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26
826회.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
다음 날 아침.
상단의 호위대 대주 태산검 하후찬은 눈을 뜨자마자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밤새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눈으로 확인하려는 것이다.
짐마차들을 둘러보던 하후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세 대의 마차가 품자(品字) 형태로 서 있는데 그 한가운데 천막이 보였다.
천막은 겉에서 보기에도 우람해서 그 자체만으로도 꽤나 부피가 나갈 것 같았다.
‘누가 짐 대신 천막을 싣고 왔나?’
그만큼 물건을 싣지 못하니 손해를 보게 될 터인데 대단한 결단이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겨울이라 해도 지나치게 호화롭다는 생각도 든다.
당장 자신만 해도 호위대 대주이지만 상행 중에는 노숙을 하기 때문이다.
천막 주인이 누군지 궁금해진 하후찬은 성큼성큼 천막으로 다가갔다.
때마침 마부 하나가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켰다.
“이보시오.”
“예?”
“천막이 꽤 커 보이는데 누가 가지고 온 물건이오? 내가 상행을 오래 다녔지만 천막은 처음 보오.”
“아! 이 천막요?”
마부, 이복이 하후찬의 앞으로 다가가 소리를 낮춰 말했다.
“남천 대협의 것입니다.”
“남천 대협의 마차가 따로 있었소?”
“웬걸요. 천막은 남천 대협이 가지고 오신 겁니다.”
“남천 대협의 짐을 실어 준 마부가 누군지 아시오?”
하후찬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누군가의 마차에 억지로 짐을 실었다면 자신도 알고 있어야 했다.
뒤늦게 말귀를 알아들은 이복이 손사래를 쳤다.
“어이쿠! 그런 게 아닙니다. 어젯밤에 직접 보셨어야 하는데…….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난감하네.”
“난감한 상황인 건 아오. 누구의 마차에 싣고 왔는지만 가르쳐 주시오.”
“마차에 싣고 온 게 아닙니다.”
“허면 이 큰 천막을 남천 대협이 짊어지고 오기라도 했다는 거요?”
“어젯밤 남천 대협께서 허공을 더듬으시더니……. 천막과 여러 가지 물건들을 꺼내셨습니다. 천막 안을 보시면 입이 쩍 벌어질 겁니다.”
“아침부터 거 무슨 흰소리요? 허공을 더듬는 건 또 뭐고? 천막을 싣고 온 마차의 주인이 누구냐니까.”
“아이고 답답해라.”
이복은 소리가 나지 않게 제 가슴을 두드리고는 손짓 발짓까지 더해 가며 설명했다.
“어제 해가 질 때 저희가 마차를 요렇게 딱 붙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불이라도 피우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마차에서 내린 남천 대협이 허공에서 뭘 잔뜩 끄집어내시더란 말입니다. 그게 이 천막과 그 안에 있는 물건들입니다.”
“허공에서 꺼냈다는 거요?”
“아! 그렇다니까요? 못 미더우면 이따가 한번 보십시오. 남천 대협께서 이 천막을 어떻게 하시는지.”
하후찬이 기막힌 얼굴로 마부를 보았다.
마부가 호위대 대주인 자신에게 뻔한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흠! 남천 대협이 뭔가 하기는 한 것 같은데…….’
하후찬이 고민하는 동안 이복은 천막 옆에 작게 모닥불을 피웠다.
하후찬은 다른 마차들을 한차례 쓸어 본 뒤 모닥불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어차피 아침을 먹고 출발해야 하니 자기 눈으로 봐 두려는 것이다.
잠시 후 연적하와 심통이 자다가 금방 일어난 부스스한 몰골로 나왔다.
쪼그리고 앉아 곁불을 쬐고 있던 하후찬은 후다닥 일어나 묵례를 했다.
“대주님 부지런하시네. 혹시 나한테 무슨 용무라도 있어요?”
연적하의 물음에 하후찬은 말을 돌리지 않았다.
“천막이 보이길래 누가 가지고 왔느냐 물어보니 남천 대협이라 하더군요. 마부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확인차 남아 있었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알고 보면 별거 아니에요. 나한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창고가 하나 있어요. 거기에 넣었다가 뺐다 하는 거예요. 심 노인, 천막 좀 걷어 봐.”
그러자 심통이 마부들에게 턱짓을 했다.
남의 일인 양 구경하던 마부들이 후다닥 천막에 달라붙었다.
어떤 이는 천막 안의 물건을 빼내고, 또 다른 이들은 부지런히 천막을 해체했다.
연적하는 나무판자들과 이부자리 따위를 들어 허공에 휙 휙 던졌다.
그럴 때마다 물건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둘둘 말린 천막을 ‘마하담’에 던져 넣은 연적하가 하후찬에게 히죽 웃어 보였다.
“봤죠?”
하후찬은 입을 쩍 벌린 채 눈만 끔뻑거렸다.
자신의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건만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속임수라고 하기에는 눈앞에서 사라진 물건이 너무 많다.
저건 대체 어떤 술법일까?
그때 멀리서 ‘탱탱탱!’ 하고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하후찬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예, 예! 잘 봤습니다! 시, 식사를 알리는 소리군요.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하후찬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한마 디도 꺼내지 못하고 돌아섰다.
연적하를 보고 있으려니 신비함을 뛰어넘어 경외감마저 들었다.
‘천하십대고수들은 다 저런가?’
천하십대고수를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하후찬은 발길을 숙수들이 있는 곳으로 돌렸다.
앞으로는 남천 대협에게 따로 식사를 가져다 드리라고 할 생각이다.
***
사천성 동부.
금당현 타강(陀江).
정오 무렵.
제법 넓은 강줄기 앞에서 금인상방의 상단이 처음으로 멈춰 섰다.
호위대 대주 하후찬은 말 위에서 정면의 얼어붙은 강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얼음 위로 말을 몰아 마침내 강 저편에 도착한 선발대가 손을 흔들었다.
얼음이 두껍게 얼었으니 그냥 건너도 된다는 뜻이다.
하후찬은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직접 말을 몰고 강으로 들어갔다.
강추위에 강물은 판석처럼 단단하게 얼어 있었다.
한겨울의 상행에는 이런 편리함이 있다.
강 중심부의 얼음 상태까지 확인한 하후찬은 짐마차를 향해 손으로 원을 크게 그려 보였다.
짐마차들이 마치 개미 떼처럼 줄지어 얼어붙은 강으로 진입했다.
이윽고 연적하가 탄 짐마차도 강으로 들어갔다.
짐마차에 올라탄 채로 꾸벅꾸벅 졸던 연적하가 눈을 뻔쩍 떴다.
예감이랄까?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심 노인.”
“예?”
“주변에 뭐가 있나 한번 봐 봐.”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래?”
“왜 그러시는데요?”
“기분이 좋지 않아서.”
“졸다가 나쁜 꿈이라도 꾸셨습니까? 아직 성도에서 가까워 도적도 없답니다.”
“…….”
연적하는 답하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그의 시선이 문득 마부의 뒤통수에 이르러 멈췄다.
이 추위에 뒷덜미가 젖어 있다?
“마부 아저씨?”
“예?”
힐끔 뒤를 돌아보는 마부의 이마에도 땀이 맺혀 있었다.
“웬 땀을 그렇게 흘려요?”
“좀 더운 것 같아서요. 저만 그런 겁니까? 내가 뭘 잘못 먹었나?”
마부가 손바닥으로 목 주위를 닦아 내는데 그의 손이 축축했다.
“심 노인 더워?”
“조금 그런 것도 같습니다.”
연적하가 벌떡 일어섰다.
한서불침의 몸이 되면 이런 게 좀 아쉽다.
옷차림이 가벼워져서 더위와 추위의 변화를 더욱 잘 느끼지 못한다.
마부가 땀을 흘리는 것은 두툼한 옷 때문이다.
그건 저 정도로 껴입으면 땀이 날 정도로 갑자기 더워졌다는 뜻이다.
‘이런 혹한의 날씨에 갑자기 땀이 날 정도로 덥다고?’
이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꽁꽁 얼어 있던 강물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녹았는지 마차 바퀴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내릴 정도다.
‘이게 대체?’
뿌드드득- 뿌득-.
불쾌한 소리와 함께 얼음이 쩍쩍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앞쪽의 짐마차가 강물 속으로 첨벙 빠지고 말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판석처럼 단단했던 얼음이 물에 적신 종이처럼 찢어지고, 풀어졌다.
“아악!”
“얼음이 깨진다!”
“피해!”
“빨리 가! 가라고!”
마부와 짐꾼 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평화롭던 상행은 한순간 지옥으로 돌변했다.
“심 노인! 강을 건너가서 이상한 점이 없는지 조사해 봐!”
“예!”
심통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즉시 경신술로 날아올랐다.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짐마차와 사람 들은 강물 속으로 빠져들었다.
무사히 강을 건넌 건 선두에 있던 십여 대의 짐마차뿐이다.
나머지 사십여 대의 짐마차가 오도 가도 못한 채 하나씩 아래로 꺼져 들어갔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주술로 불과 벼락은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문득 천둔검의 요결인 포라천지(包羅天地)가 떠올랐다.
-선천의 기는 하늘과 땅이 구별되기 이전부터 있어 왔다. 그것은 한 알의 알갱이에 불과하지만, 능히 하늘과 땅을 포용할 수 있다.
천둔검은 하늘과 땅을 포용할 정도로 크지만, 작게 만들면 바늘보다도 작아진다.
천둔검의 크기라면 짐마차를 떠받칠 수도 있을 터였다.
고민하던 연적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급히 천둔검을 불러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천둔검은 그의 마음에 응해 크기를 키워 갔다.
그는 검신의 폭을 오 장(약 15미터)이나 늘린 뒤, 강물 속에 처박았다.
첨벙-.
이윽고 강물 속으로 빠져 들던 짐마차와 사람 들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천둔검의 넓은 검신이 짐마차와 사람 들을 위로 밀어 올린 것이다.
“와아아!”
“살았다! 살았어!”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발밑에 깔린 게 뭔지 모르지만 일단 환호성을 내질렀다.
천둔검은 짐마차와 사람 들이 모두 강을 건넌 뒤에야 스르륵 사라졌다.
연적하가 주위를 살필 때 심통이 바람처럼 달려왔다.
“공자님. 아무것도 없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 갑자기 왜 그랬을까요?”
연적하는 영기를 풀어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영기로 십 리(약 4킬로미터) 밖까지 조사했지만 딱히 걸려드는 게 없었다.
‘대체 뭐였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연적하에게 호위대 대주 하후찬이 허겁지겁 다가왔다.
“남천 대협. 괜찮으십니까?”
“예, 괜찮아요.”
“송구합니다. 얼음의 두께를 충분히 살폈다고 생각했는데……. 볕이 좋았나 봅니다.”
하후찬은 자신의 부주의로 사고가 생겼다고 자책했다.
겨울철에 얼어붙은 강 위를 건너다가 사람들이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황당한 일을-그것도 하필 상행 중에-자신이 경험하게 될 줄이야!
“짐마차와 사람 들은 좀 어때요?”
“짐마차 세 대와 짐꾼 열 명이……. 사라졌습니다.”
“쯧쯧!”
연적하가 안됐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아직 깨지지 않은 얼음장 아래로 흘러갔으니 십중팔구 모두 죽었을 게다.
하후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강물 아래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짐마차와 사람 들을 떠받쳐 주었다고 하던데……. 그게 무엇인지 혹시 아십니까?”
“천둔검이라는 도가(道家)의 공법이에요.”
“아! 역시 남천 대협께서 도와주신 거였군요. 감사합니다. 대협 덕분에 상단이 살았습니다. 나중에 방주님께 말씀드려 후사(厚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강에 이상한 건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그런 게 있었다면 남천 대협께 먼저 말씀드렸을 겁니다.”
연적하는 더 묻지 않았다.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상단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잠시 후 빠르게 재정비를 마친 상단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을 건너기 전까지만 해도 생기 넘치던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