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18
718회. 다 가져가요. 단 십일월 이후에
사흘 전.
광명진천을 제압한 연적하는 마천의 군세가 백리하에서 멈추자 급히 천지종 종산으로 날아갔다.
천계에 대한 남궁연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남궁연과 떨어져 지낸 지 여러 날이 되어 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는 사흘 정도의 거리를 운종술을 이용해 하루 만에 주파했다.
위례성.
천지종 종산 원덕산.
옥녀봉 염화전.
해거름 무렵.
연적하는 남궁연을 찾아가 그간의 일을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광명진천의 턱밑에 구천검령을 들이밀고 말했어요. 살고 싶냐고. 그랬더니 살고 싶대. 그럼 매달려 보라고 했죠. 캬! 누님도 그걸 봤어야 하는데. 거만한 얼굴로 손만 까딱거리던 광명진천이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더라고요.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어. 매에는 장사가 없다니까.”
“그랬구나. 네가 광명진천과 싸워 이기다니 정말 잘됐다.”
남궁연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의 구천검령이 평범한 검령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삼천의 신’인 광명진천마저도 굴복시킬 줄은 몰랐다.
광명진천에게 당했던 수모를 생각하니 통쾌하기 그지없다.
마치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광명진천과의 일로 속앓이를 하던 남궁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데 말이에요. 천문을 원한 게 광명진천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더라고요?”
“그럼 설마 천족?”
“네, 광명진천은 중개하기만 한 거라네요? 조만간 천족들이 그 문제로 찾아올 거라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구주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조건 내어 주는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럼 우리가 강호로 돌아가는 데 지장이 있잖아요.”
남궁연의 얼굴이 가볍게 굳었다.
광명진천 개인의 욕심이었다면 연적하가 찍어 누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게 천족의 요구사항이라면 실로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천족들도 구주가 마천의 손에 떨어지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종문에서 요청하기도 전에 그들이 먼저 찾아오는 걸 테지.”
“천문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요?”
“그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구주에 사는 사람들의 피해가 너무 커져. 천족의 주장을 일정 부분 수용해서 빨리 그들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게 나아.”
“천문을 줘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다만 전부냐 일부냐가 문제인데.”
남궁연은 아직도 천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없었다.
하나만 있어도 되는지, 혹은 전부가 필요한지.
아홉 종문의 거리를 생각하면 천문은 서로 연계되어 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홉 개의 천문이 함께 작동하는 거라면?
천족이나 인간 모두 영원히 천문을 열지 못할 터였다.
물론 지금까지 열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말이다.
남궁연이 말을 이어 갔다.
“천족은 전부를 달라고 할 거야. 구주가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 테니까.”
“종문들의 반대가 극심할 텐데요?”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거야. 종문들에게 천문은 상징에 불과한 지 오래니까.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앞에서 상징은 큰 의미가 없어. 대부분 그냥 내주자고 할 거야.”
“달란다고 줄 수는 없잖아요?”
“아니, 다 주겠다고 해.”
“예에? 다 주자고요? 우린 어떻게 하고요?”
“시월이면 아기가 태어날 거야.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월 이전에 천문을 열어야 해. 그러니 천문을 이양하는 날짜를 십일월 이후로 못 박아.”
“아!”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시월에 아기가 태어날 거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월 이전에 천문을 열지 못하면 아기는 이 세계의 일원이 될 수도 있다.
평생을 뒤틀린 욕망 속에서 살다가, 죽으면 이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니 심장이 벌렁거리고 피가 끓었다.
“누님, 천문의 연구에는 진척이 있어요?”
“종문들의 연구 기록을 모두 찾아봤지만 눈에 띄는 게 없어. 열리느냐 안 열리느냐의 문제라 진전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야.”
“혈주종에서는 사람을 제물로 바쳤더라고요.”
“혈주종만이 아니야. 다른 종문에도 은밀하게 인신공양을 한 기록이 있었어.”
“세상에.”
“이곳 사람들의 욕망은 우리가 상상한 이상이야. 그러니 너도 종문 사람들을 너무 믿지는 마.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배신할 수 있으니까.”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그보다는 천문이 고민이네요. 법요종 것만 빼면 다 봤는데, 그냥 커다란 돌기둥이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열라는 건지 원.”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 있을 거야.”
“나는 이 세계를 만든 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
“사람들이 이상하잖아요. 뭔가 뒤틀려 있다거나, 중요한 게 빠진 느낌이 들거든요. 내세(來世)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러면서 또 상계(上界)에 대한 욕심은 있고.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네 말을 들으니 그렇기도 하네.”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적하는 가끔가다 엉뚱한 소리를 하는데 그게 종종 본질을 꿰뚫곤 했다.
이 세계를 만든 창조신이 이상하다는 말도 그렇다.
지금까지 그런 쪽으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으니 기이했다.
창조신은 왜 이런 뒤틀린 욕망으로 가득 찬 세계를 만들었을까?
비정상이 정상인 세계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문득 남궁연은 ‘천문을 만든 존재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문을 만든 존재를 알면 사용법에 대한 비밀도 조금은 풀릴 것 같았다.
제 머리를 믿지 못하는 연적하가 확인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누님 말은 ‘천족에게 천문을 다 줘도 된다. 하지만 날짜를 십일월 이후로 정하라’ 이거죠?”
“그래.”
“알았어요. 다 줘라. 십일월 이후에.”
연적하는 결연한 얼굴로 두 마디 말을 되뇌었다.
늦어도 시월까지 그 모든 걸 끝내려면 광풍처럼 몰아쳐야 한다.
***
그리고 현재.
백부장 마그누스가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연적하를 노려보았다.
그는 이참에 대종사에게 천족의 우위를 각인시킬 생각이었다.
종문의 종사를 천족의 날개 두 쌍급으로 예우해 주는 것은 관례일 뿐이다.
실제로 ‘천족의 날개 숫자’와 ‘종문의 서열’은 일치하지 않는다.
한 쌍의 날개라고 실력이 다 같지는 않다.
예컨대 백부장들은 한 쌍의 날개를 가졌지만, 그중에는 종사에 필적할 능력을 가진 천족도 많았다.
백부장 마그누스가 그랬다.
그는 비록 한 쌍의 날개를 가졌지만 스스로 종사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총참모 벨 소니아와 천부장 파티르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구경만 했다.
두 사람은 이 기회에 대종사의 무위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특히 천부장 파티르는 자신을 대신해 나서 준 백부장 마그누스가 기특하기까지 했다.
시작부터 아슬아슬하던 분위기가 폭발 진전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쪽은 또 왜 나한테 그따위로 말을 해? 그것도 무엄한 거 아냐?”
“받은 대로 돌려준다는 말도 모르오? 대종사가 먼저 우리 총참모에게 잘못을 했으니 그런 거 아니오?”
“받은 대로 돌려주는 건 서로 엇비슷할 때나 가능한 거 아닌가? 난 대종사고 그쪽은 백부장이니, 나한테 돌려주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러자 백부장 마그누스가 냉소를 쳤다.
“흥! 백부장이라고 다 같은 백부장이 아니오. 나는 종사급의 백부장이오.”
“난 종사가 아니라 대종사라니까.”
“종사나 대종사나 내 눈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오만.”
그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사실 상대가 평범한 종사들이었다면 통했을 발언이기도 했다.
묘한 눈으로 백부장 마그누스를 보던 연적하가 물었다.
“이봐, 백부장 아저씨. 당신들은 인간 세계에 대해 별 관심이 없지?”
“필요한 만큼은 안다고 생각하오만.”
“그래? 그런데 왜 내가 종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말과 함께 연적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부장 마그누스도 그에 대응하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니 일으켜 세우려 했다.
유령처럼 그의 옆에 솟아난 연적하가 백부장 마그누스의 견정혈(어깨의 혈도) 부위를 검결지로 슬쩍 눌렀다.
“크윽!”
백부장 마그누스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치 장창에 어깨를 관통당한 것 같은 느낌이다.
반격이나 회피를 떠올렸지만 기이하게 몸이 굳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연적하가 백부장 마그누스의 귓가에 나직이 말했다.
“종사나 대종사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
“익! 익!”
백부장 마그누스는 상체를 이리저리 뒤틀었지만 소리만 요란 할 뿐 그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천부장 파티르가 중재에 나섰다.
“대종사님, 우리 백부장 마그누스가 젊은 혈기에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대종사님의 앞에서 재주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 같은데, 그만 용서해 주시지요. 큰일을 앞에 두고 천계와 종문이 반목해서야 되겠습니까?”
천계와 종문을 위해 봐주라는 소리다.
연적하가 한쪽 손으로 백부장 마그누스의 얼굴을 자신에게 돌리고 물었다.
“사과할 거야?”
백부장 마그누스는 대종사가 얼굴을 만지자 수치심에 부들부들 떨었다.
당장이라도 상대를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으음, 용서해 주시오.”
어깨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보다 제압당한 모습을 계속 보여 줄 수는 없었다.
그제야 연작하는 검결지를 그의 몸에서 뗐다.
금방이라도 반격할 것 같던 백부장 마그누스는 의외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깨에서 장창은 빠진 느낌이지만 온몸에 기력이 없었다.
이래서는 싸움은커녕 혼자서 걸어 나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연적하가 느긋하게 제자리로 돌아가 앉을 때까지 객청은 조용했다.
벨 소니아는 참담한 마음에 광명진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
눈앞에서 천족이 수모를 당하는 꼴을 보고도 광명진천의 얼굴은 담담했다.
‘설마…….’
벨 소니아는 대종사와 광명진천을 번갈아 보았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광명진천이 대종사에게 패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광명진천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란이 정리되자 곡분조 노조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그럼 계속해서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천계에서 원하는 천문의 개수와 이양의 시기를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정군 동부군 부사령관인 천부장 파티르가 벨 소니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비록 초반에 기선을 잡는 건 실패했지만 아쉬운 쪽은 종문이다.
그러니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천부장 파티르의 눈짓에 벨 소니아가 입을 열었다.
“구주의 영구적인 평화와 안녕을 위해 아홉 개의 천문 모두를 옮겼으면 합니다. 그 대신 종문 제자가 천계에 머무르며 천문을 연구할 수 있도록 거처를 제공할 의향이 있습니다.”
세 개 종문의 대표들이 가볍게 술렁거렸다.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생각할수록 교묘한 제안이었다.
날강도처럼 모든 천문을 가져가겠다는 것은 화가 나지만, 천계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거처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꽤나 솔깃한 제안이었다.
이윽고 천족과 종문 대표 모두 대종사의 입에 주목했다.
천문에 대한 대종사의 집착을 아는 종문 대표들은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광명진천까지 이긴 대종사가 천족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적하의 언행은 언제나처럼 사람들의 예측을 벗어났다.
“다 가져가요. 단 십일월 이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