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70
770회. 신무희가 다른 말은 안 하던가?
신무희 노조가 자백하자 연적하는 즉시 분근착골을 풀었다.
탈진한 신무희 노조는 숨만 깔딱깔딱 쉴 뿐 손가락 하나 꼼작하지 못했다.
기이한 침묵이 방 안을 감돌았다.
그녀는 자신이 흘린 오물 위에 널브러진 상태로 대종사와 빙 제군을 올려다보았다.
‘하아, 하아, 대종사……. 모두가 당신의 뜻대로 된 것 같지? 아니야……. 당신 실수한 거야.’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모든 걸 자신의 짓이라 말했지만, 아니다.
자신의 죄라면 단지 대종사와 빙 제군의 대화를 곡분조 노조에게 옮긴 것밖에 없다.
하지만 곡분조 노조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왜냐면 그가 천지종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인 까닭이다.
그가 무사하다면 자신은 언제라도 복귀할 수 있다.
살아 보겠다고 그를 끌어들이면 그는 물론 자신의 인생도 끝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억울해도 혼자 덮어 쓰고 가야 했다.
넋이 나간 얼굴로 누워 있던 신무희 노조가 일어나기 위해 바둥거렸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남궁연의 음성이 들려왔다.
“왜 그랬어요?”
순간 신무희 노조는 움찔했다.
자신도 궁금하다.
청음부(聽音符)를 붙인 사람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말이다.
혼란스럽던 머릿속이 가라앉자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안학궁은 물론 염화전에서도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대종사와 빙 제군의 방에 청음부라니?
‘설마 곡분조 노조가?’
자신에게 천문을 파괴하려는 이유를 알아내라고 하고서 먼저 움직인 걸까?
천지종에서 대종사의 거처에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곡분조구나.’
대종사가 청음부까지도 자신의 짓인 것처럼 몰아세울 때는 너무 당황해서 ‘누가? 그리고 왜 그랬는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대종사와 빙 제군이 청음부를 자신의 소행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정황상 범인은 곡분조 노조다.
곡분조 노조가 눈앞에 있다면 ‘멍청한 인간!’이라고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을 것이다.
“두 분이 왜 천문(天門)을 부수려고 하는지 이유가 궁금해서 그랬어요. 죽을죄를 지었어요. 용서해 주세요.”
신무희 노조는 그것으로 넘어가기를 바랐다.
실제로 곡분조 노조도 그걸 알고 싶어 했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남궁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신은 우리 부부의 대화를 엿들었어요. 그건 처음부터 작정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왜 우리 부부를 적대시했냐고 묻는 거예요.”
“저, 적대시라니 그건 아니에요.”
신무희 노조는 극구 부인했다.
사실 빙 제군을 감시하듯 살핀 것은 맞지만 적대시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를 납득시켜 봐요. 당신이 왜 우리에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나는 그게 어젯밤에만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무희 노조는 빙설화 제군의 시선을 회피했다.
모두 곡분조 노조가 시켜서 한 일이지만 그걸 밝힐 수는 없었다.
그가 천지종에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자신도 재기할 수 있으니까.
“용서해 주세요. 두 분에게서 뭐라도 얻을 게 있을까 싶어서 그런 짓을 했어요. 제가 욕심에 눈이 멀어 죽을죄를 저질렀어요.”
그녀는 모든 걸 자신의 욕심 탓으로 돌렸다.
남궁연은 끝까지 신무희 노조가 자신의 잘못으로 말하자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럴 증거도 없거니와 정신적으로 너무 피로했다.
자신의 사람이라 여겼던 신무희 노조가 고통받는 것을 보는 건 고역이었다.
남궁연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자 연적하는 즉시 안학궁의 관리자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신무희 노조가 내 방에 몰래 청음부를 붙였어요. 그녀를 군림전의 옥에 가두고, 외부와 결탁한 세력이 있는지 조사하라 하세요.”
“예!”
안학궁의 관리자인 황석 노조가 복도에 시립해 있던 제자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두 명의 진인이 들어와 신무희 노조의 양쪽 팔을 잡아 세운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청음부와 관계된 일련의 소란은 일단락 지어졌다.
***
천지종 군림전.
사시 초(오전 9시).
황석 노조는 신무희 노조를 군림전 주인 목수평 노조에게 데리고 갔다.
그리고 황망한 얼굴로 보는 목수평 노조에게 대종사의 지시를 전했다.
“신 노조가 대종사님의 거처에 은밀하게 청음부를 설치했다가 적발되었습니다. 외부와 결탁한 세력은 없는지 조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독요 사 성인 황석 노조는 독요 오 성인 목수평 노조에게 존댓말을 썼다.
그러자 독요 오 성인 목수평 노조는 슬그머니 하오체를 사용했다.
“그게 사실이오?”
“예, 대종사님의 거처에서 두 개의 청음부를 보았습니다. 데리고 오는 길에 물었더니 본인도 인정을 하더군요. 신 노조가 몹쓸 짓을 한 것은 사실인 모양입니다.”
“허어! 신무희! 너는 빙 제군님의 측근으로 알고 있는데 왜 그런 짓을 했느냐?”
목수평 노조가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신무희 노조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아직 독요 사 성인 탓도 있지만, 조사하라는 명이 떨어졌으니 처음부터 세게 나간 것이다.
신무희 노조가 지친 얼굴로 답했다.
“대종사님과 빙 제군님에게서 뭐라도 얻을 게 있나 싶어서 그랬어요. 모두 그분들의 빠른 성취의 비밀에 대해 알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그랬을 뿐이에요.”
“미친! 그렇다고 감히 대종사님의 거처에 청음부를 설치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내가 죽일 죄인이지만 말은 바로 할게요. 죽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빨리 생사관을 넘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 욕심에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거예요.”
목수평 노조가 기이한 눈으로 신무희 노조를 보았다.
자포자기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담담한 느낌을 주는 태도라니!
‘믿는 구석이 있나?’
곰곰 생각해 봤지만 종문에서 대종사의 심기를 건드리고 무사할 사람은 없었다.
‘아니 설사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해도 관계를 끊고 사라질 상황이거늘.’
저 자신감은 또 뭐란 말인가.
그때 군림전의 뇌옥을 담당한 진인들이 대오를 맞춰 다가왔다.
목수평 노조는 잡념을 떨치고 진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심문은 차차 하면 될 일, 지금은 그녀를 옥사에 가두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자 진인들 중에 하나가 금령선액(禁靈仙液)이 든 잔을 신무희 노조에게 내밀었다.
신무희 노조는 착잡한 얼굴로 잔을 받았다.
찰랑거리는 금령선액을 보니 멸망의 문턱에 바싹 다가선 느낌이다.
그녀는 단숨에 금령선액을 마셨다.
영기를 금제하는 약물은 그 악명과 달리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액체를 삼키자마자 사지백해에 충만하던 영기가 거짓말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갓 지은 밥을 담아 놓은 밥주발처럼 따끈따끈하던 단전도 차갑게 식었다.
진인들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서 있는 그녀를 밧줄로 묶은 뒤에 옥사로 데리고 갔다.
신무희 노조가 사라지자 황석 노조도 목수평 노조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게.”
황석 노조마저 사라지고 군림전 앞마당에는 목수평 노조만 남았다.
돌연 목수평 노조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 신무희는 어쩌자고 그런 짓을 벌인 것일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것 같더니 그저 내숭이었던 건가.”
그나저나 고민이다.
제군들이 대종사에게 죽임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또다시 노조가 사고를 치다니!
이번 일로 대종사가 천지종에 정이 떨어지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그는 신무희 노조의 투옥을 알리기 위해 천수각으로 향했다.
***
천지종 천수각.
사시 정(오전 10시).
때마침 전각의 관리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천수각을 나서던 곡분조 노조가 멈칫했다.
군림전의 전주인 목수평 노조가 마당을 가로질러 자신에게 오고 있었다.
곡분조 노조는 상대가 독요 오 성에 불과하지만 무시하지 않고 기다렸다.
대종사의 눈 밖에 난 자신과 달리 그는 총애를 받고 있으니 잘 보여야 했다.
“군림전의 전주께서 무슨 바람이 불어 아침부터 천수각을 찾아왔는가?”
“각주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목수평 노조는 노조 중에 최고수인 곡분조 노조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나야 늘 그렇지. 그런데 나를 찾아온 건가?”
“예.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뭔가?”
“혹시 안학궁의 신무희 노조에 대해 아십니까?”
“안학궁의 신무희? 오가다 본 적이 있는 사람이네만, 왜 그러나?”
“신 노조가 대종사님의 거처에 청음부를 설치한 죄로 붙잡혔습니다.”
“신무희가?”
“예, 조금 전 안학궁의 황석 노조에게 신 노조의 신병을 건네받았습니다. 대종사님께서 그녀를 군림전의 뇌옥에 가두고 외부 세력과 결탁하였는지 조사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허! 그것 참!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신 노조가 잡혀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신 노조의 말이 가관이었습니다.”
“뭐라고 했기에?”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생사관을 빨리 넘기 위해 그랬답니다.”
“아무리 욕심이 나도 그렇지, 대종사님에게 청음부를 써서야 쓰나!”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 일로 대종사님께서 천지종에 실망하신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종사와 제군들이 반기를 들었다가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쯧!”
“여하튼 잘 알겠네. 신 노조가 군림전의 뇌옥에 수감되었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천수각에서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찾아봤습니다.”
“군림전의 전주가 어려운 걸음을 했구먼. 아랫사람을 보냈어도 될 일인데.”
“아닙니다. 겸사겸사 각주님의 얼굴도 뵐 겸 왔습니다. 천지종에 노조도 몇 남아 있지 않은데, 이런 핑계로라도 자주 만나야지요.”
천지종도 다른 종문처럼 최소한의 인원이 남아 종문을 지키고 있었다.
마천과의 전쟁이 끝났으니 파병 나간 고수들도 머지않아 돌아올 테지만 말이다.
“고맙네. 그런데 신무희의 처벌은 어느 정도 선에서 마무리될 것 같던가?”
“다른 사람도 아닌 대종사님과 빙 제군님의 거처에 청음부를 설치했으니……. 파문을 당할 겁니다. 그 전에 영기부터 회수당하겠지요.”
곡분조 노조가 눈을 찡그렸다.
종문 제자에게 영기를 회수당한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벌이었다.
영기를 잃는 순간 노화 현상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중년의 미부(美婦)인 신무희가 백발의 노파로 변한다고 생각하니 입맛이 썼다.
“신무희가 다른 말은 안 하던가?”
“다른 말요?”
“자기가 청음부를 심은 이유 외에 대해 다른 말이 없었느냐 말일세.”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생사관을 빨리 넘고 싶어서 눈이 뒤집혔던 게지요.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더군요. 노조들의 소원이 생사관을 넘는 거잖습니까.”
“자네가 허락한다면 나도 신무희를 취조해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는가?”
“각주님께서요?”
“내가 대종사님에게 찍혔다는 건 자네도 알잖나. 공을 세워 대종사님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서 그러네. 자네야 이미 충성심을 인정받아 앞날이 탄탄대로겠지만, 나는 언제 정방각으로 쫓겨날지 몰라.”
정방각은 뒷간 청소를 하는 곳으로 천지종에서 가장 밑바닥이었다.
머뭇거리는 목수평 노조에게 곡분조 노조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나에게도 기회를 준다면 섭섭지 않게 보답하겠네. 그래도 아직은 내가 천수각의 각주니까. 자네에게 필요한 걸 제공해 줄 수 있을 걸세.”
그의 유혹에 넘어간 목수평 노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천수각 각주가 죄인을 심문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