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68
768회. 알면 다쳐
천수각.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안학궁을 나온 신무희 노조는 곡분조 노조의 거처로 찾아갔다.
보통은 방문 밖에서 상대를 부르기 마련이나 그녀는 서슴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곡분조 노조가 천수각의 각주라는 걸 생각하면 평범하지 않은 행동이다.
심지어 그녀는 침상에 걸터앉아 곡분조 노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기까지 했다.
놀라운 건 곡분조 노조의 반응이다.
인기척에 눈을 뜬 곡분조 노조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물었다.
“무희?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냐?”
“당신에게 나는 어떤 존재죠?”
뜬금없이 던져진 질문에 곡분조 노조가 눈을 끔뻑였다.
여자들이란!
종문의 제자건 일반인이건 가끔씩 저렇게 종잡을 수 없는 소리를 한다.
잠이 달아나자 곡분조 노조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그런 소리를 하지?”
“대종사님과 빙 제군님의 관계가 부러워서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나는 뭔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건 그들이 ‘대종사’와 ‘제군’이라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만약 너와 내가 그들의 위치에 오른다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할 게다.”
“그런가요?”
“그렇고말고. 그런 낯간지러운 소리를 듣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냐?”
문득 곡분조 노조가 신무희 노조의 탄력 있는 둔부로 손을 뻗어 갔다.
그의 손이 닿기 직전 신무희 노조가 말했다.
“그러려면 당신이 지금보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야겠죠? 당신에게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그녀에게는 천문이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노조에 불과한 그녀에게 천문은 머나먼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대종사에게 찍혀 자리가 위태로운 곡분조 노조에게는 귀한 정보이리라.
뜻 모를 소리에 곡분조 노조는 손을 거두어들였다.
예고도 없이 깊은 밤에 찾아온 것도 그렇고, 뭔가 일이 있는 모양이다.
“무슨 소리냐?”
곡분조 노조가 관심을 보였다.
빙설화 제군이 처음 염화전에 들어갈 때부터 신무희 노조에게 지켜보라고 했다.
그동안 주목할 만한 이야기가 없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기회라니?
뭔가 놀랄 만한 일이 생긴 것일까?
“기회라니까 잠이 확 깨요?”
“잠은 진즉에 깼느니라.”
말과 함께 곡분조 노조는 그녀의 엉덩이를 가볍게 움켜잡았다.
신무희 노조가 그의 손을 툭 쳐 내며 말했다.
“그냥은 안 되고, 영석 세 개는 받아야겠어요.”
“영석을 세 개나 달라고?”
곡분조 노조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진인 시절에 영지 선초로 유혹을 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그녀는 항상 뭔가를 요구해 왔다.
영지 선초는 두 사람의 신분이 높아지면서 혼석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오늘 무려 영석을 세 개나 요구한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세 개로도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곡분조 노조는 신무희 노조의 얼굴을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종문에서 영석은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의 보물이다.
물론 자신이 천지종의 살림을 맡고 있기에 영석 세 개를 빼돌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주지 못할 건 없지만 그녀에게 호구 잡히는 건 사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니까, 그 정도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면 주마. 무엇이냐?”
그는 천지종의 영석이 제 것인 양 선심을 썼다.
“대종사와 빙 제군은 구주의 천문(天門)을 모두 파괴하려고 해요.”
“…….”
곡분조 노조는 뜻밖의 말에 일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천문은 아홉 종문이 목숨처럼 여기는 보물이다.
심지어 대종사는 천문을 손에 넣으려고 종문들과 전쟁까지 벌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왜 천문을 파괴한단 말인가?
그가 황당한 얼굴로 보기만 하자 신무희 노조가 말을 이었다.
“물론 믿기 어려우실 거예요. 나도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대종사와 빙 제군이 천문을 파괴할 계획인 것은 틀림없어요.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두 귀로 똑똑히 들었거든요.”
“대종사는 천문을 얻기 위해 종문들과 전쟁까지 벌인 사람이다. 그런 그가 애써 얻은 천문을 왜 파괴한다는 거냐? 설마하니 천계에 이양하기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닐 테고.”
“그건 모르겠어요.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아서. 하지만 두 사람이 천문을 부수려고 하는 건 사실이에요. 요즘 대종사가 천역(天域)에서 수련하는 것도 실은 그것 때문이에요.”
곡분조 노조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솔직히 네 말만 들어서는 믿을 수가 없구나. 종문에서 대종사가 천문에 들인 공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내가 곁에서 지켜본 대종사는 결코 천문을 파괴할 사람이 아니다.”
“당신에게 내가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나요?”
“없었다.”
“그런데 왜 믿을 수가 없다는 거죠?”
“끙!”
그녀의 집요한 추궁에 곡분조 노조는 할 말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본인이 직접 들었다는데야!
한참 만에 그가 말했다.
“너는 대종사와 빙 제군이 왜 천문을 파괴하려 한다고 생각하느냐?”
“둘 중에 하나겠죠. 그게 천문을 여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든지, 아니면 천문을 없애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겠죠.”
“그중에 어느 쪽 같으냐?”
“후자일 거라고 생각해요. 이대로라면 천계에 천문을 이양해야 하잖아요. 천계에 넘기느니 없애 버리겠다는 심보가 아니겠어요? 남에게 주느니 부숴 버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천계에서 그걸 알면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어차피 천문은 종문의 물건이잖아요. 천계에서 한동안 펄펄 뛰겠지만 결국은 유야무야 넘어갈 거예요. 화가 나도 어쩔 수 없잖아요? 그건 종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녀의 지적에 곡분조 노조는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종문이고 천계고 간에 대종사를 걸고 넘어갈 곳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네 말뜻은 잘 알겠다. 대종사와 빙 제군이 천문을 파괴하려 한다는 게 사실인지부터 알아내야겠구나.”
“영석을 안 주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사실이 확인되면 주마. 만약 네가 그 이유까지 알아낸다면 네 개를 주겠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그녀는 선선히 동의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인지라 마냥 고집부릴 수가 없었다.
곡분조 노조가 식언할 사람은 아니니 이유까지 알아내는 게 나았다.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되자 곡분조 노조는 슬그머니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았다.
신무희 노조가 기다렸다는 듯 그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그의 부산한 손동작에 몸을 맡긴 채로 생각했다.
자신이 이 밤에 온 것은 그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영석을 얻기 위해서인지.
‘양쪽 다려나.’
어쨌든 영석 하나를 더 얻어 내려면 조금 더 분발을 해야 할 것 같다.
***
다음 날 아침.
안학궁.
연적하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안학궁으로 천지종의 약사(藥師)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 대부분이의 술에 밝아 속세의 의원보다 나았다.
그래서 그들을 의원이라 부르는 종문 제자들도 많았다.
연적하는 그들 중에 가장 실력이 뛰어난 한 사람을 뽑아 심통에게 데리고 갔다.
“양 약사님, 어때요? 괜찮을 것 같아요?”
심통 진인의 진맥을 마친 천지종의 약사 양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본래 ‘생명의 나무’ 열매는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살리고 회복시키는 것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약성이 세다고 해서 크게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가 조금씩 진기 인도를 돕겠습니다.”
“그래 줘요. 워낙 오늘내일하는 사람이라 어떻게 될지 몰라서요.”
“예, 염려 놓으십시오.”
연적하가 ‘생명의 나무’ 열매가 담긴 목함을 열어 심통 진인에게 내밀었다.
심통이 목함에서 어린아이 주먹만 한 붉은 열매를 꺼냈다.
생긴 것은 사과를 닮았는데 크기는 자두만 했다.
방 안 가득 신비한 과일 향이 맴돌았다.
‘생명의 나무’ 열매를 복용한 심통은 즉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한 식경(약 30분)쯤 멍하니 바라보던 연적하가 양제원에게 속삭였다.
“의원님, 원래 저렇게 오래 걸려요?”
“경지가 높으시다 보니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높기는요, 진인에 불과한데.”
“이렇게 되면 언제 끝날지 모르니 가서 일을 보시지요. 진인님은 제가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양제원의 말에 연적하는 다시 심통을 힐끔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언제 눈을 뜰지 모를 상황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연적하는 심통을 양제원에게 맡기고 자리를 떴다.
***
정오 무렵.
덕유봉의 하늘 위에서 한 사람이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구룡번신(九龍御身)으로 사라졌던 연적하가 되돌아온 것이었다.
지면에 내려선 그의 표정이 밝았다.
구룡번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다만 멀리 갈수록 영기의 소모가 극심해 구천검령을 수련할 때와는 또 달랐다.
연적하는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쓰러지듯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리가 덜덜 떨리더니 이내 뻣뻣하게 굳어 왔다.
흔히 말하는 쥐가 온 것이다.
무공을 익힌 이래 다리에 쥐가 오기는 처음이다.
발끝에서 시작된 마비통은 종아리를 거쳐 순식간에 엉덩이까지 이르렀다.
순식간에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되자 연적하는 기가 막혔다.
‘허! 이래서야 두 번은 쓰지 못하겠군.’
조금 멀리까지 갔다 싶으니 하반신이 마비가 될 정도로 후유증이 심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게 단지 육체가 한계까지 내몰려서 생긴 현상이라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자 쥐로 인해 찾아왔던 마비의 증세는 씻은 듯 사라졌다.
“하아! 세상에 공짜는 없구나.”
구룡번신은 찰나지간에 무려 아홉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 주지만, 영기의 소모가 극심하고 육체의 피로도 말할 수 없이 크다.
마지막으로 내려선 장소에 강적이 기다리고 있다면?
“죽는 거지.”
연적하는 씁쓰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툭툭 털었다.
그때 뒤쪽에서 컬컬한 음성이 들려왔다.
“뭐가 죽는다는 겁니까?”
슬쩍 돌아보자 심통이 혈색 좋은 얼굴로 서 있었다.
눈에 정광이 가득한 게 주화입마로 쓰러지기 전의 경지를 되찾은 것 같았다.
“까불면 죽는다고. 이제 좀 살 만해진 얼굴이네?”
“예, 공자님 덕분에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게 왜 욕심을 부려. 내가 영기를 취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흐흐, 생각처럼 살아지면 그게 어디 사람입니까? 신선이지.”
“신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최소한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예, 다시는 욕심부리지 않겠습니다. 이번 일로 많이 깨달았네요.”
“아이고! 퍽이나.”
“그럼 앞으로도 계속 욕심을 부리라는 말씀이십니까?”
“쯧쯧! 말하는 거 보니 살아났네. 살아났어.”
“제가 살아나야 공자님이나 가모님께서 덜 피곤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신공을 연성하시기에 그렇게 힘들어 하십니까?”
“강호로 돌아가기 신공.”
“예?”
심통이 황당한 얼굴로 눈을 끔뻑거렸다.
천문을 열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신공은 뭐란 말인가?
“놀라긴! 천문을 열려면 구룡번신에 통달해야 돼. 그래서 구룡번신을 연습하고 있는 거야.”
“아! 천문을 여는 방법은 알아내셨습니까?”
“어.”
“어떻게요?”
“왜? 알면 대신 열어 주게?”
“공자님도 쓰러질 정도로 어려운 일을 대신하라고요? 못합니다.”
“대신해 줄 마음 없으면 알려고 하지 마. 알면 다쳐.”
심통은 마지막 말을 할 때 연적하의 눈빛이 진지해 더는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