
“아닙니다. 삼 년 전에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목책도 지금보다 덜 깨져 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래? 겨울에 야수에게 시달려서 그런가? 눈빛들이 살아 있네.”
공지유는 사람들 눈빛이 부담돼서 아예 입을 꾹 다물고 걸었다.
그녀가 불편할 정도로 외지인을 보는 마을 사람들의 눈빛은 사나웠다.
공지유와 정덕행이 도검을 차고 있음에도 그럴 정도니 말 다 했다.
연적하는 일단 가까운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이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였다.
손님이니 인사라도 한다는 그런 얼굴이다.
연적하 성격상 여자 점원이 웃으며 달려와 안내하지 않았다면 그냥 돌아 나갔을 게다.
십 대 후반의 여자 점원, 양수연이 생글생글 웃으며 연적하 일행을 창가로 안내했다.
“지나가는 길이신가 봐요? 무엇으로 드릴까요?”
공지유가 연적하를 대신해서 나섰다.
“저녁 특선으로 두 사람분 내오고, 저쪽에는 국수 하나 따로 줘요.”
양수연은 자리 끝에 떨어져 있는 청년을 힐끔 보았다.
이목구비는 멀쩡해 보이는데 함께 식사할 주제가 아닌 모양이다.
“네. 금방 가지고 올게요.”
막 돌아선 그녀를 연적하가 불러 세웠다.
“아가씨.”
“네?”
“내가 이 동네는 처음인데 분위기가 아주 살벌하네요? 주인장도 똥 씹은 얼굴이고. 삼 년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는데 왜 이래요?”
그러자 양수연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실은 ‘비승과해’ 때문에 이렇게 됐어요.”
뜻밖의 대답에 연적하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승과해’는 구주의 가장 큰 행사인데, 그것 때문에 마을 분위기가 살벌해지다니?
“왜요?”
“지난해 ‘비승과해’ 참가자 중 하나가 소요종에 가서 이상한 소리를 했나 봐요. 산묘를 섬기는 무지한 백성들이 있다고. 작년 여름에 소요종 제자가 와서 산묘를 죽였어요. 우리 마을과 산묘는 섬기고 어쩌고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거든요. 우리 마을 이름이 왜 산묘촌인지는 아세요?”
“대충 들었어요.”
연적하는 기분이 묘했다.
사람과 야수의 흔치 않은 관계에 훈훈했는데 끝이 어째 구주스럽다.
“저희 고조할머니가 기르시던 고양이가…….”
연적하는 점원의 이야기에 건성으로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데 하물며 남의 고조할머니 일임에야.
“……고조할머니의 고양이가 산묘가 돼서 마을을 지켜 준 거예요. 그게 고마워서 마을 이름을 바꾸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 줬거든요. 그게 산묘를 섬긴 건 아니잖아요?”
연적하는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안타까운 사연이었지만 ‘제사를 지내 줬다’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마을 사람들이야 좋은 뜻으로 했겠지만 ‘섬겼다’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는지 양수연의 언성이 높아졌다.
“들어오다가 목책 다 부서진 거 보셨죠? 소요종에서 ‘비승과해’ 참가자의 말만 듣고 산묘를 죽이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러니 외지인, 특히 ‘비승과해’ 참가자들을 보는 눈이 고울 리 있겠어요?”
그때 음식을 먹고 있던 손님들 중에 하나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러니 ‘소요종’과 ‘비승과해’ 참가자가 잘못했다?”
순간 십 대의 치기로 신나게 설명을 늘어놓던 양수연의 얼굴이 굳었다. 구주에서 가장 무거운 죄가 소요종을 비방한 죄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