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81
681회. 물이 깊어야 큰 배를 띄울 수 있다.
사실 연적하에게 곤화위붕(强化爲鵬)이라는 말은 아주 특별한 의미였다.
비단 그 말이 구천여일진경에 적혀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창고에 갇혀 있던 때를 물고기로 생각했다.
그러다 구천여일진경과 구천구검을 익힘으로 마침내 대붕(大鵬)이 되었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의 삶은 ‘곤화위붕’ 네 글자와 잘 어울렸다.
처음 듣는 말에서 현기를 느낀 메누아가 관심을 보였다.
“곤화위붕이 무엇이냐?”
자신은 이 세계의 거대한 날짐승 ‘대붕’을 두고 한 말인데 ‘곤’이 변해 ‘붕’이 되다니?
연적하는 그녀를 위해 ‘곤화위붕’의 뜻풀이를 자세히 늘어놓았다.
“저 멀리 북쪽 바닷가에 곤(銀)이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살고 있어. 이 곤은 엄청나게 큰 물고기라서 크기가 몇천 리나 된다고 해. 그런데 어느 날 이 물고기가 새로 변해. 피부가 찢어지면서 날개가 생기고, 주둥이는 부리가 되는 거지. 마침내 새가 된 곤을 붕(鵬)이라고 해. 이 붕도 엄청나게 커서 등의 길이만 몇 천리야. 그래서 이 붕이 날아오르면 날개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처럼 보인다네?”
멍하니 듣고 있던 메누아가 물었다.
“그 붕이라는 새가 날아서 어디로 가는지 아느냐?”
“남쪽에 있는 ‘하늘의 연못[天池]’으로 간대.”
“아! ‘하늘의 연못’.”
메누아는 몽롱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거대한 물고기 ‘곤’이 마침내 새가 되어 ‘하늘의 연못’으로 날아가다니!
자신의 운명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하늘의 연못’이 마음에 들어? 나는 몇 번을 들어도 이상하기만 하던데. 하늘에 무슨 연못이 있다는 거야? 물이 어떻게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냐고. 그렇지 않아?”
연적하는 ‘곤’이 ‘붕’으로 변한 것에 관심이 있을 뿐, ‘붕’이 가는 곳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제야 생각에서 깨어난 메누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쯧쯧! 생각하는 거 하고는. 그러니 머리가 나쁘다는 소리를 듣지.”
“그럼 머리 좋은 그쪽이 말해 봐. 하늘에 어떻게 연못이 있을 수 있어?”
“‘하늘의 연못’은……. 됐다. 너는 그냥 그렇게 살아라.”
메누아는 말을 하려다가 삐딱한 연적하의 얼굴을 보고 그만두었다.
“거봐. 막상 설명하려니까 할 말이 없지? 글쎄, 그렇다니까.”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네 얼굴을 보니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내 얼굴이 어때서? 머리로 뭐라 하다가 안 되니까 이젠 외모냐?”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자칭 대붕(大鵬)인 너는 ‘붕’이 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나? 보면 몰라? 구주의 종문을 하나로 모으고 있잖아.”
“모아서 무엇을 하려고?”
“천문(天門)을 열려고.”
“종사는 물론, 이 세계의 신들도 열지 못한 천문을 네가 열겠다는 것이냐?”
“신들도 천문에 관심이 있었어? 아니 왜?”
연적하는 신들이 천문을 열려고 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에게도 천문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 세계가 지겨운지도 모르지.”
“지겹다고?”
“너도 수십만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아귀다툼을 한다고 생각해 보아라. 지겹지 않겠느냐?”
“신들도 싸우냐?”
“이 세계에 속한 모든 존재는 약육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게 이 세계의 굴레지. 신들이라고 다를 줄 알았느냐?”
“와아! 나는 사람들이 하도 ‘삼천의 신’, ‘삼천의 신’ 노래를 부르길래, 신이 되면 다를 줄 알았지. 신들도 약육강식이라고?”
“흥! 고위급 신에게 잡아먹힌 신이 한둘인지 아느냐?”
“와아! 대단하다.”
“이 세계야말로 네가 말한 북쪽의 바다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신은 그 속에 있는 물고기 신세지.”
메누아의 표정은 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연적하는 그녀가 곤화위붕에 관심을 보이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래서 너는 대붕이 되어 북쪽 바다를 떠나고 싶은 거냐?”
“…….”
메누아는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적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자신의 짐작이 옳았음을 알 수 있었다.
“가 봐야 별거 없을지도 몰라.”
물론 그냥 해 본 소리다.
‘하늘의 연못’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니 되는 대로 말해 본 것이다.
그가 생각 없이 내지른 말에 메누아는 피식 웃었다.
마치 하루살이가 살아 보지도 못한 내일을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대붕이 되어 날아간 데가 구주냐? 하긴 하찮은 인간에게는 구주도 과분하지.”
의미심장한 말에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메누아는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그날 저녁.
연적하는 천지종을 이끌고 법요종 종산이 있는 서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사흘 후.
장비에 성의 아데 살테나 항에 도착했다.
아데 살테나 항의 사람들은 천지종 고수들을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닷새 전 천칠백여 명의 종문 고수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을 본 탓이다.
아데 살테나 항.
강변 식당 로타네.
아담한 규모의 식당은 연적하와 천지종 고수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찼다.
천지종 외의 손님은 일행으로 보이는 상인 셋이 전부였다.
그나마 그들이 먼저 왔기에 자리를 잡았지 늦었으면 돌아 나갔을 게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앉아 있던 상인들은 음식이 나오자 허겁지겁 먹고는 바로 나가 버렸다.
연적하는 천지종 고수들 속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그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색다른 음식들 속에서 한참 식탐에 빠져 있을 때다.
누군가 식당 안으로 빠르게 들어왔다.
천지종 고수들의 눈이 일제히 출입문으로 향했다.
뜻밖에도 그는 팔문각의 각주인 원광안 노조였다.
원광안 노조를 알아본 천지종 고수들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외부인이 아니라 같은 천지종의 사람인지라 다시 식사에 집중한 것이다.
원광안 노조는 연적하의 자리로 빠르게 다가갔다.
“대종사님.”
뼈다귀에 붙은 살점을 뜯어 먹던 연적하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응? 원 노조는 또 왜 왔어?”
말 안 듣는 토벌대 노조들과 한바탕 신경전을 한 여파일까?
늘 존대를 하던 연적하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반말이 튀어나왔다.
“마천(魔天)이 침공했습니다.”
“…….”
그 한마디 말에 식당 안이 조용해졌다.
단번에 얼어붙은 천지종 고수들과 달리 연적하는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언제?”
“열흘 전 웅천주와 영천주로 마천의 군세가 물밀듯 밀려들었습니다. 천관산맥으로 넘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영천주를 침공한 마천의 군세 일부는 수약주로 향했습니다. 지금 쯤 수약주를 휘젓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세 개 주나 침공했다고?”
연적하가 황망한 눈으로 원광안 노조를 보았다.
과거에도 마천의 침공은 있었지만, 그들의 침공로는 하나였다.
그런데 세 개 주를 공략하다니? 대체 얼마나 몰려왔기에?
“마천의 군세가 세 갈래로 나갔으면 우두머리도 셋이라는 거야?”
“그렇습니다. 웅천주는 마왕 천자마, 영천주는 제후로 알려진 광천사 베레드, 수약주는 악명이 자자한 제후 혈사자 바르마스입니다.”
“허!”
연적하의 손에서 뼈다귀가 툭 하고 떨어졌다.
마왕과 제후 중에 하나만 움직여도 구주가 들썩거렸는데 셋이라니 놀란 것이다.
“고위급 마귀들이 그렇게 떼거리로 온 적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맞습니다. 그래서 벌써부터 구주의 멸망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
“마신은?”
“아직 마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하지만 왕과 제후가 움직였으니 마신도 넘어왔을 겁니다.”
연적하가 번들거리는 입술을 손등으로 쓱 닦은 뒤에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웅천주는 혈주종이 망했으니 못 막아 낼 테고.”
“마왕인 천자마가 직접 움직였다면 혈주종이 온전해도 막지 못합니다.”
“영천주의 천뢰종은 어때? 광천사 베레드를 저지할 수 있을까?”
원광안 노조는 대답 대신 연적하를 빤히 보았다.
“대종사님.”
“왜?”
“종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군단장 정도입니다. 얼마 전 오지산에서 대종사님께서 직접 처치한 몰록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제후, 마왕, 마신은 신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구경만 해야 한다고?”
“신의 영역이니까요. 마귀라 해도 제후부터는 악신(惡神)으로 불립니다.”
“악신이 셋이나 넘어온 거네? 아니 마신까지 넷인가?”
“그렇습니다.”
“무슨 소린지 알겠어. 그럼 악신을 막아 주는 신은 누구야?”
“‘삼천의 신’이신 광명진천, 사천왕의 한 분이신 고범천왕, 그리고 군주님들 중에서는 우샤스 킨샤사, 마조, 북두신군님이 구주에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우샤스 킨샤사의 이름이 나오자 연적하는 눈을 찌푸렸다.
자신이 손봐 줘야 하는 법요종의 뒷배가 우샤스 킨샤사이기 때문이다.
‘대체 우샤스 킨샤사가 원하는 게 뭐지?’
강호에서는 인간에게 해악을 끼쳤는데, 구주에서는 인간의 편이라니 그 속을 모르겠다.
“그럼 종문이 할 수 있는 일은 뭔데? 눈 뜨고 구경만 하면 되나?”
“아닙니다. 신들을 모시고 전쟁에 참여해야 합니다.”
“신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신들이 직접 종산으로 찾아올 겁니다.”
“그럼 종산으로 돌아가 신이 와 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가?”
“황송하옵게도 ‘삼천의 신’이신 광명진천님께서 직접 천지종 종산에 찾아오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른 신들은?”
“광명진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종문으로 갔다’고 하셨습니다.”
“광명진천은 왜 다른 종문을 도우러 가지 않고 천지종에 왔대?”
“대종사님을 도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나를?”
연적하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켜 보였다.
자신은 마천의 군세와 무관한 일을 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침공당한 세 개 주의 종문이 아니라 자신을 돕기 위해 왔다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광명진천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원 노조의 눈에 지금 내가 도움이 필요해 보여?”
“광명진천님께서는 ‘삼천의 신’으로 길흉화복을 내다보십니다. 그분이 대종사님에게 찾아왔다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그러자 연적하의 옆에 앉아 있던 메누아가 냉소를 쳤다.
“흥! 길흉화복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원광안 노조가 이건 또 뭔가 싶은 눈으로 소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메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깨작깨작 젓가락을 놀렸다.
연적하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야아! 진짜 고민되게 만드네. 검 노조, 여기서 법요종까지 사흘이면 된다고 했어?”
“예, 그렇습니다.”
“사흘이면 다 끝나는데……. 여기서 돌아가라고? 아, 진짜 돌아 버리겠네.”
인상을 찡그리고 구시렁거리던 연적하가 원광안 노조를 향해 물었다.
“빙설화 제군이 전하라는 말은 없어?”
“‘물이 깊어야 큰 배를 띄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역시!”
연적하가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고개를 갸웃거리던 메누아가 물었다.
“너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
“당연하지.”
“무슨 뜻이냐?”
“물이 깊어야 큰 배를 띄울 수 있다는 거잖아. 물이 얕으면 배 밑바닥이 땅에 닿아서 오도 가도 못 하게 되니까.”
“음! 다시 물으마. 그게 무슨 뜻이기에 ‘역시’라고 한 것이냐?”
“몰라.”
“그런데 왜 아는 척을 했느냐?”
“‘알쏭달쏭한 말을 하는 걸 보니 역시 내 부인이구나!’라는 뜻으로 그런 건데?”
“빙설화가 네 처냐?”
“어.”
“오묘하군, 오묘해.”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메누아는 다시 젓가락을 놀렸다.
빙설화와 연적하.
모든 건 그저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생각을 이어 가던 메누아는 옆자리의 연적하를 힐끔 돌아보았다.
좋지도 않은 머리로 ‘뭐지? 뭐지?’ 하는 걸 보니 기분이 묘하다.
함께 식사하는 걸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