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65
765회. 우연히 이 세계에 온 게 아니라고 생각해
남궁연은 앙겔로스 왕가가 연적하를 도발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구주와 천계에 어느 정도 알려진 대종사의 무위를 생각하면 그게 당연했다.
하지만 천계 왕가가 실제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닥쳐 봐야 알 터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천지종에 경계를 단단히 하라고 일러둘게.”
“왜요? 그렇게 천족이 못 미더워요?”
“온 우주를 통틀어 내가 믿는 건 너 하나밖에 없어.”
그녀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연적하는 바보처럼 헤벌쭉 웃었다.
“내가 누님을 정말 사랑하나 봐요. 뚱뚱해진 배를 봐도 이렇게 좋네.”
“아기를 낳고 난 뒤에 배가 이만큼 나와도 그렇다면 인정해 줄게.”
“에? 아기를 낳으면 배가 꺼지는 거 아니에요?”
“아기가 음식이니? 배가 꺼지게?”
남궁연의 말에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큰어머니는 이 남 일 녀를 낳았지만 배가 홀쭉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진지한 얼굴의 남궁연에게 차마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미주와 비교 당하면 기분 나빠 할 것 같아서다.
그래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참, 천문(天門) 연구는 진척이 좀 있어요?”
“응. 고지를 눈앞에 둔 느낌이랄까?”
꽤나 희망적인 말과는 달리 남궁연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알면 알수록 모를 것이 천문인 까닭이다.
“우리와 별 상관없는 문제지만, 천문의 이양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왜? 천족들이 다시 양보하겠대?”
남궁연은 대종사의 업적에 천족들이 천문을 포기한 것으로 알아들었다.
“아뇨.”
“그런데 왜 이양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마왕이 혈주종에 있는 천문을 훔쳐 가려고 했었나 봐요. 천관산맥에사는 난쟁이 족들을 잡아 와서 큰 공사를 벌였는데 모두 실패했대요.”
“실패를 해?”
“예. 생존한 난쟁이가 ‘천문에 창조신의 축성(祝聖)이 깃들어 있어서 움직이는 것은 물론, 무엇으로도 흠집 하나 낼 수 없다’고 했다네요? 프리타 왕가 사람이 해 준 말이니까 사실일 거예요.”
“아!”
남궁연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천문을 이양하지 않아도 되니까 오히려 잘된 일 아닌가요?”
“지금까지 내가 알아낸 걸 말해 줄게. 천문은 너도 알다시피 두 개의 돌기둥일 뿐 거기서 뭔가 새로운 걸 찾아낼 수는 없었어.”
그녀의 말에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문에 갈 때마다 천문을 확인했지만 그녀의 말대로 새로운 것이 없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 봤어. 그걸 만든 창조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조사했지. 최근에 내가 알아낸 건 창조신의 이명(異名)이 대자재천(大自在天)이라는 거야.”
“대자재천요?”
“응, ‘거대하고 영향력 있는 신’이라는 뜻이야.”
“아하!”
“그런데 이 대자재천이라는 이름은 천축국의 신명(神名)이기도 해.”
“천축국요?”
“우리가 살던 곳에서 서쪽으로 가면 있는 나라야.”
“그 천축국의 신과 이 세계의 창조신이 같은 이름을 쓰고 있다고요?”
“그래 맞아. 그저 우연히 이름만 같은 건지, 정말 같은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의 창조신과 천축국의 신명이 같은 건 사실이야.”
“와아! 그래서요?”
“여하튼 천축국의 대자재천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두 개의 얼굴요?”
“응, ‘자애로운 창조신’이면서 동시에 ‘난폭한 파괴신’으로 불려.”
“천축국에서도 창조신으로 불리기는 하네요?”
“어쩌면 천축국의 신과 이 세계의 창조신이 같을지도 몰라.”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그것과 천문이 어떤 관계에요?”
“알고 보면 대자재천이 가진 ‘두 개의 얼굴’은 서로 다른 게 아니야. 대자재천이 뭔가를 파괴하는 건 더 나은 걸 창조하기 위해서니까. 그러니까 ‘파괴’가 실은 새로운 ‘창조’의 시작인 셈이지. 마치 태극(太極)의 음과 양처럼 맞물려 순환한다고나 할까?”
남궁연은 연적하가 알아듣기 쉽게 ‘파괴’와 ‘창조’를 태극에 비교했다.
“아!”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태극으로 설명하니 대자재천의 두 얼굴에 담긴 뜻을 알 것 같았다.
결국 창조를 위한 파괴인 셈이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계부터 부숴야 할 테니까.
하지만 그것과 천문을 여는 게 무슨 상관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많은 걸 알게 되었건만 꽉 막힌 벽 앞에 선 느낌이다.
“창조를 위한 파괴와 천문. 뭔가 짚이는 게 없니?”
“누님도 제가 머리 쓰는 쪽으로 약한 거 알잖아요. 그냥 가르쳐 줘 봐요.”
“천문을 단순하게 문이라고 생각해 봐.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부숴야죠.”
“그래, 그게 파괴야.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한, 창조를 위한 파괴. 이제 알겠니?”
순간 연적하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천문을 파괴해야 열 수 있다니!
일견 미친 소리 같지만 남궁연의 말을 들으니 그게 맞는 것 같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그를 향해 남궁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대자재천의 신명에 걸맞은 거대한 규모, 그리고 창조와 파괴를 합치면 답은 하나야. 아홉 개의 천문을 한날한시에 파괴하면, 열릴 거야.”
“예? 축성 때문에 하나도 될까 말까 한데, 한날한시에 아홉 개를 부숴야 한다고요?”
“그래. 축성이 되어 있어서 흠집도 나지 않았다니 그것도 고민이네.”
남궁연이 축성을 걱정하자 연적하는 기가 막혔다.
“아니 누님. 진신(眞神)이 아니라 진신 할아버지가 와도 한날한시에 구주의 천문을 부술 수는 없어요. 그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라고요.”
“적하야. 천문 여는 걸 인간의 눈높이에 맞춰 생각하면 안 돼. 최고 신들조차 이 세계를 벗어날 수 없었잖아. 마신의 말처럼 어쩌면 이 세계는 창조신이 만든 감옥인지도 몰라. 그런 세계에서 빠져나가는 게 쉬울 거라고 생각하니?”
“그래도 구주의 천문을 한날한시에 부수는 건 진짜…….”
연적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사 남궁연의 말이 옳다 해도 그걸 해낼 수 있는 존재가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축성까지 되어 있는 천문을 무슨 수로?
‘하나도 될까 말까 한데 구주에 있는 아홉 개의 천문을 한날한시에 부숴야 한다고?’
그건 천문을 열지 못한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남궁연이 황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연적하를 보며 말했다.
“나는 우리가 그저 우연히 이 세계에 온 게 아니라고 생각해.”
“우연이라기보다는 팔황신모의 농간에 걸려서 온 거죠.”
“그게 전부는 아닐 거야.”
“그게 전부인데요?”
“아니, 나는 더 큰 힘이 작용됐다고 생각해.”
“더 큰 힘요?”
“이를테면 이 모두가 창조신의 섭리일 수도 있어.”
“누님. 우리는 이 세계의 창조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잖아요?”
“적하 너에게는 아홉 개의 검령이 있지?”
“예.”
“그리고 너는 아홉 개의 검령을 네가 원하는 곳에 꺼낼 수 있고?”
“누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구주라고요. 구주가 얼마나 넓은지 누님도 아시잖아요? 운종술로 서쪽의 하서주에서 동쪽의 영천주까지 가는 데만도 두 달이 넘게 걸린다고요.”
하지만 남궁연은 흔들리지 않았다.
“적하야, 사람의 눈으로 구천검령을 재단하지 마. 구천검령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존재일 수도 있어.”
“…….”
연적하도 그 말에는 반박하지 못했다.
비경에서 구천검령을 처음 만나던 날의 일이 떠올라서다.
-우리는 아홉 하늘[九天]의 수호자로 ‘구천검령’이라 불린다.
-신들조차 우리 중에 셋 이상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우리 중 하나만으로도 능히 악신(惡神)에 맞설 수 있다.
-구천검령을 온전히 받으면 만신(萬神)조차 앙복(仰伏) 하리라.
구천검령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그때는 그저 초월적인 검령이 으레 하는 말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만약 그게 모두 사실이라면?
자신이 구천검령의 능력을 완전히 알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누님은 반신(半神)에 불과한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구천검령이 너를 택한 것도 그래서일 테고.”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진신들이 모두 달라붙어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들에게는 구천검령이 없으니까.”
“왠지 누님은 구천검령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아는 거 같아요?”
“가끔은 당사자보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잘 볼 수도 있잖아.”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러죠. 누님은 정말 신비한 사람이에요.”
말과 함께 연적하는 남궁연의 손을 잡아 슬쩍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못이기는 척 그의 품에 안긴 남궁연이 샐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 더 응큼해진 것 같구나. 천족 아가씨들에게 그러고 다닌 건 아니겠지?”
“누님이 천족 아가씨들을 안 만나 봐서 그래요. 모두가 저보다 머리통 하나만큼은 크다고요. 팔뚝은 또 얼마나 굵은데요. 머리카락이 긴 아저씨들 같다니까요.”
“풋!”
남궁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나친 과장이라는 걸 알면서도 참을 수가 없었다.
기회만 엿보고 있던 연적하는 그녀가 방심한 틈에 얼른 입맞춤을 시도했다.
나름 퇴짜 맞을 걸 각오하고 한 행동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남궁연은 오히려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한차례 격렬한 입맞춤 뒤에 그녀는 연적하를 슬며시 밀어냈다.
“아기가 보고 있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아기가 본다고요?”
“응, 화가 났나 봐. 지금 발길질을 하고 있어.”
그 말에 연적하는 더 달려들지 않았다.
아무리 좋아도 아기가 화가 나서 발길질까지 한다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
다음 날.
연적하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천역(天域, 천문이 세워진 곳)으로 올라갔다.
말없이 서 있는 거대한 두 개의 돌기둥을 보니 착잡했다.
‘축성’, ‘파괴’, ‘창조’라는 세 개의 단어가 산만하게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는 ‘천문을 여는 법’에 대한 남궁연의 해석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매사에 즉흥적인 자신과 달리 신중한 사람이니까.
이제 자신의 차례다.
어떻게든 한날한시에 천문을 깨야만 한다.
그것만도 힘든 일인데 창조신의 축성까지 깃들었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기 그지없다.
돌기둥 앞에 우두커니 서있던 연적하는 문득 허공에서 천둔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천둔검으로 돌기둥을 슬쩍 찔렀다.
텅-.
가벼운 반동이 검신을 타고 손목까지 전해졌다.
아직은 보통의 석벽과 다를 바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쓰읍! 하아!”
긴장한 연적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은 뒤 천둔검에 영기를 불어 넣었다.
우우웅-.
가벼운 검명이 천역에 울려퍼졌다.
그는 섬전처럼 돌기둥의 기단(基壇) 부위를 찔러 갔다.
채앵-!
맑은 쇳소리와 함께 천둔검이 세차게 튕겨 났다.
“깜작이야! 썅!”
연적하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돌기둥에서 되돌아온 반탄력이 얼마나 컸던지 하마터면 검에 맞을 뻔했다.
“이게 안 되네…….”
창조신의 생령으로도 축성을 깰 수 없다니 의외다.
남궁연의 말처럼 이 모두가 창조신의 섭리고, 구천검령이 천문을 여는 열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