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32
632회. 염불이나 열심히 외워
계곡 무너지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소요종 진인들은 뒤늦게 연적하를 발견했다.
다 죽어 가던 검서린, 은소선, 좌경인 진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특히나 검서린 진인은 연적하의 경지를 어느 정도 알기에 그 기쁨이 남달랐다.
그녀는 연적하 진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빠르게 현재의 상황을 전했다.
“연 진인! 천지종에서 소요종을 상대로 전쟁을 계획하고 있어요! 그 시작으로 비경에 든 모든 소요종 진인들을 죽이려 해요! 저기 보이는 면사녀를 조심하세요! 그녀의 영기는 진인을 초월했어요!”
검서린 진인은 행여나 면사녀가 방해할까 봐 숨도 쉬지 않고 정보를 쏟아 냈다.
그런데 면사녀, 천지종의 빙설화는 검서린 진인의 말을 막거나 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를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했다.
소요종의 진인들은 그것을 면사녀의 자신감으로 해석하고 이를 갈았다.
검서린 진인의 이야기가 끝나자 연적하는 면사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쪽이 사막에서 장소성을 내지른 거 맞죠?”
“…….”
가만히 서 있던 빙설화가 천천히 검 끝으로 연적하를 가리켰다.
마치 문답무용(問答無用)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상대가 싸울 뜻을 보이자 연적하도 청사에 영기를 불어 넣었다.
청사 끝에서 검푸른 진검강이 세 자(약 90센티)쯤 뻗어 나왔다.
직접적인 검격을 나눌 생각인지 빙설화의 검신도 진검강으로 물들어 갔다.
그걸 본 연적하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고수들이 의형검강(意形劍罡)을 사용하는 것은 무위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직접적인 검격이 거리를 두고 의형검강을 주고받는 것보다 더 위험해서다.
고수들 간의 검격은 어느 한쪽이 ‘아차!’ 하는 순간 바로 사지가 잘려 나간다.
그러니 비록 영기의 소모가 심하지만 거리를 두고 의형검강을 쓰는 것이다.
한순간에 사지가 잘려 나가는 것보다 내부가 진탕되는 게 더 나으니까.
‘제길, 어지간히 자신이 있나 보네.’
실전의 경험이 충분하지 않으면 직접 검을 맞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즉 영기만 뛰어난 게 아니라 실전에도 능하다는 뜻이다.
긴장한 연적하가 침중한 얼굴로 자세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때다.
마치 한 마리 나비처럼 빙설화가 움직였다.
챙-!
진검강과 진검강이 맞부딪치자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숨 쉴 틈도 없이 검격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어째 연적하의 표정이 이상하다.
굳어 있던 처음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희낙락한 얼굴이다.
검법에는 문파 고유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 철학은 다소 현란하기까지 한 초식과 검사의 기세를 통해 표출된다.
남궁세가의 철학 역시 그랬다.
창궁(蒼宮), 혹은 창천(蒼天)으로 대변되는 그들의 검법은 도가나 불가와 구별된다.
창궁무애(蒼穹無涯, 푸른 하늘은 끝이 없다)만 봐도 그렇다.
도가(道家)였으면 무애(無愛, 정이 없음)라 했을 테고, 불가(佛家)였으면 무애(無碍, 막힘이 없음)라 했을 게다.
하지만 창궁무애검법은 끝없는 하늘을 품고 있다.
그건 무심함(혹은 무정)이나 유장함(혹은 막힘 없음)과는 궤를 달리하는 장중함이었다. 강호의 고수들은 그것을 두고 ‘하늘의 무게’라 했다.
연적하는 첫 번째 검격만으로도 면사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남궁천, 남궁연 남매와 그토록 자주 비무를 했는데 모르면 도리어 이상하다.
‘왕들의 하늘’에서 남궁세가의 검법을 사용할 사람은 남궁연밖에 없다.
그는 남궁연이 오랜만에 검으로 안부를 물어오자 성실하게 답했다.
차차차창-.
창궁무애검법과 구천세법이 복잡하게 맞물려 돌아갔다.
두 사람의 검격은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복잡하게 변해 갔다.
초식만 변한 게 아니다.
청명하기만 하던 쇳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묵직해졌다.
쾅! 쾅! 쾅! 쾅-!
계곡을 뒤흔드는 무거운 폭발음에 소요종은 물론 천지종 진인들도 부르르 떨었다.
그 소리에 다른 종문의 진인들이 빠르게 다가왔다가 슬그머니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폭발과 함께 일어나는 공기의 파동에 질려 꼬리를 말고 피하는 것이다.
남들이야 놀라거나 말거나 연적하와 빙설화의 검격은 일각(15분)이나 계속됐다.
천지종 진인들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그들이 보기에 지금 저 두 사람은 목숨을 도외시한 상태였다.
마치 지금 싸우다가 죽을 기세다.
그런데 저 무시무시한 빙설화의 검격을 소요종의 진인은 웃으며 받아내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빙설화 역시 미소 짓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걱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빙설화의 얼굴은 면사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연적하의 미소를 보고-소요종 진인의 우세로 착각했다.
그들의 착각에 빙설화가 부채질을 했다.
갑자기 몸을 돌려 맞은편에 보이는 산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망연한 얼굴로 서 있는 천지종 진인들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어이! 늙은이들! 잿밥에 관심 두지 말고 염불이나 열심히 외워! 가서 천지종 진인들에게 말해. 비경에서 소요종을 건드리면 내가 찾아내서 싹 다 죽여 버린다고. 알았어?”
“그, 그러리다.”
“알겠소.”
천지종의 청해 진인과 증관일 진인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들은 믿었던 빙설화를 쫓아 보낸 절대자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천지종 진인들을 보낸 연적하는 어검비행의 수법으로 빙설화를 쫓아갔다.
구사일생한 소요종 진인들은 자신들의 행운을 자축하다가 새로 조를 구성했다.
천지종이 소요종을 노리고 있는 이상 흩어지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소요종 진인들과 헤어진 연적하가 맞은편 산 정상에 도달했을 때다.
울창한 숲에서 작은 돌 조각이 날아왔다.
그러자 그는 반가운 얼굴로 숲으로 뛰어들었다.
이윽고 면사녀, 아니 남궁연이 맨 얼굴로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격동을 이기지 못한 연적하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누님!”
“…….”
남궁연은 그의 등을 안고 토닥였다.
겨우 들끓던 감정이 진정되자 연적하가 슬그머니 팔을 풀고 물었다.
“그간 잘 지냈어요?”
“응,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팔황신모에게 나도 제물로 써 달라고 했어요. 누님이 간 곳으로 나도 가야겠다고. 그랬더니 보내 주더라고요?”
연적하는 팔황신모가 등가교환(等價交換)이니 뭐니 했던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벌어진 일인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뭐하겠나 싶어서다.
“…….”
남궁연이 안타까운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녀는 이미 팔황신모의 초혼제(招魂祭)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가고 나서 온 게 뭐였어?”
“아, 금사라고 약간 맛이 간 군주가 왔어요.”
“금사? 우샤스 킨샤사?”
“누님도 아는 이름이에요?”
연적하는 남궁연이 단번에 금사의 진명까지 알아맞추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당연하지. 금사는 지혜의 신으로 알려진 군주야. 사벌주에서 섬기는 신으로도 유명해.”
“사벌주면 법요종요?”
“맞아. 하지만 법요종에서는 금사를 신으로 섬기지 않아. 언젠가는 자신들도 신좌에 오를 거라고 믿으니까. 백성들 사이에서 신으로 숭상 받고 있지.”
“법요종에서는 금사의 눈치를 안 봐요?”
“외견상 공생하는 관계야. 사실은 법요종이 금사에게 의지를 하지만.”
“신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의지를 한다고요?”
“마천의 마물들을 법요종 혼자서 막기는 어려우니까. 그래서 군주인 금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 금사의 입장에서도 사벌주의 백성들을 위해 나서 줄 수밖에 없고.”
“아…… 그럼 괜찮은 군주 아니에요?”
“그런데 금사는 생사의 기로에 선 인간의 고뇌를 즐기기도 해서.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야. 사람의 입장에서는 선악을 구별하기 어려운 신 중에 하나라고 할까?”
“어쩐지. 강호에 있는 금사도 좀 이상했어요. 팔황신모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걸 보면, 착한 신은 아닌 것 같기도…….”
“내가 가고 금사가 왔으면, 너를 대신해서는 왕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
연적하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에 듣기만 했다.
“뭐 그래도 ‘천자마(天子魔)’만 아니라면 그쪽 세상에 위협이 되지는 않을 거야.”
연적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천자마.
마계로 불리는 마천을 다스리는 지금까지 구주를 침공한 마계의 마물들이 모두 천자마의 부하들이었다.
마천의 마물은 종문만으로 감당이 안 돼서 군주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다.
그런 마물의 왕이 강호에 갔다면 세상은 그냥 끝났다고 봐야 한다.
‘쩝, 아니겠지.’
여덟이나 되는 왕이 있는데 설마 하필 천자마가 갔으려고.
애써 부인하고 있는 연적하의 귓가로 남궁연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영기가 강호에 있을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던데, 기연을 얻은 거야?”
“네, 천애불문비의 영기를 취했어요. 누님도 기연을 얻은 것 같던데.”
“나도 건곤벽의 비기(祕記)와 영기를 얻었어.”
“와아! 축하드려요. 천지종 종사가 좋아했겠네요?”
“그래서 고민이야.”
“왜요?”
“종사가 나를 이용해서 구주의 종문을 병탄하려고 해. 그 시작이 소요종이고.”
“왜요? 지금까지 아홉 종문이 적당히 잘 지내 왔잖아요?”
“종사인 추회 존자는 아홉 종문의 천문을 손에 넣고 싶어 해. 지금까지 종문이 천문을 열지 못한 건, 아홉 개 모두를 손에 넣지 못해서라는 거지.”
“그래서 전쟁을 벌이시겠다?”
“응. 나도 천문을 꼭 열어야겠다 싶어서 동참했어.”
“누님은 왜요?”
“천문은 말 그대로 하늘의 문이잖아. 문을 통해 위로만 가라는 법이 있니?”
“아래? 어디로? 아! 혹시 누님도 강호로 돌아가려고?”
“맞아. ‘삼천의 신’이 되겠다는 걸 내세워 어떻게든 천문을 열 생각이었어.”
“어! 나도요. 나는 줄곧 ‘누님을 찾아서 함께 열자고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머리 쓰는 쪽으로 영 자신이 없어서.”
“그랬구나! 용케 그런 생각을 했네?”
“실은 ‘천애불문비’가 박살 나기 전에 이상한 음성을 들었거든요.”
“이상한 음성?”
“내 사명이 ‘하늘의 문’을 여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 서각(書閣)에서 조사를 좀 했죠. 그리고 누님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네 사명이 그거라면 천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종문의 성물은 창조신이 만든 거라서. 불가능한 걸 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야.”
“종문의 성물을 창조신이 만들었어요? 초대 종사가 만든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던데.”
“나는 건곤벽에서 신의 숨결을 느꼈어. 초대 종사들이 신좌에 오르지 못한 걸 생각하면, 성물은 절대로 그들이 만든 게 아니야.”
“와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생령을 받아들이기만 했는데.”
그런 연적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던 남궁연이 문득 말했다.
“그래서 네가 좀 도와줘야겠어.”
“뭘요?”
“아홉 종문의 천문을 손에 넣는 일. 어차피 종문 간의 전쟁은 피할 수 없어. 그건 비단 천지종과 소요종의 일만은 아니야. 비경에서 벌써 여섯 종문 간에 전쟁이 일어났거든.”
“여섯이나요?”
“그래, 천지종처럼 종문 병탄의 야욕을 드러낸 종문이 둘이나 더 있어. 천뢰종과 태상종.”
“와아. 미쳤다.”
“아직은 천태종과 무극종이 삼살(三殺)의 규칙으로 반격에 나선 모양새지만,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거야.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도발하는 거니까. 우리 천지종이 너희 소요종에 하듯.”
“그래서 누님 생각은요?”
“먼저 천지종과 소요종이 전쟁 중인 종문들을 병탄하게 만들어야 해. 그런 뒤에 너와 내가 천지종과 소요종을 합치는 거지. 그럼 관망하고 있던 나머지 세 개의 종문은 머리를 숙이고 들어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