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42
842회. 부전자전(父傳子傳)
하남성.
개봉 통허현.
해거름 무렵.
오십여 명의 괴인들이 마가장을 방문했다.
개봉으로 향하고 있던 무광곡성문의 고수들이다.
그들은 태연하게 마가장의 안채를 차지한 뒤 마가장 사람들을 종처럼 부렸다.
무광곡성문의 술법에 당한 마가장 사람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불청객들을 주인으로 섬겼다.
안채.
무광곡성문의 문주 초혼귀마 요진갈이 마가장의 여자들을 좌우에 끼고 질펀하게 술자리를 벌이고 있을 때다.
혈룡대 대주 생기사귀 우불도가 무정신마와 백면서생을 데리고 들어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문주님. 아뢰기 송구하나 일이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일?”
“무정신마와 백면서생이 돌아왔는데……. 백면서생이 당했다고 합니다.”
초혼귀마가 불쾌한 얼굴로 안고 있던 여자를 밀어냈다.
그리고 백면서생을 가만히 응시했다.
얼마나 호되게 맞았는지 한쪽 얼굴에 시퍼런 피멍이 들어 있었다.
“칠파일문의 짓이냐?”
그는 무정신마와 백면서생이 칠파일문과 정면으로 충돌했다고 생각했다.
그들 외에 백면서생을 저 꼴로 만들 수 있는 집단이 떠오르지 않았다.
칠파일문과는 언젠가 부닥칠 줄로 알았지만 예상보다 빨랐다.
하남성에 어느 정도 세력을 만든 뒤라면 모를까?
지금은 너무 일렀다.
생기사귀가 옆에 있던 백면서생을 돌아보았다.
당사자가 직접 답하라는 뜻이다.
백면서생이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속하는 녹림의 태상호법인 연적하에게 당했습니다.”
“녹림?”
초혼귀마가 황당한 눈으로 백면서생을 보았다.
같은 사파지만 마교는 녹림의 도적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신념으로 뭉친 마교와 달리 녹림은 도적 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도적질로 먹고사는 녹림의 돼지에게 마교 고수가 당했다니?
그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백면서생은 문주가 왜 그러는지 알기에 급히 설명을 늘어놓았다.
“연적하라는 놈은 무당파 속가제자이기도 합니다.”
그냥 좀도둑이 아니라 칠파일문의 제자니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제야 초혼귀마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런 놈이 왜 녹림에 기어들어 갔지? 태상호법이면 전대의 고수냐?”
“나이는 이제 이십 대 중반으로 보였습니다.”
“뭐라? 고작 이십 대 중반의 애송이에게 네가 당했다는 것이냐?”
초혼귀마가 기막힌 얼굴로 백면서생을 보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놈은 벌써 천하십대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랄! 무정신마, 네놈은 뭘 하고 있었느냐?”
이번에는 초혼귀마의 시선이 무정신마를 향했다.
“속하는 놈의 무위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기절한 백면서생을 어깨에 둘러업고 달아났습니다.”
“허! 무광곡성문 고수 둘이 녹림의 애송이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달아났다?”
“문주님. 놈은 백면서생의 혈룡붕천을 손짓으로 가볍게 튕겨 내고, 그를 때려눕혔습니다. 저라고 해도 혈룡붕천을 그렇게 막지는 못합니다. 한주먹에 백면서생을 쓰러뜨리는 일은 더더욱…….”
무정신마의 말에 초혼귀마는 화를 가라앉혔다.
무정신마와 백면서생의 무위는 막상막하였으니 그가 달아날 만도 했다.
잠시 생각하던 초혼귀마가 다시 물었다.
“아니, 애초에 너희는 왜 그놈과 싸웠느냐? 지금까지 녹림은 마교를 하늘처럼 떠받들었거늘.”
무정신마가 대표로 답했다.
“상단의 호위와 동행을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도둑놈이 상단의 호위와 동행을 했다고?”
초혼귀마가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오랜 세월 천산에 틀어박혀 있던 그에게 연적하의 행보는 이해 못 할 짓이었다.
그동안 연적하를 조사한 생기사귀가 나섰다.
“연적하는 남궁세가의 여자와 혼인하면서 녹림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단과의 동행이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흥! 녹림의 도둑이 무당파 제자에, 남궁세가의 여자까지, 골고루 다 해 먹는군. 놈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하오문의 말에 의하면 상단과 함께 개봉으로 가고 있습니다.”
“개봉? 죽을 자리를 찾아오는군. 마교에 저항했으니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게 해라.”
하지만 생기사귀는 즉시 답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제야 이상을 눈치챈 초혼귀마가 생기사귀를 지그시 응시했다.
“왜 대답이 없느냐?”
“문주님. 놈은 청성산에서 이만이 넘는 도지휘사의 군대를 격파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혈룡대가 놈을 상대하다 자칫 대업에 지장이 오면…….”
“생기사귀.”
“예.”
“놈이 두려우냐?”
“두렵지 않습니다.”
생기사귀가 결연한 어조로 답했다.
무광곡성문의 제자에게 두려움이 있을 리 없다.
하물며 상대는 아직 만나 본 적도 없는 애송이가 아니던가!
“혈룡대는 무광곡성문 최고의 고수들이다. 칠파일문이라 할지라도 너희의 상대가 되지는 않는다. 무광곡 성문의 이름으로 놈을 죽여라.”
“존명!”
생기사귀는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연적하는 자신들을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조금 부담스럽지만 그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모양이다.
***
하남성.
정주 중모현.
사위가 어둑어둑해지자 호위대주 태산검 하후찬은 대행수를 찾아갔다.
“대행수님. 가노하(賈魯河)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벌써 해가 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적당한 곳에서 노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등원용 대행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그럽시다. 녹림에게 발이 묶이지만 않았어도 좋았을 텐데.”
그는 해가 지기 전에 도하(渡河)하지 못한 것을 녹림의 탓으로 돌렸다.
하후찬은 가볍게 묵례를 하고 돌아섰다.
녹림이 아니었어도 가노하를 건너지 못했을 테지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대행수의 말에 토를 달아 봐야 좋을 게 없어서다.
잠시 후 호위들이 앞뒤로 뛰어다니며 대행수의 결정을 전파했다.
노숙을 결정한 뒤로 상단의 움직임은 더욱 느려졌다.
그리고 일각(15분)이 지나기 전에 완전히 멈췄다.
연적하가 타고 가던 짐마차는 관도에서 벗어나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개봉을 코앞에 두고 긴장이 풀어졌는지 마차들은 이전처럼 품자(品字)로 뭉치지 않았다.
짐마차들이 관도 좌우편으로 이리저리 흩어졌지만 호위들도 그들을 모으지 않았다.
마차 주위로 모여든 짐꾼들이 모닥불을 피웠다.
노숙의 결정이 늦어진 만큼 저녁 식사도 늦어졌다.
짐꾼과 마부 틈에 앉아 모닥불을 쬐던 연적하가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물었다.
“이젠 마차들이 한곳에 뭉치지를 않네요? 원래 이래요?”
그러자 마부가 웃으며 답했다.
“정주와 개봉의 거리가 가깝고 치안도 좋아서 그렇습니다. 내일 개봉에 도착할 때까지 별일 없을 겁니다. 거의 다 끝났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하! 보통 개봉에 도착하면 언제쯤 다시 성도로 돌아가나요?”
“가져온 물건을 팔고, 개봉의 특산품을 사야 하니 못해도 열흘은 있어야 할 겁니다.”
“생각보다 오래 있네요?”
연적하의 표정이 밝았다.
개봉까지만 상단의 일을 봐주려고 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열흘이면 무한에 있는 한채연에게 이철산의 시체를 가져다주고 돌아올 수 있었다.
“장사가 너무 잘되거나, 반대로 잘 안 되면, 머무는 날짜가 더 늘어납니다. 돈을 왕창 벌거나, 손해를 메꾸고 움직여야 하니까요.”
“그럼 열흘은 어떤 거예요?”
“그냥저냥 적당히 이문을 남기는 수준입니다.”
“개봉에서 최소한 열흘은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눈치 빠른 심통이 한마디 거들었다.
“공자님. 열흘이면 무한에 다녀오셔도 되겠습니다?”
“그러려고.”
“저는 함께 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심 노인이 가서 뭐하게? 오봉십걸들과 친하지도 않으면서.”
“그래서 그냥 드려 본 말씀입니다.”
“심 노인은 개봉에서 도적들의 정체나 좀 알아봐. 하오문 쪽을 파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여하튼 잘됐네요. 금인상방 방주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서.”
“그러게.”
연적하는 무심한 눈으로 모닥불을 응시했다.
약속을 지킬 수 있어 잘되기는 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지 모르겠다.
***
이월 말.
하남성 낙양.
금와상방.
마침내 금와상방의 상단 출행일이 정해졌다.
출행일이 정해지자 방주의 셋째 아들 구명현이 돌연 방주를 찾아갔다.
셋째 아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실망한 구본웅이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출행일이 정해졌다고 들었습니다.”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마라.”
한참 동안 침묵하던 구명현이 말했다.
“가겠습니다.”
그러자 구본웅이 피식 웃었다.
늦게라도 가겠다고 한 것은 대견하지만 이미 늦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이렇게 매사에 제멋대로다.
구본웅은 처음으로 자식을 잘못 키웠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늦었다.”
이미 행수들은 물론 상인과 짐꾼, 호위들 모두가 금린대의 새로운 대주를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왜 이번 호위에서 빠지기로 했는지까지도.
다시 번복하면 아들은 물론 자신의 체면까지도 땅바닥에 떨어지게 될 터였다.
아니 그건 핑계인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상인과 호위 들이 와룡검객과 함께 가게 된 것을 너무 좋아한다.
이런 상황에서 와룡검객의 자리에 아들을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상방의 주인이라고 해도 그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구명현은 물러나지 않았다.
“제가 가겠습니다.”
“늦었다고 했다.”
“상방이 아버지 것인데 늦고 빠르고가 어디 있습니까? 제가 갑니다.”
“내가 상방의 주인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한다면 내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게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 없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십쇼.”
구본웅은 아들을 쳐다보았다.
‘이월의 상행에 나가지 않겠다’고 할 때처럼 고집부리는 아들을 보니 기가 막혔다.
참다못한 구본웅이 탁자를 ‘쾅!’ 하고 후려쳤다.
“이놈! 상방의 일이 애들 장난인 줄 아느냐! 네가 하기 싫다면 안 하고,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줄 알아?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갑니다! 제가 간다고요! 무조건 제가 갈 겁니다! 아버지가 반대를 해도 갑니다! 갈 거라고요!”
“…….”
구본웅은 핏대를 세우며 덤벼드는 아들을 멍하니 보았다.
평소 아들이 고집은 부렸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죽기 살기로 악쓰는 아들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던가.
사람들의 평판도 중요하지만,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하아! 왜 마음을 바꾸었느냐?”
“연무백이 금린대의 주인 행세 하는 걸 못 보겠습니다.”
“어차피 이번 겨울 한 번뿐이다. 와룡검객을 다시 고용할 일도 없다. 그도 상방의 일을 맡으려 하지 않을 테고.”
“내가 키운 금린대 놈들이 그에게 굽실대는 걸 보니 눈꼴이 시어서 그렇습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다시 상행을 나가겠다는 게냐?”
“겨울 동안 이런 기분으로 못살 것 같습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네 말대로 하남성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 짐을 빼앗긴 상단이 수두룩하고, 호위대가 몰살당한 상단도 많아. 솔직히 나는 네가 상행에 나가지 않았으면 한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이번에는 구본웅이 아들의 상행을 만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