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44
844회. 너는 얼마를 더 줄 생각이냐?
파공성과 함께 어디선가 장창이 날아왔지만 얼어붙은 땅에 박히지 못하고 툭 튕겨 났다.
쉬이익- 탁-!
비록 땅에 박히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선두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던 선발대가 놀라 말고삐를 잡아챘다.
히히힝-!
갑작스러운 충격에 놀란 말들이 앞발을 치켜들고 요란하게 울었다.
선발대가 멈추자 금린대주 구명현이 앞쪽으로 말을 몰아 갔다.
“무슨 일이냐!”
“대주님! 숲에서 갑자기 창이 날아왔습니다!”
선발대원 중에 하나가 관도를 가리켰다.
그의 손끝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구명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초록색 깃발이 말려 있는 창은 분명 녹림의 표시였다.
‘허! 낙양에서 멀지 않은 이곳까지 녹림이 진출했다고?’
녹림의 도적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부희산은 내일쯤에나 지날 예정이었다.
‘정말 부희산의 도적들인가?’
고개를 갸웃하던 그는 말에서 내려 녹림의 깃발 가까이 걸어갔다.
“저는 금와상방의 구명현이라 합니다! 어느 영웅께서 행차하셨습니까!”
그의 말에 화답하듯 관도 양편 숲에서 도적들이 꾸역꾸역 쏟아져 나왔다.
그 숫자가 무려 오십에 달했다.
금린대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를 확인한 구명현이 눈을 찌푸렸다.
이윽고 도적들 사이에서 흉포하게 생긴 중년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중년인을 본 구명현이 급히 알은체를 했다.
“헛! 음양귀도 양 채주님이 아니십니까?”
흉악하게 생긴 중년 남자는 부희산채의 채주인 음양귀도 양제조였다.
음양귀도가 구명현의 얼굴을 빤히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했더니 금린대의 구 대주였군. 피차 안면이 있으니 길게 말하지 않겠다. 칼부림을 하고 싶지 않다면 성의를 표하거라.”
“성의를 표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희산채가 이낙하(伊洛河)까지 진출을 하신 것입니까?”
구명현은 음양귀도가 부희산을 버리고 이낙하로 나온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자 음양귀도가 버럭 소리쳤다.
“네가 알 것 없다! 돈이나 내놓거라!”
찔끔한 구명현은 부대주 오계중에게 눈짓을 보냈다.
오계중은 서둘러 노규 행수에게 달려가 돈주머니를 받아왔다.
잠시 후 구명현이 음양귀도에게 돈 주머니를 건넸다.
“추운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지만 음양귀도는 직접 받지 않고 딴청을 했다.
자연스럽게 부채주 혈검 신주필이 끼어들어 돈주머니를 받아 돈을 셌다.
“은자 스무 냥입니다.”
음양귀도가 인상을 찌푸렸다.
“많이 부족하군. 우리 부희산채를 좀도둑 취급을 하고 있는 건가?”
그러자 구명현이 급히 변명했다.
“그럴 리가요. 다만 지금까지 부회산을 지날 때 저희가…….”
“여기가 부희산이냐?”
“아, 아닙니다.”
“부희산에서 이낙하까지 하룻길이 나왔다. 그렇다면 그만큼 더 받아야 마땅하지 않으냐?”
순간 구명현은 기가 막혔지만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씨펄! 누가 이낙하까지 와서 강도짓을 하라고 부탁했나? 제 놈들이 이곳까지 기어 내려와 놓고 무슨 개소리를…….’
구명현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욕지거리를 참고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본시 저희 상단은 부희산채에 은자 스무 냥을 내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스무 냥을 준비했고요. 아시다시피 겨울에는 저희 상단도 형편이…….”
“피를 보고 싶지 않다면 백 냥을 맞춰라. 두 번 말하지 않겠다.”
“배, 백 냥이라니요? 채주님.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그런 예는 없었습니다. 그건 상행을 다니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흥! 우리가 장사꾼인 줄 아느냐? 다니기 싫으면 안 다녀도 된다. 백 냥이다.”
단호한 음양귀도의 말에 구명현은 치를 떨었지만 내색하지 못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바로 칼에 맞을 분위기였다.
“끙! 상단 책임자와 상의해 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구명현은 일단 위험한 곳에서 피할 생각에 상단 책임자 핑계를 대고 뒤로 빠졌다.
백 냥을 요구한다는 말에 노규 행수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되오. 구 대주도 생각해 보시오. 부희산채에 백 냥을 내면 다른 산채도 똑같은 요구를 할 게요. 상행을 다닐수록 손해를 보게 된다는 소리요.”
“음양귀도에게 비밀을 지켜 달라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구명현은 어떻게든 이 자리를 모면하고 싶었다.
그러자 노규가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녹림의 도적들이 그런 비밀을 지켜 주겠소? 오히려 여기저기 떠벌리며 자랑을 할 게요.”
“행수님. 그래도 스무 명의 금린대로 부희산채의 도적들과 싸울 수는 없습니다.”
“구 대주의 심정은 아오만. 부희산채의 도적들도 정말 싸울 생각은 없을 게요. 도적들의 허장성세에 불과하니 확실하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해 보시오.”
“행수님은 살기를 풀풀 흘리는 음양귀도와 혈검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나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다 자칫 칼부림이 나면 이번 상행은 끝입니다. 어느 편이 더 큰 손해인지를 생각해 보십쇼.”
“구 대주. 본래 도적들과의 흥정은 대주가 해야 할 일이 아니오? 그걸 어찌…….”
“해 봤는데 안 된다고 하니 그러는 게 아닙니까? 누군 말을 안 해 본 줄 아십니까?”
“상대의 요구가 터무니없으니 더 해 보라는 말이오.”
노규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이를 악물어 참고 구명현에게 부탁했다.
구명현을 대주로 세운 사람이 자신이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행수님이 아직 그놈들 눈빛을 못 봐서 그러는 겁니다. 바로 칼부림이 난다니까요.”
구명현이 끝까지 거부하자 노규는 슬그머니 와룡검객에게 고개를 돌렸다.
“고문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순간 구명현의 눈초리가 사나워졌지만 노규는 애써 그를 외면했다.
“은자 백 냥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음양귀도가 그걸 모를 리 없으니 떠보는 말일 겁니다.”
“그렇지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같이 죽자는 게 아니라면 백 냥이나 요구할 리가 없지요.”
녹림의 도적은 상방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다.
상행을 멈추면 상방만 손해를 보는 게 아니다. 녹림의 형편도 그만큼 팍팍해진다.
연무백과 노규가 주거니 받거니 하자 구명현이 냉소를 쳤다.
“흥! 그러시다면 고문께서 흥정을 해 보시지요. 뒤에서는 무슨 말을 못…….”
“정말 내가 나서도 되겠습니까?”
구명현의 잔소리가 지겨워진 연무백이 치고 나갔다.
자신만만한 연무백의 태도에 구명현은 멈칫했지만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할 수 있으면 하십쇼. 고문님도 일은 하셔야지요.”
자존심이 상한 구명현은 끝까지 날을 세웠다.
연무백은 그의 빈정거림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너는 또 누구냐?”
음양귀도가 기이한 눈으로 사내를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구명현과 비슷한 나이지만 그와는 달리 잘 벼린 칼날 같은 예기가 느껴졌다.
“임시로 금린대의 고문을 맡고 있는 연무백이라 하오. 귀하의 명성은 많이 들었소.”
“연무백? 너는 와룡검객과 무슨 관계냐?”
“내가 와룡검객이오만. 문제 있소?”
순간 음양귀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와룡검객 연무백은 남천 연적하의 배다른 형제로 알려져 있었다.
한때는 연적하에게 찍혀 개고생을 했지만 그것도 과거지사다.
‘삼장불립’을 외치던 연적하는 언제부터인가 그들 모두를 용서했다.
그러니 지금의 와룡검객은 연적하의 형제다.
“험, 와룡검객이었구려. 연가무관은 어쩌고 금와상방과 함께 다니고 있소?”
음양귀도는 말투부터 하오체로 바꾸었다.
“방금 임시라고 말하지 않았소? 그나저나 부희산에 있어야 할 분들이 이곳에는 어쩐 일이오?”
“험, 험, 그게 이상한 놈들이 얼쩡거려서 잠시 산채를 비우고 나왔소.”
“혹시 그놈들이 적하가 찾고 있는 그 정체불명의 도적들이오?”
연적하의 명은 하오문에 의해 퍼져나가 하남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까지 내가 어찌 알겠소?”
“아하! 산채를 비워주기까지 했지만 아직 적하에게는 알리지 않았구려?”
예리한 연무백의 지적에 음양귀도는 서둘러 변명했다.
“어이쿠! 무슨 그런 끔찍한 말을. 낌새가 이상해서 피했지만 그들이 태상호법께서 찾는 도적들인지 아닌지 몰라 연락하지 않은 것뿐이오.”
“정체불명이라는 뜻이 바로 그런 게 아니오? 그런 자들이 나타났으면 바로 알려 줬어야지. 왜 이런 곳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거요?”
“알겠소. 내 수하들을 보내 부희산에 이상한 놈들이 있다고 알려 드리리다.”
음양귀도는 연무백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려 자신이 뭘 하려고 했는지도 잊었다.
한참 그를 몰아붙이던 연무백이 지나치듯 말했다.
“그런데 왜 백 냥이나 달라고 한 거요? 그렇게 돈을 주면 상단이 버텨 내지 못한다는 걸 그쪽도 알 텐데?”
“겨울에 집을 나오니 돈 들어갈 일이 많아 한번 찔러 본 거외다. 밑져야 본전 아니오?”
“쯧쯧! 그래도 백 냥은 너무했소.”
그때다. 처음부터 연무백을 아니꼬운 눈으로 보던 혈검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서 너는 얼마를 더 줄 생각이냐?”
사람 생각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예컨대 음양귀도가 연적하의 눈치를 보느라 연무백을 대우했다면, 혈검은 반대다.
그는 연적하와 배다른 형제들의 사이가 좋지 않음을 알기에 삐딱하게 대했다.
“스무 냥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연무백이 차가운 눈으로 혈검을 응시했다.
순간 혈검이 발검과 동시에 연무백의 목울대로 검끝을 밀어 넣었다.
꽤나 위험한 수법이지만 사실 혈검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한 수였다.
그와 동시에 연무백도 반보 옆으로 빠지며 검을 뽑아 휘둘렀다.
구천세법의 일 식 비룡승천(飛龍昇天)이었다.
채앵-!
연무백의 검이 혈검의 검을 위로 튕겨 낸 뒤에, 미끄러지듯 혈검의 목울대로 파고들었다.
턱.
연무백의 검은 절묘하게 혈검의 살거죽에서 멈춰 섰다.
그야말로 가공할 정도로 빠르고 정교한 한 수였다.
상상 밖의 검공에 대경실색한 혈검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멍하니 보고 있던 음양귀도가 뒤늦게 너스레를 떨었다.
“과연! 듣던 대로 와룡검객의 검공은 무시무시하구려. 가히 무림의 일절이라 할 만하오.”
연무백이 피식 웃으며 검을 갈무리했다.
상대의 검에서 살기가 느껴지지 않아 굳이 목숨을 취할 생각은 없었다.
결과에 승복한 혈검은 연무백에게 묵례를 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
같은 시간.
하남성 개봉.
가노하 부근.
대화를 앞세운 부희산채와 달리 혈룡대 고수들은 처음부터 광풍처럼 금인상방을 몰아쳐 갔다.
하지만 연적하와 심통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천둔검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혈룡대의 난입을 막았다.
연적하가 상단을 보호하는 동안 심통은 굶주린 사자처럼 날뛰었다.
‘이번에는 좀 잡아서 배후가 어디인지 캐물어 보시지요?’라던 사람이, 금강저로 혈룡대 고수들 머리를 박살 냈다.
아무래도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에 크게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인정사정없는 그의 손속에 멀리서 지켜보던 호위대들이 부르르 몸을 떨 정도였다.
보다 못한 혈룡대 부대주 염라사자 역회신이 심통의 앞을 막아섰다.
이윽고 역회신과 심통이 용호상박의 혈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기세가 꺾인 혈룡대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대주인 생기사귀 우불도의 눈치만 살폈다.
내심 탄식하던 우불도는 마침내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알고 앞으로 나섰다.
“연적하! 이 자리에서 생사를 가리자!”
그러자 연적하가 우불도 뒤에 유령처럼 나타났다.
호기롭게 나섰던 우불도는 ‘악!’ 소리와 함께 머리를 움켜쥐고 고꾸라졌다.
한주먹에 우불도를 쓰러뜨린 연적하는 연이어 천산검영을 펼쳤다.
‘검의 화신(化身)’들이 뒷걸음질 치는 혈룡대 고수들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콰자자작-!
혈룡대 고수들은 ‘검의 화신’에 담겨 있는 거력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육편이 되고 말았다.
그 참혹한 모습에 호위와 상인, 짐꾼 들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