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69
769회. 제가 한 짓이 아니에요.
구월 스무하루.
안학궁.
임신한 지 구 개월이 되자 남궁연의 배는 동산만큼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아침 일찍 연적하를 천역(天域)으로 보낸 뒤 천문(天門)과 관계된 책을 읽었다.
혹시라도 빠트린 게 있을까 염려가 돼서다.
책을 읽던 남궁연은 배 속에서 아기의 움직임이 느껴지자 잠시 멈칫했다.
“아침부터 왜?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은 거니?”
아기가 다시 잠잠해지자 그녀는 피식 웃었다.
문득 ‘여기가 왕들의 하늘이 아니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강호의 어느 곳이라도 좋았다.
태어날 아기까지 세 가족이 모두 한곳에 있는 거니까.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이곳은 아니야. 엄마 아빠는 너를 이런 곳에서 태어나게 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아빠가 하는 일이 잘되기를 기원하렴. 알겠지?”
말과 함께 그녀는 배를 쓰다듬었다.
잠잠하던 아기가 대답이라도 하듯 몸을 꼼지락거렸다.
한참 동안 아기의 움직임에 집중하던 남궁연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조신은 브로크족(아인종 난쟁이)에게 천문을 만들라고 명했다. 창조신의 명에 따라 브로크 족들은 바하르산, 금악산, 퉁룽챈녹, 유명산, 불우산, 태백산, 장백산, 도봉산, 원덕산에 천문을 세웠다.]그래도 천문 작동의 단서를 찾은 뒤라 그런지 이전처럼 막막하지는 않았다.
산달이 되기 전에 비밀을 풀어 다행이다 싶다.
만약 지금까지 풀지 못했다면 아기나 자신에게 좋지 않았을 게다.
‘응?’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려던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천문에 세워진 장소는 익히 알려진 대로 아홉 종문의 종산이다.
하지만 그녀는 뭔가 자신이 놓친 게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만, 천문이 세워질 때 종문이 있었던가?’
아니다.
구주의 아홉 종문은 천문이 세워진 곳에 본거지를 만들었을 뿐이다.
지금이야 종산에 천문이 있는 게 당연하지만, 그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천문이 세워진 장소를 곰곰 생각하던 그녀는 그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발견했다.
‘천문은 마구잡이식으로 세워지지 않았다!’
천문은 천지종을 중심으로 마치 소용돌이치듯 구주를 한 바퀴 돌고 있었다.
세워진 순서를 생각하면 그 형태와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태극(太極)을 소용돌이 문양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건 설마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걸까?’
어느 것부터 부숴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했는데 그 답을 찾은 것 같다.
세워진 순서가 곧 파괴해야 하는 순서이리라.
또 하나의 답을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겁이 덜컥 났다.
그건 아직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더 있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천문에 알지 못한 비밀이 더 남아 있다 해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천지종의 약사들은 늦어도 다음 달이면 출산을 하게 될 거라고 했다.
출산 전에 강호로 돌아가려면 천문의 비밀을 완전히 알지 못해도 강행해야 한다.
그야말로 출산에 부부가 목숨을 건 셈이다.
한참을 생각하던 남궁연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떻게 되든 하늘의 뜻대로 되겠지.”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일지라도 이루는 것은 하늘이어서 강제로 할 수 없다[謀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고 하지 않던가.
그녀는 천문을 파괴할 순서를 알아낸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날 저녁.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연적하와 남궁연은 숙소로 돌아왔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연적하는 침상에 몸을 던졌다.
“아이고! 다리야. 삭신이 다 쑤시네.”
연적하가 앓는 소리를 하자 남궁연이 안쓰러운 얼굴로 물었다.
“많이 힘들지?”
“힘들다기 보다는 지금까지 했던 일들 중에 가장 고된 것 같아요. 그래도 뭐, 그동안 누님에게 다 떠맡기고 잘 쉬었잖아요.”
남궁연이 홀로 천문의 연구를 해 온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러자 남궁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계속 싸움터를 전전하느라 쉬지도 못했잖아.”
그녀가 안쓰러운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종문 간의 전쟁에서 마천의 침공을 막아 내기까지 그는 쉴 틈이 없었다.
“에이, 나한테는 꼼짝도 안 하고 책을 읽는 게 더 고역이에요. 알잖아요.”
“그래, 그렇다고 할게.”
웃으며 다가간 남궁연이 연적하의 다리를 주물렀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연적하가 갑자기 펄쩍 뛰며 만류했다.
“아차차! 안 돼요! 그건 아기에게 일을 시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이 정도는 괜찮아.”
“내가 안 괜찮다니까요.”
완강한 연적하의 거부에 남궁연은 뻘쭘한 얼굴로 물러났다.
그 정도도 아기 때문에 안 된다는 사람이 왜 그렇게 덤벼들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침상에서 떨어지자 연적하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잠시 보고 있는 사이 그의 숨소리가 가늘어졌다.
잠이 든 것이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말을 하다가 말고 잠들었을까.
남궁연은 행여나 그가 깰까 조심조심 다가가서 그의 다리를 주물렀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갑자기 배가 뭉치는 느낌이 들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즉시 손을 떼고 의자에 앉았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아기에게 일을 시킨 거나 마찬가지라는 그의 말이 옳았던 것일까?
책으로도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부드럽게 배를 쓰다듬던 그녀의 눈이 무심코 서가(書架)로 향했다.
어쩌면 몸에 밴 습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때 문득 책장 선반 사이의 빈틈으로 이질적인 뭔가가 얼핏 보였다.
왠지 불편한 느낌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가로 다가갔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빼는 남궁연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청음부(聽音符)?’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저것은 분명 법요종의 부적이었다.
남의 말을 은밀하게 엿듣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던가.
근처에서 영기를 주입해야 발동하는 만큼 안학궁 사람의 짓이라고 봐야 한다.
감히 대종사와 제군의 숙소를 엿들으려 하다니 기가 막혔다.
그녀는 내친 김에 숙소 구석구석을 뒤졌다.
탁자 상판의 아래 우묵한 부분에서 청음부가 하나 더 나왔다.
이 정도면 누군가 작정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누군지 고민할 것도 없었다.
운학궁에서 자신의 처소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신무희 노조뿐이다.
아무래도 어젯밤의 이야기를 엿들은 것 같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총명한 그녀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무희 노조는 자신의 숙소를 엿들을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제군쯤 되는 위치라면 천문에 대한 관심으로 그럴 수 있다.
제군은 천문을 열 수 있는 위치니까.
하지만 신무희 노조는 이제 고작 독요 사 성의 노조에 불과하다.
“어쩐다…….”
남궁연은 그녀의 처리 문제를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지간하면 덮어 주겠는데 그녀의 행동이 도를 넘어선 까닭이다.
***
다음 날 아침.
남궁연은 잠에서 깨어난 연적하에게 두 개의 청음부를 보여 주었다.
“그게 뭐예요?”
“법요종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청음부라는 부적이야. 멀지 않은 거리에서 청음부의 주인이 영기를 주입하면 생생하게 들을 수 있지.”
“아이고, 법요종 사람들은 별걸 다 만드네요.”
“이게 우리 숙소에서 나왔어. 두 장이나.”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던 연적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남궁연과 자신의 숙소에서 저런 요사스러운 물건이 나오다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어떤 놈의 짓이에요? 설마 곡 노조가 한 짓은 아니겠죠?”
“천지종에서 곡분조가 못 가는 곳은 없지만 안학궁은 들어온 적이 없어. 곡 노조는 아닌 것 같아.”
“그가 아니면 누구죠?”
“아무래도 신무희 노조가 한 짓 같아.”
“누님이 신 노조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감정적인 연적하와 달리 남궁연은 냉정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잖아. 신 노조를 믿고 싶지만 정황만 보면 그녀가 한 짓이야. 그게 아니라고 해도 문제야. 신 노조가 맡고 있는 안학궁의 관리가 뚫렸다는 거니까.”
“어쨌든 신 노조의 책임이라는 거네요? 그녀가 했든 안 했든?”
“그렇지.”
“만약 신 노조가 그랬다면요? 왜 그랬을까요? 누구 꼬임에 넘어간 걸까요?”
종문 제자치고 노조와 제군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노조에서 제군이 되려면 생사관(生死關)을 뚫어야 하는데 열 명 중에 하나가 성공할까 말까다.
그게 바로 노조의 숫자에 비해 제군이 극단적으로 적은 이유다.
하물며 신무희 노조는 이제 고작 독요 사 성에 불과하다.
아직 말단에 불과한 그녀가 왜 대종사와 제군을 감시한단 말인가!
“물어보면 알겠지.”
남궁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문 밖에서 신무희 노조의 음성이 들렸다.
“빙 제군님, 저를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들어와요.”
남궁연의 부름에 신무희 노조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대종사와 빙설화 제군을 번갈아 본 후에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그것만 봐서는 도저히 숙소에 청음부를 설치한 사람 같지 않았다.
남궁연이 들고 있던 두 개의 청음부를 신무희 노조 앞에 던졌다.
순간 신무희 노조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가 청음부를 알아보는 듯하자 남궁연이 말했다.
“법요종의 청음부예요. 표정을 보니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이게 우리 부부의 방에서 나왔어요. 할 말 있나요?”
“제군님,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이건 모함이에요.”
신무희 노조가 부인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었다.
남궁연의 입가에 냉소가 어렸다.
“누가 모함한다는 거죠? 우리 부부가 신 노조를 모함하기 위해 꾸민 일이라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신 노조를 모함하기 위해 꾸민 일이라는 건가요?”
그제야 신무희 노조는 자신이 흥분해서 말에 실수가 있었음을 알았다.
“제가 어찌 감히 제군님과 대종사님을 의심하겠어요. 모함이라는 말은 놀라서 엉겹결에 나온 말이었어요. 하지만 맹세코 제가 한 짓이 아니에요.”
신무희 노조를 노려보던 연적하가 불쑥 끼어들었다.
“당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그럼 왜 어젯밤에 우리 부부의 대화를 엿들었어? 그것도 아니라고 말해 보시지!”
신무희 노조는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어젯밤에 대화를 엿들은 것과 청음부를 한데 묶어서 말하니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저는, 저는,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그녀는 앵무새처럼 ‘아니에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결과적으로 ‘청음부 설치’와 ‘엿들었다’는 사실 모두를 부인한 셈이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
수상쩍은 그녀의 태도에 남궁연과 연적하는 그녀가 엿들었음을 확신했다.
“아니긴 개뿔. 왜 아닌지를 말해 보라니까!”
연적하는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뻔뻔한 신무희 노조를 보고 있으려니 큰어머니 생각이 나서 더 화가 났다.
이에 극도로 당황한 신무희 노조는 ‘왜 자신이 아닌지’를 끝내 설명하지 못했다.
아니, 자기를 변호할 말을 찾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하다.
“입 꾹 다물고 있으면 봐줄 것 같아?”
꼭지가 돌아 버린 연적하가 손가락을 튕겼다.
신무희 노조의 몸이 뻣뻣하게 굳는가 싶더니 뼈마디가 제멋대로 뒤틀렸다.
으드드득-.
매 아래 장사 없다.
오줌, 똥을 지린 끝에 신무희 노조는 모두 자신의 짓이라 자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