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98
698회.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모른다.
진표 존자가 취중의 실수로 북두신군을 감싸 보려 했지만 연적하가 호응하지 않았다.
“어허, 몰라서 그래요. 그건 말실수가 아니에요. 술을 처먹으면 개가 되는 놈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은 복날 개 잡듯 패야 정신을 좀 차릴 건데.”
“…….”
진표 존자는 뭐라고 할 말이 없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만 끔뻑였다.
북두신군을 상대로 복날 개 잡듯 패야 한다니.
만에 하나 이 소리가 북두신군의 귀에 들어가는 날이면 여럿 죽어 나갈 게다.
대화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을 때, 곡분조 노조가 끼어들었다.
“대종사님. 광명진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아, 알아. 급한 얘기부터 끝내고 가야지. 지금 진표 존자와 얘기하는 거 안 보여?”
“아, 예…….”
곡분조 노조는 별수 없이 물러났다.
그런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연적하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마조와 북두신군의 불화는 어느 정도예요?”
“그냥 돌아가겠다는 마조님을 태을 존자가 설득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둘의 협력은 바랄 수도 없겠네요?”
“지금은 그런 상황입니다. 위기에 몰리면 살기 위해서라도 힘을 합치지 않을까 하는데, 그것도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왜요?”
“마조님의 경우 전적이 있으셔서.”
“전적요?”
“때를 잘 못 맞추시는 건지, 안 맞추시는 건지 확실치 않으나……. 종문의 상황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신다고들 합니다.”
워낙 예민한 주제인지라 진표 존자는 말을 배배 꼬았다.
그걸 눈치챈 연적하가 눈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네요.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봐요.”
“천뢰종은 전대 종사 시절에 마천의 침공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때 마조님께서 초반에 방관하셔서……. 아, 물론 도와주신것만도 감사할 일이지만요. 여하튼 천뢰종이 파괴되는 것은 막았지만 전대 종사가 큰 부상을 입었지요. 그리고 전대 종사는 그 부상을 치유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방관했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천뢰종에서 일찌감치 도움을 청했지만, 응답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응답을 하지 않았다?”
“예, 그래서 절망한 천뢰종의 전대 종사는 양패구상(兩敗俱傷)이라도 할 요량으로 싸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량이 미치지 못해 전대 종사만 크게 중상을 입었지요. 다행히 그가 목숨을 잃기 직전에 마조님께서 끼어들어 마귀를 퇴치했습니다만.”
“그러니까 마조가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건가요?”
“본래 그런 경향이 있는 분인데 북두신군께서 자극을 하셨으니……. 아마 혈사자 바르마스와 적극적으로 싸우려 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게 마조의 성향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본래 마조님은 싸움에 관심이 없는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게 아닌가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을 테지만.”
“다른 이유요?”
잠시 머뭇거리던 진표 존자가 말했다.
“구주는 결국 인간들의 땅이기 때문이지요.”
“그게 왜요? 아!”
반문하던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 신경 쓰지 않는다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 거라면 일리가 있다.
천족이나 수인처럼 다른 종족들에게 구주의 전쟁은 남의 일인 까닭이다.
“마조도 구주 출신이 아닌가 봐요?”
“그건 아닙니다. 마조님은 천뢰종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 아니 그런데 왜 구주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데요?”
“신좌(神坐)에 오른 분들은 불멸에 가까운 삶을 사십니다. 그분들에게 인간 시절의 삶은 찰나에 불과하지요. 자신이 한때 인간이었다는 걸 잊었을 수도 있고,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개구리가 올챙이적 시절을 모른다는 거네요?”
“험, 비유가 적절치 않습니다.”
진표 존자는 급히 연적하의 발언을 부인했다.
모여 있던 제군과 노조 들도 행여나 불똥이 자신들에게까지 튈까 봐 딴청을 부렸다.
아까부터 기회를 엿보고 있던 곡분조 노조가 다시 끼어들었다.
“대종사님.”
“어허! 대화 중이잖아. 노조가 왜 자꾸 윗분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연적하가 불쾌한 얼굴로 쏘아보자 곡분조 노조는 어깨를 움츠리고 다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진표 존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종사님, 광명진천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것 같은데 만나 보시지요.”
그가 볼 때 대종사는 광명진천과 일종의 기 싸움 같은 걸 하고 있었다.
반신급에 불과한 대종사가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중요한 대화는 끝내고 가야지요.”
“더 궁금한 게 남아 있습니까?”
진표 존자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광명진천이 폭발하기 전에 대종사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점심은 뭐예요? 사람들이 다 피난 가서 문을 연 식당도 보이지 않던데.”
“벽곡단을 여유 있게 지참하라고 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쯧쯧! 세속에 나와서까지 벽곡단이라니…….”
진표 존자는 더 이상 대거리를 받아 주지 않으려고 입을 꾹 다물었다.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으니 연적하도 더 이상은 뭉그적거리지 못했다.
“에이, 사람들 하고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데 너무하네. 곡 노조, 앞장서.”
“예!”
다 죽어 가던 곡분조 노조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이윽고 연적하는 곡분조 노조의 뒤를 따라 광명신당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연적하가 사라지자 태상종의 고송 제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대종사님과 광명진천님의 사이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데, 제가 잘못 본 것입니까?”
진표 존자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네. ‘삼천의 신’과 각을 세워 봐야 대종사님만 손해를 볼 텐데.”
“허어! 광명진천께서 대종사님을 적대시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거야 광명진천님의 마음에 달려 있지 않겠나. 살릴지 죽일지…….”
“대종사님도 그걸 알 텐데 왜 저러는 걸까요?”
“왜냐니? 보고도 모르겠나. 천방지축이라 그러는 게지. 북두신군님에게 뭐라고 했는지 벌써 잊었나?”
“아…….”
고송 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방지축이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게 이해가 됐다.
그가 보기에도 대종사는 앞뒤 없이 제 기분대로 날뛰고 있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르고서 말이다.
***
광명신당.
곡분조 노조는 연적하를 신당 앞마당에 안내한 뒤 당연하다는 듯 빠져나갔다.
신당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바깥 풍광을 감상하던 광명진천이 말했다.
“늦었구나. 일다경(약 20분) 전에 곡 노조를 보냈는데.”
“광주성의 구룡포까지 갔다 왔는데 빠른 거죠.”
연적하는 광명진천의 지적을 엉뚱한 말로 받아쳤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의외로 광명진천은 화를 내지 않았다.
사실 지금 그의 관심은 눈앞에서 날파리처럼 알짱대는 연적하가 아니라 마신에게 있었다.
“마신이 광천사 베레드의 진영에 있더냐?”
“못 봤는데요?”
“흠, 그럼 북대천에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와 함께 있겠군. 수고했다.”
“이것으로 제가 할 일은 없나요?”
“그럴 리가. 내가 마신과 싸울 동안 너는 마신 휘하의 마족들을 막아야 한다.”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는요?”
“네가 마족들을 처리할 동안 종문의 고수들에게 맡기거라.”
“군단장이라고 불리는 몰록과 싸워 봤는데, 종사가 최소한 두 명은 달라붙어야 평수를 이룰 것 같던데요? 진표 존자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까요?”
“다소간의 희생이 따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 마신 휘하의 마족들은 정예 중의 정예라, 하나하나의 능력이 제군을 웃돈다. 잠재력이 뛰어난 자는 종사보다 강하지. 그런 자가 하나라도 섞여 있으면 나는 필패다.”
솔직한 광명진천의 말에 연적하는 할 말이 없었다.
하기야 최고신들의 싸움에 종사급이 끼어들면 그것도 골치 아플 게다.
그렇다면 결국 진표 존자와 제군들이 군단장과 그 휘하의 마족과 싸워야 한다는 소리다.
마천의 최고 지배자들이 마족이라니 종문의 피해가 막심할 게다.
생각에 잠긴 연적하에게 광명진천이 말했다.
“네가 마신 휘하의 마족들을 빨리 처리할수록 종문 제자들이 안전해질 것이다.”
“그런데 광명진천님은 마신과 싸워 본 적이 있나요?”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삼차 태고의 전쟁’에서 겨뤄 본 적이 있다.”
“누가 이겼나요?”
“그때는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둘 다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못했지.”
“이번에도 그렇게 된다면요?”
“뭐가 궁금한 것이냐?”
“이번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요.”
“뭐가 걱정이냐? 네가 있는데.”
생각만 해도 재밌다는 듯 광명진천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저요?”
연적하는 최고신들의 싸움에 왜 자신이 거론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반신급에 도달한 너라면 가능할 것이다. 마신을 죽여라. 네가 그의 신격을 취하지만 않는다면, 너에게 마신을 죽일 기회를 허락하겠다.”
“신격도 영기처럼 흡수할 수 있는 건가요?”
“그야 이를 말이냐? 신격이야말로 영기로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경지다. 하지만 마신의 신격은 마기로 얼룩져 있으니 누구도 취해서는 안 된다. 너는 ‘마신을 죽인 자’라는 명예로 만족해라.”
“그럼 마신의 신격은 천지에 흩어지는 건가요?”
“누군가 흡자결로 취하지만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구나…….”
연적하는 문득 감옥을 떠올렸다.
내세가 없어 죽어서도 이 세계를 떠돌아다닐 걸 생각하니 착잡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광명진천을 보았다.
“그런데 광명진천님.”
“이번에는 또 뭐가 알고 싶으냐.”
“이건 곁가지 질문인데요, 천족은 수명이 어떻게 되나요?”
그러자 광명진천이 가볍게 눈을 찌푸렸다.
뜬금없이 천족의 수명을 묻다니 저놈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게 왜 알고 싶으냐?”
“사람보다 얼마나 오래 사는지 궁금해서요. 수인의 수명은 인간의 두 세 배쯤 된다면서요? 천족은 그보다 훨씬 길겠죠?”
“열 배다. 인간이 백 년을 산다면, 천족은 천 년을 산다. 물론 신좌에 오르지 못한 평범한 천족들의 수명이 그렇다는 소리다.”
“천족도 신좌에 오르면 천 년의 삶이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느껴지겠죠?”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구나.”
광명진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도 천족에 대한 기억은 그저 혈통의 자부심만 남아 있었다.
“아까 진표 존자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마조가 천뢰종을 돕는 건 사실이지만, 적극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인간 시절의 기억을 잊어서 구주에 대한 애틋함이 사라진 모양이에요.”
광명진천은 반박하지 않았다.
인간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건 순리다.
신좌에 올라 장구한 세월을 살다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되고 만다.
“뭐, 여하튼 그래서 결론은, ‘마조는 구주 출신이지만 구주를 지키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다’라는 거죠.”
“그걸 섭섭하게 생각할 것 없다. 아니 오히려 감사해야 마땅하다. 마조가 구주 출신이 아니었다면 구주의 일에 끼어들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게 이상하다는 거죠.”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냐?”
그러자 연적하가 광명진천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구주 출신인 마조조차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데, 천족인 광명진천님은 왜 이렇게 열심히 구주의 일에 발 벗고 나서 주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