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8
88회. 제삼자는 빠져 주시오
간판도 없을 정도로 작고 오래된 반점 안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낙양을 오가는 길에 들러 잠시 허기를 달래고 가는 사람들이다.
점소이가 보이지 않아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은 스스로 빈자리를 찾아야 했다.
빈 탁자가 보이지 않자 심통은 합석으로 마음을 돌렸다.
심통이 빈 의자가 있는 탁자로 다가갈 때, 안쪽에서 초로의 노인이 나왔다.
“헤헤, 빈 탁자가 없으면 아무 곳이나 앉으면 됩니다요. 무엇으로 드릴까요?”
심통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연적하에게 손짓을 보냈다.
“공자님, 이리로 오십시오.”
그는 연적하가 와서 빈자리에 앉자 비로소 노인에게 눈을 돌렸다.
“이 집에서 잘하는 게 뭐냐?”
“소면과 돼지고기 볶음, 오리구이가 맛있습니다요.”
“그것으로 내오거라.”
“예, 예.”
노인은 심통과 연적하의 허리춤에 걸린 도검을 보고는 과하게 굽실거리다가 돌아갔다.
이곳에서는 합석이 당연한 듯 먼저 먹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연적하는 그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보았다.
소면이다.
주위의 다른 탁자를 보니 역시나 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소면을 먹고 있었다.
그때 심통이 나직이 말했다.
“공자님, 저것들 같습니다.”
연적하의 눈에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묻지 않아도 누굴 가리키는지 알 것 같았다. 보나 마나 마차로 질주한 사람들일 것이다. 별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호기심에 슬쩍 고개를 돌려보았다.
이 남 일 녀가 정신없이 소면을 먹고 있었다.
음식만으로는 다른 손님들과 구별하기 어려웠지만 심통이 왜 그들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눈에 봐도 무림인의 기세를 풍기는 데다가 남자들과 여자의 외모가 출중했다.
그들은 뒤에서 누가 쫒아오는 것처럼 소면을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관도에서 미친 듯 마차를 몰고 간 게 단순히 성격 탓은 아닌 것 같았다.
연적하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그들이 먹는 걸 보니 입안에 침이 고이며 허기가 급격하게 밀려왔다.
빨리 먹고 싶어서 손바닥에 땀까지 찰 정도다.
그래서일까?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까지 났다.
연적하가 멋쩍은 얼굴로 다시 고개를 돌릴 때다.
쾅.
누군가 반점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낡은 문짝의 위쪽 연결 부분이 떨어져 나가 보기 흉하게 덜렁거렸다.
조용히 음식을 먹던 사람들의 눈이 한순간 입구로 향했다.
뒤이어 여섯 명의 사내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왔다.
흉흉한 얼굴로 반점을 둘러보던 사내들이 갑자기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그중 하나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흐흐. 우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고작 하루 굶었다고 이렇게 반점에 늘어져 있다니. 우리를 너무 무시한 것 아니냐?”
연적하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이 남 일 녀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젓가락을 내려놓고 있었다.
이죽거리던 사내가 가까이 있던 의자를 힘차게 걷어차며 소리쳤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튀어 나가! 이 새끼들아!”
다른 사내들도 킬킬거리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뭘 봐? 병신들아!”
“동작 봐라. 이 새끼들!”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소면을 먹던 손님들이 허둥지둥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 소란에 주방 일을 거들던 노인이 문틈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넌 뭐야! 안 나가?”
마침 노인과 눈이 마주친 사내 하나가 눈알을 부라렸다.
깜짝 놀란 노인은 고개를 굽실거리며 주춤주춤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 꼴을 본 연적하가 한마디 했다.
“아, 거. 좀 먹자! 노인장, 얼른 들어가서 요리나 내와요.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아.”
“예?”
노인이 멍한 얼굴로 연적하와 사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배고파서 손이 떨린다고. 얼른 좀 먹게 해 줘요. 나 진짜 장난 아니야.”
노인은 연적하의 허리에 달린 검을 한번 보고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 주방으로 돌아갔다.
사내, 사망검 이철원이 살기 어린 눈으로 연적하를 쏘아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계속 남아 있어서 짜증 나는데, 자신들의 일에 끼어들기까지 하다니?
당장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그들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도검이 신경 쓰인다.
이철원은 끓어오르는 노기를 억지로 다스렸다.
노인과 아이와 여자를 조심하라는 격언이 아니더라도, 이런 분위기에 저런다는 건 수상한 거다.
잠시 호흡을 가라앉힌 이철원이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낙양 철혈방이오. 창해무관의 반도들을 잡는 중인데, 제삼자들은 빠져 주면 고맙겠소.”
이철원은 이쯤이면 소년과 노인이 수그릴 거라고 믿었다.
사파인 철혈방은 칠파이문에서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만큼 거대한 방파다. 그런 철혈방과 척을 지고 낙양에서 산다는 건 불가능했다.
순간 이 남 일 녀 중 여자가 빽 하고 소리쳤다.
“거짓말! 우리가 왜 반도야! 너희가 창해무관을 집어삼키려고 수작 부린 거잖아! 총관이 너희에게 붙었다고 주인 행세를 하면 안 되지! 진짜 반도는 너희와 붙어먹은 총관, 그 개자식이잖아!”
이철원이 가소롭다는 투로 말했다.
“미친년! 우리는 계약서대로 창해무관을 인수한 것뿐이야. 너희 입맛에 들면 총관에게 일임한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반도냐?”
“이익! 총관을 꼬드겨서 엉터리로 계약서를 써 놓고, 나쁜 새끼들!”
이철원을 노려보던 창해무관의 일대제자 정연지가 연적하에게 고개를 돌렸다.
“소협! 철혈방은 낙양에서 유명한 범죄자들이에요. 저놈들은 창해무관을 빼앗고, 청풍장에 도움을 청하려는 저희를 죽이려고 해요!”
정연지가 일러바치듯 진실을 공개했지만 연적하의 얼굴은 무덤덤했다.
보다 못해 정연지의 오빠인 정무진이 끼어들었다.
“소협! 저들은 낙양의 사파로 창해무관을 빼앗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순간 연적하가 시끄럽다는 듯 귀를 후비며 말했다.
“와, 진짜 이상하네. 배고파서 밥 먹으러 온 사람에게 뭐라는 거야. 싸우려면 나가서 싸우고, 조용히 합시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말고.”
이철원의 얼굴에 득의의 미소가 어렸다.
철혈방의 이름에 상대가 주눅이 들어 창해무관을 거부한 게 분명했다.
“끌어내.”
이철원의 명령에 다섯 사내가 이 남 일 녀를 향해 다가갔다.
이를 악물고 있던 정연지가 칼을 뽑았다.
“그래, 와 봐, 이 새끼들아. 이젠 도망 다니기도 지쳤다. 여기서 끝을 보자.”
정무진과 임효도 그녀의 좌우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에 대응해 다섯 사내까지 박도를 뽑자 좁은 반점이 살기로 가득했다.
전진하려던 다섯 사내가 곤혹스러운 눈으로 이철원을 바라보았다.
일렬로 넓게 퍼져서 가야 하는데 소년과 늙은이의 탁자가 중간에 끼어 있었다.
소년과 늙은이가 비켜 주지 않으면 저 셋의 칼에 차례대로 머리를 디밀어야 하는 상황.
결국 이철원이 헛기침을 터뜨리며 한마디 했다.
“험, 험, 소협. 잠시 자리를 비켜 줬으면 하는데. 길이 좁아서 우리가…….”
이철원이 말끝을 흐렸다.
소년과 늙은이가 자신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있는 게 보였다.
‘아니 이 씨벌 것들이 미쳤나?’
철혈방의 이름을 듣고도 처먹어 보겠다고 앉아서 버티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이철원은 늙은이에게 눈을 돌렸다.
탁자 아래로 붉은 유엽도의 도집이 보였다.
붉은 유엽도.
하남성에서 붉은 유엽도의 도집으로 유명한 고수는 딱 하나다.
십여 년 전부터 활동이 뜸해진 구밀복검 심양각.
철혈방 방주 사악도부 좌양선과 함께 하남이흉으로 불리던 마두.
‘설마? 심 선배인가?’
느낌상 심양각과 그의 제자 같았다.
그가 만약 심양각이라면 방주의 친우이므로 제대로 대우를 해야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들 여섯으로는 심양각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철원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늙은이에게 물었다.
“저어, 노선배님께서는 저희 방주님과 함께 하남이웅으로 불리시던 구밀복검 선배님이 아니십니까?”
“풉!”
연적하가 입에 머금고 있던 차를 뿜었다.
하남이웅이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던 것이다.
이흉(二凶)이면 몰라도 이웅(二雄)이라니.
순간 이철원이 못마땅한 시선으로 소년을 힐끔 쳐다보았다.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아주 지랄이다.
그때 심통이 입을 열었다.
“아니다. 그런데 철혈방의 방주가 사악도부냐?”
“그렇습니다만…….”
이철원이 반신반의의 눈으로 늙은이를 보았다.
구밀복검이 아니라면서 사악도부의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다니?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는 이철원의 귓가로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렸다.
“그는 언제 방주가 되었느냐?”
“지난가을에……. 그런데 선배님은 누구신지?”
“그만 가거라. 공자님 식사하시는데 걸리적거리지 말고.”
“…….”
이철원은 불만 가득한 눈으로 늙은이를 훑어보았다.
구밀복검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굽실거리며 상대의 비위를 맞춰 줄 이유가 없다.
유명교에 줄을 댄 철혈방의 힘은 ‘최소한 낙양에서는 의천문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혈방이 창해무관을 집어삼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잠시 생각하던 이철원이 강경하게 말했다.
“노선배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철혈방의 적이 되지 않으려면 비키는 게 좋을 게요.”
하필 그때 주방에서 노인이 양손에 소면을 들고 나왔다.
노인은 분위기가 싸하자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서 머뭇거렸다.
보다 못한 연적하가 노인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그제야 노인은 봐 달라는 듯 사방을 향해 굽실거리며 탁자로 다가갔다.
일이 생각대로 안 풀리자 이철원은 입술을 물어뜯었다.
성질대로 탁자를 엎자니 늙은이가 마음에 걸리고, 두고 보자니 속이 뒤집힌다.
한참 씩씩거리던 그가 버럭 소리 질렀다.
“뭐해! 저 연놈들을 쳐 죽이지 않고!”
그 서슬에 다섯 사내가 우르르 몰려갔지만, 다시 탁자에서 막혔다.
저편에 이 남 일 녀가 칼을 들고 서 있는데, 한두 명씩 전진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어떻게 건너가도 문제다.
좁은 데서 싸우다 늙은이와 소년을 건드렸다가는 무슨 사달이 일어날지 몰랐다.
이철원이 빠드득 이를 갈며 늙은이와 소년을 노려보았다.
늙은이와 소년은 이런 와중에도 태평스럽게 소면을 먹고 있었다.
‘씨벌, 믿는 게 있다는 건데…….’
한참 동안 부들부들 떨던 이철원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 보통 사람은 저렇게 태평스러울 수가 없다.
강호에서 장수하려면 눈치가 빨라야 한다.
자신들이 당하면 철혈방에서 복수해주겠지만, 죽고 난 다음에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이철원은 저 두 노소가 다 처먹고 떠날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다.
“……노선배의 식사가 끝나면 처리한다.”
이철원은 수하들을 입구에 배치해 일단 이 남 일 녀를 가두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소면을 흡입하던 심통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쩝, 쩝, 저놈들 눈치가 보통이 아닙니다.”
“그러게. 넷째 형님을 닮았어. 도둑들 눈치가 장난 아니던데. 도둑이었나 봐? 캬하! 국물 맛 좋다.”
이철원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한 척 딴청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저 두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부지런히 굴렸다.
행동거지를 보면 정파는 아니다.
하남의 사파 중에 저런 인간들이 있던가?
그렇게 세 무리가 애매하게 대치하고 있을 때 주인이 완성된 요리를 내왔다.
돼지고기 볶음과 오리구이와 시키지도 않은 청채들이 탁자 위에 가득 놓였다.
연적하와 심통은 맨손으로 오리구이를 쭉 찢어서 뜯어 먹기 시작했다.
손과 입가에 기름을 묻히고 쩝쩝거리는 게 며칠 굶은 사람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