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99
699회. 기회가 왔을 때 먹는다.
연적하는 처음 마조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인간으로서의 삶은 허망하리만치 짧다.
그러나 신의 반열에 오르면 영생이라 해도 좋을 만큼 오래 산다.
십만 년, 이십만 년의 삶에서-인간으로서의-백 년은 눈 깜짝할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한때 인간으로 살았던 순간을 꿈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마조가 천뢰종과 구주의 위기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게 정상인 거다.
오히려 광명진천의 말처럼 잊지 않고 도와준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마조의 그런 행동을 당연시하자 의문이 생겨났다.
인간이었던 마조도 구주의 일에 소극적인데, 천족이었던 광명진천이 왜 저렇게 적극적이란 말인가?
광명진천을 만난 건 얼마 전이지만, 그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는 구주의 인간들이 말하는 것처럼 선(善)한 신이 아니다.
메누아의 말에 의하면,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것뿐이다.
지금은 그가 마신에 맞서 싸우니 구세주처럼 믿고 따르지만,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그가 선한 존재였다면 같은 천족인 베레드를 죽이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하는 짓만 봐도 알 수 있다.
광명진천에게 있어서 진리는 오직 그만을 위한 것이다.
그는 타인의 감정과 기억까지도 제 입맛대로 왜곡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 존재가 왜 구주의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일까?
그것도 같은 ‘삼천(三天)의 신’인 마신과 생사대결을 할 정도로.
그래서 말했다.
“구주 출신인 마조조차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데, 천족인 광명진천님은 왜 이렇게 열심히 구주의 일에 발 벗고 나서 주는 걸까요?”라고.
광명진천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연적하는 그런 광명진천을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광명진천이 슬쩍 말을 돌렸다.
“허면 너는 내가 구주의 일에 수수방관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요. 그게 아니라 생기는 거 없이 뛰어다닐 분 같지 않아서요. 말이 나온 김에 여쭤 볼게요. 왜 마신과 싸우려고 하시나요? 솔직히 구주의 인간들을 위해서 그러는 건 아니잖아요?”
“신이 하는 일을 다 알려고 하지 마라. 알 수도 없거니와 알아서도 안 된다.”
“아…….”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자신이 뻔뻔해도 저렇게까지 말하면 더는 물어볼 수가 없다.
머리를 긁적이는 연적하에게 광명진천이 말했다.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는 천뢰종 종산에서 하룻길인 북대천 건너 동산현에 머무르고 있다. 내가 동진(東進)하고 있음을 알고 그곳에서 때를 기다리는 걸 테지.”
“여기서도 천뢰종 종산까지 하룻길쯤 된다죠? 딱 중간에 멈춰 선 거네요?”
“뭔가 노리는 게 있을 것이다. 악투스 발라지크는 교활한 자라 이유 없이 행동하지 않으니.”
“천뢰종의 법진을 뚫는 동안 우리가 뒤에서 들이칠까 봐 멈춘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뻔한 예측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연적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광명진천은 그의 의견을 일축했다.
“그보다는 어쩌면 마신에게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마신에게요?”
“너와 만날 때를 제외하면 마신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구주를 침공한 마신이 본신을 감춘다?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느냐?”
“조금 이상하기는 하네요.”
하지만 연적하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벌주에서 메누아를 만났을 때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마신이 광천사 베레드 진영에 없었다면 분명 악투스 발라지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저들이 동산현에 머무르는 이유를 알아야겠다.”
“설마 나더러 또 살펴보고 오라는 건 아니겠죠?”
“네가 갈 생각이 없다면 종문의 제자를 보내겠다. 진인들이 많으니 그 중에 몇을 보내면 되겠지.”
광명진천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연적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천의 본진(本陣)일 게 분명한 동산현에 고작 진인을 보내겠다니?
그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종문에 덧정이 떨어졌다 해도 죽을 걸 알면서 보낼 수는 없었다.
“내가 가 보죠. 그런데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구룡포에서 마물을 상대한 적이 있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최하위층인 마물들은 언어체계가 발달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대화를 나누려면 그 위의 마귀나 지배계급인 마족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광명진천의 예측처럼 마신에 관계된 일이라면 그들도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설사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세상일이 어디 뜻한다고 다 되더냐.”
의외로 광명진천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연적하는 부담을 덜 수 있어 좋았다.
“언제 출발하면 되나요?”
“너도 조금은 쉬어야겠지? 해가 지기 전에 출발하도록 해라. 조사를 오래할 필요는 없다. 조사 결과는 나흘 후 천뢰종 종산에서 듣겠다.”
동산현까지 이틀 거리니 하루만 조사를 하라는 소리다.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던 게 빈말은 아닌 모양이다.
“예.”
대화를 마친 연적하는 백운호반에 있는 종문의 숙영지로 돌아갔다.
***
백운호(白雲湖)의 종문 숙영지.
연적하가 돌아오자 태상종의 종사 진표 존자와 제군들이 몰려왔다.
진표 존자가 무리를 대표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광명진천님과는 이야기가 잘 끝났습니까?”
“예? 잘 끝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요?”
“허허! 곡 노조가 하도 엄살을 떨어서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지 뭡니까. 그런데 광명진천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광명신당에서 오늘 밤을 그냥 나실 모양이던데. 왜 천뢰종 종산으로 가지 않는 겁니까?”
진표 존자는 궁금한 게 많은지 한꺼번에 여러 질문을 쏟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종사임에도 불구하고 광명진천과 말을 섞질 못했다.
지금까지 광명진천과 대화를 나눈 사람은 대종사인 연적하와, 가까이에서 시중을 드는 곡분조 노조, 그리고 어쩌다 한 번씩 불려 가는 심통 진인이 전부였다.
진표 존자는 몇 번이고 곡분조 노조를 통해 광명진천을 만나려 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이래저래 진표 존자는 열심히 광명진천을 따라다니면서도 답답한 상황이었다.
“곡 노조가 괜히 설레발을 친 거죠. 광명진천님은 별말 안 하더라고요. 그리고 광명진천님이 천뢰종 종 산으로 바로 가지 않는 건,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가 이동을 멈춰서 그러는 거래요. 상대의 움직임에 맞 춰 완급을 조절하겠다는 거죠.”
“아! 허면 악투스 발라지크가 아직도 동산현에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네요.”
“동산현에서 천뢰종 종산은 하룻길인데 왜 갑자기 멈춰 선 걸까요?”
“나한테 그걸 알아봐 달라고 하더라고요.”
“허! 광명진천님께서 대종사님을 크게 신뢰하시나 봅니다.”
“그보다는 일을 맡길 만한 적당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주위를 한번 봐요. 마귀들이 바글거리는 동산현에 보낼 만한 사람이 있는지.”
진표 존자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험, 그래도 신뢰하니까 그런 일도 맡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맡기긴 뭘 맡겨요? 내가 광명진천님의 부하도 아닌데. 부탁한 거지.”
연적하가 예민하게 굴자 진표 존자는 급히 사과했다.
“어이쿠!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대종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광명진천님께서 최고의 신이시지만, 그렇다고 대종사님의 상전은 아니지요.”
원하던 대답을 들었음에도 진표 존자와 태상종 제군들은 떠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심통 진인이 넌지시 한마디 했다.
“대종사님도 좀 쉬셔야지요?”
“그러게. 또 동산현까지 갔다 오려면 좀 쉬어야 할 것 같네.”
연적하가 나가 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제야 뭉그적거리던 진표 존자와 태상종 제군들이 마지못해 물러갔다.
연적하가 대종사의 천막으로 걸음을 옮기자 심통이 따라붙었다.
“쉬라면서 왜 따라와? 나한테 할 말 있어?”
“뭐 좀 여쭤 보려고요.”
“그래?”
연적하가 심통과 함께 천막으로 들어갔다.
널찍한 천막 안에는 간이 침상과 작은 탁자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연적하가 탁자 옆에 마련된 의자를 끌어당기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능력들도 좋아. 어디서 이런 걸 다 물어 오는지 몰라.”
“인근의 빈집에서 들고 오는 걸 봤습니다.”
“그랬구나. 그건 그렇고 뭐가 궁금한데?”
의자에 걸터앉은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심통을 보았다.
같이 강호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참 좋겠는데 뭘 그렇게 욕심을 내는지 모르겠다.
“마족에 대해서 좀 아십니까?”
“마족?”
“예, 마천의 지배계급이라고 들었는데, 좀 아시는 게 있습니까? 주변의 진인들에게 물어봤지만 다들 저만큼도 모르는 것 같아서요.”
“심 노인이 아는 건 뭔데?”
“마천에는 세 가지 계급이 있는데 가장 아래가 마물, 그 위가 마귀, 최고 윗대가리가 마족이라 들었습니다. 마족은 잠재력이 뛰어나서 종문 고수들도 그냥 씹어 먹는다는데, 사실입니까?”
“내가 아는 것과 같네. 어디서 들었어?”
“광명진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광명진천? 진인이 왜 광명진천과 어울려?”
“어울리고 싶어서 어울린 게 아니라 광명진천님이 불러서 두 번 만났습니다.”
“조심해. 광명진천은 진짜 위험한 신이야. 그냥 미쳤다고 생각하면 돼.”
“그 정돕니까?”
“그 정도냐고? 그것도 순화시켜서 한 말이야. 심 노인은 산행(山行, 산적질)에 갔다가 식구가 부상을 당하면 창피하다고 쳐 죽여?”
“미쳤습니까? 그런 짓을 하게?”
“광명진천은 그런 신이야. ‘태고의 전쟁’이라고 알아?”
“모르는데요?”
“옛날부터 천족과 마족 간에 전쟁을 했는데 그걸 ‘태고의 전쟁’이라고 해. 그 전쟁에서 천족 하나가 부상을 입어 마기에 조금 잠식당했는데, 그걸 수치스럽게 여겨 죽이려는 천족들이 있었어. 그 선봉에 선 천족이 광명진천이야. 이제 그가 어떤 신인지 알겠지?”
“장난 아니네요?”
“그렇지? 조심하라고 해 주는 소리야.”
“예.”
“광명진천이 불러서 뭐래?”
“그냥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고요. 아, 범천욕계왕재천(梵天欲界王在天) 어쩌고 하는 책을 봤냐고도 했습니다.”
“그래? 왜 그걸 물어봤을까?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아! 이럴 때는 머리 좋은 사람이 진짜 부럽다.”
연적하가 답답한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심통이 씁쓰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입만 살았지 머리는 그저 그래서…….”
“죄송할 거 없어. 심 노인에게 그런 쪽으로는 기대하지 않으니까. 대신 우리는 잔머리가 좋잖아.”
“우리는 아니지요. 그래도 제 머리가 공자님보다는 좋으니까요.”
“그래 봐야 도토리 키 재기지.”
“도토리도 큰 놈은 밤톨만 합니다.”
“오십보백보야.”
“그게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백 보는 오십 보의 두 배나 되니까요.”
심통이 자꾸 딴지를 걸자 연적하는 광명진천처럼 손을 까닥였다.
“가.”
“예, 편히 쉬십시오.”
심통은 미련 없이 돌아서 천막을 빠져나갔다.
연적하와 작별한 뒤 한참을 걸어가던 심통이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연적하와의 대화로 마음이 굳어졌다.
광명진천은 못 믿을 존재지만, 마족에 대한 그의 경고는 사실이었다.
문득 금악 진인의 말이 떠올랐다.
-먹고 죽어도 좋은 첫째는 영석, 둘째는 혼석, 셋째는 내단이나 선단이오.
월성금구(月星金龜)의 영기를 취해도 위험하고, 취하지 않아도 위험하다면, 답은 하나다.
설사 죽더라도 기회가 왔을 때 먹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