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58
758회. 연적하 님이십니다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천족을 딸려 보내지 않은 건 지혜로운 결정이었다.
연적하는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 운종술을 펼쳤다.
벌서 구월.
하루라도 빨리 구주를 되찾아야 천문의 연구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고 자는 시간까지도 아껴 가며 움직였다.
만약 천족이 동행했다면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으리라.
그는 이틀 만에 웅천주를 벗어났고, 그로부터 사흘 뒤에는 영천주를 관통해 수약주에 도착했다.
종문 고수들이 운종술을 써도 이십 일 이상 걸리는 거리를 고작 닷새 만에 주파한 것이다.
수약주.
조양성 북부 공화현 월악산.
정오 무렵.
높고 날카로운 산 정상에 구름 한 덩어리가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이윽고 구름에서 청년이 지면 위로 가볍게 내려섰다.
닷새 전에 웅천주를 출발한 연적하다.
월악산을 둘러보던 연적하는 독안귀마를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독안귀마를 처음 만날 때만 해도 공포의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자신의 좋은 벗이다.
독안귀마와는 백리하의 싸움 이후 헤어졌다.
어느 깊은 산맥에 들어가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나?
신수(神獸)다운 선택이라 잡지 않았다.
잡아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애써 못 본 척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은 강호로 돌아가야 할 사람인 까닭이다.
월악산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산음현이 나온다.
월악산에서 산음현까지 제법 먼 거리지만 지금은 운종술로 반 시진(1시간)이면 닿을 게다.
문득 현천문을 떠올리던 연적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현천문도를 모두가 피난길에 올랐을 테니 가 봐야 빈 건물일 터였다.
바위에 걸터앉은 연적하는 선단 주머니를 꺼냈다.
선단 주머니를 보니 계부 황우연에게 맞아 죽은 서윤이 떠올랐다.
구주에서 인간의 삶은 그처럼 덧없다.
선단을 입에 물었지만 서윤 때문인지 단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두커니 흘러가는 구름을 보던 연적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구주의 삶이야 어떻든 자신은 자신의 길을 가야 했다.
그냥 지나치리라던 처음의 생각과 달리 연적하는 산음현을 들렀다.
아직 산음현에는 마물이 많았다.
마천의 제후인 혈사자 바르마스가 조양성을 점령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이 세계에서의 첫 인연이라 그런지 현천문에 가까워지자 가슴이 짠했다.
부서진 대문과 마당에 어슬렁거리는 마물들이 보였다.
그럴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새삼 인간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주에서 인간이 가장 연약하다.
오죽하면 인간은 야수의 먹이라는 소리까지 있을까.
태생부터 강한 천족과 마족이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창조신은 왜 그런 약한 인간들에게 천문을 남겨 주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연적하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날아갔다.
이윽고 무량하가 나타났다.
마치 바다처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강물도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연적하는 수평선을 향해 계속해서 날아갔다.
속도를 높여서인지 반 시진(1시간)도 되지 않아 건너편 강변이 눈에 들어왔다.
대로에 세워져 있는 표지목을 보니 성도가 멀지 않았다.
조양성 성도를 혈사자 바르마스가 점령하고 있으니 천족은 그 외곽에 주둔하고 있으리라.
잠시 후 조양성 성도에 도착한 연적하는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과연! 성도 남쪽 평원에 천족의 숙영지가 보였다.
워낙 대군이라 힘들게 찾으러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그는 천족 숙영지 위를 낮게 날아가다가 종문 고수들이 보이자 천천히 내려갔다.
운종술을 알아본 무극종, 천태종, 소요종의 종사들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윽고 소요종의 태을 존자, 무극종 구산 존자, 천태종의 혜문 존자가 한마디씩 건넸다.
“대종사님!”
“어서 오십시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과거와 달리 대종사를 향한 세 존자들의 태도는 극진했다.
심지어 서먹하던 태을 존자마저도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종사가 마신과 마왕을 죽인 뒤로 생긴 변화다.
그가 홀로 ‘삼천의 신’들과 마왕 천자마를 죽인 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세 존자들은 이제 연적하를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연적하는 이전과 달리 간이라도 빼 줄 듯한 세 존자들의 태도에 피식 웃었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세상의 인심은 강호나 이 세계나 다르지 않았다.
이젠 그런 대접에 익숙해진 연적하는 슬쩍 손을 들어 화답했다.
“예, 다들 잘 지냈어요?”
그가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아 주자 세 존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눈앞의 대종사는 호칭만 대종사가 아니다.
진신(眞神)들조차 그의 눈치를 본다는 명실상부한 이 세계의 최강자.
사실 그런 존재와 이렇듯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그래도 같은 소요종 출신이라고 태을 존자가 무리를 대표해 말했다.
“저희는 잘 지냈습니다. 대종사님을 이곳까지 오게 만들어 부끄럽습니다. 조양성의 상황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태을 존자는 천족이 오기 전에 할 말을 할 생각으로 조금 서둘렀다.
천족 지휘관들이 오면 말 한마디에도 은근 눈치가 보이는 까닭이다.
“마조와 북두신군이 싸워서 따로 논다? 그리고 혈사자 바르마스가 바라쿠다라는 신기를 가지고 있어서 상대하기 까다롭다 정도요? 내가 더 알아야 할 게 있나요?”
“남부군 사령관 엘다는 바실리오 왕가의 천족입니다. 바실리오 왕가는 천계 일곱 왕가 중에 가장 세력이 큽니다. 그래서 그런지 진신들을 크게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천태종의 혜문 존자가 한마디 덧붙였다.
“어려워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요즘은 그냥 소 닭 보듯 하고 있습니다. 사실 진신들이 그런 대접을 받게 행동한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둘이 싸워서 혈사자 바르마스의 기만 살려 준 거요?”
기회만 엿보고 있던 무극종의 구산 존자가 얼른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두 진신이 따로따로 출전했다가 바라쿠다에 그들의 애병(愛兵)을 잃고 달아났으니 말 다 했지요. 요즘은 핑계만 대고 출전하지 않아서 남부군 사령관이 총참모에게 지원 요청을 한 겁니다.”
“출전도 하지 않는다고요?”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구산 존자를 보았다.
싸우지도 않을 거면서 진신들은 왜 수약주에 남아 있는 걸까?
혜문 존자가 얼른 답했다.
“남부군 사령관이 진신들을 소 닭 보듯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천족 지휘관들과 진신들의 관계도 틀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개판이네요?”
연적하의 말에 세 존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 같았으면 그의 직설적이면서도 천박한 말투가 귀에 거슬렸을 테지만, 지금은 그 한마디 말에 모든 정황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구산 존자가 냉큼 그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개판입니다.”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약주의 토벌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진신들이 서로 다투고, 천족은 그런 진신을 신뢰하지 않으니 잘될 리가 있나.
연적하는 존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종문의 숙영지는 천족 숙영지와 가까웠다.
게다가 천족 숙영지를 거쳐 왔으니 자신이 왔다는 것을 천족도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천족 중에 누구도 종문 숙영지를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말이다.
이건 전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종의 기 싸움일까?
아니면 진신들을 소 닭 보듯 하는 천족 지휘관들의 태도 문제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군.’
지금까지 수약주에서 벌어진 일을 놓고 보면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럴 만한 것’과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기분이 나쁜 것’은 다른 문제다.
‘이것 봐라?’
해가 저물도록 천족군 지휘부는 종문의 숙영지로 아무도 보내지 않았다.
그때부터 세 종문의 존자들은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특히 태을 존자가 그랬다.
연적하의 성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던 그는 말 한마디를 할 때도 조심했다.
하지만 정작 연적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정확히는 천족군 지휘관과 진신들에게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빨리 혈사자 바르마스를 처치하고 천지종으로 돌아가기만 바랐다.
연적하가 모처럼 존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다.
천족 하나가 찾아와 그날 저녁에 회의가 열린다는 걸 통보하고 돌아갔다.
선과(仙果)를 우물우물 씹던 연적하가 물었다.
“북부군과 동부군은 아침 저녁으로 회의를 열었는데, 이곳도 그런가 봐요?”
무극종의 구산 존자가 무덤덤한 어조로 답했다.
“처음에는 그랬습니다만 최근에는 아침에만 잠깐, 그것도 형식적으로 모였습니다.”
“오늘은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연적하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천태종의 혜문 존자가 가볍게 웃었다.
“하하! 특별한 일이라면 대종사님이 오신 것이지요.”
“아! 나 때문에 모이라고 한 것 같다는 거죠?”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대종사님께 인사를 오지 않는 게지요.”
“설마 그래서일까요?”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혜문 존자의 장담에 다른 두 명의 존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니고서는 갑자기 저녁에 모이라고 할 이유가 없어서다.
***
천족군 숙영지.
남부군 사령관의 천막.
마조가 안으로 들어오자 남부군 사령관 바실리오 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상석에 앉아 있는 북두신군을 발견한 마조가 가볍게 냉소를 쳤다.
“흥!”
남부군 사령관 바실리오 엘다는 마조가 상석에 앉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천족군 지휘관들이 진신들을 소 닭 보듯 한다는 소문과 달리 깍듯한 모습이다.
북두신군이 계면쩍은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종사들이 늦는군. 진신들을 기다리게 하다니 예의가 없군.”
물론 단지 종사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다.
종사들이 늦는 것은 대종사와 함께 있기 때문이니 대종사를 비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항상 딴지를 걸던 마조도 그 말에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반신으로 알려진 대종사가 늦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어색한 침묵이 회의실을 감돌았다.
유스투스 참모장이 연신 남부군 사령관을 보았지만, 남부군 사령관은 시선을 회피했다.
그게 ‘대종사가 오기를 기다리라’는 뜻임을 간파한 유스투스 참모장은 개회를 선언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북두신군이 천족 지휘관들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언제 회의를 시작할 것이냐! 반신을 위해 진신들이 이처럼 오래도록 기다린 예가 없느니라!”
유스투스 참모장이 막 변명하려 할 때다.
종문의 세 존자들이 길게 늘어트린 휘장을 들추고 차례로 들어왔다.
마조, 북두신군과 천족 지휘관들의 시선이 가장 마지막에 들어오는 청 년을 향했다.
한순간 남부군 사령관 바실리오 엘다의 눈매가 좁아졌다.
‘설마 저렇듯 앳된 얼굴의 청년은 아니겠지?’
그녀는 연신 청년의 뒤쪽을 힐끔거렸다.
하지만 청년을 끝으로 더 이상 천 막에 들어오는 인간은 없었다.
진신들과 천족 지휘관들이 멍하니 바라만 보자 태을 존자가 나섰다.
“창조신으로부터 천문(天門)의 관리를 위임받은 아홉 종문의 대종사이시자, 구천검령이 선택한 구주의 유일한 지배자, 연적하 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