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77
877회. 내가 지금 불나방이라고 했어?
남직례성.
합비.
애신루.
합비의 유흥가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애신루로 다섯 명의 사내들이 들어갔다.
오랜 여행으로 의복은 때에 찌들고 움직일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렸지만 누구도 그들을 욕하지 않았다.
아니, 욕은 둘째치고 혹시라도 시선이 마주치면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각종 병장기를 소지한 악귀처럼 생긴 사내들을 보면 누구라도 그럴 게다.
애신루의 여주인은 기루 분위기가 싸해지자 서둘러 마중을 나갔다.
“호호. 어서 오시어요. 저희 애신루에서 가장 좋은 방으로 모셔도 될까요?”
그녀는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이 흉악하게 생긴 손님들을 귀빈실로 모실 생각이었다. 그래야 다른 손님들이 편안하게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여주인의 제안에 무쌍혈귀 금우가 적룡채 채주인 혈제 종리목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들과 달리 떠들썩한 곳을 좋아하는 종리목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금우가 여주인에게 턱짓을 하며 말했다.
“우리 큰 어르신께서는 답답한 밀실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뻥 뚫린 시원한 자리로 안내하거라.”
여주인은 짜증 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손님들을 중앙의 자리로 안내했다.
적룡채 도적들과 연무백이 중앙에 자리를 잡자 기루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입술을 물어뜯던 여주인은 쉬고 있던 악사와 무희를 다시 무대로 올렸다.
띵. 띠딩. 띵-!
칠현금 선율에 맞춰 속이 비치는 옷을 입은 무희가 흐느적거렸다.
그제야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소곤거리던 사람들의 음성이 높아지자 옆자리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석 대협, 청성파에서 연적하를 무림공적으로 지정하자고 청원(請願)했다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천지문의 대사부 석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청성파는 ‘연적하가 사사로이 삼년지약을 깨고, 호국 종교인 유명교의 신당을 파괴했으니, 대의를 위해 척살해야 한다’고 했다.
“호천맹에서 정말 연적하를 무림공적으로 선언할까요?”
“그러기는 힘들 겁니다. 연적하의 사문인 무당파에서 반대할 테고, 녹림은 물론 남맹과의 관계도 나빠질 테니까요.”
“그런데 왜 청성파에서는 그런 무리한 주문을 한 겁니까?”
“당장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교에게 죽을 판이니 그런 것이겠지요.”
“그래도 청성파는 호천맹의 주축이지 않습니까? 맞서 싸우지 않고 오히려 마교의 편에 서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마교가 갑자기 몰려와 죽을래? 내 편에 설래? 한다면 장 행수께서는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저같이 별 볼 일 없는 상인이야 당연히 굽혀야지요. 하지만 청성파는 칠파일문의 하나로 무림을 선도해 가는 대문파가 아닙니까?”
“그야 모를 일이지요. 지금이야 청성파가 처음이니 청성파를 욕하겠지만……. 마교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또 달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설마 더 많은 문파가 마교의 편에 설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마교는 호천맹 전체가 달려들어도 어려운 상대입니다. 개별 문파는 물론 사천무림도 상대가 되지 않아요.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된 셈입니다. 살고자 하는 의지에 장사꾼과 무인의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장인국 행수는 선선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무인이라고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연무백은 옆자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곳도 역시 마교를 소재로 떠들고 있었다.
연적하를 찾아가는 연무백이 듣기에 꽤나 부담스러운 이야기였다.
그는 혈제가 변심해 자신을 죽이고 하남으로 돌아가지 않기만 바랐다.
야릇한 눈으로 연무백을 응시하던 종리목이 말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얼굴이로구나. 내가 너를 죽이고 영하로 돌아갈까 봐 그러느냐?”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군요.”
“푸하하핫! 그런 걸 두고 기우(杞憂)라고 한다. 녹림의 인물을 잡고 물어보거라. 태상호법과 마교 중에 누가 더 무서운지를. 열이면 열 다 태상호법이라고 할 것이다.”
“…….”
연무백이 황당한 눈으로 종리목을 보았다.
마교는 무림사에 다시 없을 절대적인 악의 근원이자 공포의 상징이다.
그런 마교보다 연적하를 더 무서워하다니?
연적하를 몇 번이나 만나 본 그로서는 선뜻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태상호법은 실로 무서운 사람이다. 자기 눈에 거슬리면 상대가 누구라도 가루로 만들고 말지.”
사실 ‘가루로 만든다’는 말은 십두마병과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에게 죽은 마물이 가루로 사라지는 걸 본 뒤로 사람들은 ‘연적하가 사람을 가루로 만든다’고 했다.
종리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듯 머리를 설레설레 젓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혼자 십두마병들을 쳐 죽였고, 단신으로 명왕교에 쳐들어가서 호주머니 속에 든 물건을 꺼내듯 사대신장의 하나를 잡아갔다. 그런 태상호법과 척을 졌다고 생각해 봐라. 마음 편히 잠인들 잘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래도 저들 말처럼 막상 마교를 만나면 살기 위해서라도 마교에 동조할 것 같은데요.”
“크흐흣! 어차피 녹림의 말은 그때뿐이다. 지금은 태상호법이 두렵다고 말하는 나도, 마교를 만나면 태상호법을 욕할 게다.”
그 말에 연무백은 오히려 안도했다.
사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은 연적하를 두려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금우가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청성파는 이제 운이 다 한 것 같습니다. 저렇듯 대놓고 태상호법님과 척을 졌으니……. 태상호법님이 가만히 두지 않겠죠?”
“흥! 태상호법이 마교의 손에서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태상호법이 죽으면, 정사파가 벌떼같이 들고일어나 무림공적이라고 말할 게다.”
“쩝. 마교는 왜 갑자기 태상호법님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호천맹이 아니라 녹림을 원수 대하듯 하다니. 이게 무슨 영문인지 원.”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겠지. 태상호법은 워낙 제멋대로 하는 위인이 아니냐.”
종리목은 술을 입에 털어 넣으며 속으로 다짐했다.
‘불똥이 적룡채로 튀기 전에 빨리 연무백을 넘기고 돌아가야겠다.’
마교에서 태상호법과 관계된 문파를 멸하겠다니 그와의 만남이 슬슬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
그날 오후.
혈제와 적룡채의 도적들은 연무백을 데리고 남궁세가를 방문했다.
남궁세가의 총관인 유정유검 남궁산호가 혈제 일행을 천람소축으로 데리고 갔다.
종리목은 연적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머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적룡채의 채주인 혈제 종리목이 태상호법님께 인사 올립니다!”
“속하는 무쌍혈귀 금우라 합니다! 태상호법님의 존안을 뵈오니…….”
“됐고. 왜 이렇게 늦었어?”
연적하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금우가 혈제를 대신해서 급히 변명했다.
“저희가 청성산으로 찾아갔으나 그때는 이미 태상호법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여…….”
“내가 당신에게 물었어?”
연적하의 말에 금우는 어깨를 움츠리고 입을 꾹 다물었다.
남직례성까지 왔는데 칭찬은 못할 망정 늦었다고 지랄을 하니 기가 막혔다.
‘개자식. 저러니 마교의 눈 밖에 나지……. 쌤통이다. 뒈져 버려라!’
속으로 저주를 퍼붓던 금우는 슬쩍 종리목에게 시선을 돌렸다.
평소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종리목의 눈은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깜짝 놀란 금우가 종리목을 만류하려는 순간, 그의 눈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청성산을 떠나신 줄 모르고 그곳에 들렀다가 오느라 늦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건 사소한 일이니까 용서해 줄게. 그런데 말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 와룡검객이 내 형님인 줄 알았으면 그 자리에서 보내 드렸어야지, 왜 산채로 개처럼 끌고 간 거야? 마교 놈들이 주접을 떠니까 당신 눈에도 내가 만만하게 보였어? 그래서 나더러 자신 있으면 와서 데리고 가 보라고 한 거야?”
순간 종리목의 입이 쩍 벌어졌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자신은 생색을 내기 위해 그런 것이지 ‘자신이 있으면 데리고 가 보라’는 뜻으로 그런 게 아니었다.
이건 누가 봐도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꼬투리를 잡는 것에 불과했다.
‘연무백을 풀어 주고 모른 척할걸…….’
어차피 그는 마교를 상대하느라 연무백의 일까지 신경 쓰지 못했을 게다.
그런데 꾸역꾸역 찾아와서 개망신을 당하다니!
‘이런 멍청한 새끼! 여기까지 찾아 오는 게 아닌데. 내가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었구나! 너는 죽어도 싸다! 죽어도 싸!’
종리목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할 때 연적하가 말했다.
“대답 못 하는 걸 보니 내 말이 맞나 보네.”
“아닙니다. 태상호법님의 형제라 예우 차원에서 산채로 모셨던 겁니다.”
종리목은 혈제의 체면을 내려놓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질렀다.
“예우라. 무백 형. 이 사람이 막 괴롭히고 그러지는 않았어?”
“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연무백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혈제가 무시무시한 마두지만 오랜 기간 함께 여행하며 약간의 정이 든 까닭이다.
그러자 연적하는 찌푸리고 있던 얼굴을 폈다.
“그렇다면 용서를 해 주지. 아저씨들. 내가 아저씨들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알아? 마교야 오지에 처박혀 살았으니 천둥벌거숭이들처럼 날뛰어도 이해할 수 있어. 무식해서 그런 거니까. 마음 넓은 내가 이해를 해 줘야지. 그런데 아저씨들은 아니잖아? 나는 아저씨들에게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식사도 제대로 못 했다고. 배가 고픈데 입맛은 없고, 그 더러운 심정을 알아?”
“…….”
종리목은 머릿속이 온갖 생각들로 뒤엉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마교가 죽이겠다고 달려오는데, 자기들 때문에 화가 나서 식사를 못 했단다.
내용은 개소리가 분명한데 진지한 얼굴을 보니 진짜다.
그는 연적하의 말속에서 허실을 구별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머리만 멍해졌다.
“……그래도 무백 형을 예우하려고 그런 거라니 화가 좀 풀리네. 고마워. 아무리 아저씨들이 때려죽일 마두라고 해도 옛친구들이라 그러고 싶지 않았거든. 가 봐. 다음에는 좋은 일로 만나자고.”
종리목이 망연자실하게 서 있자 금우가 그의 팔꿈치를 살짝 잡았다.
“채주님?”
그제야 정신을 차린 종리목은 자리를 떠나기 전 녹림의 대마두답게 물었다.
“그런데 마교는 왜 태상호법님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겁니까?”
“아, 그것들이 내 의제를 죽였거든. 하남성에서 상방들을 공격하던 놈들이 마교였어. 그래서 내가 눈에 띄는 족족 씨를 말려 놨지. 그래서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총채주님에게도 신경 쓰지 말라고 전해 줘.”
“마교 교주까지 천산에서 내려온 걸 보면……. 씨를 많이 말려 놓으셨나 봅니다?”
“어, 좀 많아. 가만히 있는데 불나방들처럼 자꾸 덤벼들잖아. 내가 지금 불나방이라고 했어?”
“예.”
“그래, 불나방이야! 그 불나방들 귀찮아 죽겠어. 정작 피해자인 나는 가만히 있는데, 왜 자꾸 죽겠다고 덤벼드는지 몰라.”
“…….”
종리목은 마교를 불나방이라고 하는 태상호법의 호기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허! 나도 피에 미친놈이란 소리를 듣지만 태상호법의 광기는 따라갈 수가 없구나.’
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종리목은 진심으로 그에게 승복했다.
그것이 광기든, 깡이든, 허언이든, 태상호법을 따라갈 자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