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97
697회. 살아 있는 오늘이 길일이니라
영천주.
사비성.
동촌현 백운호(白雲湖).
광명신당.
호수를 끼고 서 있는 광명신당은 이름 그대로 광명진천을 모시는 신당이다.
이름은 광명신당이지만, 구주의 신당이 그렇듯 광명신당도 광명진천이 발걸음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랬던 광명신당에 광명진천과 종문 고수들이 방문했다.
딱히 목적이 있어서 방문한 것은 아니다.
그저 천뢰종 종산으로 이동하는 중에 쉴 곳이 마땅치 않아 들른 것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를 환영하는 사람은 없었다.
광명신당의 사제들이 피난을 가는 바람에 텅 비어 있던 까닭이다.
정오 무렵.
자신의 형상을 본떠 만든 목상 앞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던 광명진천이 말했다.
“거기 누구 있느냐?”
“예.”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곡분조노 조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대종사에게 소식이 있느냐?”
“아직 없습니다.”
“쯧!”
광명진천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다른 종사들은 알아서 자신에게 달려와 머리를 조아리는데 연적하는 꼭 불러야 왔다.
곡분조 노조에게 그에 관한 것을 물은 것도 그래서다.
그는 인간인 연적하가 삼천의 신인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심통을 오라 해라.”
“예.”
돌아 나가던 곡분조 노조가 고개를 갸웃했다.
광명진천과 같은 ‘삼천(三天)의 신’이 왜 진인을 찾는지 알 수 없어서다.
잠시 후 심통 진인이 신당으로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심통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광명진천이 말했다.
“아직 월성금구(月星金龜)의 영기를 취하지 않았구나. 욕심이 없는 거냐? 게으른 거냐?”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길일(吉日)을 택해 취할 생각입니다.”
“쯧쯧! 네가 살아 있는 오늘이 길일이니라. 내일 죽는다면 기다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송구합니다.”
심통은 머리를 숙였다.
길일이라는 핑계로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광명진천은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신의 주변에 있는 마족들은 너희가 지금까지 보아 온 마귀들과 다르다. 내가 마신을 상대할 동안 너희는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진인이 마족의 상대가 될 것 같으냐?”
“마족이라 하심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씀이신지…….”
심통이 슬쩍 광명진천의 안색을 살폈다.
연적하나 남궁연과 달리 심통은 ‘왕들의 하늘’에 대한 공부를 소홀히 했다. 살아남기 위해 천뢰종의 무공을 익히는 데 전념한 탓이다.
그래서 마족이 광천사 베레드나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달리 조심해야 할 누군가가 있는지 궁금했다.
“표정을 보니 마족을 모르나 보군. 마천은 세 가지 계급으로 나누어진다. 가장 아래가 마물로 살육 본능만 가진 괴물들, 그 위가 이성을 가진 마귀, 그리고 최상위 계급이 마귀와 마물을 지배하는 마족으로 광천사 베레드나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 같은 것들이지. 군단장을 따르는 마족이 십여 명쯤 된다면, 광천사 베레드와 같은 제후에게는 백여 명의 마족이 따라다닌다.”
“헉! 하면 마신에게는 천 명쯤 따라다닙니까?”
“마족이 천 명이나 된다면 종문 제자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게다.”
“…….”
너무도 충격적인 소리에 심통은 눈만 끔뻑였다.
그러자 광명진천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할 것 없다. 마신은 까탈스러워서 마족들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는다니까. 지금의 마신을 따라 다니는 마족은 열 명 안쪽이다.”
“아아!”
심통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차피 마신이니, 제후니, 군단장이니 하는 것들은 윗분들이 책임질 게다. 종문 제자들에게 최대 위협은 마족 같은데 천 명이 아니라니 다행이다.
광명진천이 그런 심통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마족의 잠재력은 마귀와 차원이 다르다. 그들의 힘은 대체로 군단장에 미치지 못하지만, 간혹 군단장에 필적하는 마족도 나오곤 한다. 그런 마족들이 마귀들 속에 섞여 있다고 생각해 보아라.”
“…….”
심통의 입이 쩍 벌어졌다.
종사보다 뛰어난 군단장에 필적하는 마족과 싸울 수도 있다니!
그건 정말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이제 ‘살아 있는 오늘이 길일’이라고 한 말의 뜻을 알겠느냐?”
“예…….”
심통이 풀 죽은 얼굴로 답했다.
연적하의 경고로 갈등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마족에게 죽으면 자기만 손해였다.
‘하! 세상에 쉬운 일이 없구나.’
월성금구의 영석이라는 천고의 보물을 가지고도 이런 고민이라니.
“가서 쉬거라. 내일은 대종사가 오든 안 오든 천뢰종 종산으로 갈 터이니.”
“예.”
심통은 광명진천에게 허리를 조아려 인사한 후 진인들의 숙영지로 돌아갔다.
백운호반(白雲湖畔) 진인들 숙영지.
광명진천을 만나고 돌아온 심통은 소나무 아래 앉아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위험을 무릅쓰고 월성금구의 영기를 흡수하느냐? 아니면 이대로 마천의 군세와 맞붙느냐?
어느 것 하나 위태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월성금구의 영기를 흡수했다가 영기의 균형이 깨지면 죽거나 폐인이 될 것이다.
반대로 난전 중에 출중한 능력의 마족을 만나기라도 하면 역시 위험해진다.
이렇게 중대한 문제를 연적하의 앞에서는 꺼내지도 못하니 답답했다.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는 심통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태상종의 금악 진인이다.
심통이 원영 칠 성, 금악 진인이 원영 팔 성이라 둘은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무슨 고민이 있는 얼굴이오?”
금악 진인이 심통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심통은 짐짓 별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고민은요. 아닙니다. 그냥 조금 답답해서 그럽니다.”
“천하의 심통 진인이 답답할 게 뭐가 있소? 뒤에 대종사님께서 든든하게 받쳐 주시는데.”
금악 진인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되받았다.
심통 진인은 대종사와 동향 사람으로 종문에서 특별한 위치였다.
진인이지만 그에 대한 대우는 거의 노조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노조들도 그의 눈치를 살피는 편이다.
그런 그에게 답답할 일이 있을까?
주저하던 심통이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만약에 누군가 금악 진인께 귀한 영약을 주겠다면 금악 진인은 어쩌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먹어야지요. 혹시 고민거리라는 게 그거요?”
“그런데 그 영약이 금악 진인의 체질에 맞지 않는다면요?”
“체질에 맞지 않다?”
“잘못하면 몸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올 수도 있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래도 먹으시겠습니까?”
그러자 금악 진인이 피식 웃었다.
“심 진인. 우리 종문 제자들에게는 먹고 죽어도 좋은 게 세 가지가 있소. 혹 들어 보셨소?”
“그런 게 있습니까?”
종문 제자 생활을 그리 오래하지 않은 심통이 눈을 반짝였다.
“먹고 죽어도 좋은 첫째는 영석, 둘째는 혼석, 셋째는 내단이나 선단이오.”
“아!”
심통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여기서 영석, 혼석, 내단 등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그런데 먹고 죽어도 좋은 것이라니?
영석, 혼석, 내단이나 선단의 영기를 취하는 게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일까?
“먹고 죽어도 좋다는 말은, 위험하다는 뜻입니까?”
“그야 이를 말이오? 경지에 따라 취할 수 있는 것이 다르오. 진인들까지는 내단이나 영지선초로 만든 선단을 복용하는 게 좋소. 혼석이나 영석의 영기는 너무 강해 자칫 주화입마에 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오. 하지만 위험한 만큼 얻게 되는 것도 크오. 몇 단계 쯤은 예사로 뛰어넘게 만들어 준다 이 말이오. 허니 영석, 혼석, 내단을 보면 눈에 불을 켜고 일단 취하는 사람들이 많소. ‘먹고 죽어도 좋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고.”
“그랬군요.”
심통은 ‘먹고 죽어도 좋다’는 말에 공감했다.
인생은 어차피 도박이 아니던가.
“혹시 영약의 문제로 고민 중이었다면 부럽구려. 나도 그런 배부른 고민을 해 봤으면 좋겠소.”
“금악 진인께서는 누가 영석을 준다면 받아서 그 영기를 취하겠습니까?”
“그야 이를 말이오? 방금 말하지 않았소? 먹고 죽어도 좋은 세 가지가 있다고. 나도 비리비리하게 살다가 늙어 죽느니 더 높은 경지에 도전하는 편이 백배 낫다고 생각하오.”
심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호에서 자신은 ‘가늘고 길게’ 사는 편을 추구했지만, 종문에서 그랬다가는 덧없이 죽는다. 종문에서는 굵어야-어떻게든 경지를 높여야-길게 갈 수 있다.
금악 진인의 말은 그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어차피 양쪽 다 위험하다면 도전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하던 심통은 점차 도전으로 돌아섰다.
그때 진인들 숙영지가 술렁거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귀를 기울여 봤더니 대종사가 돌아왔단다.
심통의 얼굴이 굳었다.
하필 연적하가 하지 말라던 짓을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가 돌아오다니.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다.
심통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창조신님, 정말 당신이 있다면 뭐라고 말 좀 해 주십쇼. 나는 영석을 취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심통은 가만히 응답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젠장.”
갑작스러운 심통의 투덜거림에 금악 진인이 힐끔 고개를 돌렸다.
“왜 또 무슨 일이 있소?”
“아, 아닙니다. 다 해 줄 것처럼 하면서 뭐 하나 해 주지 않는 사람이 생각나서요.”
“저런 쯧쯧! 그런 사람은 얼른 털어 버리시오.”
심통은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마신의 군세를 앞두고 누리는 휴식은 꿀보다 달콤했다.
영기의 흡수는 패망의 지름길이 될까? 아니면 인생 대반전의 서막이 될까?
‘창조신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도와주십쇼. 그럼 그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심통은 조금 전까지 원망하던 창조신에게 다시 매달렸다.
연적하에게 숨기는 일이라 달리 의지하고 의논할 상대가 없어서다.
***
길눈 어두운 연적하가 천지종과 태상종의 숙영지를 찾은 건 천막 덕분이다.
텅 빈 들판에 질서 정연하게 세워진 천막이 아니었다면 찾는 데 애를 먹었을 게다.
운종술로 날아가던 연적하는 눈에 익은 천막을 발견하고 천천히 내려 앉았다.
그런 그의 주변으로 천지종과 태상종 고수들이 천천히 모여 들었다.
연적하가 그들과 안부를 주고받을 때, 곡분조 노조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대종사님, 광명진천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러나 연적하는 곡분조 노조의 전언에도 불구하고 태상종의 진표 존자와 대화를 이어 갔다.
“다른 종문들의 상황은 어때요?”
진표 존자가 곡분조 노조를 힐끔 보고는 답했다.
“북쪽은 이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산주를 중심으로 북쪽은 사벌주, 황천주, 웅천주다.
고범천왕과 우샤스 킨샤사, 그리고 세 개 종문(광염종, 혈주종, 법요종)이 방어에 나선 터라 마왕 천자마의 군세를 오히려 압도하고 있었다.
“남쪽이 문제입니다.”
“남쪽요?”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남쪽은 무진주, 완산주, 수약주로 마조와 북두신군이 도움을 주고 있는 지역이다.
두 명의 군주로도 마천의 제후 하나(혈사자 바르마스)를 막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진표 존자의 말은 조금 달랐다.
“마조와 북두신군 간에 마음이 맞지 않아 효과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아니, 마천의 제후를 앞에 두고 군주 둘이서 티격태격 싸운다는 말인가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습니다.”
“아니 둘이 손잡고 싸워도 힘들 판에 왜 그런데요?”
“이건 소문입니다만……. 말씀드려도 될지.”
“뭔데요? 가려서 들을 테니까 말해봐요.”
“두 군주님을 환영하기 위해 열린 연회에서 북두신군께서 마조님에게 결례를 저질렀던 모양입니다.”
“결례 때문에 전쟁을 앞두고 싸운다고요? 얼마나 큰 실수를 했다고?”
“북두신군께서 마조님에게 함께 잠자리를 갖자고……. 험, 물론 취중에 그러셨겠지요.”
“미친놈인가?”
연적하의 말에 진표 존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미, 미치다니요.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그런 불경스러운 말씀은 자제하시는 게……. 본래 취하면 말실수도 있고 그러지 않습니까.”
진표 존자는 행여나 자신과 대종사가 나눈 대화가 북두신군의 귀에 들어갈까 봐 질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