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05
705회. 천족의 근본주의는 과격하다.
구주의 아홉 종문에 천문은 아주 특별하다.
그것은 진선(眞仙)의 세계로 가는 문이자, 창조신과 종문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증거였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전자(前者)의 가치는 퇴색했다.
누구도 천문을 열지 못함으로 천문은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변치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창조신이 종문에 진선의 세계로 가는 문의 관리를 맡겼다는 것이다.
비록 열 수는 없지만, 그래도 관리자로서의 역할은 남아 있었다.
종문은 기꺼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게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천의 대대적인 침공이 있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오늘날 마천의 군세는 아홉 종문과 몇몇 신들의 힘으로 막기 어려웠다.
광명진천의 말대로 천계가 개입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었다.
천계가 본격적으로 개입하면 구주에서 ‘태고의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어찌어찌 천계가 승리한다 해도 막대한 희생이 따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광명진천이 전쟁 개입의 대가로 천문을 언급한 것도 그래서다.
광명진천의 요구는 종사들로 하여금 천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천뢰종의 광성 존자는 종문과 천문을 동일시했다.
그런 그에게 광명진천의 말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예컨대 태상종의 진표 존자는 광명진천의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천문은 마천의 마귀들을 끌어들인다.
항구적인 구주의 평화를 생각하면 천계로 보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광성 존자가 동의를 구하는 눈으로 보았을 때 호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대종사님, 종문은 지금까지 천문의 관리자를 자처하며 살았습니다. 관리자라는 것에 주목해 주십시오. 천문의 주인은 종문이 아닙니다. 천문의 주인은 오직 창조신 한 분뿐이십니다.”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진표 존자를 보았다.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임을 강조하는 걸 보니 어떤 생각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요?”
“천계에서 관리를 맡겠다고 하면 그쪽에 넘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요?”
“아시다시피 마천의 마귀와 마족들은 천문을 숭배합니다. 천문을 보고 죽는 게 삶의 목적이지요. 구주에 천문이 있으면 지금처럼 마천이 계속 침공해 올 겁니다.”
“그러니까 천문을 천계에 떠넘기자?”
“어감은 이상합니다만 그렇습니다. 마천과 맞상대를 할 수 있는 세력은 천계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천문을 우리 종문이 가지고 있은 지 수십만 년입니다만, 그저 상징에 불과했습니다. 어차피 천계에 넘긴다고 해도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종문 고수들 사이에 가벼운 소요가 일어났다.
진표 존자의 말에 동조하는 태상종 제군들을 천뢰종 제군들이 비난한 것이다.
소란이 길어지자 광성 존자가 손을 들어 올렸다.
천뢰종 제군들이 입을 다물자, 뒤이어 태상종 제군들도 비난을 그쳤다.
아무리 종문이 다르다 해도 종사의 지시를 거스를 수 없어서다.
“대종사님, 천문이 유명무실한 상태인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그걸 천계에 보내서는 안 됩니다. 종문의 성물이 한날한시에 파괴됐습니다. 그런데 천문까지 천계로 넘긴다면, 종문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말 것입니다. 천문은 단지 상징이 아닙니다. 천문은 아홉 종문의 기원에 관계된 종문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역사를 천족에게 넘기다니요? 이 세계에서 인간은 가장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목에 힘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성물과 천문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성물이 파괴된 지금 천문마저 넘기고 나면, 인간은 더 이상 내세울 게 없습니다. 마족에게 치이고, 천족에게 무시당하며 살아야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러자 진표 존자가 딴지를 걸었다.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버리자는 게요?”
“허면 진표 존자께서는 천족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주자 이 말이오? 선대로부터 내려온 신성한 사명을 포기하자는 거요? 죽어서 무슨 낯으로 선대를 보시려고!”
두 사람의 언쟁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려 하자 연적하가 중지시켰다.
“거기까지만 해요.”
대종사인 연적하가 심기 불편한 얼굴을 하자 다들 조용해졌다.
“곡 노조.”
“예.”
“천문은 종문마다 있으니까 다른 종문에도 광명진천의 뜻을 알리고 가부를 물어봐. 천문에 대한 종문의 의견부터 모아야겠어.”
“광염종과 법요종에도 사람을 보낼까요?”
곡분조 노조가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광염종과 법요종은 아직 연적하를 대종사로 인정하지 않았으니 무대응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보내. 마물들이 천관산맥을 넘어왔잖아. 웅천주라고 무사하겠어? 더구나 광명진천이 나서서 하는 일이니 좋든 싫든 답을 줄 거야.”
“아, 예.”
곡분조 노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종사가 아니라 광명진천이 추진하는 일이니 가부간에 답을 줄 것 같았다.
회의는 그것으로 끝났다.
빠른 일 처리를 위해 곡분조 노조가 대전을 빠져나갔다.
그때까지도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한 광성 존자가 연적하에게 넌지시 물었다.
“대종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뭘요?”
“천문을 천계에 넘기는 일 말입니다.”
연적하가 차갑게 답했다.
“아무리 광명진천이라도 주제넘은 요청이죠. 창조신이 천문을 종문에 맡겼는데, 그걸 왜 천족이 넘봐요?”
그러자 광성 존자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광명진천님이라 해도 창조신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에 천족과 거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거래요?”
“구주에서만 나는 영지 선초가 있습니다. 천족들이 간혹 그걸 종문에서 구해 가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혹시 그건 아십니까?”
“그거라니요?”
“광명진천님은 천족 중에서도 근본주의를 신봉하시는 분이셨다고 합니다.”
“근본주의요?”
“천족들에게는 천서(天書)라는 신서(神書)가 있습니다. 구주에 성물이 있다면 천계에는 천서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하!”
“그 천서에는 창조주와 천족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근본주의라 함은 그 천서를 창조신 대하듯 받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광명진천이 천서를 창조신 대하듯 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천족 내에서 아주 유명했다고 하더군요.”
“그게 문제가 되나요? 내가 보니 구주의 종문도 성물에 목을 매던데.”
“‘종문이 성물을 떠받드는 것’과 ‘천족의 근본주의’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 종문이 성물을 소중하게 여겼다면, 천족의 근본주의는 과격하니까요.”
“과격하다?”
“‘태고의 전쟁’을 이끄는 천족이 대부분 근본주의자들이라면 아시겠습니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진표 존자가 끼어들었다.
“대종사님, 광성 존자의 말은 가려서 들으십시오. 광성 존자, 어딜 봐서 광명진천님께서 과격하다는 겁니까? 그분이 천문을 요구했다고 없는 말까지 지어내서야 되겠습니까?”
연적하가 진표 존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표 존자님.”
“예?”
“그쪽도 천족과 거래를 터 봤어요?”
“예.”
“만나도 봤고?”
“그건 아닙니다. 외부와의 거래는 주로 삼정각에서 처리하는지라.”
“광성 존자님은 천족과 만나 봤다잖아요. 천족과 만나 본 적도 없으면서 뭘 안다고 말을 지어낸다고 그래요?”
“그건 그러니까……. 평소 광명진천님의 모습을 보면 과격함과는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 말이었습니다.”
“거 안목이 없으시네.”
“예?”
진표 존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갑자기 안목이 없다니 당황스러웠다.
“내 눈에는 광명진천님이 무시무시하던데. 지금도 아무렇지도 않게 천문을 달라고 하잖아요. 그것도 하필 종문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그런 광명진천님이 과격함과 거리가 멀다고요?”
“그건 그러니까……. 구주의 인간을 위해서…….”
“쯧쯧! 안목만 없는 줄 알았더니 생각도 없으시네.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순수하게 구주를 위해 헌신 봉사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해요?”
“광명진천님과 우샤스 킨샤사, 고범천왕, 마조, 북두신군님들이 그러고 계시지 않습니까?”
“광명진천님은 천문을 달라고 했고, 우샤스 킨샤사는 광염종과 법요종의 뒤를 봐주고 있죠. 고범천왕, 마조, 북두신군도 이해관계로 얽혀 있으니 뛰어든 걸 테고.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연적하가 진표 존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진표 존자는 머쓱한 얼굴로 대종사의 시선을 회피했다.
자신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종사쯤 되면 혜안이 열려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다 알게 된다.
그래도 적정선이라는 게 있다.
광성 존자처럼 광명진천을 부정적으로만 몰아가면 안 된다.
그건 그렇지 않아도 나쁜 광명진천과 대종사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할 뿐이었다.
진표 존자가 입을 꾹 다물자 연적하도 더는 타내지 않았다.
그때 문득 뭔가 떠올랐다.
“광성 존자님.”
“예.”
“광성 존자님이 생각할 때 천문을 원하는 게 천족 같아요? 아니면 광명진천님 같아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천족이 천문을 요구한 적은 없습니다.”
“천족의 뜻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지금까지의 역사만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이끄는 자들은 근본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이 원한다면 천족들도 묵인할 겁니다.”
“그들이 실세라는 소리로 들리네요?”
“전쟁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연적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구주에서 ‘태고의 전쟁’이 벌어지면 광명진천의 뜻대로 될 게 분명했다.
‘제길! 광명진천이 끝내 초를 치는구나.’
마신만 막아 내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전쟁의 규모가 손쓸 수 없게 커지고, 급기야 광명진천까지 천문을 탐내고 있다.
하루빨리 천문을 열고 강호로 돌아가야 하는데 엉뚱한 곳에서 발목이 잡힌 셈이다.
***
무망각.
회의를 마친 연적하는 착잡한 마음에 무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심통의 상태를 보러 가는 것이다.
인기척만 나도 뛰어나오던 옥청 노조는 자리를 비웠는지 무망각은 조용했다.
심통의 방으로 들어간 연적하는 의자를 끌어다 침상 옆에 놓고 앉았다.
“아이고! 이 늙은이야. 내가 욕심 부리지 말랬지. 내 말 안 듣더니 참 꼴 좋다. 그런데 그 귀한 영석을 어디서 구했대? 설마 훔친 건 아니겠지? 하기야 진인 주제에 영석을 어떻게 훔쳐. 그러다 맞아 죽지나 않음 다행이지.”
허공에 대고 주절주절 혼잣말을 늘어놓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영석의 주인쯤 되려면 최소한 제군이다.
진인인 심통으로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제군에게서 영석을 빼돌릴 수 없다.
그러니 누군가 그에게 줬다는 말이다.
누가 심통에게 영석을 주었을까?
일단 천뢰종은 아니다.
심통은 천뢰종 출신이지만 그의 스승인 옥청 노조를 제외하면 교류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천지종도 아니다.
천지종은 존자와 제군이 없어 영석과 거리가 멀다.
남은 건 태상종인데 그들은 천뢰종보다 더 심통과 소원한 관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종문에서 영석을 줄 만한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굳이 한 사람을 뽑으라면 곡분조 노조가 의심스럽긴 하다.
그는 천지종의 최고 관리자라, 비록 노조지만 영석에 접근할 수 있다.
‘곡 노조가 뇌물로 영석을 선물한 것일까?’
하지만 그는 심통의 손에 있던 영석의 출처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가장 의심스러운 곡분조 노조마저 제외하면, 남는 건 하나다.
문득 마신 메디나 이사엘라의 말이 떠올랐다.
-광명진천을 조심해라. 마천이 드러난 칼이라면 천족은 숨겨진 화살이니까.
광명진천이라면 심통의 영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정말 광명진천의 짓일까?
그 뒤에 벌어진 일련의 일들, 예컨대 ‘생명의 나무’ 열매와 천문의 교환, 전쟁 참여의 대가 등을 떠올리니 점점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 갔다.
천족의 근본주의가 과격하다더니 이런 짓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벌일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