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27
827회. 누구더러 무림 초출이래?
사천성 동부.
금당현 타강(陀江).
상단의 최고 책임자인 등원용 대행수는 강을 건너자마자 호위대 대주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대행수님.”
“물에 빠진 사람들이 많으니 적당한 곳에서 옷이라도 말리고 가십시다. 그럴 만한 곳이 있겠소?”
“큰 마을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길 따라 이십 리(약 8킬로미터) 정도 더 들어가야 합니다.”
등원용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추위에 이십 리를 더 갔다가는 죄다 감기로 고생을 하게 될 게요. 불을 피울 수 있는 곳이면 아무 데라도 잠시 쉬었다가 가십시다.”
“알겠습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보겠습니다.”
하후찬 대주는 즉시 말 머리를 돌려 상단의 선두로 나섰다.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 잡목림을 병풍처럼 두른 들판이 나타났다.
불 피울 나무가 지천이니 대행수가 찾던 조건에 딱 맞는 장소다.
하후찬은 관도에서 벗어나 들판으로 들어갔다.
짐마차와 짐꾼, 상인 들이 패잔병들 같은 모습으로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마차가 자리를 잡자 하후찬은 휴식을 명했다.
누군가는 불을 피우고, 누군가는 잡목림에서 나무를 주워 왔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움직이는데 기이하리만치 조용했다.
다들 지치고 맥이 빠져 말을 잃은 것이다.
연적하와 심통이 타고 있던 짐마차와 그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불을 피우는 내내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연적하가 마부에게 슬쩍 물었다.
“아저씨. 너무 조용한 거 아니에요?”
“아, 그게…….”
한참을 망설이던 마부가 소리를 한껏 낮춰 말했다.
“남천 대협,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부랄이 다 얼 지경입니다. 그런데 강을 건널 때만 왜 그렇게 따듯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타강에 빠져 죽은 귀신의 장난이라고 쉬쉬합니다.”
“에이, 설마요.”
“생각해 보십쇼. 지금 날씨가 얼음이 녹을 날씨는 아니지 않습니까? 강을 건너고 일 리(약 400미터)나 왔습니까? 얼마나 추운지 젖었던 옷이 빳빳하게 얼었습니다. 그런데 왜 강물만 그렇게 녹느냐 이거죠.”
“그건 조금 이상하네요. 그렇지? 심 노인?”
“듣고 보니 많이 이상하네요. 정말 물귀신들의 장난이었을까요?”
심통은 최근 몇 년 사이 겪은 괴이한 경험으로 그런 쪽으로 조금 발달돼 있었다.
말이 발달이지 나이나 명망에 걸맞지 않게 살짝 겁먹은 모습이다.
연적하가 그런 심통의 낯선 모습을 보며 실실 웃었다.
“심 노인. 살 만큼 산 사람이 왜 그렇게 겁을 내? 귀신하고 친구해도 될 나이 아니야?”
“귀신하고 친구라니요? 그런 농담 마십쇼. 사람이 귀신하고 어울려서 잘되는 꼴을 못 봤습니다.”
심통에 의해 이야기는 귀신으로 넘어갔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닥불 주변에 모여 자기들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때다.
해가 쨍쨍 내리쬐던 하늘이 갑자기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마부가 무심코 말했다.
“도깨비 장난도 아니고, 날씨가 왜 이 모양이지?”
그렇지 않아도 귀신 이야기에 푹 빠져 있던 사람들은 더욱 긴장한 얼굴들이다.
이윽고 눈이 펑펑 쏟아졌다.
강에 빠졌다가 나온 상단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다.
앞이 보이지 않게 쏟아지는 폭설에 상단은 들판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호위대가 뛰어다니며 야영을 준비하라고 외쳤다.
젖은 몸에 무리하게 움직이다 큰 사고가 날 것 같으니 쉬어 가려는 모양이다.
마부들은 세워 두었던 마차를 조금씩 움직여 품자(品字) 형태를 만들었다.
눈발을 보아 노숙까지 가게 될지도 모르니 아예 준비를 한 것이다.
대행수의 천막.
등원용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들판을 응시했다.
두텁게 얼었던 얼음이 녹아 강에 빠지고, 강을 건너자마자 폭설이다.
숱하게 많은 상행을 다녔지만 이번처럼 날씨가 미쳐 날뛰기는 처음이다.
“하아!”
장탄식을 터뜨리던 그가 진의정 행수에게 물었다.
“마차 세 대와 짐꾼 열 명을 잃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상인들은 무사한가 보군?”
“매고 있던 행낭이 짐꾼들에 비해 가벼워 화를 피한 것 같습니다.”
“쯧! 소속은 어떻게 되나?”
“마차는 우리 금인상방의 것입니다만, 짐꾼들은 다른 상인들이 데리고 온 사람들입니다.”
“그랬군.”
등원용은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했다.
짐꾼이 금인상방 소속이었다면 남은 가족들에게 위로금까지 챙겨 줘야 하기 때문이다.
“남천 대협께서 손을 쓰지 않았다면 끔찍한 화를 당할 뻔했습니다.”
“기이한 술법으로 바닥을 받쳐 주었다지?”
“그렇습니다.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검이었다고 합니다.”
“호위대주는 검공이라고 하더군. 내가 상인이지만 검술과 술법의 구별 정도는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데. 왜 검공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무인의 자존심이 아니겠습니까?”
“역시 그런 거겠지?”
등원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에서 술사의 위치는 꽤나 낮다. 그러니 술법 대신 검공이라 한 것이리라.
“남천 대협을 모신 것이 신의 한 수가 됐습니다.”
“그러게. 녹림도를 막으려고 모셨는데 이런 도움을 받게 되다니.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딱 그 모양일세. 그나저나 날씨는 좀 어떤가? 눈이 계속 내릴 것 같은가?”
“그게 좀 이상합니다. 보통은 폭설이 내리기 전에 어두워야 정상이 아닙니까? 그런데 조금 전까지 구름 한 점 없다가 갑자기 이 모양이니……. 앞으로 얼마나 더 내릴지 장담을 못 하겠습니다.”
“흠!”
등원용의 입에서 묵직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진의정 말대로 이놈의 날씨는 어떻게 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십 리를 더 가면 마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진의정이 등원용의 안색을 살폈다.
이십 리는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다.
‘무리해서 가느냐? 안전한 이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느냐?’의 결정은 전적으로 대행수의 몫이었다.
“일단 오늘은 옷이 젖었으니 쉬면서 말리는 게 맞다고 보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함세.”
“알겠습니다. 앞으로의 일정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리 답하겠습니다.”
등원용은 복잡한 눈으로 들판에 쌓이는 눈을 보았다.
눈이 두 자(약 60센티) 이상 쌓이게 되면 오도 가도 못하고 고립되게 된다.
어쩌면 내일은 내리기 싫은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연적하는 공간의 창고 ‘마하담’에서 천막을 꺼냈다.
이번에는 시키지도 않았지만 마부들이 알아서 척척 천막을 세웠다.
연적하는 천막 안에 널빤지를 깔고, 그 위에 이부자리를 펼쳤다.
아직 한낮이지만 밖이 어두컴컴하고, 오가는 사람이 없어 잠자리까지 준비해 버린 것이다.
이부자리를 본 심통이 푸들푸들 웃으며 말했다.
“흐흐, 공자님. 잠자리를 너무 일찍 준비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러다가 출발한다고 하면 어쩌시려고요?”
“어쩌긴 심 노인이 빨리 걷어야지. 설마 팔짱 끼고 구경만 하려고 그랬어?”
“아닙니다.”
심통은 괜한 소리를 했다며 자책했다.
그때 하늘에서 ‘꾸르릉-’ 하고 우렛소리가 들려왔다.
이때다 싶어 심통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날씨가 영 심상치 않은데요? 이렇게 갑자기 나빠지는 날씨는 처음입니다.”
“그러게. 나도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처음 본다.”
“이대로라면 눈이 내일도 계속 올 것 같은데요? 대행수가 어떤 결정을 내리려나 궁금하네요.”
“눈이 그치면 가자고 하겠지.”
“눈이 이렇게 쌓였는데 가자고 할까요?”
그러자 구석에서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부들이 한마디씩 했다.
“대행수님이라면 가자고 할 겁니다.”
“눈이 머리 꼭대기까지 쌓이면 모를까? 가슴까지 쌓여도 가실 겁니다.”
“정말요?”
연적하가 놀란 눈으로 마부들을 보았다.
마부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입버릇처럼 ‘위기는 기회다’라고 말하는 대행수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한동안 대행수에 대한 이야기를 경쟁적으로 쏟아 내던 마부들이 지쳤는지 조용해졌다.
연적하는 천막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바깥을 내다보았다.
눈발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그에게 심통이 다가갔다.
“쉬신다더니 왜 그러고 계십니까?”
“구주 생각이 나서. 기억나? 구주에서 눈이 내리면 이렇게 왔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눈발을 보니 저도 구주 생각이 나긴 하더라고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갑자기 우리가 떠났잖아. 다들 잘 지내겠지?”
“그럴 겁니다. 그런 쪽으로는 또 강한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그런 쪽이 뭔데?”
“만나고 헤어지는 거요.”
“그러네. 심 노인은 가끔 예리한 구석이 있어.”
“가끔이 아니라 종종입니다. 가끔 그러는 사람은 공자님이시고요.”
“그 나이 먹고도 호승심에 불타네. 하여튼 저 혈기 저거 어쩔 거야.”
“호승심이 아니라 왜곡된 걸 바로 잡는 겁니다.”
“닥치고. 아까 내가 강물 살펴보라고 한 거 기억나?”
“예. 별거 없던데요?”
“뭐, 심 노인의 기감으로는 어쩔 수 없으려나.”
“공자님은 다른 걸 느끼셨습니까?”
“내가 구주에서 반신(半神) 소리를 들었잖아.”
“그랬지요.”
“나도 강에 들어갈 때 얼음 확인했거든. 진짜 꽁꽁 얼어 있었어. 그랬는데 그게 금방 녹아서 쩍쩍 갈라지더라고?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얼음이 겉으로 보는 것과 속은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고도 많이 나고요.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뭐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 건 누구나 다 아는 얘기고. 더 들어 봐. 강 중심부를 지날 때 갑자기 푹푹 쪘잖아. 마부 아저씨들 땀 줄줄 흘리고. 얼음 위에 물 흥건하게 녹고. 기억나?”
“그건 좀 이상하긴 했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강물을 그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녹일 수 있는 술법이 있을까?”
“있습니까?”
“내가 아는 한 없어. 이 추운 날씨에 그걸 무슨 수로 녹여? 그것도 그 짧은 시간에.”
“그럼 됐네요. 얼음이 약하게 얼어 있다가 햇살에 녹은 거네요.”
“인간의 경지에서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한 말이야.”
“그럼 공자님은 가능하십니까?”
“나는 그런 술법을 못 배웠어. 배웠다면 아마 가능할 거야.”
“흐음! 그 정도로 높은 경지의 술법이라면 혹시 유명교주의 짓일까요?”
심통이 놀란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술사라니 단번에 유명교주가 떠올랐다.
유명교주가 지금까지 한 짓을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음이 있었다.
“유명교주?”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딘가에 칩거 중이라는 유명교주가 왜 갑자기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유명교주도 지금쯤은 공자님이 구주에서 돌아왔다는 걸 알지 않겠습니까? 공자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숨어서 간을 볼 것도 같은데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뭐가 마음에 걸리십니까?”
“아까 강에서 내가 영기를 사방 오십 리까지 뿌렸단 말이지. 그런데 걸리는 게 없더라고. 그사이에 빠져나갔든지, 내 영기를 속였다는 말인데. 유명교주의 무위가 그 정도는 아닐 것 같거든?”
“그건 또 그렇네요. 그럼 누굴까요?”
“강호에 유명교주보다 강한 사람이 있나?”
“잘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있어? 누군데?”
“마교요.”
“마교에 유명교주보다 강한 사람이 있다고?”
그러자 심통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하아! 공자님이 아무리 무림 초출이라도 그렇지. 마교를 모르면 안 되는 겁니다. 유명교가 강물이라면 마교는 바답니다. 바다.”
그러자 발끈한 연적하가 쏘아붙였다.
“누구더러 무림 초출이래? 내가 십두마병 잡는다고 대륙을 한 바퀴나 돈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