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93
793회. 가까운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니라
사천성.
성도 동남편 간양.
당가.
철한각(鐵寒閣).
당가의 가주와 원로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모두 한 식경(약 30분)쯤 전에 받은 편지 한 통 때문이다.
총호법 오독수 당불위가 말을 이어갔다.
“……하여 일단 출타 중인 제자들을 급히 불러들였고, 성도에 나가 있는 제자들에게도 기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거리가 있는지라, 그들의 합류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연적하가 정말 오늘 밤에 찾아온다면 현재 당가의 전력만으로 그를 상대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당세운 장로가 물었다.
“이것이 연적하의 단독 행동인지, 남맹의 지원을 받은 것인지 아는 바가 있소?”
“사천성에서 사천무림이 모르게 일을 벌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천성 어디에서도 남맹의 무인들이 목격되지 않았습니다. 십중팔구 연적하의 단독 행동으로 보여집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그의 성정을 보면 거의 맞을 겁니다.”
“그가 혼자 벌인 일이라면 걱정할 게 없지 않소?”
“그렇기는 합니다만, 연적하가 미치지 않고서야 혼자서 당가를 찾아오겠습니까? 분명 그를 돕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 숫자가 미미하여 사천무림의 눈에 띄지 않은 것일 테지요.”
당세운과 여러 장로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극소수의 고수들이 움직였다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터였다.
아까부터 화를 참고 있던 당이주 장로가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그 미꾸라지 같은 놈을 이번에는 반드시 처치합시다! 지금이야 녹림과 남맹이 놈을 편들고 있지만, 막상 그놈이 죽으면 복수하겠다고 나설 사람은 없을 거요.”
장로들 중에서 누군가 화답하듯 말했다.
“연적하와 가까운 고수들이 없으니 그렇기는 할 겁니다. 그의 처가인 남궁세가가 조금 걸리지만 그 정도는 사천무림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당가와 척을 지면 어떻게 되는지 천하에 보여 줍시다.”
“당가에 이따위 편지라니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이오!”
“놈의 면전에서 석경장의 포로들이 죽이는 건 어떻소? 당가의 위엄도 알리고, 연적하도 흔들어 놓는 거요. 제아무리 뻔뻔한 놈이라도 그 정도면 충격을 받지 않을까 싶은데.”
“그거 좋은 생각이오. 석경장의 포로들을 죽여 놈의 기를 꺾읍시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종종 예기치 않은 흐름으로 빠질 때가 있다.
지금 당가가 그랬다.
연적하의 방문을 대비하기 위한 회의는 엉뚱하게 석경장 포로를 죽이자로 치달았다.
장로들의 말에 총호법은 가주에게 슬쩍 시선을 돌렸다.
당가 가주 암영무흔 당세호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당가와 석경장, 남맹은 적이었다.
적의 포로를 언제까지 잡아 두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어쩌면 지금이 포로를 처리할 절호의 기회인지도 몰랐다.
덤으로 연적하에게 충격을 안겨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석경장 포로들의 운명이 결정됐다.
해가 지자 당가 사람들은 마당에 화톳불을 피웠다.
그리고 옥에 가두었던 석경장 사람들을 마당으로 끌고 나왔다.
삼보절명 당운망과 월아, 금아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당운망은 기회를 틈타 곁에 서 있는 외각 소속의 당가 무인에게 슬쩍 물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우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온 것이냐?”
순혈의 내각 제자들에게 차별받는 외각 제자들은 끈끈한 정으로 뭉쳐 있다.
무덤덤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던 당천운이 재빨리 답했다.
“연적하가 오늘 밤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앞에서 포로들을 죽인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도 당운망은 크게 절망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월아와 금아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녀들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장주님께서 오셨구나!”
“분명히 가모님도 모시고 오셨을 거야!”
“맞아! 맞아! 장주님이시라면 그러고도 남지.”
당천운은 어린 소녀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잊고 좋아하자 기가 막혔다.
“쯧쯧! 덕분에 너희가 죽게 되었는데 좋으냐?”
그러나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세상사를 알 만한 당운망조차도 히죽히죽 웃을 뿐이다.
“백부. 연적하 때문에 죽게 생겼는데 좋으십니까?”
“네가 연 장주를 몰라서 그러는 게다. 싸움이 벌어지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아나거라. 그러면 혹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달아나라고요? 제가 똑바로 말을 하지 않았군요. 연적하가 혼자서 온답니다. 남맹이나 녹림과 함께가 아니라.”
“호랑이는 개들과 다니지 않으니 그러겠지.”
“백부는 연적하가 혼자서 우리 당가를 당해 낼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는 바보가 아니다. 어째서 감당할 만하니 혼자 온다는 생각은 하질 않느냐?”
“…….”
당천운이 황당한 눈으로 당운망을 보았다.
당가를 한 사람이 당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연적하가 이 년 전에 유명교와의 싸움에서 이름을 날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가에 비할 것은 아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당천운은 슬그머니 포로들과 거리를 벌렸다.
동정심에 잠시 말을 섞은 게 후회스러웠다.
때마침 총호법 오독수 당불위가 당운망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운망 형.”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다.”
외각이 방계라지만 사촌지간인 것은 틀림없었다.
더구나 당운망 같은 기재는 방계라 해도 내각에 이름이 알려지기 마련.
과거 당불위는 만독동을 드나들던 시절에 당운망과 교분을 맺은 바 있다.
“그러게 적당히 나대지 그러셨소.”
당불위의 말에 당운망은 처음으로 관심을 드러냈다.
자신이 백팔독정과 무관함을 당불위가 아는 것처럼 말해서다.
“너는 가주가 나에게 누명 씌운 걸 알고 있었구나.”
“내각의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을 게요. 가주님의 독공이 일취월장했는데 그걸 누가 모르겠소?”
“안다면서 왜 나를 도둑으로 몰지?”
“순혈이 아니니까. 방계가 당가 비전을 죄다 독식하게 둘 수는 없지 않소.”
“그래서 멀쩡한 사람을 도둑으로 몰아 죽이려 한다고? 나도 당씨다.”
“형님은 외각 소속이 너무 욕심을 냈소.”
“미친놈아. 나도 당씨로 비전을 배울 자격이 있단 말이다.”
“누가 아니라고 했소? 형님이 눈치만 좋았어도 가주님에게 내쳐지지 않았을 거요. 형님처럼 나대면 순혈이라도 미움을 받소.”
“꺼져라.”
“연적하가 찾아오면 나는 가장 먼저 형님부터 죽일 거요.”
“약 올리려고 왔느냐?”
순간 당불위가 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낙월독정을 연성했다고 들었소.”
“그래서?”
“낙월독정을 나에게 넘겨주시오. 그럼 형님이 달아나게 해 드리리다.”
“뻔뻔한 놈. 일없다.”
“죽으면 소용이 없다는 걸 모르시오? 형님은 나중에라도 다시 연성할 수 있지 않소?”
“꺼져라. 나 혼자 끌어안고 죽으련다.”
“흥! 그런 심보니 이 지경이 된 거요. 좋은 건 혼자서만 독차지하는데 누가 좋아하겠소?”
“너는 얼굴이 두꺼워서 좋겠다. 당장 죽어도 당씨들에게 낙월독정을 넘길 일은 없다.”
“…….”
당불위는 한참 동안 당운망을 노려보다 자리를 떠났다.
월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와아! 도둑보다 더하네요.”
그러자 당운망이 씁쓰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본래 세상인심이란 게 저런 법이다. 좋은 걸 보면 죽여서라도 빼앗으려고 하지.”
“그래도 같은 당씨잖아요.”
“때로는 가까운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니라. 이런! 어린 너희들에게 몹쓸 꼴을 보여 주었구나. 세상에 저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금아가 웃으며 답했다.
“알아요. 우리 사부님 같은 분도 계시잖아요.”
“맞아요. 우리 사부님은 좋은 걸 주셨어요. 사부님도 돌아 오셨겠지요?”
“심통이라면 장주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서라도 함께 왔을 것이다.”
당운망의 말에 월아와 금아가 해죽해죽 웃었다.
자기들이 생각해도 스승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멀리서 꿈에도 그리던 음성이 들려왔다.
“당세호 안에 있느냐! 석경장의 연 장주님께서 오셨으니 냉큼 튀어나오너라!”
걸쭉하고 긁는 듯한 그 음성은 분명 심통이었다.
“스승님!”
“스승니임! 오셨어요?”
월아와 금아가 부모를 부르는 어린 새들처럼 소리 높여 외쳤다.
심통은 안쪽에서 제자들의 소리가 들리자 당가의 정문을 발로 걷어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대문이 떨어져 나갔다.
마음이 급해진 심통은 한달음에 당가 안마당으로 뛰어들었다.
마당에 길게 늘어선 당가 제자들 뒤쪽으로 월아, 금아, 당운망이 보였다.
“월아야! 금아야!”
달려 나가는 심통의 앞을 당가 고수들이 가로막았다.
심통은 비호처럼 그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 땅바닥과 좌우 방향에서 거대한 그물이 날아왔다.
그물을 예측하지 못했던 심통은 꼼짝없이 그물에 갇히고 말았다.
심통이 손으로 그물을 잡아 뜯었지만 천잠사로 짠 그물은 찢어지지 않았다.
“허!”
심통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강호를 독보하리라 생각했는데 초장부터 이게 무슨 망신인지 모르겠다.
그물에 갇혀 꼼짝 못 하는 심통에게 당가 고수들이 독분을 뿌려 댔다.
심통의 저항이 약해지자 내각 장로 귀혼산수 당기로가 나섰다.
“쯧쯧! 구천노도 심통. 연적하를 잡으려고 쳐 둔 그물에 네가 잡히다니. 운도 없구나. 연적하는 어디 있느냐?”
그러자 심통이 푸들푸들 웃으며 하늘을 가리켜 보였다.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당기로의 입이 쩍 벌어졌다.
허공답보의 수법으로 연적하가 천천히 허공에서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심 노인. 강호 초출도 아닌데 왜 그래? 낯 뜨거워서 못 보겠네. 얼른 가 봐.”
말과 함께 연적하가 손을 흔들었다.
보검으로도 잘리지 않는다는 천잠사가 썩은 지푸라기처럼 후두둑 끊어졌다.
멋쩍은 얼굴로 서 있던 심통이 돌연 금강저를 뽑아 정면에 보이는 전각으로 던졌다.
콰콰콰-.
눈 깜짝할 사이에 전각 하단 부위를 관통한 금강저가 심통의 손아귀로 돌아왔다.
곧이어 심통이 ‘쿵!’ 하고 발을 구르자 전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깜짝 놀라 입을 쩍 벌린 당가 고수들에게 심통이 말했다.
“한 놈만 걸려 봐. 대가리를 그냥 아주…….”
말과 함께 그가 금강저에 진기를 불어넣자 금강저에서 눈부신 광망이 쏟아져 나왔다.
번쩍거리는 금강저를 들고 그가 성큼성큼 걸어갈 때다.
총호법 오독수 당불위가 버럭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그래 봐야 살과 뼈로 된 사람에 불과하다! 암영십팔질을 퍼부어라! 상대가 설혹 천신이라도 한 줌 독수가 될 것이다!”
암영십팔질은 당가가 자랑하는 열여덟 가지의 용독술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독이란 독은 다 퍼부으라는 소리다.
심통의 기세에 주춤했던 당가 고수들이 지니고 있던 독과 암기를 꺼내 들었다.
이윽고 기기묘묘한 독과 암기가 연적하와 심통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당불위는 인질들을 지키고 있던 당가 제자들에게 명했다.
“모두 죽여라!”
외각 소속의 당가 제자들은 선뜻 그의 명에 따르지 못하고 망설였다.
당운망은 한때 외각의 일원이었고, 나머지는 어린 소녀들인 까닭이다.
“지금 항명을 하겠다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