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8
78회. 불공평한 세상
낙양 동편 언사.
와룡장.
이른 아침부터 안주인 백미주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바깥채까지 울려 퍼졌다.
“설주가 또 집을 나갔다고?”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아서 찾아가 보니 편지가 있더라고요. 새벽에 나간 것 같아요.”
둘째 연승백이 조심스럽게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편지를 받아 읽은 백미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 미친……. 어제 진평상방에 매파를 보냈는데 오늘 집을 나가? 네 형은 지금 뭐하고 있느냐?”
“백세상방에서 급하게 찾아 낙양으로 갔어요.”
“그놈의 백세상방은 또 무슨 일로?”
“밤새 기루나 도박장에서 일이 터진 거겠죠. 요즘 대놓고 시비 거는 놈들이 좀 많아요.”
“쯧쯧! 그만한 일로 부르는 사람이나, 부른다고 쪼르르 달려가는 사람이나…….”
“어머니, 한번 밀리면 금방 다 내 줘야 해요. 백세상방을 위해서 가는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가는 겁니다. 상방이야 누구에게 관리를 맡겨도 상관없잖아요. 일거리를 잃으면 우리만 손해예요.”
“그래서, 설주가 도망쳤는데, 네 형이 백세상방의 심부름이나 다니고 있는 게 옳다는 거냐?”
“설주는 제가 사람을 풀어서 찾아 볼게요. 너무 형에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연승백은 내심 백미주가 답답했다.
백세상방과 일을 벌이고, 돈을 빌린 것도 모두 어머니다. 형은 그 뒷수습을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형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 형이 혼인을 한 뒤로 더 심해진 느낌이다.
“빨리 찾아, 또 이상한 사고 치기 전에. 얼른 시집을 보내야지 불안해서 살 수가 있나.”
한참을 구시렁거리던 백미주는 방으로 들어갔다.
연승백은 곧바로 상승대를 내보내 연설주의 행방을 수소문하게 했다.
그러나 연설주는 언사는 물론 낙양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연승백이 낙양오협을 찾아가 물어 보았지만 그들도 알지 못했다.
사흘 후.
자정 무렵, 오 남 일 녀가 와룡장의 담을 가볍게 넘었다.
산책하듯 마당을 가로지르던 여자, 월하선자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호호홋! 여기 마음에 드는데? 하남성 교당으로 사용해도 되겠어. 참월검객이 지은 죄는 이것으로 갚도록 해야지. 건물이 다치지 않게 조심들 해.”
“예.”
다섯 명의 십두마병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그들이 낸 소리에 잠에서 깬 와룡장 무사들이 하나둘씩 뛰어 나왔다.
잠시 후 와룡검객 연무백과 연승백이 천천히 불청객들을 향해 다가갔다.
연무백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월하선자는 대답 대신 오연한 얼굴로 모여든 사람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걸리적거리지 말고 연무룡과 관계 없는 놈들은 꺼지거라!”
여자의 말에 연무백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와룡장에 와서 선친을 거론할 사람은 월하선자밖에 없었다.
“월하선자?”
저도 모르게 연무백의 입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순간 와룡장 무사들이 흠칫 놀란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와룡장에 대한 충성심이 약한 낭인들인지라 몸부터 사리는 것이다.
연무백은 급히 연승백을 뒤로 잡아 끌었다.
그사이 늦게 나와서 미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연씨 원로 몇이 언성을 높였다.
“웬 연놈들이냐!”
“오호호홋!”
월하선자가 미친 듯 웃었다.
순간 연무백은 연승백을 데리고 안채로 뛰었다.
와룡장 무사들은 연무백과 연승백이 달아나는 걸 보고는 메뚜기 떼처럼 흩어졌다.
“승백아, 너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거라. 나는 안사람과 함께 피할 테니.”
“어디서 만날까요?”
“일단 백세상방에서 만나 다음 일을 의논하기로 하자.”
“예.”
연무백과 연승백이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곧이어 안마당에서 연씨 원로들과 십두마병들의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건 싸움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와룡장의 연씨 원로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십두마병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싸움은 눈 깜빡할 사이에 끝났다.
시체가 된 다섯 명의 원로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달아난 상황.
월하선자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쯧! 벌레만도 못한 놈들. 그래도 남궁세가는 제법 오래 버텼는데 이건 뭐 칼 뽑을 틈도 주질 않네. 하여튼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남궁세가 때를 생각해 내상을 말끔히 치료하고 왔더니만 송사리 떼처럼 달아나 버린다. 하남성에서 유명한 무가라더니 하오문만도 못했다.
탈명도 고진석이 십두마병을 대표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자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전각에 연가들이 숨어 있는지 한번 둘러보거라.”
“예.”
십두마병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일각쯤 지나 다시 월하선자 앞으로 모였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습니다.”
고진석의 말에 월하선자가 냉소를 쳤다.
“흥! 연가 놈들은 대가 약하군. 날이 밝는 대로 연가 몇 놈을 잡아오거라. 연무룡의 무덤을 찾아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잘나가던 와룡장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무림세가인 남궁세가가 몰락할 때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에 무림인들은 놀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뒷이야기가 더 화제였다.
월하선자는 연무룡의 시체를 파내어 뼈를 부수고, 그 조각을 뒷간에 처넣었다.
그 일로 오랫동안 ‘월하선자에게 원한 살 만한 짓은 하지 마라’는 말이 나돌았다.
남궁세가와 와룡장의 몰락 이후로 강호 문파들은 유명교와 맞서기를 꺼려 했다.
한편 와룡장에서 달아난 상승대와 잠룡대 제자들은 그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낙양의 백세상방에 남아 있던 청룡대와 백호대도 해체됐다. 유명교를 의식한 백세상방이 와룡장과 결별을 선언한 게 원인이었다.
청룡대는 다시 낭인이 되어 강호를 떠돌았고, 백호대는 백미주와 함께 정주 백가장으로 되돌아갔다.
소가주인 연무백은 동생 연승백과 함께 처가인 정주 양가장으로 들어갔다. 어쩌다 팔자에 없는 데릴사위가 되고 만 셈이다.
정주에는 유명교의 세력이 없는 터라 양가장은 두 형제를 환영했다. 그렇게 해서 와룡장의 뿌리는 낙양에서 정주로 옮겨갔다.
***
하남성.
방성현.
오후의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노인과 청년이 번화가로 들어섰다.
두 사람 모두 무림인인 듯 노인은 유엽도를, 청년은 고풍스러운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제대로 쉬어 보자고 오봉산을 떠난 연적하와 심양각이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야아, 단출하게 다니니까 정말 좋네. 누가 사고 칠까 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무림인이 몰려다니면 좀 그렇긴 하지요. 싸우러 가는 게 아닌 다음에야.”
“그런데 심 노인은 왜 따라 나온 거야?”
“흐흐, 죽기 전에 은혜를 갚으려면 부지런히 따라다녀야지요.”
“산에 처박혀 있으려니 심심해서 그러는 건 아니고?”
“그런 것도 좀 있고요.”
“하여간 보통 늙은이가 아니야.”
그러면서도 연적하는 싫은 기색이 아니다. 세상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 길까지 모르는지라, 심양각과 함께 다니는 게 편했던 것이다.
“공자님,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요?”
“그러자고.”
두 사람은 가까이 보이는 신흥반점으로 들어갔다.
숙박과 식당을 함께하는 곳이라 그런지 조금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구석진 자리에 엉덩이를 걸치자마자 점소이가 쪼르르 다가왔다.
연적하를 대신해 심양각이 간단히 주문을 마쳤다.
점소이는 주방으로 가면서 신기하다는 듯 연적하와 심양각을 힐끔거렸다.
젊은이 대신 노인네가 나서서 주문하는 게 꽤나 생소했던 모양이다.
잠시 후 통닭 요리[料子全鷄]와 양육탕(羊肉汤), 양고기 찐빵[羊肉装模], 돼지고기, 편육, 계란국, 채소 볶음 등이 탁자 위에 가득 차려졌다.
둘이 먹기에는 조금 많아 보이는 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부러운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돈이 넘쳐나는 두 사람에게 이 정도는 일상에 불과했다.
싱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절반쯤 먹었을까?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여섯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행색을 보니 떠돌아다니는 낭인들이다.
고생이 심했는지 남루한 행색이었지만 눈은 살기로 번들거렸다.
낭인들은 오자마자 창가 자리로 몰려가 앉아 있던 손님들을 쏘아보았다.
그 흉흉한 눈빛에 놀란 손님들이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자 두 개가 비자 낭인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인이나 점소이는 감히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고 조용히 주문만 받아 갔다.
열심히 먹던 심양각이 말했다.
“공자님, 오늘은 이곳에서 묵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든지.”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먹다 보니 어느새 해거름 무렵인지라 길을 떠나기도 애매했다.
“그럼 식사를 마친 뒤에 방을 잡겠습니다.”
“알아서 해.”
어느 정도 배가 불러 오자 연적하는 차를 마셨다.
배부르게 먹었음에도 탁자의 음식은 절반이나 남았다.
깨진 바가지 하나를 들고 구걸로 연명하던 날을 생각하면 꽤나 성공한 인생이다.
연적하는 과거를 떠올리며 피식피식 웃었다.
그때 낭인들 중 하나가 말했다.
“처먹지도 못할 걸 뭘 저렇게 시킨 거야? 하여튼 세상 불공평하다니까. 누군 쌔빠지게 일해도 만두 하나 사 먹기 힘든데, 어떤 새끼들은 넘쳐서 버릴 지경이니.”
그러자 심양각이 고개 들어 연적하를 바라보았다.
“흐흐, 자기들도 힘으로 남의 자리를 빼앗고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지랄하는 놈들이 있네요.”
순간 여섯 명의 낭인들이 하던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낭인들의 우두머리인 적혈검 추공이 입을 열었다.
“늙은이,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냐?”
그 말에 연적하가 바로 반응했다.
“오오! 늙은이래. 심 노인, 여기서 참으면 몸에 사리가 생길지도 몰라.”
심양각이 눈을 찡그렸다.
참으라는 말인지, 참지 말라는 말인지 헷갈려서다.
두 사람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추공이 연이어 말했다.
“이런 씨벌, 어린놈이 깐족거리기는. 오래 살고 싶으면 주둥이 닥쳐라.”
연적하가 욕을 먹자 심양각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낭인들 쪽으로 상체를 돌렸다.
“으흐흐. 감히 공자님을 욕보이다니…….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심양각의 전신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유형화된 살기는 여섯 낭인의 몸을 짓누르고, 숨통까지 틀어막았다.
“끄으으으…….”
“크헉!”
낭인들이 탁자에 머리를 처박고 버둥거렸다.
낭인들의 입에서 거품이 뽀글뽀글 흘러나올 즈음 연적하가 말했다.
“심 노인, 그만해. 그러다가 사람 잡겠어. 보기에도 흉하니까 다음부터는 차라리 팔이나 다리를 부러뜨리라고. 이건 아닌 것 같아.”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깔끔하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심양각이 송구하다는 듯 머리를 조아렸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낭인들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닥만 바라보았다.
연적하가 추공에게 물었다.
“거기 나한테 욕한 아저씨, 이름이 뭐야?”
“추, 추공이라고 합니다.”
“여기 남은 음식 전부 그쪽으로 가져가.”
“예?”
추공은 한순간 연적하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우리가 남긴 음식을 아저씨 자리로 옮기라고. 보기엔 이래도 아직 먹을 만해.”
“아, 예.”
그제야 추공과 다섯 낭인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을 옮겼다. 그들은 ‘때리고 어른다더니 이젠 먹을 걸 주려나 보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