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76
676회. 메누아. 그렇게 부르거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심통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눈을 끔뻑였다.
‘잘못 들었나?’
아마 그런 것일 게다.
‘어이가 없네. 지금 나한테 천지종이 밥을 사 준 것이냐?’라니.
일반 백성이라면, 그녀가 설사 성주의 딸이라 해도, 종문 제자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못한다.
‘이건 설마 흡자결의 부작용인가?’
어느새 구주의 생활이 몸에 밴 심통은 그렇게밖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럴 정도로 소녀의 말은 현실성이 없었다.
하지만 계속된 소녀의 행동에 심통은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소녀가 의자에 걸터앉으며 턱으로 연적하를 가리켰다.
“그쪽이 대종사겠구나? 연적하?”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녀는 젓가락으로 요리를 뒤적이며 물었다.
“아홉 종문의 성물은 당신이 부순 건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
“성물이 부서졌다는데, 그쪽 몸에서 창조신의 냄새가 나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오해야. 내가 소요종의 성물에 있는 생령을 취한 건 사실이지만. 그때는 이미 아홉 종문의 성물이 부서지고 난 뒤였거든.”
“운이 좋았네?”
소녀는 그 말을 믿는지 더 이상 그 문제를 파고들지 않았다.
무심한 얼굴로 요리를 뒤적이는 소녀에게 연적하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지?”
“내가 누구일 것 같으냐?”
소녀는 요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연적하는 소녀의 하얀 이마와 반듯한 코끝을 보며 머리를 쥐어짰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모르겠네.”
순간 소녀가 얼굴을 들어 연적하를 빤히 보며 말했다.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구나.”
연적하는 자존심이 살짝 상했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어. 평소에 그런 말을 조금 듣는 편이야. 그래도 잔머리는 좋아.”
소녀와 연적하의 대화가 길어지자 뻘쭘하게 서 있던 심통은 슬그머니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는 소녀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감히 묻지 않았다.
구주에서 저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연적하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소녀를 대하는 연적하의 태도 또한 범상치 않았다.
연적하의 눈은 젓가락으로 음식을 헤집고 있는 소녀의 손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천하의 연적하가 작은 소녀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소녀의 위험을 알아차린 심통의 손이 허리춤에 있는 금강저로 향했다.
순간 음식을 깨작이던 소녀가 심통에게 고개를 스윽 돌렸다.
“쿨럭! 쿨럭!”
깜짝 놀라는 통에 사레들린 심통이 연신 기침을 해 댔다.
그제야 소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투덜거렸다.
“더럽게 뭐 하는 짓이야. 나와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느냐?”
소녀의 행동을 지켜보던 연적하가 한마디 했다.
“그런 복이 있어?”
“나는 함께 식사를 한 자들을, 적어도 그날은 죽이지 않는다. 그러니 복이지.”
“아……. 그렇구나. 그럼 오늘은 어떻게 해도 괜찮다는 거네?”
“그래. 그런데 무슨 한심한 생각을 하고 있길래 표정이 그 모양이냐?”
“딱히 생각한 건 없는데?”
“아, 아무 생각이 없어서 한심한 표정이었구나. 너는 생각을 좀 하면서 사는 게 낫겠다. 그냥 있으면 똥을 참는 마못 같은 얼굴이다.”
“마못?”
처음 듣는 이름에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소요종에서 구주의 동식물 도감을 읽었는데 마못은 금시초문이다.
“있다. 그런 놈이.”
소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연적하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그쪽의 이름은 뭔데?”
소녀가 짓궂은 표정으로 답했다.
“남에게 의지하면 안 되느니라. 스스로 생각해 보거라. 내가 누군지 알아내면 떠나 주마.”
연적하가 곤혹스러운 눈으로 소녀와 심통을 번갈아 보았다.
그건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동행하겠다는 소리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연적하가 넌지시 말했다.
“이봐. 우리는 바쁜 사람들이야. 그쪽과 어울려 줄 시간이 없다고.”
“아무렴 나만큼 바쁘려고. 허나 신경 쓰지 말거라. 나도 내 볼일을 볼 테니까.”
“설마 내 일에 끼어들어서 방해를 한다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
“무슨 일을 할 것이냐?”
“나는 혈주종을 혼내주러 가던 길이야. 그쪽이 혈주종을 돕기라도 하면 곤란하다고.”
“풋! 내가 혈주종을 돕는다고? 혹시 뱀이 개구리를 도와주는 것을 보았느냐?”
“없어.”
“그럼 이제 알겠지? 나는 신경 쓰지 마라. 내가 종문을 도울 일은 없으니까. 그 반대라면 모를까.”
반대라는 말에 연적하가 소녀를 지그시 응시했다.
하지만 귀여운 얼굴만 봐서는 소녀의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느냐?”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쳐다보느냐? 너도 남자라 이거냐? 이 얼굴이 남자에게 잘 먹히느냐?”
천연덕스러운 소녀의 말에 연적하가 펄쩍 뛰었다.
“이봐!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 그쪽이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쳐다본 것뿐이라고.”
“이상하다고?”
“종문을 돕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게 뭐가 이상하다고 그러느냐? 당연한 소리를.”
“진짜 모르겠네. 그냥 속 시원하게 누군지 가르쳐 주면 안돼?”
“안 된다.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소녀는 훈계하듯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하자 연적하도 더는 물어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에이, 더러워서 원.’
사실 소녀가 종문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천지종 고수들이 식사를 마치자 연적하가 소녀에게 말했다.
“함께 식사를 한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고 했지?”
“잔머리가 제법이구나. 나는 분명히 ‘그날은’ 죽이지 않는다고 했다.”
“아, 이건 잔머리가 아니야. 그냥 기억을 못 한 거지. 함께 다니는 동안은 같이 먹자. 지금 말한 게 잔머리야.”
소녀가 묘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자신이 없느냐?”
“그보다는 피곤한 게 싫어서 그래. 그쪽도 같은 편에게 뒤통수 몇 번 맞으면 나처럼 될 거야.”
그러자 소녀는 허리를 잡고 ‘깔깔!’ 웃었다.
어딘지 발랄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이 드는 웃음에 사위가 고요해졌다.
웃음을 뚝 그친 소녀가 희고 가느다란 손끝으로 눈자위를 닦으며 말했다.
“나를 웃게 해 주었으니 나도 나중에 선물을 주마. 기대해도 좋다.”
“혹시 내가 그 선물을 거절할 수도 있어?”
“거절은 거절한다.”
모욕을 느낀 듯 생글거리던 소녀는 차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천지종 고수들이 식당을 나섰다.
거리 한복판에서 연적하는 보란 듯 운종술을 사용해 날아올랐다.
뒤이어 사십오 명의 천지종 고수들이 운종술과 어검비행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선두에서 날아가던 연적하는 누군가 옆으로 다가오자 고개를 돌렸다.
정체불명의 소녀였다.
기이하게도 그녀는 허공을 천천히 걸었는데 그 속도가 운종술에 맞먹었다.
기분이 풀렸는지 소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어딘지 알고 가는 것이냐?”
“몰라. 그냥 가장 강한 영기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야. 가다 보면 나오겠지.”
“오호! 그것 역시 잔머리?”
“이왕이면 임기응변이라고 해 줘. 그런데.”
연적하가 말을 끊었다.
기다려도 이어지는 말이 없자 궁금해진 소녀가 물었다.
“그런데 뭐?”
“그쪽을 뭐라고 불러야 하지? 이봐, 어이, 하고 부를 수는 없잖아.”
잠깐 생각하던 소녀가 말했다.
“메누아(안식).”
“메누아라고?”
“그래, 메누아. 그렇게 부르거라.”
“그게 무슨 뜻인데?”
그러자 메누아가 되물었다.
“내가 뭐라고 했지?”
“남에게 의지하지 마라?”
“알면서 왜 자꾸 묻느냐? 그건 역시 머리의 문제인가?”
그녀의 조롱에 울컥한 연적하가 쏘아붙였다.
“이런 젠장! 내 머리가 나쁘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라고. 내 처에 비하면 나쁘다는 거지, 내 머리도 중간은 가거든?”
“혼인을 했느냐?”
“그래.”
“재밌군.”
그 말을 끝으로 메누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연적하는 천지종을 이끌고 하루를 더 동쪽으로 날아갔다.
밀림 사이에 마을이 보일 때면 잠깐씩 아래로 내려가 쉬었다.
웅천주에 들어선 지 사흘째 되던 날.
묵묵히 밀림 위를 날아가던 연적하가 거대한 협곡 안쪽에 내려섰다.
겉에서 보기와 달리 안쪽에는 기묘한 형태의 건축물로 가득했다.
그런데 건축물의 외부를 장식한 것은 끔찍하게도 사람의 해골과 뼈였다.
시체를 진열해 놓았던지 개중에는 아직 살점이 붙은 것도 많았다.
그것을 본 천지종 고수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원 노조는 역겨움과 두려움, 분노 따위의 감정이 일시에 밀려오자 인상을 찌푸렸다.
혈주종을 피하라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때 협곡 가장 안쪽에 있는 거대한 사원에서 천여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절반쯤 벌거벗은 몸에 기괴한 문신, 척 봐도 혈주종의 사람들이었다.
불쾌한 광경에 인상을 찌푸리던 연적하가 문득 메누아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메누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다?
“왜 그렇게 보느냐?”
“아니, 뼈들이 너무 거슬려서 너는 괜찮은가 하고 봤지.”
“나도 거슬리기는 하구나. 흉내를 내려면 제대로 냈어야 하는데.”
“흉내라고?”
“그럼 저게 흉내지 제대로 된 모습이라고 생각하느냐?”
연적하는 메누아의 말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얼굴은 월아와 금아처럼 귀엽게 생겼는데 말하는 건 영 아니다.
연적하는 메누아와 천지종 고수들을 뒤에 남겨 두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혈주종에 호다이 존자라는 말종이 누구냐! 대종사 연적하 님이 오셨으니 냉큼 튀어나와라!”
제군들과 함께 뒤쪽에 서 있던 호다이 존자의 눈꺼풀이 분노로 실룩 거렸다.
그가 한바탕 욕을 퍼부으려는 순간 콴타우 제군이 나섰다.
“연적하!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연적하가 콴타우 제군의 말을 끊었다.
“네가 호다이라는 후레자식이냐?”
“뭐라! 나는 콴타우 제군이다. 천지종 종사와 제군을 죽였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인데! 우리 혈주종은 천지종 같은 병신들과 다르다!”
“개를 때리면 주인이 나오겠지? 너 좀 맞아야겠다!”
말과 함께 연적하가 콴타우를 향해 날아갔다.
연적하의 급습에 관타우 제군은 달아나지 못하고 맞서 싸워야 했다.
차차차창-!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호다이 존자는 연적하와 콴타우 제군이 싸우자 제군들에게 명했다.
“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해야겠다. 가서 천지종의 떨거지들을 죽여라.”
“예!”
다섯 명의 제군이 혈주종 고수들을 이끌고 막 치달리려는 순간이다.
갑자기 머리 하나가 날아와 혈주종 고수들 앞에 툭 떨어졌다.
머리의 주인은 방금 전까지 연적하와 싸우고 있던 콴타우 제군이었다.
기세등등하게 달려 나가려던 혈주종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연적하가 멍하니 보고 있는 혈주종 고수들을 향해 변명처럼 말했다.
“이런! 실수야, 실수. 그가 너무 날뛰는 바람에 힘이 조금 들어가서 그래”
눈 깜짝할 사이에 제군 하나를 베어 버리고서 실수란다.
그의 유들유들한 태도에 눈이 돌아간 호다이 존자가 버럭 소리쳤다.
“뭘 멍하니 보고만 있느냐! 당장 죽여라! 놈의 피를 마시고, 살을 씹어야겠다!”
멈칫했던 천여 명의 혈주종 고수들이 ‘와아!’ 소리와 함께 정면으로 밀고 나갔다.
혈주종 고수들이 새까맣게 밀려오자 연적하가 청사를 높이 들어 올렸다.
막 천산검영을 펼치려던 그가 멈칫했다.
도가 하나[一]를 낳고, 하나가 둘[二]을 낳고, 둘이 셋[三]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 그런즉 만물 안에 셋이 있고, 셋 안에 둘이 있고, 둘 안에 하나가 있다.
그건 천산검영에 만물이 있고, 만물에 천산검영이 있다는 소리다.
‘아!’
부지불식간에 깨달음을 얻은 그는, 천산검영에 천둔검결의 ‘일점무량(一點無量)’과 ‘포라천지(包羅天地)’를 담아 보기로 했다.
천산검영이 만들어 내는 ‘검의 화신(化身)’ 하나하나에 일점무량의 힘을 담고, 그것으로 사람 같지 않은 혈주종을 덮어 버리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