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43
743회. 빨리 바꿔 가라고 전해 줘요
‘특별히 원하는 게 있느냐?’는 총참모 벨 소니아의 물음에 연적하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자신에게 구천검령이 있다 해도 한 손으로 열 손을 감당할 수는 없다.
구천검령은 강하지만 자신에게는 한계가 있다.
활 하나 때문에 앙겔로스 왕가와 원수가 되면 자신만 손해였다.
그때 문득 주화입마에 빠진 심통의 치료를 두고 광명진천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천계의 중심에 ‘생명의 나무’가 있다. 그 열매를 취하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나무’ 열매는 천계에서 성물 취급을 해서 구하기 어렵다고 했던가.
하지만 천계의 왕가라면 하나쯤 구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열매가 누군가를 위해 쓰인다면 그 대상은 왕가의 일원일 테니 말이다.
그가 ‘생명의 나무’ 열매를 떠올리고 있을 때 총참모 벨 소니아가 한마디 보탰다.
“대종사께서 이번에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神器)를 돌려주면, 앙겔로스 베니토 왕세자 저하 때문에 생긴 은원도 자연스럽게 풀릴 거예요.”
총참모 벨 소니아가 안타까운 눈으로 대종사를 보았다.
천계는 이 세계의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앙겔로스 왕가는 그런 천계를 지배하는 일곱 왕가 중에 하나였다.
하나의 왕가가 공격을 받으면 다른 왕가도 돕는다.
제아무리 대종사에게 구천검령이 있다 해도 천계와 척을 지고 살 수는 없다.
마신이 천계와의 전쟁을 오래도록 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마천이라는 강력한 배경 탓이다.
그에 반해 종문은 천계에서 입김 한 번만 불면 사라질 정도로 연약했다.
그러니 대종사와 종문을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앙겔로스 왕가와의 은원을 풀어야 한다.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 ‘피나카 아스트라(무한의 활)’라면 은원을 상쇄하고도 남으리라.
“어차피 대종사님에게는 왕가의 신기보다 뛰어난…….”
“조건이 있어요.”
총참모 벨 소니아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녀는 무엇보다 그가 ‘피나카 아스트라’에 욕심내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뭔가요?”
“총참모님도 내 지인이 영석의 영기를 취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진 거 알죠?”
“심통 진인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언젠가 광명진천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천계에 있는 ‘생명의 나무’ 열매로 치료할 수 있다고. ‘생명의 나무’ 열매와 바꿀게요. 앙겔로스 왕가에 전하세요. 십일월 말일까지 ‘생명의 나무’ 열매를 가져오라고.”
“…….”
총참모 벨 소니아가 곤혹스러운 눈으로 대종사를 보았다.
‘생명의 나무’ 열매는 일곱 왕가에서 관리하는 천계의 보물이었다.
그걸 앙겔로스 왕가에서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니 그건 왕가의 일이니 그렇다 치고, 대종사는 왜 십일월에 집착하는 것일까?
‘천문(天門)의 이양도 십일월 이후에 하겠다고 했는데 왜지?’
궁금해진 그녀가 슬쩍 물었다.
“천문에 이어 ‘생명의 나무’ 열매도 십일월이네요. 꼭 십일월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집안에 경사가 있는 날이거든요. 좋은 일을 한데 다 모으려고요.”
“아…….”
총참모 벨 소니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빙설화 제군의 출산일이 기준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대종사님의 뜻을 앙겔로스 왕가에 전하도록 하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솔직히 저도 모르겠네요.”
“왜요? 신기라는 이 활보다 ‘생명의 나무’ 열매가 더 소중한가요?”
“그보다는 ‘생명의 나무’가 앙겔로스 왕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서 그래요. 천계의 일곱 왕가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보물이거든요.”
“아하! 그러니까 다른 왕가의 양해를 얻어야 한다?”
“그래요. 앙겔로스 왕가에서 그 열매를 얻어 내려면 많은 걸 양보해야 할 거예요.”
“그래서, 양보할 것 같아요?”
총참모 벨 소니아가 대종사의 손에 들린 ‘피나카 아스트라’를 힐끔 보며 답했다.
“아마도요.”
‘피나카 아스트라’는 단순한 신기가 아니라 창조신의 무기다. 천계 왕가의 조상은 창조신의 사자(使者).
그들의 뿌리와 관계된 것이니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되찾으려 할 것이었다.
“잘됐네요. 빨리 바꿔 가라고 전해 줘요.”
“예…….”
총참모 벨 소니아가 조금은 황망한 눈으로 대종사를 보았다.
신기 ‘피나카 아스트라’와 ‘생명의 나무’ 열매는 모두가 천계를 뒤흔들 만한 것들이다.
그런 천고의 기물(奇物)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빨리 바꿔 가라니, 기가 막힐 뿐이다.
잠시 후 천족 지휘관들은 페라노스 기사단을 불러 모았다.
페라노스 기사단원들은 단장의 처참한 죽음 앞에 완전히 기가 꺾인 모습이었다.
총참모 벨 소니아가 부단장 앙겔로스 베른하르트에게 말했다.
“부단장님도 들으셨죠?”
앙겔로스 베른하르트는 대답 대신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앙겔로스 왕가에 대종사의 뜻을 전해 주세요. 십일월까지 ‘생명의 나무’ 열매를 가지고 오라 했으니 서두르셔야 할 거예요.”
그녀의 정중한 요청에 앙겔로스 베른하르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구주에서 앙겔로스 왕가가 다스리는 생유천(生有天)을 왕복하는 데 한 달이면 족하다.
하지만 앙겔로스 왕가에서 ‘생명의 나무’ 열매를 구하는 게 문제다. 일이 잘 풀리면 쉽게 되겠지만, 안 풀리면 십일월까지 될지 모르겠다.
문득 앙겔로스 베른하르트가 물었다.
“만약 ‘생명의 나무’ 열매를 늦게 구해 십일월을 넘기면 어찌 되는 건가?”
“그런 모르겠네요. 일단 대종사가 십일월이라고 기한을 정했으니 맞추는 게 좋을 거예요. 그는 스스로 한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니까. 십일월 말일까지 가지고 오면 군말 없이 바꿔 줄 거예요.”
“다른 왕가의 동의를 구하느라 늦어질 수도 있어서 하는 말이네. 기한을 넘기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앙겔로스 베른하르트가 집요하게 물었다.
자신도 앙겔로스 왕가의 일원으로 여러 가지 돌발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다만 대종사가 기한을 정한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천문의 이양도 십일월 이후로 못을 박았거든요. 십일월에 뭔가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물어도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더군요.”
“허…….”
앙겔로스 베른하르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대종사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가려 했으나 더는 없어 보였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앙겔로스 베른하르트는 기사단원들을 데리고 떠났다.
페라노스 기사단이 사라지자 천족 지휘부도 다시 천족 숙영지로 걸음을 돌렸다.
***
연적하는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 ‘피나카 아스트라’를 손에 들고 털레털레 숙소로 돌아갔다.
활이 앙겔로스 왕가의 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한시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만에 하나 활을 분실하면 심통의 치료가 물 건너가는 것은 물론이고, 천계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어서다.
그러니 다소 귀찮지만 들고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대종사가 기이하게 생긴 활을 가지고 다니니 종문 고수들이 연신 힐끔거렸다.
사시 정(오전 10시) 무렵, 다시 마물의 토벌이 시작됐다.
연적하는 종문 고수들 무리에 섞여 사비성 일대의 마물을 토벌했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천둔검을 꺼내지 않았다.
수중에 그보다 더 편하고 강력한 ‘무한의 활’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화살도 없이 시위를 당길 때마다 어떤 마물이건 박살이 났다.
마물이 아무리 먼 거리에 있어도 시위를 한번 튕기면 ‘퍽!’ 하고 터졌다.
시중을 들기 위해 그를 따라다니던 곡분조 노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종사님, 참으로 신통한 활을 가지셨군요. 화살이 따로 없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어.”
“그런 활이 있습니까?”
“있더라고.”
연적하는 건성으로 답했다.
곡분조 노조에 대한 불신으로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런 활이 있는지 곰곰 생각하던 곡분조 노조는 이내 포기했다.
사실 천계 왕가의 비밀을 노조에 불과한 그가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하튼 연적하가 ‘피나카 아스트라’를 쓰면서 토벌은 전보다 더 빨리 진행됐다.
빼앗겼던 땅의 수복(收復)이 거의 이동 속도에 맞먹을 정도였다.
결국 종문 고수들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사비성을 되찾았다.
이전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속도 세 개 종문 고수들은 동촌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가기에 너무 먼 거리였고, 굳이 동촌현을 고집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사비성 넘어 여주성의 반월현으로 쳐들어갔다.
종문 고수들은 일각(15분)에 걸쳐 반월현의 마물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주인 없는 객잔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습관이란 묘하다.
저녁 식사 때가 되자 종문 고수들은 객잔 식당에 나와 벽곡단이나 선단을 먹었다.
벽곡단과 선단에 질릴 만도 하건만 누구도 요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방에 식재료가 있었지만 모두 썩거나 곰팡이가 슬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누군가 물을 끓여 차를 만들었다.
벽곡단과 선단에 차 한잔이 곁들여졌다.
방에서 뒹굴거리던 연적하도 차향(茶香)에 이끌려 식당으로 내려갔
기다렸다는 듯 광성 존자와 진표 존자가 연적하의 탁자로 옮겨 왔다.
광성 존자의 눈이 연적하의 등에 걸린 활로 향했다.
종문마다 토벌 구역이 조금씩 다른 탓에 하루 종일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오전에 잠깐 본 활을 이 밤까지 가지고 다닐 줄이야.
“대종사님께서 활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진표 존자도 새삼스러운 눈으로 대종사의 등에 걸린 활을 보았다.
검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종문 제자들은 활과 거리가 멀었다.
대종사도 어제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활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활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남의 걸 잠깐 맡아 둔 거예요.”
그의 말에 광성 존자와 진표 존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대종사에게 활을 맡길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토벌대에 없는 까닭이다.
궁금함을 참다못한 광성 존자가 물었다.
“활대가 은은하게 빛나는 걸 보니 내력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데, 누구의 것입니까?”
연적하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답했다.
“앙겔로스 왕가요.”
“…….”
광성 존자와 진표 존자는 일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종사와 앙겔로스 왕가 사이의 은원을 생각하면 저 대답은 두말할 것도 없는 헛소리였다.
문득 두 존자가 시선을 교환했다.
뒤늦게 대종사가 허언을 하지 않는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진표 존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종사님, 혹시 오늘 페라노스 기사단과 만나셨습니까?”
“예.”
“어이쿠! 그러셨군요. 아침에 앙겔로스 왕가의 기사단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대종사님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런데 주무시는 것 같아서 진표 존자와 저만 잠깐 다녀왔지요. 오전에 토벌을 나왔는데 언제 만나신 겁니까?”
“그 전에 산책을 나갔다가 아피쿨라타를 만났어요.”
말과 함께 연적하가 미지근하게 식은 찻물을 입에 털어 넣었다.
선단을 먹고 텁텁하던 입안이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선단의 재료는 영지 선초인데 왜 이렇게 뒷맛이 꿉꿉한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광성 존자가 끼어들었다.
“혹시 아피쿨라타가 저 활을 들고 왔던 겁니까?”
“맞아요.”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찻주전자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광성 존자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찻주전자를 들어 대종사의 빈 잔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아피쿨라타는 어떻게 됐습니까?”
연적하는 아피쿨라타가 자신에게 했던 대로 손날로 목을 쓰윽 그어 보였다.
“아! 그래서 활을……. 헉! 혹시 그 활이……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인가요?”
“보여 줄까요?”
연적하는 아이가 장난감을 자랑하 뜻 ‘피나카 아스트라’를 탁자 위에 올렸다.
‘피나카 아스트라’의 유려한 몸체에서 은은하게 빛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