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27
627회. 석경장이 티끌만도 못하다고?
연적하는 염소수염의 노인을 보고 긴가민가했다.
저 얼굴은 아무리 봐도 심통인데, 심통이 ‘왕들의 하늘’에 있을 리 없어서다.
갸우뚱하는 연적하와 달리 심통은 연적하를 단번에 알아봤다.
‘헛! 연 공자?’
한때는 그를 하늘처럼 여기고 죽어라 따라다녔건만, 지금 보니 참 덧없다.
천뢰종에서 개안(開眼)을 해서 그런 것이리라.
연적하와 보낸 날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종문과 비교하면 ‘우물 안 개구리’다.
자신이 하늘처럼 알던 연적하의 무위도 종문에서는 고작 진인급에 불과하니까.
당장에 자신과 동행하고 있는 장우검 진인만 해도 ‘원영 십 성’의 절대자다. 연적하가 촛불이라면 그는 달과도 같을 정도로 둘의 격차는 컸다.
그 장우검 진인이 말했다.
“천뢰종 제자와 천태종 제자가 싸웠나 본데, 저 가운데 끼어 있는 청년이 누군지를 모르겠군. 다른 종문 같기도 하고. 그쪽 생각은 어떤가?”
“제 생각에는 다른 종문 같아 보입니다. 천태종이었다면 저렇듯 쉬고 있지는 못했을 테니까요”
심통의 답에 장우검 진인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쓰는 게 마음에 들어서다.
스승인 양천 제군과 옥청 노조의 친분으로 외문 제자인 심통과 안면을 트고 지낸 지 한 달여.
스승과 옥청 노조는 전무후무할 정도로 빠른 심통의 성취에 주목했다.
오직 그에게만 반응한다는 금강저도 범상치 않았다.
호기심에 자신도 빌렸다가 영기가 사라지는 기괴한 현상에 곧바로 돌려준 바 있다.
장우검 진인이 슬쩍 심통의 허리춤으로 눈을 주었다.
예의 금강저가 보였다.
‘저런 걸 잘도 사용한단 말이지.’
‘금강저를 쓰면 검령도 막을 수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니 함께 다니기로 한 것은 잘한 것 같다.
장우검 진인과 염소수염의 노인이 다가오자 천뢰종 진인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서민 진인이 부상자들을 뒤로하고 재빨리 달려가 장우검 진인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장 진인. 도와주십시오.”
“무슨 일인가?”
“천태종을 제압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요종이 끼어들어, 이렇게 되었습니다.”
장우검 진인이 소요종으로 추측되는 청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는 소요종 사람이냐?”
장우검 진인의 나이는 이백이십 살이지만 외견상 예순으로 보였다.
그렇다 해도 청년인 연적하와 비교하면 노인이라 자연스럽게 반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요?”
청년의 어딘지 삐딱한 태도에 장우검 진인은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내 심통을 돌아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대신해 처리하라고 떠넘기는 눈빛이다.
마지못해 심통이 나섰다.
“장 진인. 저 소요종 제자는 저와 동향의 사람입니다. 제가 잘 타일러 볼 테니 기회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호. 동향이라. 그렇다면 기회를 드리리다.”
장우검 진인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심통과 연적하를 번갈아 보았다.
심통이 연적하를 마주 보고 섰다.
연적하 역시 이제는 염소수염의 노인이 심통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궁금한 게 많았지만 일단 심통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로 했다.
“험, 연 공자. 보다시피 나는 천뢰종의 제자가 되었소. 연 공자도 종문이 어떤 곳인지 잘 알리라 생각하오. 동향의 정으로 말씀드리니 잘 생각하고 결정해 주시오. 천뢰종은 천태종을 병탄(倂呑)하기로 결정했소. 그 첫걸음으로 비경에 든 천태종을 정리하기로 한 것이오. 사정이 이렇게 되었으니 나서지 않았으면 하오.”
그의 말이 끝나자 연적하가 물었다.
“더 할 말 없고?”
“어허, 연 공자는 소요종이고 나는 천뢰종이니 말을 가려서 합시다.”
“이야!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네. 사람은 고쳐서 쓰는 거 아니라고 하더니. 그새 변심을 했네, 그새 변심을 해.”
“때로는 상황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오. 연 공자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죽을 때까지 과거의 추억 속에서 살 수는 없지 않소?”
“머리가 검은 짐승을 거두면 안 된다고 하더니. 야아! 이렇게 뒤통수를 맞네.”
“이게 어째서 뒤통수요. 이 모두가 연 공자를 위함이라는 걸 모르오?”
“뭐가 날 위하는 건데?”
“몰라서 묻소? 천뢰종의 장우검 진인은 ‘원영 십 성’에 오른 절대고수시오. 연 공자의 생사가 그분의 손에 달려 있어 하는 말이외다.”
“원영 십 성?”
연적하가 장우검을 힐끔 보았다.
심통보다 십 년은 어려 보이는데 ‘원영 십 성’이라니 제법이다.
그래 봐야 그 나물에 그 밥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그의 속도 모르고 심통이 득의양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 스승과의 인연으로 비경에서 함께 다니고 있소만, 저분은 본래 홀로 다니시는 분이오. 저분의 말 한마디에 연 공자의 생사가 달려 있다는 걸 이제 아시겠소?”
“그래서 가주(家主)를 버리고 천뢰종에 붙으셨다? 천뢰종이 더 나은 것 같아서?”
“쯧! 연 공자가 석경장의 장주였던 것은 사실이나, 그 자리를 어찌 종문과 비교할 수 있겠소? 석경장이 촛불이라면 종문은 달과도 같소. 그건 연 공자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오?”
“말이 아주 그냥 청산유수야. 구밀복검 시절로 돌아간 거 같아! 정말 그러기로 한 거야?”
구밀복검이라는 말에 심통의 얼굴이 굳었다.
그건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두 사람의 말이 길어지자 장우검 진인이 넌지시 한마디 했다.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도 같지. 흘려보낸 지난날은 다시 오지 않으니 얽매이지 말게. 종문 제자들에게 속세의 문파란 티끌과도 같다네. 백 년만 지나면 심 진인도 나와 같은 소리를 하게 될 걸세. 대화가 안 통하는 것 같은데 아무 때라도 말만 하게. 그대를 대신해서 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정리해 줄 터이니.”
직접 손을 쓰기 어려우면 대신 죽여 주겠다는 소리다.
심통이 답답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연적하가 손을 떼면 피차 얼굴 붉힐 일이 없는데 왜 똥고집인지 모르겠다.
“연 공자와 천태종이 무슨 관계가 있소?”
“없어.”
“허면 못 본 척 잠시 비켜나 주실 주시면 안 되겠소? 연 공자도 알겠지만, 종문의 법규는 엄해서 죽이라고 하면 죽여야 하니 하는 말이오.”
“그러니까 내 앞에서 천태종을 죽이겠다?”
“그게 천뢰종의 뜻이오.”
“안 돼.”
“허어! 연 공자와 관계가 없다고 했으면서 왜 안 된다는 거요?”
“왜냐고? 그야 심 노인이 내 뒤통수를 쳤으니까. 난 뒤통수 맞고는 못 살아. 알면서 왜 그래?”
“이게 왜 뒤통수요. 석경장과 종문은 노는 물이 다르지 않소? 석경장이 실개천이라면 종문은 장강(長江)과도 같소.”
“그래서 뒤통수를 치셨다?”
연적하가 계속 뒤통수 운운하자 심통도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래! 뒤통수쳤다. 어쩔 테냐? 이 고집불통이 녀석아! 네놈도 눈깔이 있으면 알 것 아니냐! 장 진인께서 말씀하셨듯이 석경장은 티끌만도 못하다. 너도 소요종에 들어가 놓고 왜 나에게만 뒤통수라고 지랄이냐!”
“아이고? 이젠 욕까지 처해 대네? 천뢰종에 들어가니까 보이는 게 없나 봐?”
“그래, 없다. 어쩔 테냐? 네놈이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나도 네놈을 모시고 다니지 않았더냐! 그 정도면 퉁치고도 남는다.”
“본색이 나오네. 본색이 나와.”
“연적하! 길게 말할 것 없다. 종문에 비하면 석경장은 티끌만도 못하다. 그러니 과거의 인연으로 더 나에게 뭘 원하지 마라. 그 정도면 나도 할 만큼 했으니까. 그리고 살고 싶으면 장 진인께서 시키는 대로 해라. 여기서 네놈 편 들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명심하고.”
말을 마친 심통은 씩씩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옛정을 생각해서 잘 해결되기를 바랐지만 아무래도 그러기는 틀린 것 같다.
그렇다고 한때 가족처럼 지내던 연적하에게 칼질을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는 그냥 이번 일에서 빠지기로 했다.
둘의 이야기가 끝나자 장우검 진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소요종의 진인은 들어라. 심 진인과 너의 인연을 생각해서…….”
“인연은 무슨 인연.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두어들였던 내가 병신이지.”
청년이 끼어들어 말을 끊자 장우검 진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관대한 처분을 기다려야 할 어린놈이 깐족거리니 이건 무슨 경우인가 싶다.
“너 이놈. 본 진인이 말하는데 끼어들다니? 정녕 죽고 싶은것이냐?”
“지금 초면에 이놈이라고 했어요? 그럼 나도 대접 못 해 줘. 저 심 노인에게 물어봐. 내 신조가 뭔지. 난 받은 대로 돌려주는 사람이야. 어이! 늙은이. 종문이면 왕인 줄 알아? 어디서 이빨을 털어?”
“허!”
연적하의 막말에 장우검 진인은 한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심통이나 다른 천뢰종 진인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원영 십 성’의 장우검 진인에게 저런 망발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심지어 천태종의 생존자들까지도 멍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들도 귀가 뚫려 있어 장 진인이 ‘원영 십 성’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절대자에게 저런 천박한 말을 하다니?
그들의 눈에는 연적하가 죽기로 작정하고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 것으로 보였다.
장우검 진인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연적하라고 했겠다? 네놈을 찢어 죽인 후에 소요종에 죄를 묻겠다!”
말과 함께 장우검 진인이 검을 뽑아 거칠게 휘둘렀다.
천뢰종의 상급 검공 천지뢰행(天地雷行)이다.
‘꽈릉!’ 하는 우렛소리와 함께 한 아름은 됨 직한 시퍼렇고 굵은 뇌전이 연적하를 향해 날아갔다.
흡사 백여 줄기의 뇌전을 한데 모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지랄!”
욕설과 함께 연적하 역시 구천세법 오 식 건곤번천(乾坤孫天)으로 맞받았다.
꽈과광!
굉음과 함께 뇌전이 터지며 사방으로 뇌기를 발산했다.
너무도 강한 뇌기인지라 방향이 꺾이기도 전에 폭발해 버린 것이다.
뇌기가 소용돌이치는 와중에 연적하가 버럭 소리쳤다.
“너도 받아 봐라!”
연적하가 청사로 구천세법 칠 식 용조할지(龍爪割地)를 펼쳤다.
콰드드득-.
열 가닥의 검강이 장우검 진인에게 몰아쳐 갔다.
검강이 내뿜는 파괴적인 힘에 지면이 일직선으로 길게 패여 나갔다.
대경실색한 장우검 진인은 급히 검을 앞에 세웠다.
몸을 지키는 폐문벽검(閉門壁劍)의 수법이다.
장우검 진인의 앞쪽으로 검강으로 만든 벽[劍壁]이 세워졌다.
이윽고 검강과 검벽이 마주쳤다.
쿠쿠쿠쿵-!
천번지복(天飛地覆)의 굉음에 진인들이 휘청거렸다.
용조할지의 검강이 검벽에 막히자 연적하가 미친 듯 청사를 휘둘렀다.
“막아? 그래 얼마나 잘 막는지 보자!”
그가 연거푸 세 번이나 용조할지를 펼치자 땅이 뒤집혔다.
콰드드득- 콰드드득- 콰드드득-.
장우검 진인은 피하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폐문벽검 뒤로 몸을 숨겼다.
쿠쿠쿠쿵- 쿠쿠쿠쿵-.
두 차례 검강을 막으니 ‘울컥’하고 뭔가 치밀어 올랐다.
억지로 삼키고 나니 잠시 후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미, 미친, 진인이 어찌 이런…….’
폐문벽검은 상급의 호신 검공이라 진인의 검강에 깨질 수가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소요종의 진인이 쏟아붓는 검공에 폐문벽검이 깎여 나가고 있었다.
‘진인의 영기가 이럴 수는 없다!’
장우검 진인은 핏발 선 눈으로 밀려오는 마지막 검강을 노려보았다.
쿠쿠쿠쿵-!
세 번째 검강에 근근이 버티던 폐문벽검이 터져 나갔다.
호신 검공과 연결되어 있던 장우검 진인의 칠공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연적하가 석상처럼 굳어 있는 장우검 진인에게 타박타박 걸어갔다.
“늙은이, 나를 어떻게 하겠다고?”
그러나 장우검 진인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내부를 진정시키느라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장우검 진인의 뒤로 돌아간 연적하가 그의 오금을 발끝으로 툭 찍었다.
순간 장우검 진인이 풀썩 무릎 꿇으며 주저앉았다.
“우웩!”
끝내 피를 토해 내는 장우검 진인의 어깨에 연적하가 한쪽 발을 척 걸치고 포효했다.
“심통! 석경장과 종문은 노는 물이 다르다고? 석경장이 티끌만도 못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