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78
878회. 다시는 만나지 말자꾸나
연적하의 담력에 탄복한 혈제 종리목은 그와 교분을 나누고 싶어 쭈뼛거렸다.
하지만 연적하는 종리목에게 눈곱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혈제는 자신을 무시하려고 했던 사악한 마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안 가?”
“아, 갑니다. 보중하십시오.”
연적하의 물음에 종리목과 적룡채 도적들은 쫓겨나듯 천람소축을 떠났다.
눈치를 보던 연무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고맙다. 네가 아니었으면 진즉에 죽었을 게다.”
“…….”
연적하는 먼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무백을 살렸지만 그의 친모인 백미주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그에게 자신은 원수일까? 은인일까?
“무백 형.”
“어.”
연무백은 연적하가 형이라 부르자 왠지 뿌듯했다.
남천 연적하가 배다른 자신의 동생이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내가 의창에 있는 유명교 신당을 부쉈다는 소식, 혹시 들었어요?”
“서가장을 말하는 거라면 오는 길에 들었다.”
“서가장에서 큰어머니를 만났어요.”
“…….”
연무백은 뜻밖의 소리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의절 아닌 의절을 한 상태지만 그래도 어머니 소식이 늘 궁금했었다.
“십두마병이 되어 있더라고요. 서가장에서 인신 공양을 하던 사람이 큰어머니예요. 백두마군이 되려고 수도자 오십여 명을 벌써 제물로 드렸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은 단지 나를 낳아 주었을 뿐, 나와는 무관한 사람이다.”
“그날 내가 큰어머니의 팔주령을 부있어요. 수도자들의 영기를 갈취한 물건이기도 하지만, 큰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걸 보니까 더 부수고 싶더라고요.”
“아…….”
연무백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연적하가 그걸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계속해서 이어지는 배다른 동생의 말에 연무백의 얼굴이 굳었다.
“큰어머니가 아끼는 걸 부숴서 약을 올리고 싶었어요. 그랬는데……. 큰어머니의 팔주령을 부수자마자 이상한 일이 벌어지더라고요.”
연적하는 백미주가 갑자기 늙어 버린 것과 땅 밑에서 올라온 검은 그림자들이 그녀를 끌고 땅 밑으로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해 설명했다.
“……바닥을 파 봤지만 그 아래로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유명교도들은 염마왕에게 자신의 영혼을 바치는데, 그것 때문에 저승으로 끌려간 것 같아요.”
“어머니가 죽었다는 거냐?”
“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냐? 나는 산 채로 저승으로 끌려간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나도 처음 봤어요. 하지만 큰어머니가 저승으로 끌려간 건 맞아요.”
“어머니가 살아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
“저승에 산 사람이 갈 수는 없어요. 그림자들에 잡혀갈 때 죽었을 거예요.”
“…….”
연무백은 황망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물론 그가 죽이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를 죽인 것은 틀림없었다.
“너는 정말로 팔주령을 부수면 어머니가 죽는다는 걸 몰랐느냐?”
“몰랐어요.”
“질문이 조금 이상하다만, 그걸 알았다면 너는 어찌했을 것 같으냐.”
“심 노인에게 부수라고 했을 거예요.”
연적하는 망설이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팔주령에 영기를 빼앗기고 죽은 수도자들을 위해서라도 팔주령을 그냥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알든 모르는 어머니를 죽였을 거라는 말이구나.”
“팔주령에는 인신 공양으로 희생된 수도사들의 영기가 들어 있어요. 수도사들의 영기가 나쁜 일에 쓰이게 둘 수는 없으니까요.”
연무백은 복잡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어머니가 그에게 잘못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 해도 어머니를 죽이는 것은 패륜이다.
비록 친모가 아니라 해도 패륜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패륜적인 말을 입에 담고 있었다.
‘녹림의 거마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이런 것인가…….’
자신이라면 팔주령을 부수는 것보다는 어머니를 택했을 것이다.
비록 어머니와 의절을 한 상태지만, 어머니를 죽게 할 수는 없으니
그러나 연적하는 너무도 쉽게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했다.
울컥한 연무백이 물었다.
“너에게도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있어요.”
“팔주령이 그 사람의 목숨과 관계가 되어 있다면. 그래도 부수겠느냐?”
“안 부수죠.”
“그렇다면 너는 그저 이기적인 녀석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수도사들의 영기를 생각해서 어머니의 팔주령을 부순 것처럼 말하지 마라.”
연무백은 곧바로 후회했다.
배다른 형제라고 하지만 실상 연적하와 자신은 남보다 못한 관계였다.
그런데 그의 이중적인 행태를 비난했으니 그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몰랐다.
“형님이 물었잖아요.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고. 내 목숨도 거는 마당에 이미 죽은 사람의 영기가 뭐 어떻다고요?”
“네가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연무백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해 봐야 연적하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밖에 되지 않으니 참은 것이다.
“형님. 나는 큰어머니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증오해요. 큰어머니가 아버지의 부인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였을 거예요.”
“……결국 바라던 대로 됐구나.”
“…….”
연적하는 변명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사실이었고, 그 일에 후회는 없었다.
묵묵히 서 있던 연무백이 돌아섰다.
“너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너와 엮이고 싶지 않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꾸나.”
그는 연적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경신술로 사라졌다.
연적하는 연무백이 떠난 뒤에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연씨들과는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조금 괜찮아졌다 싶다가도 한순간에 원점으로 돌아간다.
“운명인가…….”
베풀어 주어도 꼬이기만 하는 걸 보니 달리 생각할 방도가 없다.
잠시 후 ‘연무백이 떠났다’는 말을 들은 남궁연이 아기를 안고 나왔다.
“아주버님은?”
“갔어요.”
“서가장에서의 일을 말해 줬나 보구나?”
연적하는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야 원수지만 그래도 무백 형은 자기 엄마니까. 마음이 좋지 않은가 봐요.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하네요.”
“지금은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풀어질 거야.”
“풀릴까요?”
“아주버님도 머리로는 네가 한 행동을 이해할 거야. 감정이 들끓어서 그런 거지.”
“상관없어요. 어차피 살면서 마주칠 일도 없는데요 뭐. 무백 형이 이곳에 올 일도 없겠지만, 나도 연가무관에 갈 일이 없잖아요.”
“너무 억지로 그러지 마. 아주버님은 하나뿐인 어머니마저 잃은 거잖아.”
“나도 부모님을 잃은 지 오래라고요.”
“그래. 오래전의 일이지. 아주버님은 얼마 전에 잃었고. 큰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주버님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해 줘도 괜찮잖아.”
“누님이 생각해도 내가 이기적인 놈 같아요?”
“왜?”
“팔주령이 내 가족의 목숨과 관계된 거라면 부수지 않았을 거라고 했더니, 나를 이기적이라고 하더라고요.”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야.”
“전에는 큰어머니를 우연히 봤을 때 가슴이 엄청 ‘쿵쾅’거렸거든요. 그런데 서가장에서는 그런 게 없었어요. 그냥 의외의 사람을 만나서 ‘뜻밖이다?’ 딱 그 정도였어요. 큰 어머니가 그림자들에게 끌려가는 걸 보는데도 ‘안타깝다’거나, ‘목숨 걸고 구해야겠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고요. 내가 구주에서 피를 많이 봐 가지고……. 변한 걸까요?”
“그보다는 성장했다고 하는 게 맞을 거야. 큰어머니를 우연히 봤을 때와 지금의 너는 많이 다르잖아.”
“누님도 내가 큰어머니에게 팔주령을 그냥 돌려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 그건 네 행동이 옳아. 비명에 간 수도자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지.”
“젠장. 모르겠어요. 내가 왜 팔주령을 부쉈는지. 그게 누구를 위한 행동이었는지.”
연적하가 툴툴거리자 남궁연은 안고 있던 아기를 그에게 건넸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 후회하지 마.”
연적하에게 안기자 아기가 “꺄아아!” 웃음을 터뜨렸다.
아기 웃음소리에 연적하는 잡념을 떨쳐 버렸다.
“누님.”
“응?”
“아기가 좀 신기한 것 같아요.”
“왜?”
“무산소축에서 내가 좀 멍청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거든요. 지금도 아기 웃음소리를 들으니까 잡생각이 다 달아나요.”
“부성애가 강해서 그래.”
“아, 그게 부성애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남궁연의 말이니 그게 맞을 테지만 왠지 다른 이유 때문일 것 같았다.
이를테면 마신 메누아의 영혼이 가진 힘 말이다.
“왜? 달리 짚이는 게 있기라도 해?”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누님 말이 맞겠죠.”
연적하는 건성으로 답하고 아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얼굴 생김새는 남궁연과 자신을 닮았는데 눈동자가 신비로웠다.
“누님. 아기 눈동자는 다 이래요?”
“풋! 나라고 알겠니? 아기는 나도 처음인데.”
“그런데 장인어른께서는 아직도 이름을 못 정하셨대요? 오래 걸리시네.”
“그러게. 첫 손녀라고 공을 너무 들이시는 것 같아.”
“누님이 좀 도와 드리지 그래요?”
“손녀 이름에 대해서는 내 말을 들으려고 하시지 않아. 남맹의 일도 손에서 놓으신 지 오래야.”
“무림대회의 준비는 어쩌고요?”
“몰라. 누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대놓고 손녀의 이름 짓는 게 더 급하다고 하셔. 하아! 이젠 나도 빨리 정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야.”
“나는 하루면 뚝딱 지어 주실 줄 알았어요.”
“그게 마음 같지 않으신가 봐.”
입으로는 툴툴거렸지만 남궁연의 눈은 웃고 있었다.
지금까지 부친이 그렇게 좋아하면서 뭔가에 집중하는 걸 본적이 없어서다.
요즘은 그동안 자신이 하지 못한 효도를 딸이 대신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름이 더 늦게 만들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
사천성.
성도.
천룡문.
신시 초(오후 3시) 무렵.
당가가 휘청거리는 동안 사천무림의 중심으로 떠오른 천룡문에 백여 명의 무림인들이 모여들었다.
사천 지방에 자리한, 대내외적으로 사천무림이라 불리는 문파의 수장들이다.
천룡문의 문주인 천룡금검 황의식이 좌중을 둘러본 후에 말했다.
“어서들 오시오. 먼 길들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소이다. 오늘 사천성의 여러 동도들을 모신 것은 한 가지 결정할 일이 있어서외다.”
이미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있는 듯 문주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황의식이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 사천무림은 본문과 청성파, 그리고 당가가 이끌어 왔소. 허나 공교롭게 당가는 남천 대협, 청성파는 마교를 만나 존망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소.”
존망의 위기라는 말에 문주들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그 위기가 단지 청성파와 당가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아는 까닭이다.
“논의에 앞서 잠시 청성파 장문인의 말씀을 들어 보도록 합시다.”
황의식의 눈짓에 청성파 장문인 원양 진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