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67
767회. 저도 돌아갈 수 있을까요?
천족들은 ‘공간의 창고’로 불리는 ‘마하담’의 주법을 가르칠 때, ‘씨를 뿌린다’고 한다.
스승이 제자에게 ‘마하담’의 일부를 나눠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하담’은 직접 전달하지 않으면 천하의 어떤 현자도 터득하지 못한다.
일단 ‘마하담’의 일부를 전해 주면 그다음은 제자의 몫이다.
제자의 역량에 따라 ‘마하담’의 크기가 결정됐다.
평균적으로 천족의 마하담은 폭이 두 자(약 60센티미터)에 길이가 여섯 자(약 180센티미터) 안팎이었다. 장검이나 창 하나와 활 하나를 넣기에 적당한 크기다.
평균보다 작은 천족은 주무기인 장검이나 창을 넣고 다녔다.
‘마하담의 씨앗’을 전한 앙겔로스 에스테릭이 복잡한 눈으로 연적하 대종사를 보았다.
천계의 역사상 ‘마하담’의 주법이 인간에게 전해진 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도 마음이 무거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 봐야 천족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
인간은 천족에 비해 열등하다.
신체는 물론 지혜도 천족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떨어진다.
양심에 찔린 그는 대종사가 만들어 낸 ‘마하담’을 애써 깎아내렸다.
“그것이 대종사님의 ‘마하담’입니다. 보통은 이 정도 크기인데, 대종사님의 것은 어땠습니까?”
“조금 커요.”
애매한 대종사의 답에 앙겔로스 에스테릭의 눈두덩이 가볍게 실룩거렸다.
창고라고 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본래 ‘마하담’이 ‘공간의 창고’로 불리니까 ‘창고’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크다니?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손으로 크기까지 표시한 자신에 비해 너무 성의 없는 대답이었다.
‘대종사의 체면 때문에 얼버무리는 것인가?’
아무리 대종사가 뛰어난 무위를 지녔다 해도 인간의 굴레는 벗을 수가 없다.
그러니 ‘조금 크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리라.
‘인간치고는 조금 크게 만들어졌다, 정도려나?’
그렇게 생각한 앙겔로스 에스테릭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하담’의 크기를 천족과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종사님이 인간 최초로 ‘마하담의 씨앗’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기적과 같은 일이니까요. ‘마하담’은 수련의 경지에 따라 조금씩 커질 수 있습니다. ‘마하담의 씨앗’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
연적하는 그가 오해했음을 알았지만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그걸 긍정으로 받아들인 앙겔로스 에스테릭은 진중한 어조로 부탁했다.
“말씀드렸다시피 ‘마하담’은 천계의 일곱 왕가가 특별히 관리하는 주법입니다. 그러니 타인의 앞에서는 ‘마하담’을 사용하지 말아 주십시오. 만약 대종사님께서 ‘마하담의 주법’을 익혔다는 게 알려지면 천계와 종문은 불편한 관계가 될 것입니다.”
“그럴게요.”
연적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곧 강호로 돌아갈 몸이기도 하거니와, 전쟁도 끝난 마당에 이 세계에서 ‘마하담’을 쓸 일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대종사님의 약속을 믿고 가 보겠습니다.”
약속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앙겔로스 에스테릭은 얼렁뚱땅 약속이라는 말로 포장했다.
연적하도 그걸 눈치챘지만 자신은 어차피 떠날 사람인지라 지적하지 않았다.
***
그날 저녁.
안학궁.
연적하는 남궁연에게 ‘마하담의 주법’을 가르쳤다.
포갰던 손을 뗀 연적하는 앙겔로스 에스테릭이 그랬듯 남궁연에게 물었다.
“누님, 조금 전에 손이 붙었을 때 뭐가 보였죠? 그게 ‘마하담’이라는 공간 창고예요. 누님 건 크기가 얼마나 돼요? 보통은 이만하다고 하던데.”
연적하가 두 팔을 활짝 벌려 보였다.
고개를 갸웃하던 남궁연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답했다.
“그래? 나는 좀 크네?”
“얼마나 큰데요?”
“천지종에 있는 서각(書閣) 정도?”
“아…….”
자랑할 기회를 잃은 연적하의 입에서 김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천지종의 서각은 못해도 창고의 세 배는 된다.
그러니까 남궁연의 ‘마하담’은 자신보다 세 배나 더 크다는 소리였다.
“네 ‘마하담’은 어때?”
“저요? 저는 그보다는 많이 작아요.”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이며 회피하는 듯하자 남궁연은 더 묻지 않았다.
잠시 후 연적하가 불쑥 말했다.
“내건 와룡장에 있던 창고만 해요.”
“잘됐네. 너는 행낭이나 등짐을 귀찮아했잖아.”
크기가 다르면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천족들과 달리 남궁연은 마하담을 이동식 창고처럼 생각했다.
“헤헤, 그건 그래요. 누님은 뭘 넣어 둘 거예요?”
“서가(書架)를 옮겨 놓으려고. 무엇보다 책을 보관하기에 적당한 것 같아서.”
“누님은 책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다른 건 네 ‘마하담’에 넣어 두면 되니까. 설마 혼자 돌아다닐 생각은 아니겠지?”
“아하! 그러면 되겠네. 누님은 책을, 나는 이것저것 잡다한 것으로 채우면 천하를 앞마당으로 써도 되겠다.”
“하루 종일 대문 밖으로 나가지도 않던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야 석경장이 처음 생긴 집이니까 정붙이느라고 그런 거죠.”
“그랬구나. 방구석에서 뒹굴거리는 걸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고?”
“누님도 등 떠밀려서 강호를 돌아다녀 봐요. 집에서 나가고 싶어지나. 내가 녹림의 십두마병들 때문에 얼마나 바쁘게 뛰어다녔는지 아시잖아요?”
“남연객점의 주인이 돼서 푹 쉬지 않았어?”
“아, 그랬나? 왜 객점 생각이 하나도 안 나지? 그러고 보니 돈 좀 쌓였겠는데요?”
연적하는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말을 하고 나니 남연객점에서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사기를 당한 일부터 금의위와의 만남, 금의위 도움으로 숙부 이우석의 가족을 찾은 것, 그리고 녹림을 이끌고 유명교와 싸우던 일들…….
그러고 보면 자기 인생에서 제법 중요한 일들이 남연객점에 있을 때 일어났던 것 같다.
추억에 잠겨 있는 그의 귓가로 남궁연의 음성이 들려왔다.
“참, ‘생명의 나무’ 열매를 받았다면서? 심 노인의 치료는 언제 할 생각이니?”
“내일 아침에요. 혹시 몰라서 의원을 불러다 놓고 먹이려고요. 골골거리는 사람이 약효가 너무 강한 걸 먹으면 그것도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래, 잘 생각했어. 나도 그게 조금 신경 쓰였거든.”
“그리고 천문(天門)을 부수는 것 말이에요.”
“응, 왜?”
“잘하면 될 것도 같아요.”
“어떻게?”
“처음에는 구천검령을 날려 보낼까 했는데, 그게 영 불가능할 것 같더라고요. 천문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구천검령을 어떻게 보내요?”
“그건 그렇지. 그래서?”
“그보다는 구룡번신으로 날아가 보려고요. 누님도 알죠? 구룡번신이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거.”
“아홉 종문의 천문을 한번에 갈 수 있겠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죠. 누님이 그랬잖아요.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안 된다고. 나도 명색이 반신(半神)이고, 구룡번신에 공간 이동의 묘가 담겨 있다면, 시도해 볼 만하잖아요. 왠지 그게 바른길 같더라고요.”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거겠지. 구룡번신으로 날아가 구천검령으로 부수겠다? 왠지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때 문밖에서 신무희 노조의 음성이 들려왔다.
“대종사님, 심통 진인이 찾아와 객청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찌할까요?”
잠시 생각하던 남궁연이 말했다.
“우리가 나갈 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세요.”
“네,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이윽고 신무희 노조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그녀가 사라지자 남궁연이 찜찜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혹시 신 노조가 우리 이야기를 들었을까?”
“글쎄요. 작정하고 엿듣는 사람이 아니라면 듣지 못했을 걸요? 신 노조는 어떤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이냐니?”
“믿을 만한 사람이에요? 곡 노조 같은 사람이면 영 아니잖아요.”
“염화전에 있을 때부터 나를 잘 따르던 사람이야. 그래서 데리고 온 거고.”
“그럼 믿을 만하다는 거네요. 신경 쓰지 마요.”
“그래, 나가 보자. 심 노인도 궁금해서 못 참고 달려온 것 같은데.”
남궁연은 애써 의심을 떨쳐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무의 노조는 엿들을 사람도 아니지만, 그럴 이유도 없는 까닭이다.
***
안학궁 객청.
연적하와 남궁연이 나란히 들어오자 핏기 없는 얼굴로 앉아 있던 심통이 일어나려고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걸 본 연적하가 손을 휘저으며 만류했다.
“심 노인, 그냥 앉아 있어. 그러다 넘어가면 우리만 더 귀찮아져.”
“흐흐, 예.”
일어나는 시늉을 하던 심통이 다시 주저앉았다.
사실 일어날 마음이 있었으면 뭉그적거리지 않고 바로 일어섰을 것이다.
그건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연적하와 남궁연이 자리에 앉자 심통이 먼저 운을 뗐다.
“늙은 천족 하나가 왔다가 갔다고 들었습니다. 앙겔로스 왕가에서 온 사자(使者)라지요?”
“어, 맞아. ‘생명의 나무’ 열매를 가지고 왔더라고.”
연적하의 말에 심통의 눈이 빛났다.
그게 자신의 치료를 위해 쓰일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 노인 얼굴을 보니까 갑자기 고민이 되네. 그게 ‘피나카 아스트라’와 바꾼 보물이잖아. 그런 걸 심 노인처럼 오늘내일하는 늙은 이를 위해 써야 하나 싶어서. ‘창창한 나를 위해 남겨 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심 노인 생각은 어때?”
“‘생명의 나무’ 열매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근본은 과일 아닙니까? 과일은 신선할 때 먹어야지 오래 묵히면 썩어서 버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심 노인에게 달라?”
“제가 먹으면 약이 되지만, 공자님은 드셔 봐야 그저 똥이 되어 나올 뿐이니까요.”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럼 내일 아침에 줄 테니까 그때 먹어.”
“지금 먹으면 안 되겠습니까?”
심통의 시선이 남궁연에게로 향했다.
연적하가 안 된다니 남궁연에게 매달린 것이다.
“심 노인이 과일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질까 봐 그런대요. 내일 아침에 의원을 불러올 테니까 그 앞에서 먹도록 해요.”
“아, 예!”
남궁연의 설명에 심통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서두르다 마지막 기회를 망치는 것보다 그게 낫겠다 싶어서다.
뚱한 얼굴로 보던 연적하가 ‘쯧쯧!’ 하고 혀를 찼다.
“그거 안 줄까 봐 이 밤에 달려온 거야? 나이를 먹었으면 좀 느긋해져 봐.”
“흐흐, 죽을 날을 받아 놓으면 원래 좀 서두르게 되어 있습니다요.”
“심 노인은 사람이 참 한결같아.”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요.”
“그래, 변하지 말고 그대로 주욱 살아.”
예전처럼 연적하와 농지거리를 주고받던 심통이 지나가듯 물었다.
“저도 돌아갈 수 있을까요?”
“왜? 천년만년 이곳에서 살고 싶다면서?”
“온몸이 돌처럼 굳어서 숨만 겨우 쉬고 있을 때 알았습니다. 월아와 금아에게 제대로 된 스승 노릇을 못 했다는 걸. 내 욕심 때문에 일만 시켰지 뭐 하나 해 준 게 없습니다.”
그를 지그시 보던 연적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일 군림전에 자리 하나 비워 두라고 할 테니까 옮겨. 만에 하나 몸이 다 나아도 덕유봉에서 내려갈 생각하지 마. 언제 가게 될지 모르니까. 심 노인 찾아다닐 시간 없다는 거 명심하고.”
“예, 예. 몸이 안 나아도 저를 데려가 주셔야 합니다?”
“왜? 골골거리는 몸으로 돌아가서 어린 제자들 고생시키게?”
“흐흐, 그것도 좋겠네요.”
“아휴! 저 뻔뻔한 인간. 월아와 금아가 똥을 밟은 거지.”
남궁연은 투덜거리는 연적하를 보며 도리어 웃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그가 심통만 만나면 소년처럼 조잘조잘 떠들어 대서다.
그날 밤.
안학궁에서 나온 그림자 하나가 덕유봉 중턱의 천수각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