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71
771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해시 정(오후 10시) 무렵.
군림전 옥사.
‘덜컹!’하는 소리에 축 늘어져 있던 신무희 노조가 힐끔 고개를 돌렸다.
옥사를 지키던 진인이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나간 지도 한참 되었는데 문소리라니?
지면을 스치는 가벼운 발소리를 들으니 군림전의 진인은 아니었다.
설마 늦은 시간에 또 심문을 하려나 생각하는데 의외의 얼굴이 나타 났다.
천수각의 각주 곡분조 노조였다.
다 죽어 가던 신무희 노조의 얼굴에 살짝 혈색이 돌았다.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하나뿐인 자신의 편을 만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곡분조 노조와 신무희 노조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흔히들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신무희 노조는 걱정이 가득한 곡분조 노조의 눈빛에 긴장을 풀었다.
옥사로 들어간 곡분조 노조는 자연스럽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천지종의 중죄인을 가두는 곳답게 다른 죄인은 보이지 않았다.
곡분조 노조가 쇠창살 앞에 서자 신무희 노조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청음부를 쓴 사람은 물론 당신이겠죠?”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그 말을 해 주기 전까지 대종사와 빙 제군의 주변에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요.”
“아하.”
곡분조 노조는 반박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녀가 자신을 의심하는 건 당연했다.
신무희 노조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대종사와 빙 제군의 거처에 청음부라니. 좀 심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곡분조 노조는 쓴웃음으로 답을 대신한 뒤에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군림전주에게 거짓말을 했더군.”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거죠?”
“생사관을 빨리 넘으려는 욕심에 그랬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면 무엇이냐?”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생사관에 대한 건 거짓이 아니에요.”
노조인 그녀의 꿈 역시 생사관을 넘어 제군이 되는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곡분조 노조가 지나가듯 말했다.
“나는 네가 군림전주에게 대종사와 빙 제군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줄 알았다. 왜 그러지 않았느냐?”
“내가 왜 그래야 하죠?”
“너에게 죄가 있다 해도 천문을 파괴하는 것에 비하겠느냐? 천지종의 관심을 그리로 돌리면 네 죄가 가벼워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뇨. 오히려 반대예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어요.”
“도움이 안 된다고?”
“대종사와 빙 제군의 거처에 청음부를 설치한 죄인의 말을 누가 믿겠어요? 대종사와 빙 제군을 물고 늘어지기 위해 헛소리를 한다 생각할 거예요. 군림전주는 당신과 달리 순진한 사람이니까.”
신무희 노조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곡분조 노조를 보았다.
곡분조 노조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래서 끝내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당신이라면 무슨 수를 낼 수 있을 거예요. 이유를 알아내라고 한 것도 그래서잖아요.”
“그랬지.”
곡분조 노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무희는 좋은 사람이지만 관계를 청산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너는 군림전주에게 사실을 말했어야 했다. 대종사와 빙 제군의 목적이 널리 알려져야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거든.”
“말해도 믿지 않았을 거예요.”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든 신이든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만 골라서 들으니까. 나는 네가 신들이 움직일 빌미를 제공했으면 했다.”
“나야 어떻게 되는 소문을 냈어야 한다는 소리로 들리네요? 맞나요?”
곡분조 노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하지 않겠다.”
황망한 눈으로 곡분조 노조를 보던 신무희 노조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혹시…… 처음부터 그걸 바라고 한 짓이었나요? 나를 이용하려고 청음부를 설치했냐고요!”
신무희 노조의 얼굴이 분노로 달아 올랐다.
생각해 보면 청음부가 고작 하루 만에 들통났다는 것도 이상하다.
곡분조 노조처럼 치밀하고 계산적인 사람의 일치고는 너무 허술하지 않은가 말이다.
“너는 대종사와 빙 제군의 비밀을 떠벌렸어야 했다. 그랬다면 혹 기회를 얻었을지도 모르지. 너의 침묵으로 나만 번거롭게 됐구나.”
“그래서, 당신 뜻대로 움직이지 않은 나를 죽이기라도 할 건가요?”
“너를 죽인 것은 내가 아니라 대종사다. 그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 너를 죽인 것이다.”
죽이겠다는 협박이다.
입술을 악물고 있던 신무희 노조가 차분하게 말했다.
“미쳤군요. 나를 찾아온 외부인은 당신이 유일한데, 대종사가 죽였다고요? 그런 헛소리를 다른 사람들이 믿을 것 같아요? 아니, 천하의 빙 제군이 그런 뻔한 거짓말에 속을 것 같아요?”
“말하지 않았느냐? 이런 일에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신들이 나서서 소문의 진위를 파헤치다 보면, 대종사와 빙 제군이 천문을 파괴하려 한다는 것도 드러나게 된다. 그것이야 말로 내가 바라는 바이다.”
“…….”
신무희 노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신들은 당연히 천문을 지키기 위해 대종사 부부를 제거하려 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랜 세월 잠자리를 함께한 자신을 미끼로 사용하다니!
“당신은 내가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추악한 사람이었군요.”
“뭐라고 나를 비난해도 좋다. 너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
말과 함께 곡분조 노조가 손가락을 튕겼다.
‘퍼퍼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신무희 노조의 몸이 굳었다.
연이어 그는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신무희 노조의 몸을 끌어당겼다.
주르륵 딸려 온 그녀의 몸이 쇠창살에 찰싹 달라붙었다.
곡분조 노조는 신무희 노조의 한쪽 발을 잡아 쇠창살 밖으로 끄집어냈다.
“영기를 빼앗기고 늙어 죽는 것보다 지금의 모습으로 가는 게 너에게도 좋지 않겠느냐?”
“그만해요.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할게요. 군림전주에게 내가 들은 이야기를 다 할 테니까, 나를 놔줘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내가 소문을 내 주겠다고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아쉽지만 너는 기회를 놓쳤다. 지금은 네가 죽어서 나를 도와줄 때다.”
“지금 나를 죽이면 당신이 의심을 받게 될 텐데, 꼭 그렇게 해야겠어요.”
“내가 언제 지금 죽이겠다고 했느냐? 너는 내일 아침에 죽을 것이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발뒤꿈치에는 머릿속의 혈류를 조절하는 상류혈(上瘤穴)이 있다. 그곳을 잘 다스리면 원하는 때에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지.”
친절한 설명과 함께 곡분조 노조는 신무희 노조의 발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가 막 신무희 노조의 상류혈에 수작을 부리려 할 때, ‘덜컹!’ 소리가 들려왔다.
곡분조 노조는 급히 신무희 노조를 안쪽 깊숙이 밀어 넣고 일어섰다.
“허어! 잠시 취조하겠다는데 그새를 못 참고…….”
“아주 지랄을 하세요.”
한순간 곡분조 노조의 몸이 굳었다.
저 깐족거리는 말투와 앳된 음성은 분명 대종사였다.
천역과 안학궁만 오가던 대종사가 이 늦은 시간에 군림전의 뇌옥을 방문하다니?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서둘러 복도로 튀어 나가 허리를 조아렸다.
“대종사님! 이 시간에 뇌옥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죄인을 만나 보러 왔지. 곡 노조는 왜 여기 있어? 나도 모르게 군림전으로 자리를 옮기기라도 한 거야?”
“아닙니다. 그저 대종사님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돼 볼까 해서…….”
“이야! 우리 곡 노조 충성심이 대단하네?”
“…….”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를 소리에 곡분조 노조는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 곡분조 노조의 귓가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사람이 왜 청음부를 내 거처에 붙였대? 어디 그뿐이야? 신 노조를 죽이고 나한테 뒤집어씌우려고도 했잖아? 뭐? ‘너를 죽인 것은 내가 아니라 대종사다. 그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 너를 죽인 것이다’라고?”
대종사가 자신의 말투까지 흉내 내자 곡분조 노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었다.
연적하가 그를 빤히 보며 말했다.
“왜?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 곡 노조는 아직 우리 누님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우리 누님에게는 별명이 좀 많은데, 그중에 하나가 화용독심(花容讀心)이야. 사람의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맞히거든. 차라리 귀신을 속이지 우리 누님은 못 속여.”
“오, 오해십니다.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으나…….”
곡분조 노조가 뒷걸음질 치자 연적하가 벼락처럼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단번에 제압당한 곡분조 노조는 눈만 끔뻑거렸다.
쇠창살 앞으로 그를 질질 끌고 간 연적하가 신무희가 갇힌 옥사의 천장을 가리켰다.
“저기 뭐가 붙어 있는지 봐.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지 않아? 맞아. 곡 노조가 좋아하는 청음부야. 신무희를 가두기 전에 준비해 놓은 거지. 바로 앞에서 말하는 것처럼 잘 들리더라. 곡 노조 덕분에 좋은 걸 배웠다니까. 이런 걸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건가?”
천장에 붙은 청음부를 확인한 곡분조 노조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 내가 졌소. 그래서 나도 죽일 거요?”
“아니야.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되나. 그냥 영기만 회수할게.”
“죽이시오. 이 나이에 영기를 빼앗기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으니까.”
곡분조 노조는 대종사가 죽여 주기를 바랐다.
어차피 영기를 빼앗기면 급속도로 노화되어-숨만 깔딱거리다가-죽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연적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누구 좋으라고 죽여? 세상에서 제일 사악한 게 뭔지 알아? 가까운 사람 뒤통수치는 거야. 신무희와 당신은 편하게 죽을 자격도 없어.”
“나를 죽이지 않으면 대종사와 빙 제군이 하려는 짓을 만천하에 알릴 거요. 그래도 괜찮겠소?”
“와아! 나를 자극해 보겠다고? 이거 왜 이래? 나도 들은 게 있어. 영기를 잃으면 그동안 막아 두었던 노화 현상이 찾아온다면서? 그쪽이 독요 구 성이니까, 천 년은 넘게 살았겠네? 신무희도 독요 사 성이니 최소한 오륙백 년은 살았을 테고. 오륙백 년, 천 년의 세월이 한 번에 밀려오면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겠어?”
대종사가 뜻을 꺾지 않자 곡분조 노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내가 대종사라면 후환거리를 남겨 두지 않을 거외다.”
“괜찮아. 두 사람은 살아서 이 뇌옥을 나가지 못할 테니까. 영기를 회수하고 이곳을 금지로 만들 거거든. 먹을 건 심통 진인이 넣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둘이 늙어 가는 모습 보면서 다정하게 노후를 보내는 거야. 고맙지?”
“헛소리 말고 그냥 죽이시오. 죽이란 말이오!”
“어디서 대종사에게 명령이야? 그냥 곱게 늙어 죽어.”
연적하의 조롱에 곡분조 노조는 미친 사람처럼 키득키득 웃었다.
“크크큿! 오만방자하구나! 너희들의 비밀이 얼마나 오래갈 것 같으냐? 너와 빙 제군도 머지않아 우리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
“대종사 자리에 오래 있을 생각 없어. 그쪽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모양인데. 한 달이면 돼. 설마하니 한 달 안에 무슨 일이 생기겠어?”
“한 달이라니? 그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리냐?”
모든 걸 포기한 곡분조 노조였지만 대종사가 왜 한 달을 들먹이는지 궁금했다.
“궁금해?”
“어차피 죽을 몸, 속 시원히 알고나 죽자.”
“그냥 궁금한 채로 죽어. 나는 적의 소원을 들어주는 멍청이가 아니야.”
곡분조 노조가 뭐라고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찔거렸지만 연적하의 손이 빨랐다.
퍼퍽-!
곡분조 노조의 아혈을 점한 그가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들어와요.”
기다렸다는 듯 군림전주인 목수평 노조가 나타났다.
연적하가 부드러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가 곡분조 노조의 제안을 보고한 덕분에 청음부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수고했어요. 목 노조의 협조 덕분에 일이 아주 잘 풀렸네요. 군림전에 자리를 마련해 주라고 했던 병휴 방사 알죠? 그를 데려오시고, 이 시간 이후로 뇌옥을 봉하세요. 당분간 뇌옥의 관리는 심통 진인이 맡아서 할 거예요.”
“예!”
목수평 노조가 바람처럼 옥사를 빠져나갔다.
잠시 후 목수평 노조는 병휴 방사와 함께 뇌옥으로 들어왔다.
연적하는 상벌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날 밤 곡분조 노조의 영기를 취한 목수평 노조는 독요 육 성, 신무희 노조의 영기를 취한 병휴 방사는 연히 십 성의 노사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심통 진인이 먹을 것을 가지고 옥사를 방문했을 때, 곡분조 노조와 신무희 노조는 서로 멀리 떨어진 좌 우측의 벽에 등을 기댄 채 죽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