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66
566회. 먹기 위해서가 아니면 생명을 해치지 마라
조양성
정선현.
정오 무렵.
넓게 뚫린 공도(公道) 위를 이 남 일 녀가 걷고 있다.
간단하게 행낭을 짊어진 연적하, 공지유와 등짐을 잔뜩 진 정덕행이다.
연적하와 공지유가 앞장서고 정덕행이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좌우에 펼쳐진 푸른 들판을 보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참 신기하네요. 얼마 전까지 얼어 죽을 것처럼 춥더니 무슨 날씨가 이렇게 좋지?”
믿어지지 않는 건 날씨만이 아니었다.
분명 열흘쯤 전까지 눈에 덮여 있었을 텐데 어느새 풀이 무성하다.
햇살을 머금은 나뭇가지에 생기가 돌고, 새순이 맺히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눈에 닿는 사방이 풀밭이라니?
이 모든 변화가 고작 열흘도 안 되는 기간에 일어났다.
날씨가 풀리자마자 현천문을 떠났기에 그런 변화는 더 극적으로 다가왔다.
공지유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구주의 계절을 두고 팔색조 같다고 하잖아요.”
구주 사람인 공지유는 연적하가 더 신기했다.
당연한 걸 보고 뭘 그렇게 놀라는지 모르겠다.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팔색조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극과 극인 느낌이다.
“눈이 녹으면 야수가 마을까지 안 오는 이유를 알겠네요.”
“산에도 먹을 게 많으니까요. 그래도 아직은 공도를 조심해야 돼요. 곧바로 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도를 어슬렁거리는 야수들도 많거든요.”
“왜 산으로 안 돌아가요?”
“게으른 거죠.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것보다 사람이 쉬우니까.”
“아!”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인육을 맛본 호랑이가 두고두고 골칫거리인 것처럼, 야수도 그런 모양이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연적하가 멈춰 섰다.
“왜요?”
“말이 씨가 됐나 봐요.”
말과 함께 연적하가 좌측 초원을 가리켰다.
아직은 무릎 높이에 불과한 풀이 갈라지며 거대한 뱀 한 마리가 다가왔다.
오 장(약 15미터)여 길이에 몸통은 한 아름이 넘어 보였다.
허물을 벗다 말았는지 군데군데 허연 껍데기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츠츠츠-.
뱀이 내는 소리가 묘하게 거슬렸다.
갑자기 공지유가 말이 없어 힐끔 보니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짐을 가득 짊어진 정덕행은 털썩 주저앉기까지 했다.
뱀이 낸 소리에 제압을 당한 것 같았다.
“쯧쯧!”
이럴 때 보면 구주의 인간은 들쥐나 토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윽고 뱀이 똬리를 틀며 머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연적하가 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이! 뱀 형! 배가 고프면 산으로 가. 우리는 네 먹이가 아니야. 덤비면 죽어.”
뱀이 혹 영물이었다면 되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도를 가로막은 뱀은 그저 ‘동급(銅級)’의 구렁이에 불과했다.
구렁이의 번들거리는 눈이 연적하에게 고정됐다.
그를 먹잇감으로 생각한 구렁이는 고민할 것도 없이 벼락처럼 덮쳤다.
연적하는 마주 달려가며 주먹으로 구렁이의 콧잔등을 후려쳤다.
콰앙!
‘초목급’의 뱀이었으면 머리가 터져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동급’인 구렁이는 폭음과 함께 뒤로 튕겨 나기만 했다.
연적하가 쾌속하게 따라붙으며 연달아 삼권을 내질렀다.
쾅! 쾅! 콰직-!
세 번째 주먹질에 구렁이의 머리가 함몰되었다.
펄떡거리던 구렁이의 몸이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구렁이의 숨이 끊어지자 연적하가 떨떠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말했잖아. 죽는다고.”
구렁이가 죽자 굳어 있던 공지유와 정덕행도 마치 주박(呪簿)에서 풀린 듯 깨어났다.
공지유가 죽은 구렁이를 보고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어어? 언제 죽였어요?”
“예? 못 봤어요? 방금 눈앞에서 때려 잡았는데?”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뱀을 본 것 같기는 한데……. 와아! 무섭다. 이렇게 잡아먹힐 수도 있구나. 죽는지도 모르고 끝나겠네.”
“그냥 가라고 했는데 말을 안 듣더라고요. 죽을 팔자였던 거죠.”
“영물은 돼야 말귀를 알아들을 거예요.”
“그런 거 같아요. 그나저나 식사 때도 된 것 같은데 좀 먹고 가요.”
연적하가 천연덕스럽게 뱀의 사체 옆에 행낭을 내려놓았다.
공지유가 불안한 얼굴로 뱀의 머리를 힐끔거렸다.
뱀은 머리통이 잘린 뒤에도 사람을 물어 죽일 수 있다. 그래서 선뜻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연 대협, 자리를 좀 옮기면 안 돼요? 뱀은 워낙 생명력이 질겨서…….”
“아, 그럴까요? 죽은 건 확실한데 불안하면 옮기죠 뭐.”
말과 함께 연적하가 손바닥으로 운룡풍호(雲龍風虎)를 펼쳤다.
콰르르르-.
장풍에 휘말린 구렁이의 사체가 풀 숲으로 날아갔다.
그제야 공지유는 깨끗한 자리를 골라 털썩 주저앉았다.
정덕행이 등짐을 내려놓고 요리 도구를 꺼낼 때, 연적하가 그를 불렀다.
“정 씨.”
“예.”
“오늘은 뱀 고기로 요리를 해 봐.”
“뱀요?”
정덕행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뱀 고기라니?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먹을 게 다 떨어졌다면 모를까?
아직 먹거리가 많이 남았는데 웬 뱀 고기?
“귓구멍 막혔어? 내가 뱀을 죽였잖아. 누가 그러더라고. 먹기 위해서가 아니면 생명을 해치지 말라고. 그러니까 싱싱할 때 먹어 줘야지.”
“…….”
정덕행이 황당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생명을 해치지 말라’와 ‘싱싱할 때 먹자’는 말이 한데 있으니 괴랄하기 그지없다.
‘씨벌, 그냥 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라! 어디서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왜? 뱀 고기는 요리 못해? 겨울에 놀았구나?”
그 소리에 정덕행은 펄쩍 뛰며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어이쿠!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뱀 고기도 고기니까,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해.”
“예, 예.”
굽실거리던 정덕행은 식칼을 들고 풀숲으로 들어갔다.
저 멀리 내동댕이쳐져 있는 거대한 구렁이의 몸통을 보고 있으려니 소름이 돋았다.
‘숨통이 덜 끊어졌으면 어쩌지?’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머뭇거리며 구렁이에게 다가간 정덕행은 한동안 구렁이를 관찰했다.
미동도 하지 않는 걸 보니 숨이 끊어진 게 확실한 것 같다.
그때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 뭐해! 요리 안 할 거야?”
“합니다! 합니다!”
정덕행은 이를 악물고 식칼로 구렁이의 몸통을 내리찍었다.
텅-.
튕겨 나온 식칼이 정덕행의 이마를 때렸다.
“악!”
정덕행은 식칼을 놓고 이마를 감싸쥐었다.
다행히 칼등에 맞았는지 붓기만 하고 베이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살거죽이 찢어져 손바닥에 피가 묻어났다.
그제야 그는 눈앞의 구렁이가 ‘동급’ 야수라는 걸 깨달았다.
“연 대협! 칼이 안 들어갑니다!”
“어쩌라고?”
‘어쩌긴 이 개 같은 놈아. 동급 야수의 거죽을 벗겨 줘야 고기를 취하지.’
욕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정덕행은 꾹 눌러 참았다.
자신에게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도 시킨 것이니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정덕행은 다시 식칼을 주워들고 구렁이에게 다가갔다.
텅! 텅! 텅-!
기이한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정덕행은 연적하가 됐다고 할 때까지 쉬지 않고 식칼을 휘둘렀다.
효과가 전혀 없는 단순한 일을 계속하다 보면 건성으로 하게 된다.
그럴 때면 기다렸다는 듯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열심히 안 하지?”
텅! 텅! 텅! 텅-!
정덕행은 이를 악물고 식칼을 휘둘렀다.
‘죽어라! 죽어라!’
구렁이는 이미 죽었으니 연적하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의 독기 어린 칼질에도 불구하고 구렁이 몸통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공지유가 나직이 말했다.
“연 대협, 그의 무위로는 ‘동급’ 야수의 거죽을 자르지 못할 거예요.”
“알아요.”
“아, 벌을 주시는 건가요?”
“아뇨. 그의 뼈에 뭔가를 새겨 주는 거예요.”
“뭘 새겨 주시는 건데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하여튼 뭔가 새겨지고 있을 거예요.”
“…….”
공지유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연적하와 같은 고인이 하는 일이니 어련히 알아서 잘하지 않을까.
칼질 소리가 약해졌다.
농땡이를 부려서라기보다는 기운이 빠진 까닭이다.
일각(15분) 이상 무거운 식칼로 죽어라 칼질을 했으니 지칠 만도 하다.
그제야 연적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덕행에게 다가갔다.
그가 다가오자 정덕행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올려 식칼을 휘둘렀다.
텅! 텅! 퍽-!
마지막 칼질 소리가 달라졌다?
정덕행은 자기가 내려찍던 부위를 유심히 살폈다.
흠집조차 나지 않았던 구렁이의 비늘에 희미하게 균열이 가 있었다.
이건 자신의 한계를 초월한 힘이다.
기이한 열기에 사로잡힌 정덕행은 다시 한번 식칼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연적하가 정덕행의 뒤통수를 힘껏 후려쳤다.
철썩!
정덕행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뒤통수를 맞았는데 눈앞에서 별이 반짝였다.
“하루 종일 그러고 있을 거야? 요리는 언제 할래? 공 소저와 나는 굶어 죽어?”
뒤늦게 정신을 차린 정덕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아닙니다. 비늘이 너무 단단해서…….”
“능력이 안 되면 부탁을 해야지. 혼자서 천년만년 칼질하고 있을래?”
‘그래서 아까 칼이 안 들어간다고 했잖아! 이 자식아!’
마음속으로 절규하듯 욕을 퍼부은 후에, 정덕행이 굽실거리며 말했다.
“제가 미련을 떨었습니다. 거죽을 좀 제거해 주십시오.”
“칼 주고 비켜 봐.”
“예.”
정덕행이 식칼을 건네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구렁이에게 다가간 연적하가 마치 두부를 자르듯 슥슥 껍질을 벗겨 냈다.
내친김에 그는 수박만 한 크기로 살점까지 떼어 낸 뒤, 정덕행에게 식칼을 돌려줬다.
정덕행이 구렁이 고기를 가지고 오자 공지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단지 정덕행을 골려 주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어쩌다 야수의 고기를 먹어 본 적은 있지만 뱀 고기는 처음이다.
정말 ‘먹기 위해서가 아니면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말 때문일까?
공지유는 뱀 고기를 힐끔 보았다.
워낙 커서 그런지 뱀 고기가 아니라 그냥 소나 돼지의 살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정덕행은 부지런히 모닥불을 피우고, 열과 성을 다해 뱀 고기를 요리했다.
반 시진쯤 지나 요리가 완성됐다.
정덕행은 뱀 고기를 돼지고기처럼 두툼하게 잘라 졸여 냈다.
그렇게 밥과 뱀 조림이 차려졌다.
냄새는 각종 양념 때문인지 향긋했다.
하지만 공지유는 차마 따끈따끈한 뱀 고기로 손을 뻗지 못했다.
그건 요리를 한 정덕행도 마찬가지였다.
공지유가 뱀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으로 꺼려 했다면, 정덕행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독성 때문에 피했다.
정덕행이 소심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구주에서 야수 고기를 잘못 먹고 죽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정덕행과 공지유는 양념만 깔짝거릴 뿐 고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하지만 연적하는 달랐다.
산중 생활을 하는 녹림의 도적들에게 뱀은 중요한 영양 공급원 중에 하나였다.
그들에게 뱀은 보양식이자, 별미로 없어서 못 먹는 식품이기도 했다.
거침없이 구렁이 고기를 가져가 씹던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오봉산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맛이나 식감이 이건 그냥 돼지고기에 가까웠다.
양념을 흔한 고기 요리의 것으로 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침묵 속에 식사가 끝났다.
연적하가 남은 식재료를 챙기고 있는 정덕행에게 말했다.
“뱀은 됐어.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니고. 돼지고기 맛이 나는 걸 먹느니 돼지고기가 낫지.”
“아, 예.”
뱀 고기가 싫었던 정덕행과 공지유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공도를 걷던 공지유가 조심스레 운을 뗐다.
“자기가 죽인 걸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그녀는 앞으로 어떤 야수를 만날지 모르는데 그때마다 먹자고 할까 봐 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