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26
626회.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네
칼부림 소리를 따라 달려가던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딱히 기대하지도 않았던 녹지(綠池)가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녹지 중심부에서 중년으로 보이는 세 남녀가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바닥에는 이미 다섯이 쓰러져 있는데, 그중 둘은 이미 절명한 것 같았다.
불청객이 나타난 줄도 모르고 일 남 일 녀는 여자 하나를 사납게 몰아쳐 갔다.
차차차창-.
숨도 쉬지 않고 남녀의 검을 쳐 내던 여자의 집중력이 잠깐 흐트러졌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남자의 검이 여자의 목을 베어 갔다.
여자의 목이 잘리기 직전, 연적하가 손가락을 튕겼다.
따앙-.
쇳소리와 함께 남자의 검신이 하늘로 솟았다.
수세에 몰렸던 여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벼락처럼 남자의 가슴을 찔렀다.
쉬익-.
하지만 연적하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땅!’ 소리와 함께 여자의 검 끝도 옆으로 홱 돌아갔다.
뒤늦게 제삼자의 등장을 알게 된 남자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세 남녀의 피 튀기던 싸움이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남자, 권명운 진인이 갑자기 등장한 청년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천뢰종의 사람들이오! 귀하는 누구이기에 천태종을 돕는 거요!”
그러자 홀로 싸우던 여자, 소화연 진인이 악에 받친 소리로 외쳤다.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 너희가 천뢰종이었느냐!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기습으로 천태종 제자를 죽이다니! 천뢰종의 이름이 아깝다!”
권명운 진인의 일행인 천뢰종의 서미 진인이 서늘한 눈으로 청년을 쏘아보았다.
“보아하니 일행을 잃은 모양인데, 천뢰종이나 천태종의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지나가는 게 좋을 거예요.”
서민 진인은 청년을 압박해서 쫓아낼 심산이었다.
천뢰종이 노리는 것은 오직 천태종 뿐인 까닭이다.
뒤늦게 서민 진인의 속셈을 간파한 소화연 진인이 애절하게 말했다.
“진인! 저는 천태종의 소화연이라 합니다! 어느 종문의 진인이신지는 모르겠으나 저 강도들의 말을 믿지 마세요! 진인께서 오늘 일을 목격했으니 반드시 살인멸구를 하려 들 거예요!”
순간 권명운 진인과 서민 진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천태종의 소화연이 이름을 밝혔으니 이제는 정말 목격자를 그냥 두기 어렵게 된 까닭이다.
화가 치밀어 오른 서민 진인이 소화연 진인에게 호통쳤다.
“악독한 년! 저 살겠다고 엄한 사람을 끌어들이다니! 실로 물귀신 같은 년이로구나!”
권명운 진인이 자연스럽게 연적하의 퇴로를 막아섰다.
소화연 진인의 눈빛에 언뜻 안도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 대 일에서 이 대 이의 싸움으로 바뀌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연적하는 기이한 눈으로 두 여자를 보았다.
은근슬쩍 자신을 싸움에 끌어들인 여자와 그런 여자를 야단치는 여자.
타인을 배려한 것 같지만 실상은 두 여자 모두 자기들을 위해 저러는 것이다.
그러니 화내거나 고마워할 이유도 없다.
연적하가 녹지에 떨어져 있는 검으로 손을 뻗자, 검이 스르륵 그의 손으로 빨려들었다.
이유야 어쨌든 당장 칼부림이 날 것 같으니 준비를 한 것이다.
착잡한 표정으로 보던 서민 진인이 청년에게 마지막 제안을 했다.
“보아하니 당신은 천태종 사람이 아닌 것 같군요. 그렇다면 당신을 위해 선택하도록 하세요. 천태종인지 천뢰종인지. 나라면 천뢰종을 도와 저 물귀신 같은 여자를 죽일 거예요. 그럼 살인멸구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잖아요.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서민 진인의 참신한 제안에 소화연 진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확실히 청년이 천뢰종 편에 선다면 살인멸구 따위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교활한 년! 진인! 저 말을 믿지 마세요! 천뢰종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것들이에요!”
두 여자의 말싸움을 지켜보던 연적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 자, 진정들 해요. 나는 어느 쪽과도 싸울 마음이 없으니까.”
그러자 권명운 진인이 끼어들었다.
“이보게. 나는 천뢰종의 권명운 진인이네. 자네의 심정은 이해가 가나, 지금 자네는 반드시 천뢰종과 천태종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네.”
“왜요?”
연적하가 권명운 진인을 빤히 보았다.
그러자 권명운 진인이 결연한 어조로 답했다.
“왜냐고? 그건 우리가 저 천태종 여자를 죽여야 하기 때문일세. 그러니 자네는 우리 편에 설지, 아니면 저 여자와 함께 죽을지를 선택해야 하네.”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선택하기 싫다면요?”
“말장난하는 걸 보니 천태종과 함께 죽기로 작정한 모양이로구나!”
돌연 권명운 진인이 연적하를 향해 검을 그었다.
천지뢰행(天地雷行)의 검공이다.
우르릉-. 번쩍!
우렛소리와 함께 수십 줄기의 시퍼런 뇌전(雷電)이 연적하를 향해 날아갔다.
권명운 진인이 손을 쓰자 서민 진인도 소화연 진인에게 달려갔다.
뇌전이 닥쳐오자 연적하는 즉시 구천세법 오 식 건곤번천(乾坤飜天)으로 받아쳤다.
파파팟-.
‘하늘과 땅이 바뀐다’는 이름에 걸맞게, 뇌기가 방향을 바꿔 권명운 진인에게 되돌아갔다.
깜짝 놀란 권명운 진인은 미친 듯 검을 휘둘러 뇌기를 막았다.
파직! 파직! 파직-!
되돌아온 뇌기를 거의 다 베어 낼 즈음, 어깨에 화끈한 통증과 함께 몸이 굳었다.
“윽!”
권명운 진인은 황당한 눈으로 자신의 어깨에 박힌 검을 보았다.
청년에게서 단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단번에 제압당한 권명운 진인과 달리 서민 진인과 소화연 진인의 싸움은 끝날 줄을 몰랐다.
지루한 얼굴로 구경하던 연적하가 검을 던졌다.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날아간 검이 서민 진인의 검신을 때렸다.
‘챙강!’ 하는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서민 진인의 검신이 뚝 부러졌다.
소화연 진인은 청년이 자신을 돕는 줄 알고 재빨리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소화연 진인은 서민 진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청년의 검이 소화연 진인의 양미간을 정조준한 채로 둥둥 떠 있기 때문이다.
당황한 소화연 진인이 물었다.
“이건 뭐죠?”
그러자 연적하가 시큰둥한 얼굴로 답했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라고 했잖아요.”
“어느 편도 아니라면서 왜 천뢰종 제자를 보호하는 건가요?”
“내가 천뢰종 제자의 검을 자른 틈에 공격하니까 막은 거예요.”
“…….”
소화연 진인은 속이 쓰렸지만 참았다.
이 상황에서 저 정체불명의 청년과 척을 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틈에 주춤주춤 물러난 서민 진인은 권명운 진인에게 다가가 그의 상처를 살폈다.
그러면서 은밀하게 영기를 흘려 보내 해혈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무리 영기를 흘려 보내도 권명운 진인의 몸은 풀어지지 않았다.
‘대체 무슨 수법을 쓴 거지? 진인의 점혈이라고 해 봐야 거기서 거기인데…….’
종문의 점혈법은 대동소이해서 해혈이 크게 어렵지 않다.
노조나 제군이 점혈했다면 모를까?
진인의 점혈이 왜 이렇게 단단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몇 번 시도하던 서민 진인은 해혈을 포기하고 물러났다.
피 튀기던 싸움은 일단 멈추었다.
소화연 진인과 서민 진인은 날 서린 눈빛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경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적하는 물가로 다가가 손으로 떠서 맛보았다.
내심 독이라도 풀었나 걱정했는데 아무런 이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로 목을 축인 연적하가 세 사람에게 돌아갔다.
“말해 봐요. 왜 싸운 거예요?”
연적하의 질문에 서민 진인이 되물었다.
“그 전에 당신은 누구죠? 천뢰종에 이름이 알려질까 봐 밝히지 않을 건가요?”
“나요? 언제 말할 틈이나 줬어요? 난 소요종의 연적하예요.”
소요종이라는 말에 서민 진인은 일단 안심했다.
천뢰종이나 천태종과 딱히 접점이 없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지 않아서다.
연적하는 세 사람과 한 번씩 눈을 마주한 뒤에 물었다.
“왜 싸웠어요?”
먼저 소화연 진인이 답했다.
“아까 말한 그대로예요. 녹지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리를 공격했어요. 손쓸 틈도 없이 두 사람이 죽었어요. 그 뒤에 둘이 더 쓰러지고, 저 혼자 남아 싸우고 있었던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이번에는 서민 진인과 권명운 진인에게 턱짓을 보냈다.
점혈당한 권명운 진인을 대신해서 서민 진인이 말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요. 천태종을 만나면 죽이라는 지시에 따른 것뿐이에요.”
그러자 소화연 진인이 빽 소리쳤다.
“왜! 우리가 천뢰종에 무슨 잘못을 했다고!”
서민 진인은 더 할 말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거기까지 말했으면 바보라도 천뢰종 종사의 뜻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쓰러져 있던 사람들 중에 셋이 꿈틀거렸다.
치명적인 부상을 면해 목숨이 붙어 있던 사람들이다.
서민 진인과 소화연 진인이 자기들 일행에게 달려가 금창약을 발라 주기 시작했다. 부상자 중에 둘은 소화연 진인이, 다른 하나는 서민 진인이 돌봤다.
연적하는 두 사람이 치료하는 걸 내버려 두었다.
비경에서 만나 죽고 죽이는 천뢰종과 천태종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소요종과 천지종처럼 다른 종문들도 어느 하나를 잡아 물어뜯고 있었다.
비경에서 종문들이 저런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삼살(三殺)의 규칙’이 어쩌고 하더니 모두가 허튼소리에 불과한 걸까?
아니면 과거와 달리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고민하던 연적하는 머리를 휘휘 저었다.
자신처럼 평범한 머리로 종문의 정세를 판단하기란 무리였다.
치료가 끝난 뒤에 천태종 진인들은 시체를 수습했다.
그제야 연적하는 천태종이 다섯이고, 천뢰종이 셋이었음을 알았다.
셋이 다섯을 쳤다니 꽤나 대범한 사람들이다.
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연적하가 지나가던 서민 진인에게 물었다.
“천태종이 다섯이나 되는데 공격한 거예요?”
“다섯이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비경에서는 조원의 숫자가 많을수록 약자잖아요. 연 진인은 일행이 몇이었나요?”
“일행 없어요.”
“하아! 연 진인이 처음부터 혼자였다는 걸 알았다면 권 진인도 덤비지 않았을 거예요.”
“아하.”
그제야 연적하는 서민 진인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조원의 숫자로 척살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한편으로는 소요종의 진인들이 걱정됐다.
천뢰종이 천태종에게 하듯, 천지종이 소요종 진인들을 죽일 것 같아서다.
평범하게 지내던 천뢰종도 갑자기 돌변했는데 원수 사이인 천지종은 오죽할까.
‘빨리 고산준령으로 가야겠다.’
사막이야 가로질러야 하는 곳이니 딱히 마주칠 일이 없지만 고산준령은 다르다. 검령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몇 번이고 마주칠 수밖에 없다.
마음이 급해진 연적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 때다.
멀리서 두 사람이 녹지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왔다.
천뢰종과 천태종의 진인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눈에 영기를 집중했다.
저들이 어느 종문이냐에 따라 생사가 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순간 서민 진인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두 사람 중 하나가 천뢰종의 진인들 중에서 수위를 다투는 고수인 까닭이다.
‘장우검 진인이시다!’
양천 제군의 제자인 장우검 진인이 ‘원영 십 성’이니 소요종의 진인쯤은 일검에 제압할 터였다.
그의 옆에 있는 염소수염의 노인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장우검 진인만으로도 충분했다.
서민 진인은 저도 모르게 소요종의 진인을 돌아보았다.
아직은 천뢰종의 행사를 비밀로 해야 하니 장우검 진인이 살려 두지 않을 게다.
‘쯧! 심성은 괜찮아 보이는데 운도 없지. 하필 천뢰종의 행사에 얽혀 죽다니.’
그런데 그의 하는 짓이 묘하다.
황당한 얼굴로 눈을 끔뻑거리더니, 급기야 손바닥으로 제 뺨을 때리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