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43
843회. 우물 안 개구리
아버지의 만류에도 열등감과 질투심에 사로잡힌 구명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무리하지 않을 테니 보내 주십쇼.”
“하아! 네 뜻이 그렇다니 허락하마. 노규 행수가 발표하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거라.”
부친의 허락에 그는 혹시나 싶어 거듭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금린대 대주로 갈 겁니다. 다른 자리는 의미 없습니다.”
“알고 있다. 그만 나가 보거라.”
구명현이 나가자 구본웅 방주는 노규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금린대주 구명현의 복귀에 대한 노규의 의사를 물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셋째가 금린대주로 출행하게 해 달라고 하더군.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네가 상단의 책임자니, 그에 대한 자네의 생각을 듣고 싶네.”
노규는 슬그머니 방주의 안색을 살폈다.
구 방주가 구명현을 ‘셋째’라고 호칭하는 걸 보니 사적으로 하는 말이 분명했다.
하지만 금와상방 주인의 말에 공과 사가 따로 있을 리 없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사적인 말을 거역하기가 더 어렵다.
지금처럼 말이다.
“본래 셋째 공자께서 금린대주이시니 출행하는 게 당연합니다. 상방의 미래를 생각하면 와룡검객보다는 구 대주가 나서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와룡검객은 손님이지만 구 대주는 상방의 대들보니까요.”
현명한 노규는 주인의 귀에 즐거운 소리를 했다.
주인 앞에서 주인의 아들을 비난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도 없으니까.
“역시! 자네는 생각이 남달라. 자네 말을 들으니 고민할 것도 없는 문제였구먼. 그래, 상방의 미래를 생각하면 손님보다는 셋째가 맡는 게 낫지. 그런데 와룡검객이 금린대주 자리에 있으면 셋째의 위치가 애매해지지 않겠나?”
“와룡검객도 자신이 임시 대주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정히 그가 신경 쓰이시면 그를 금린대의 고문(顧問)으로 삼아도 됩니다.”
“오오! 고문이라. 대단하이. 고문이라면 와룡검객도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겠지?”
“면모상 대주보다 높은 자리이니 불쾌해 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금린대 대주라는 책임을 벗게 되어 좋아할지도 모르지요.”
“그렇군. 허면 와룡검객을 금린대의 고문으로 위촉하고, 셋째를 대주로 복귀시키는 일은 자네가 추진해 주게. 내가 직접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하면 상인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와룡검객을 만나 양해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네만. 재물보다는 인명을 우선으로 두고 행동하도록 하게.”
본래 구본웅은 ‘인명’보다 ‘재물’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다.
다만 이번에는 노규 행수가 위험한 일에 구명현을 몰아넣을까 걱정이 돼서 해 본 소리였다.
오랫동안 구본웅을 모신 노규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염려 마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먼저다’라는 생각으로 임할 생각입니다.”
그의 다짐에 구본웅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단의 책임자인 노규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
삼월 초하루.
우여곡절 끝에 금와상방의 상단이 낙양을 출발했다.
짐마차 스무 대와 짐꾼 오십여 명, 그리고 상인이 스무 명인 중급 규모의 상단이었다.
선두에 선 금린대주 구명현이 오연한 얼굴로 뒤쪽을 힐끔 보았다.
고문이라고는 하지만 자신과 껄끄러운 관계 때문인지 연무백은 후미에 있었다.
‘연무백. 그곳이 당신의 자리야. 상행을 마칠 때까지 내 뒤만 따라오라고.’
자신이 위태로운 시국에 상단에 돌아온 것은 바로 이걸 위해서였다.
혹자는 자신이 제멋대로 군다며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잘 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면 재능이나, 외모나, 집안이나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문득 구명현이 오계중 부대주에게 물었다.
“오계중. 네가 보기에 연무백은 어떤 사람인 것 같으냐?”
“나이에 비해 과묵한 사람 같습니다.”
“인간성이 어떠냐고 물어본 게다.”
“그냥저냥 괜찮은 사람 같았습니다. 연가무관의 관주라고 하던데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더라고요.”
“멍청한 놈. 연가무관이 별 볼 일 없으니 티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는 게지. 나는 고성촌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훗! 그렇기는 하네요.”
오계중은 구명현의 비위를 맞췄다.
사실 연가무관이 별 볼 일 없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도 아버지만 아니면 상단을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문파를 세웠을 텐데.”
“그러게요. 대주님은 의천문 출신이시니 낙양에 문파를 세웠어도 성공하셨을 겁니다.”
“내 말이! 그랬으면 지금쯤 내 제자들이 금린대에 있었을 텐데 말이야.”
구명현의 허세에 오계중이 화답했다.
“지금이라도 문파를 창설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방주님께서 지원해 주시면 금방 자리를 잡으실 텐데요.”
“이번 상행을 마치고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어. 모르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보다 내 제자들이 백배 낫지. 안 그래?”
“당연하지요. 그렇게 되면 제가 금린대 대주인 겁니까?”
“그럴 수도 있지. 왜? 너도 내 자리가 탐나냐?”
“대주가 되면 월봉이 오르지 않습니까.”
“에이, 속물. 그래도 누구보다 차라리 너처럼 속 보이는 사람이 낫다.”
구명현이 슬쩍 연무백을 빗대어 말했다.
그의 말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한 오계중이 물었다.
“왜요? 어디 음흉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과거의 허명을 앞세워 금와상방에 한발 걸치려고 하는 사람이 있잖느냐.”
“아…….”
오계중은 반사적으로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호위 대열 후미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따라오는 와룡검객이 보였다.
“와룡검객이 금와상방에 뜻을 두고 있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요즘처럼 위험한 때에 왜 호위를 자처하고 나섰겠느냐?”
“그런가…….”
“송중문이 연가무관 출신이니 가서 금와상방의 자랑을 했겠지. 만약 네가 관주라면 제자들을 금와상방에 밀어 넣고 싶지 않겠느냐?”
“그렇군요.”
오계중은 대주의 말에 수긍했다.
군소 무관의 목표가 상방에 제자들을 밀어 넣는 것이기 때문이다.
십대상방의 경우 규모가 워낙 커서 여러 문파나 무관이 관계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주님은 연 관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봅니다?”
“속이 훤히 보이는데 아닌 척해서. 자기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세하잖느냐? 필요한 게 있어서 왔으면 알아서 기어야지, 내 앞에서까지 대협 행세를 하면 되나. 안 그래?”
제가 말하고도 이상한지 구명현은 동의를 구했다.
그제야 오계중은 대주가 와룡검객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와룡검객이 굽실거리지 않으니까 그게 눈에 거슬리는 모양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와룡검객이 숙이는 게 맞았다.
구명현은 방주의 셋째 아들인 데다가 무려 의천문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군소 무관의 관주인 와룡검객이 그의 비위를 맞춰 주는 게 맞다.
금와상방과 관계를 잘 맺으려면 더더구나 그렇게 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봐도 와룡검객은 구 대주를 본체만체했다.
구 대주에게 따로 찾아와 인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부하지도 않았다.
임시 대주로 소개받은 날 구 대주와 통성명을 나눈 게 끝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사람이 너무 뻣뻣합니다. 이곳이 연가무관도 아닌데 말이죠.”
“글쎄 그렇다니까. 그러니 내 마음에 들 리가 있나. 나도 그렇게 경우 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오히려 반대야. 경우 없는 사람을 싫어해.”
“어휴!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대주님께서 왜 그러시나 했습니다.”
“이거 왜 이래? 나 이유 없이 시비 걸고 그러는 사람 아니야.”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대주님의 마음 잘 알았습니다. 제가 더 잘 보필하겠습니다.”
“지금도 잘하고 있어. 그렇게만 해.”
“예, 예.”
오계중은 간이라도 꺼내 줄 것처럼 구명현의 비위를 맞췄다.
‘필요한 게 있으면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였기 때문이다.
***
삼월 초.
하남성.
개봉.
가노하를 건넌 금인상방의 상단 앞에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시야가 확 트인 곳이라 호위대나 상인들 모두 적잖이 마음을 놓았다.
게다가 이미 개봉의 권역이라 한겨울에도 관도를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짐마차의 바퀴가 돌을 넘으며 덜컹하자, 마부 옆에서 졸고 있던 심통이 눈을 번쩍 떴다.
“뭐야!”
그러자 마부가 급히 설명했다.
“어르신, 아무 일도 아닙니다. 바퀴에 잠깐 돌이 걸렸나 봅니다.”
괜히 멋쩍어진 심통은 슬며시 화제를 돌렸다.
“개봉은 아직 멀었느냐?”
“반나절만 더 가면 도시가 나올 겁니다.”
“지겹군, 지겨워. 이것도 못 할 짓이야.”
심통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루종일 쪼그리고 앉아 말 궁둥이만 쳐다보고 있으려니 미칠 것만 같았다.
짐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연적하가 한마디 했다.
“종일 잠에 취해 졸기만 하는 사람이 뭘 했다고 못 할 짓이래?”
“공자님, 쪼그리고 앉아서 졸아 보십쇼. 미칩니다. 공자님처럼 그렇게 팔다리 쭉 펴고 누워 있는 사람은 이 기분 모릅니다.”
“이리로 올라와. 누가 거기 앉아서 가래?”
“두 사람이 쓰기에 좁아서 안 가는 겁니다. 공자님이라도 편하게 가셔야지요.”
“그럼 병든 닭처럼 졸지 말고 말이라도 몰아 봐. 마부 아저씨는 심 노인이 부러워 죽을걸?”
그러자 심통이 마부에게 눈알을 부라렸다.
“너, 내가 부러우냐?”
“아, 아닙니다. 저는 제 분수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놈이 마차를 이따위로 몰아? 덜커덩거리게 하지 말란 말이다.”
“예, 예.”
마부는 억울했지만 토를 달지 않았다.
함께 지내면서 익숙해졌지만 그렇다고 구천노도에게 말대꾸를 할 담력은 없었다.
심통이 괜히 마부를 다그칠 때다.
연적하가 불쑥 말했다.
“온다.”
“온다고요?”
“철산이를 죽인 놈들과 비슷한 기운이 오고 있어. 그런데 숫자가 좀 많네?”
“공자님. 이번에는 좀 잡아서 배후가 어디인지 캐물어 보시지요?”
“그럴까?”
연적하가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주변을 휘휘 돌아보았다.
심통도 그를 따라 했지만 뻥 뚫린 들판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오고 있습니까?”
“언제 내가 허튼소리 하는 거 봤어?”
“그런 건 아닌데 너무 안 보여서 드린 말씀입니다.”
“이십 리(약 8킬로미터) 밖에 있으니 안 보이지. 기다려 봐.”
“어이쿠! 그 멀리까지 확인하고 계셨습니까?”
“굳이 애쓰지 않아도 워낙 역천(逆天)의 기운이라 잘 느껴져. 생각할수록 신기한 놈들이네. 뭘 하는 놈 들이기에 이렇게 기운이 날뛰지? 세상 참 넓어.”
“공자님은 오늘 좀 쉬십시오.”
“왜?”
“공자님이 손을 쓰면 픽픽 죽어 나가니까 그러지요. 오늘은 제가 손 좀 보겠습니다.”
“쯧쯧! 누가 누구 손을 본다는 거야? 우물 안 개구리 주제에.”
연적하가 혀를 찼다.
심통이 구주에서 강해져 돌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강함은 상대적이다.
최근 등장한 이 정체불명의 괴인들 중에는 심통보다 강한 자들도 있었다.
당장 낭산과 죽산에서 만난 놈들만 봐도 그렇다.
심지어 지금 다가오는 기운은 지금까지 만난 기운 중에 최고였다.
“예에? 지금 저에게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셨습니까? 천하는 물론 구주(九州)까지 종횡한 저에게 우물 안 개구리라니요? 농담도 심하십니다.”
발끈한 심통이 구시렁거렸다.
천하의 구천노도에게 우물 안 개구리라니?
아무리 연적하가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 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