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44
744회. 내가 갈게요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神器)를 본 광성 존자와 진표 존자의 입이 쩍 벌어졌다.
흐릿한 유등(油燈)아래 신비롭게 빛나는 활이 말로만 듣던 천계 왕가의 신기라니!
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두 존자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이 활의 이름이 뭐라더라 무한의 활 ‘피나카 아스트라’라고 하던가. 하여튼 그래요.”
광성 존자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무한의 활 ‘피나카 아스트라’라……. 생김새도 이 세상 물건 같지 않은데 이름까지 남다르군요.”
진표 존자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두 사람은 홀린 듯 보기만 할 뿐 손을 뻗어 만지려 하지 않았다.
괜히 천계 왕가와 얽히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데 아피쿨라타는 이걸 허공에서 꺼내더라고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활이 툭 튀어나왔어요. 득물(得物)도 아니고 그건 무슨 수법이죠?”
그러자 진표 존자가 답했다.
“아! 그건 ‘마하담’이라고 하는 ‘공간의 창고’입니다.”
“‘공간의 창고’요?”
“예. 아공간(亞空間)이라고도 합니다.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차원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지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천족들만 만들 수 있다고 하더군요.”
“천족 최고 경지라면 세 쌍의 날개를 말하는 건가요?”
천족의 신체로 가능한 게 세 쌍의 날개고, 그 이상의 날개는 반신(半神), 혹은 진신(眞身)이라 불리니 확인차 물어본 것이다.
“그렇습니다. ‘마하담을 가졌느냐? 아니냐?’가 경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들었습니다.”
“종문으로 치면 종사가 되면 마하담을 가질 수 있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종문에도 그런 술법이 있나요?”
“없습니다.”
“천족에게 배운 종사도 없었어요?”
“마하담의 주법(呪法)은 천계 왕가에서 철저하게 통제하는 주법 중에 하나입니다. 왕가에서 특별히 허락하지 않는 한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거 진짜 쓸 만해 보이던데. ‘마하담’만 있으면 행낭이나 등짐 같은 거 필요 없잖아요.”
“배울 수만 있다면 최고지요.”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피나카 아스트라’를 보니 더욱 마하담이 갖고 싶었다.
저런 거추장스러운 짐을 보이지 않는 공간 창고에 보관한다고 생각해 보라!
대종사가 아쉬운 얼굴을 하자 광성 존자가 물었다.
“그런데 저 활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앙겔로스 왕가의 보물이라고 들었는데…….”
“돌려주기로 했어요.”
“그럼 앙겔로스 왕가에 마하담을 가르쳐 달라고 하십시오. 왕가의 신기를 돌려주는데 마하담이 대수겠습니까?”
“하지만 벌써 조건을 말해 버려서…….”
“조건요?”
“심통 진인을 치료하기 위해서 ‘생명의 나무’ 열매를 달라고 했거든요.”
“아! 상관없습니다. 덤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 덤으로 마하담을 가르쳐 달라고 하십시오. 가르쳐 주면 좋고, 아니면 마는 거지요.”
연적하가 놀란 눈으로 광성 존자를 보았다.
의외로 광성 존자는 근엄한 종사치고 뻔뻔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럴싸하게 들렸다.
생각해 보면 그의 말대로 밑져야 본전이었다.
“덤이라, 그거 괜찮네요. 나중에 앙겔로스 왕가의 천족을 만나면 말이라도 해 볼게요. 그나저나 저 활이 신경 쓰여서 숙면을 취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내가 안심하고 쉴 수 있게 객잔의 경계를 강화해 주세요.”
대종사의 요청에 광성 존자와 진표 존자가 즉시 답했다.
“알겠습니다.”
“저희를 믿고 편히 쉬십시오.”
그제야 연적하는 만족한 얼굴로 ‘피나카 아스트라’를 다시 등 뒤에 둘러했다.
아무리 자신이 반신급에 이르렀다. 해도 깊게 잠들면 ‘피나카 아스트라’를 도둑맞을 수 있다.
물론 아직 자신의 거처에 숨어든 사람이 없어 뭐라 단정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그래도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까지의 경험상 미리미리 대비해서 손해 보는 일은 없었다.
***
팔월 말.
천족과 종문의 고수들은 청산성과 여주성을 마물의 손에서 되찾았다.
영천주의 절반을 수복한 셈이다.
영천주를 세로로 가르는 대천(남대천과 북대천) 서부 지역이 청정해졌다.
그러나 천족과 종문은 대천에서 진군을 멈추었다.
영천주와 맞닿은 웅천주, 수약주와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영천주의 마물을 천관산맥 너머로 몰아낸다 해도, 웅천주(북쪽)와 수약주(남쪽)를 통해 마물이 넘어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천족과 종문은 천뢰종 종산에 머무르며 웅천주와 수약주로 전령을 보냈다.
전황 파악에 들어간 것이다.
그로부터 칠 일 후인 구월 칠 일.
청산성 낙일현.
천뢰종 종산 유명산.
벽력궁.
정오 무렵, 총참모 벨 소니아는 회의를 소집했다.
유명산에 흩어져 있던 천족 지휘관들과 종문 대표들이 대회의실로 모여들었다.
마지막으로 대종사가 입장하자 모두가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마신의 죽음 이후 천족과 종문 대표들은 그런 식으로 대종사에 대한 예우를 표했다.
천족군 총참모 벨 소니아는 연적하가 상석에 앉자 무리들 앞으로 나섰다.
“지난 팔월 말에 웅천주와 수약주로 보냈던 전령들이 돌아왔어요. 먼저 웅천주의 경우 마신의 죽음 이후 마족들이 퇴각하고 있습니다만, 마왕 천자마의 군세가 막강해 진군 속도가 더딥니다. 영천주의 대천을 기준으로 전선이 오백 리(약 200킬로 미터) 정도 뒤처져 있어요. 하루에 대략 오십 리(약 20킬로미터)를 전진한다니, 지금은 삼백 오십 리(약 140킬로미터) 뒤에 있겠군요.”
종문 대표들 속에서 ‘아아!’ 하고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건 앞으로 칠 일이나 천뢰종에서 대기해야 한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총참모 벨 소니아는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 갔다.
“수약주의 상황은 웅천주보다 훨씬 좋아요. 천족 원정군 남부군과 종문 고수들이 수미성까지 진출했으니, 우리 영천주와 전선이 나란한 셈이에요.”
“오오!”
웅천주의 소식을 듣고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조금 살아났다.
“그래서 말씀인데 영천주에 있는 부대의 일부를 웅천주로 돌려야 할 것 같아요. 북부의 진군 속도를 높여야 중부, 남부와 전선이 비슷하게 유지될 테니까요. 지금처럼 북부의 전선이 뒤처지면 애써 토벌한 것도 수포로 돌아갈 거예요.”
그녀의 말에 천족과 종문 대표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의 마물이 중부로 넘어오면 토벌대를 뒤로 보내야 하는 까닭이다.
“다행히 중부인 영천주의 아군 군세는 과잉 상태예요. 그래서 서부군을 빼서 웅천주로 보낼 계획이에요. 영천주는 동부군과 종문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혹시 웅천주로 가기를 원하는 종문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시선을 교환하던 세 개 종문의 대표들이 고개를 저었다.
세 개 종문이라고 해도 숫자가 많지 않아 웅천주로 보낼 인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연적하가 손을 들고 말했다.
“세 개 종문에서 사람을 빼기는 어려울 것 같고, 내가 갈게요.”
총참모 벨 소니아는 예상치 못한 대종사의 지원에 깜짝 놀랐다.
“대종사님께서 가시겠다고요?”
“왜요? 문제 있어요?”
“아, 아니에요. 대종사님께서 가신다면 북부 지역의 탈환이 훨씬 빨라질 거예요.”
총참모 벨 소니아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앙겔로스 왕가와의 일은 마무리 국면이라 천족군이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왜 웅천주로 가겠다는 거지?’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한 달이면 구주의 수복이 끝난다.
대종사가 웅천주에 갈 정도로 웅천주의 상황이 나쁜 것도 아니다.
고개를 갸웃하던 총참모 벨 소니아는 뒤늦게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웅천주에 있는 종문들이 대종사를 인정하지 않았구나!’
설마 이참에 남은 두 개 종문도 병탄할 생각인 걸까?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했지만 그녀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인간들의 일이니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잠시 후 긴급하게 소집됐던 회의가 끝났다.
그날 오후, 원정군 서부군과 대종사는 천뢰종 종산을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
영천주.
봉래성.
삼공현.
해거름 무렵.
웅천주와 맞닿은 봉래성 최북단 마을 삼공현으로 대부대가 밀고 들어갔다.
일만이나 되는 천족 원정군 서부군이다.
선두에 선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의 옆에 자그마한 체구의 인간 하나가 서 있었다.
종문의 대종사 연적하였다.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와 나란히 서 있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속도가 느려졌네요?”
“그,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부관, 선발대에 전령을 보냈나?”
은발의 천족 미녀 블레이즈가 짧게 답했다.
“곧 올 겁니다.”
잠시 후 그녀의 말대로 천족 전령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서부군 총사령관 아나타시오는 그를 보자마자 버럭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왜 갑자기 거북이 걸음이냐 말이다!”
천족 전령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삼공현에서 마물이 목격되었답니다. 샅샅이 수색하며 전진하다 보니 늦어졌다고…….”
“뭐라! 마물이라니! 며칠 전에 우리가 이 지역의 마물을 소탕하지 않았더냐!”
“선발대장의 말로는 상태가 깨끗한 것을 보니 웅천주에서 넘어온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런 제길!”
서부군 총사령관 아나타시오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마른손으로 세수를 했다.
참모 블레이즈가 거들었다.
“북부군의 압박에 웅천주의 마물들이 남쪽으로 밀려 내려온 모양입니다.”
“끙! 어쩔 수 없지. 마왕의 군세가 그토록 강하다니. 어쩌면 봉래성을 다시 토벌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사령관님, 북부군과 합류해 마왕의 군세를 몰아내는 게 우선입니다. 잔당들의 토벌은 종문에 맡겨도 충분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블레이즈가 동의를 구하듯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전체 토벌군의 속도를 맞춰 마물을 동쪽으로 밀어내야 할 때였다.
“참모님 말이 맞아요. 흘러 들어온 마물들은 나중에 종문에서 청소해도 돼요.”
그제야 서부군 총사령관 아나타시오는 헛기침을 터뜨리며 말했다.
“험, 험. 대종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북부군과 합류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깔끔하게 정리해 드리려고 했는데 아쉽군요.”
연적하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구주를 수복해 주기 위해 온 천족군다운 말이었다.
그 대가로 받아 가는 게 천문(天門)이니 결코 싼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서부군의 삼공현 재탈환은 한 식경(약 30분) 만에 끝났다.
다행히 우려했던 것보다 웅천주에서 넘어온 마물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연적하와 서부군 지휘관들은 삼공현에서 가장 큰 ‘봉래객잔’을 지휘소 및 숙소로 정했다.
방에 늘어져 있던 연적하는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습관적으로 식당에 나갔다.
이름뿐인 식당이었지만 천족 지휘관들로 꽉 차 있었다.
빈 탁자에 삼삼오오 앉아 있는 천족들을 보던 연적하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저런 걸 보면 천족이나 인간이나 비슷한 것 같다.
뒤늦게 연적하를 발견한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종사님. 이리 오시지요.”
연적하가 다가가자 부관인 블레이즈만 남고 다른 천족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멀뚱멀뚱 서부군 사령관과 부관을 보던 연적하가 품에서 선단 주머니를 꺼냈다.
“종문에서는 식사 대용으로 선단(仙丹)을 먹는데. 천족들은 뭘 먹나요?”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가 웃으며 품에서 벽곡단이 든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하하! 저희도 선단이나 벽곡단을 먹습니다. 사실 식습관은 인간과 천족이 비슷하답니다.”
“아 그래요? 나는 천족은 이슬 같은 걸 먹는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요. 이슬만 먹고는 힘을 못 씁니다. 천족은 전투 종족이라 잘 먹어야 합니다.”
연적하와 두 천족은 각자 가지고 있던 선단과 벽곡단을 오도독 오도독 씹어 삼켰다.
공복감이 가실 즈음 연적하가 지나가듯 물었다.
“그런데 혹시 사령관님도 ‘마하담’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