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00
700회. 바로 그게 문제란 말이다!
동촌현 백운호(白雲湖).
해거름 무렵.
저녁 식사를 마친 연적하는 종문 제자들의 배웅 속에 운종술로 날아 올랐다.
연적하가 구름을 타고 동편으로 사라지자 종문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종문 제자 대부분이 숙소로 갔지만 심통은 백운호반을 따라 걸었다.
백성들이 모두 피난을 떠난 탓에 호숫가는 고요했다.
심통은 가끔씩 주루 앞에서 걸음을 멈췄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
지금 그의 마음은 온통 품속에 있는 월성금구(月星金龜)로 향해 있었다.
이미 취하기로 마음은 정했지만, 선뜻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연적하의 경고 때문이다.
하지만 심통은 자신이 결국 영기를 취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기를 취할 마음이 없다면 번민할 이유도 없으니까.
때로 인간은 위험을 알면서도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심통도 그랬다. 그는 진인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월성금구의 영석은 거부하지 못할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캄캄해진 줄도 모르고 호숫가 주변을 걷던 심통이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세 개의 달이 거대한 호수 위에 고요히 떠 있었다.
그 기이한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자신의 번민이 가소롭기만 하다.
‘까짓것 남자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심통은 즉시 품에서 월성금구의 영석을 꺼내 들었다.
달빛을 받은 월성금구의 영석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신비하게 빛났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영기를 흡수하는 게 미안할 정도다.
그래도 심통은 영석을 와락 움켜쥐었다.
꿈틀!
영석이 마치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주먹 안에서 요동쳤다.
심통은 약하게 쥐면 손에서 빠져나갈까 봐 강하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힘이 가해질수록 영석의 저항도 심해졌다.
꿈틀! 꿈틀!
영석을 처음 접해 보는 심통은 그 기이한 현상에 살짝 당황했다.
잠시 영석과 힘겨루기를 하던 심통은 안 되겠다 싶어 급히 숲으로 뛰어들었다.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윽고 그는 적당한 곳에 앉아 연적하가 하지 말라던 흡자결을 사용했다.
영기를 갈취당하는 걸 아는지 영석의 발작적인 움직임은 극에 달했다.
펄떡! 펄떡! 펄떡!
심통은 진땀을 흘리며 흡자결에 매달렸다.
영석의 힘을 통제하느라 다른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힘겨룸이었지만 결국은 심통의 승리로 끝났다.
찔끔찔끔 빨려 들어오던 영기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물밀듯 밀려 들어왔다.
그때부터는 영석의 저항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흡자결을 펼친 지 일각(15분)이 지나자 영석은 죽은 듯 잠잠해졌다.
끝난 것일까?
심통이 ‘이 정도라면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할 때다.
돌연 영석에서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영기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이야말로 수만 년 세월 동안 응축된 월성금구의 영기였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영기에 깜짝 놀란 심통은 급히 흡자결을 중단하려 했다.
계속하다가는 자신의 몸이 터져 버리고 말 것 같았다.
하지만 흡자결을 중단했음에도 영기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밀려들어왔다.
급기야 손에 쥐고 있던 영석을 버리려고도 했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손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윽고 팔이, 그다음은 어깨, 그다음은 우반신에 대한 감각이 사라졌다.
대경실색한 심통은 살고 싶다는 본능으로 좌반신만을 이용해 기어갔
종문 제자들의 눈에 띄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마비는 우반신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미처 숲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조금씩 움직이던 좌반신마저 굳어 갔다.
‘아, 안 돼!’
심통은 저릿한 기운이 목으로부터 밀려 올라오자 눈을 부릅 떴다.
짙은 청녹색의 거친 풀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게 심통이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천지종과 태상종의 진인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천막을 걷어 냈다.
천지종 진인들은 아침 식사를 마칠 때까지 심통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심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처음 알아차린 사람은 원영 칠 성의 처선 진인이다.
평소 원영 칠 성인 심통 진인과 동기처럼 지내던 그는 출발 준비를 하던 중에 심통 진인이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됐다.
혹시나 싶어 숙영지를 둘러보았지만 심통 진인은 없었다.
심통 진인이 대종사를 따라온 사람만 아니었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심통 진인은 대종사의 최측근.
처선 진인은 즉시 상관인 황석 노조(수호각 각주)에게 찾아가 그 사실을 알렸다.
황석 노조는 곡분조 노조에게, 곡분조 노조는 다시 광명진천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곡분조 노조가 고작 진인 한 사람의 실종을 광명진천에게 보고한 것은 그냥 이대로 출발할 것인지, 찾아볼 것인지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광명진천은 심통 진인부터 찾으라 명했다.
곧바로 곡분조 노조의 진두지휘 아래 실종자 수색이 시작됐다.
광명진천까지 관심을 보인 수색은 반 시진(1시간)만에 끝났다.
태상종의 진인이 숲속에 기절해 있던 심통 진인이 발견한 것이다.
곡분조 노조는 심통 진인을 숙영지로 옮기고 다시 광명진천에게 달려갔다.
***
광명신당.
곡분조 노조는 신당의 섬돌 아래에서-의기양양한 얼굴로-수색 결과를 보고했다.
“……백운호 인근 숲에서 실신한 심통 진인을 찾아 숙영지로 옮겼습니다. 이 모두가 광명진천님의 하해(河海)와도 같으신 은혜 덕분입니다. 저희 천지종과 태상종의 제자들은 광명진천님의…….”
광명진천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아부를 끊었다.
“됐다. 그의 상태는 어떠하더냐?”
“몸은 돌처럼 굳어 있고, 의식도 없었습니다. 무리하게 흡자결을 쓰다가 주화입마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꽉 쥐어진 그의 손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영석이 나왔습니다.”
“쯧쯧! 인간의 욕심이라니. 야수가 분수에 넘는 먹이를 탐하다가 죽게 된 꼴이로구나.”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어쩌긴. 우선 그를 천뢰종 종산으로 데리고 가야지. 가서 치료가 가능한지 아닌지를 보아 주마.”
“혼석이나 영석으로 인한 주화입마도 치료가 가능합니까?”
“그걸 알아봐 준다고 하지 않느냐.”
“아, 예.”
곡분조 노조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광명진천처럼 광오한 신이 치료를 장담하지 않는 걸 보니 알 만도 하다.
하기야 저런 식의 주화입마에는 백약이 무효가 아니던가.
‘잘나가던 사람이 끝났군.’
대종사의 최측근이라는 위치만 해도 대단한데 무슨 욕심을 그렇게 냈는지 모르겠다.
잠시 후 광명진천과 종문 고수들이 백운호를 떠났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자 백운호에 하얀 운무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
서리성.
동산현 북대천.
해거름 무렵.
운종술로 날아가던 연적하는 북대 천을 건너자마자 지상으로 내려왔다.
아직 마천의 군세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사라진 북대천 인근은 벌써부터 들개와 늑대 들로 가득했다.
들개를 쫓던 늑대들이 연적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늑대들은 하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잠시 후 늑대들은 위험을 감지했는지 들개가 사라진 방향으로 몰려갔다.
대로를 따라 걷던 연적하의 눈에 표지목이 들어왔다.
경신술을 쓰면 일다경(약 20분)이면 닿는 거리다.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는 동산현 방향으로 화살처럼 쏘아져 갔다.
비연보로 일각(15분)을 달려가자 기괴한 생명체가 보였다.
일 장(약 3미터)이나 되는 크기의 키에 개와 돼지를 섞은 듯한 대가리.
얼마 전 남대천에서 만났던 마물이다.
그런 마물 십여 마리가 대로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마물들은 사람 머리통만 한 철퇴를 들고 있는데, 어떤 것에서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졌다.
연적하는 급히 기척을 지우고 숲으로 들어갔다.
둔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저 마물들은 강호에서 만났던 마물들 만큼이나 빨랐다.
게다가 하나를 건드리면 어떻게 알았는지 주변에 있던 마물이 벌 떼처럼 몰려왔다.
싸움은 어렵지 않지만 소란이 일어서 좋을 건 없었다.
연적하는 은밀하게 전진했다.
동산현에 다가갈수록 ‘개돼지(개와 돼지를 섞은 모습의 마물)’보다 더 위험한 마물들이 나타났다.
이족보행을 하는 소 대가리, 뱀 대가리들이다.
저들은 힘도 세지만 자기들끼리 간단한 의사소통까지 가능해서 골치가 아프다.
특히나 저 소 대가리는, 하나를 건드리면 듣는 사람의 귀가 얼얼해질 정도로 큰 소리로 동료를 부른다.
싸우는 내내 그런 소리를 내지르니 음공이라 해도 될 정도다.
저것들과 싸우면 벌집을 건드리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무조건 피해야 한다.
연적하는 경신술을 포기하고 아예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전진했다.
귀찮고 영기의 소모도 심하지만 괜히 저것들 눈에 띌 바엔 그편이 낫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자 마침내 거대한 성문이 나타났다.
성문 입구의 석판에 ‘동산현’이라는 세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목표로 했던 동산현에 도착한 것이다.
성문을 통과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임무를 완수한 느낌이다.
실제로 이대로 어영부영 하루만 버티고 돌아가도 광명진천은 모를 터였다.
하지만 대종사 체면에 그럴 수는 없었다.
연적하는 찬찬히 동산현을 살폈다.
동산현은 인간들 세상이 아니라 마천을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하늘부터 달랐다.
동산현의 하늘은 붉게 타오르는 석양이 아니라, 칙칙한 어둠에 덮여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숨을 쉴 때마다 폐부를 드나드는 마기로 가슴이 간질거렸다.
이 간질거림이 극에 이르면 폭주하게 된다.
이른바 마물화(魔物化)다.
마기는 반신급에 이른 자신의 몸에도 침투할 정도로 강하고 은밀했다.
이 마기를 체내에 쌓으면 영기가 폭주해 순간적으로 강해지기도 한다.
종문에서 금한 공법 중에 그걸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활용이 가능함에도 금지한 이유는 간단하다.
내상을 입거나 마기에 중독되면, 주화입마로 죽거나 폐인이 되기 때문이다.
내상보다 위험한 게 마기에 중독되는 것이다.
이 마기는 오랜 시간 들이마시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중독이 된다.
가슴의 간지러움이 짜릿하게 느껴지면 중독된 것이라고 했다.
연적하는 숨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아직은 간지러울 뿐이다.
‘거참 고민이네. 짜릿해지기 전에 마신과 관계된 정보를 알아내야 할 텐데…….’
잠시 호흡을 가다듬던 연적하는 다시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꺼지듯 사라졌다.
***
동산현 현청.
마족 하나가 진수성찬 앞에 불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는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였다.
제 앞의 음식을 노려보던 악투스 발라지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악투스 발라지크 휘하의 마족 십여 명이 동작을 멈추고 그에게 집중했다.
“마신님이 갑자기 사라지셨는데,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
찔끔한 마족들이 일제히 음식에서 손을 뗐다.
마족 중에 용사로 소문난 에볼라가 용기를 내어 한마디 했다.
“군단장님, 마신님께서 말없이 사라지신 게 어디 한두 번입니까? 급한 일을 처리하러 가셨겠지요. 천뢰종 종산이 코앞에 있으니 곧 돌아오실 겁니다.”
그러자 악투스 발라지크가 탁자를 뒤집어엎었다.
쿠당탕-!
만찬장이 삽시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석상처럼 빳빳하게 굳어 있는 에볼라를 향해 악투스 발라지크가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아! 바로 그게 문제란 말이다! 마신님에게 이 악투스 발라지크가 모르는 일이 자꾸 생긴다는 거! 그걸 모르고서야 어찌 마신님의 충복이라 할 수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