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94
794회. 좋아. 친구 하자
당불위가 닦달하자-강호의 도의보다 가문이 더 중하다고 생각한-제자 당군명이 칼을 뽑아 들었다.
그래도 그는 양심상 어린 소녀들보다 당운망의 목숨을 먼저 노렸다.
당군명의 칼이 막 당운망의 목덜미로 날아들 때다.
채앵-!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당군명의 칼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같은 외각의 제자 당천운이 부지불식간에 검을 뽑아 쳐 낸 것이다.
그 장면을 목격한 당가 가주 암영무흔 당세호가 버럭 소리쳤다.
“너 이놈! 감히 총호법의 명을 거역하다니! 그러고도 네놈이 당가의 사람이냐! 뭣들 하느냐! 죄인들을 죽여라!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그도 함께 베어라!”
차차차창-.
포로를 지키고 있던 외각 소속의 당가 제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총호법에 이어 가주까지도 죽이라고 하자 그들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비록 당가가 정파에 속해 있지만 지금은 석경장과 전쟁을 치르는 상황.
훗날 후회를 하게 될지언정 당장은 가주의 명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당군명이 당천운에게 말했다.
“천운! 비켜라!”
“형님! 숙부님과 어린애들입니다. 나중에 후회할 일 하지 마십쇼!”
“가주님의 명을 너도 듣지 않았느냐! 외각의 식구들끼리 정녕 피를 봐야겠느냐!”
“그렇게 말하면 숙부도 외각의 식구였습니다.”
당천운이 끝까지 버티자 당군명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당천운! 말이 통하지 않는군. 끝가지 그렇게 나오겠다면 너를 벨 수밖에…….”
말하다 말고 당군명은 기이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밤하늘에 검이 가득했다.
소요종의 검공인 천산검영(天山劍影)이지만 그걸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비현실적인 광경에 당군명은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사이 당천운은 삼보절명 당운망과 월아, 금아를 묶고 있는 밧줄을 풀었다.
이왕 포로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거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당가 가주 암영무흔 당세호가 공포에 물든 당가 고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눈속임에 불과하니 신경 쓰지 말고 적을 죽여라! 술사는 무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당세호는 ‘하늘의 검들’을 연적하의 술법으로 생각했다.
오룡궁에 저런 술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말고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가주의 말에 흔들렸던 당가 고수들은 금방 냉정을 되찾았다.
그들도 저런 무공은 들어 본 적조차 없었기에 술법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다시 구천노도 심통과 연적하에게 암영십팔질을 쓰려 할 때다.
츠츠츠츠-.
하늘에서 소나기처럼 검이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쾅-!
지축을 흔드는 폭발음과 함께 당가의 전각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뒤늦게 검이 실재한다는 걸 알아차린 당가 고수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달아났다.
흔히들 복불복이라는 말을 쓴다.
지금 당가 고수들의 상황이 그랬다.
운 좋게 ‘검의 화신’을 피한 사람은 살아 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었다.
무너져 내리는 당가를 보며 부들부들 떨던 당세호가 절규했다.
“연적하! 이 악마야! 너는 인두겁을 쓴 마귀가 분명하다!”
그러자 연적하가 냉소를 쳤다.
“흥! 악마는 너야! 제 혈족과 어린애들까지 죽이려고 한 놈이 어디서 악마 타령이야!”
말과 함께 연적하가 천둔검으로 당세호를 가리켰다.
기다렸다는 듯 ‘검의 화신’들이 당세호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당세호는 즉시 오독연혼기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당가 최고의 검공인 무흔칠상검으로 몰려오는 검들을 쳐 냈다.
콰창-!
하지만 쳐 낸다는 것은 그의 바람에 불과했다.
첫 번째 ‘검의 화신’과 그의 검이 맞부닥치는 순간 그의 검은 허망하게 부서졌다.
검을 부순 ‘검의 화신’이 그의 몸까지 관통했다.
퍼퍼퍼퍼퍽-!
눈 깜짝할 사이에 무려 다섯 개나 되는 ‘검의 화신’이 당세호를 뚫고 지나갔다.
한순간 당세호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산산조각이 났다.
쿠쿠쿠쿵-!
하늘에 떠 있던 ‘검의 화신’들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진검강보다도 뛰어난 ‘검의 화신’ 앞에 당가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오직 당천운과 석경장 사람들이 있는 자리만 무사했다.
살기 위해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당가 고수들은 안전지대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당천운과 포로들을 둥그렇게 에워쌌다. 포위라기보다는 그들을 중심으로 모이다 보니 그렇게 보여진 것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존한 당가 고수들은 투항의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빈손으로, 그나마도 지면에 손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검의 화신’이 폭풍처럼 당가를 쓸고 지나갔다.
이윽고 밤의 적막이 내려앉았다.
용케 부서지지 않은 몇 개의 화톳불이 폐허가 된 당가를 비췄다.
잠시 후 연적하와 심통이 당운망과 월아, 금아를 향해 걸어갔다.
월아와 금아는 연적하에게 인사를 올린 후 스승을 향해 달려갔다.
연적하를 본 당운망이 계면쩍은 얼굴로 변명하듯 말했다.
“당가에서 독을 먼저 쓰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네.”
“석경장에 있던 다른 일꾼들은요?”
“소문이라도 내 주기를 바랐는지 일꾼들은 죽이지 않았네. 우리가 죄다 잡혀 왔으니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서 생활하고 있을 걸세.”
“다행이네요.”
연적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독을 썼다기에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다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윽고 연적하의 시선이 당천운을 향했다.
한쪽 옆에서 숨죽이고 서 있던 당천운이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연적하가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스물다섯입니다.”
“어? 친구였네. 나도 스물다섯인데.”
“어이쿠! 어찌 제가 감히.”
깜짝 놀란 당천운이 허리를 조아렸다. .
남천 연적하의 무위는 소문과 달리 하늘에 닿아 있었다.
그런 연적하가 친구라고 하니 당천운은 지은 죄도 없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연적하가 손을 까딱이자 접혀 있던 당천운의 허리가 강제로 펴졌다.
당황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당천운에게 연적하가 물었다.
“이름이?”
“당천운입니다.”
“당 형. 나에게는 딱 세 종류의 사람이 있어. 적, 친구, 모르는 사람. 당 형은 나와 어떤 관계가 되기를 원해? 적이야? 친구야? 모르는 사람이야?”
당천운은 급히 머리를 굴렸다.
‘적’은 당연히 말도 안 된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자니 석경장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그 난리를 친 게 아쉽다.
그래서 미친 척하고 내질렀다.
“치, 친구요?”
“좋아. 친구 하자.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야. 알지?”
“예.”
“예라니? 친구라며?”
“어? 어…….”
“그래. 당 노인과 월아 금아를 구해 줘서 고마워. 시간 되면 석경장에 놀러 오고 그래. 내가 잘 대접해 줄게.”
“그, 그래도 돼?”
“당연하지.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석경장에 눌러앉아도 된다고.”
“그럼 꼭 방문할게.”
연적하의 진심을 느낀 당천운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룻밤 만에 남천 연적하와 친구가 되다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당천운과 대화를 마친 연적하는 당가 고수들의 앞으로 걸어갔다.
당가 고수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알아서 눈을 내리깔았다.
생존자들 중에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총관 경신읍귀 당유담이 앞으로 나섰다.
“연 대협! 넓으신 아량을 베푸시어 부디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지금 당유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연적하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자신들은 염라대왕 앞으로 불려갈 게 뻔했다.
그의 무위가 이렇게나 높다는 걸 알았다면 남직례성에 발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의 발바닥이라도 핥을 용의가 있었다.
“당신들은 선을 넘었어. 당 노인은 반도라고 우기니까 그럴 수 있다 쳐. 정파에 속해 있다는 사람들이 월아와 금아 같은 어린애들까지 죽이려고 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가주와 총호법의 지시였지만 당유담은 변명하지 않았다.
초저녁에 당가 원로회의에서 그렇게 하기로 결의를 했었기 때문이다.
연적하는 떨떠름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상대가 깨끗하게 잘못을 인정하자 당가에 대한 분노도 눈 녹듯 사라졌다.
폐허가 된 당가를 보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당가의 최고 어른이야?”
“예.”
“당신도 당세호가 당 노인에게 누명 씌운 건 알고 있지?”
“예, 가주의 영이 서야 하기에 알고도 모른 척했을 뿐입니다.”
“하여간 모든 잘못은 윗놈들이 저지른다니까. 바로잡아. 당 노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그가 자유롭게 당가를 드나들게 해. 그렇게 한다면 봉문은 면하게 해 줄게.”
봉문은 면하게 해 준다는 말에 당유담의 안색이 밝아졌다.
지금까지 연적하에게 찍힌 상대는 죄다 멸문을 당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당 사형에게 씌워진 누명을 벗기고, 당가의 원로로 추대하겠습니다.”
뒤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당가 고수들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연 대협!”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당천운을 힐끔 보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알겠지만 당천운은 내 친구야. 내 친구 이전에 당가에서 유일하게 강호 도의를 지킨 사람이기도 하지. 그런 사람이 잘못된 명에 따르지 않았다고 불이익을 당하면 안 되겠지?”
“그,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연 대협의 친구에게 불이익을 주다니요?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
“내일 일은 모르는 거야. 배부르고 등 따뜻해지면 과거의 잘못도 미화하기 마련이거든. 그럼 내 친구를 배신자 보듯 하는 개자식도 나올 수가 있어. 내가 딱 말해 둘게. 나에게는 당가보다 내 친구가 더 중요해. 당신들의 목숨은 당천운 하나에 미치지 못해. 만에 하나 당천운이 당 노인의 전철을 밟게 된다면, 오늘 죽지 못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야. 이건 내 이름으로 하는 약속이야.”
마지막 말에 당가 고수들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전율을 느꼈다.
연적하는 언법(言法)의 수련자.
그의 말은 사람들에게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믿음을 심어 주었다.
당가 고수들은 비로소 연적하와 당천운의 관계가 가볍지 않음을 깨달았다.
한순간 당천운의 위치는 외각의 배신자에서 당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제자로 바뀌었다.
당유담이 읍을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연 대협! 내각이든 외각이든 당가에서 당천운을 괴롭히는 자가 있으면 내쫓겠습니다. 당천운은 당가가 강호 도의를 따른다는 것을 보여 준 사람입니다. 그를 홀대하는 것은 의인을 핍박하는 것과 같으니 벌받아 마땅합니다. 저희 원로들이 앞장서 당가가 그릇된 길로 가지 않게 하겠습니다.”
“앞장서서 나쁜 짓이나 하지 마. 오늘 당가가 이렇게 된 것도 당신들이 벌인 짓이잖아.”
“…….”
당유담과 원로들은 정곡을 찌르는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할 말을 모두 마친 연적하는 당천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연적하가 석경장 사람들과 떠난 직후, 천룡문의 대외총관 우사 황원익이 당가 고수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던 당유담이 그래도 주인이라고 황원익에게 알은체를 했다.
“황 대협.”
“당 총관.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황원익은 숨어서 모든 걸 지켜보고도 시치미를 뚝 잡아뗐다.
“남천 연 대협이 왔다가 갔습니다.”
당유담은 어차피 곧 사천성 일대에 알려질 일인지라 감추지 않았다.
황원익이 지나가듯 말했다.
“사천무림대회는 접어야겠지요?”
“오늘의 일이 알려지면 참가할 문파가 있겠습니까.”
“…….”
황원익은 나직이 한숨을 내뱉었다.
우문현답이다.
단 한 사람의 힘 앞에 사천무림이 무릎을 꿇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