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05
905회. 호천맹의 무림대회로 가세요
석경장.
안채.
“……‘진설하가 남맹을 떠나겠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으시는데 말문이 탁 막혔다. 진 매가 그 말을 했을 때는 홧김에 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림세가 사람들이 남맹과 호천맹의 갈등을 빌미로 진 매를 계속 괴롭히면, 진 매가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감정이 북받친 청운검 남궁천은 잠시 말을 끊었다.
연적하와 남궁연은 묵묵히 그를 지켜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진 매를 도울 방법을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호법당을 상대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호법당이 진 매를 괴롭히는 것은 나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진 매를 도울 수가 없으니……. 어쩌면 좋겠느냐?”
순간 기다렸다는 듯 연적하가 말했다.
“호법당 당주하고 형님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요?”
“모용 숙부 말이냐?”
“예.”
“전에는 모용 숙부가 이겼겠지만 지금은 내가 경미한 차이로 앞설 게다.”
남궁천은 분노한 와중에도 상대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그럼 가서 밟아 버려요. 호법당 당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사적인 감정으로 사람을 괴롭혔으면 좀 맞아야지. 그렇게 한 놈 두 놈 밟아 주면 다 착해지게 돼 있어요.”
“하아! 그건 녹림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남맹에서 그랬다가는 바로 호법당에 끌려갈 게다.”
“백부님이 맹주인데도 그래요?”
“다른 무림세가들은 남맹에서 남궁세가가 독주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 뜻대로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경우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게다.”
남궁천이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그가 남맹에서 나간 뒤로 남궁세가의 힘도 많이 빠졌다.
진설하가 그런 수모를 당한 것도 그것과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 남궁세가도 그랬듯, 강호에서는 상대가 약한 틈을 절대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면 남맹에서 나오는 건 어때요? 진 소저를 보호할 수 없다면 함께 나오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호법당 눈치 보면서 어물어물하는 동안 진 소저가 정주로 돌아가 버릴 수도 있잖아요.”
“내가 남궁세가의 소가주인데 어떻게 남맹을 나간단 말이냐?”
“못 나가요?”
“남궁세가가 남맹에 소속되어 있고, 내가 남궁세가 사람이니, 그건 불가능한 소리다.”
남궁천이 남맹에서 나가려면 남궁세가와 단절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궁세가에서 나고 자란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연적하는 그런 남궁천을 이해하지 못했다.
“형님이 남맹에서 나가면 남궁세가 사람이 아닌 게 되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남궁세가가 남맹에 속했으니 나 역시도 자연히 남맹의 일원이라는 뜻이다. 남맹에서 나가려면 내가 남궁세가를 떠나는 수밖에 없다.”
“아! 그런 거예요?”
그제야 연적하는 그의 상황이 간단하지 않음을 알았다.
하기사 남궁천은 아무것도 없는 자신과 달리 남궁세가의 소가주다. 남궁세가는 물론 남맹에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묵묵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궁연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라버니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진 소저와 남맹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누굴 택할 건가요?”
“그야 당연히 진 매지.”
“그럼, 오라버니는 호천맹의 무림대회로 가세요.”
“뭐? 호천맹으로 가라고? 남맹은 물론이고, 아버지가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가만히 있지 않으면요? 남맹에서 아무런 직위도 없는 사람에게 벌이라도 줄까 봐요?”
“…….”
남궁천은 일순 답하지 못했다.
진설하의 경우 호천맹 사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유로 다섯 시진이나 조사받았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에서 호천맹의 무림대회를 참관하러 가라니?
아무리 자신이 남궁세가의 소가주라 해도 후과(後果)가 만만치 않을 터였다.
“오라버니.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요. 지금 남맹과 호천맹은 전쟁 상태가 아니에요. 당연히 적도 아니고요. 지금 일어나는 일은 위기를 조장해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의 농간에 불과해요. 그들이 바라는 대로 하고 싶지 않으면, 판을 뒤엎어 버리세요. 진 소저 말처럼 남맹과 호천맹의 구도를 전쟁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으로 만드는 거예요. 욕은 먹겠지만, 오라버니의 행동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나올 거예요.”
머뭇거리던 남궁천이 힘겹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그런데 남맹이 나를 비난하는 것은 무시할 수 있지만……. 나로 인해 아버지가 타격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자신이 호천맹의 무림대회에 간다면 분명 맹주를 비난하는 소리가 나올 터였다.
“아버지는 오라버니 생각보다 한참 위에 계시니까, 그분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설사 무림세가들이 아버지를 비난한다해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으실 거예요. 검왕이 무림세가들의 말에 조금이라도 위축될 거 같으세요?”
곰곰 생각하던 남궁천이 다시 물었다.
“내가 호천맹의 무림대회를 참관하면……. 진 매를 더 비난하지 않겠느냐?”
“무림세가들이 자꾸 진 소저를 끌어들이면 오라버니는 ‘남맹에서 나가겠다’고 하세요. 그럼 아버지가 진 소저를 보호해 줄 거예요.”
“아버지가?”
“시간 날 때 거울을 보세요. 오라버니는 무림세가뿐 아니라 강호의 후기지수들 중에 최고 고수이자, 남궁세가의 소가주예요. 그런 오라버니를 아버지가 순순히 놓아줄 것 같아요? 남맹에서 아무 힘도 없는 오라버니가 진 소저를 지키려 하지 말고, 아버지를 이용하라는 말이에요. 오라버니가 강하게 나가면 아버지는 진 소저를 보호할 거예요. 물론 남맹과 남궁세가에서 욕은 먹겠지만요.”
“그러니까 내가 호천맹의 무림대회에 참관하면……. 다 해결된다는 거냐?”
“호법당에서 들고일어나겠지만 명분이 없으니 벌을 주지는 못해요. 오라버니, 혹시 남맹과 호천맹을 잇는 가교가 될 생각이 있으세요?”
“그런 거창한 건 모르겠고, 나는 단지 진 매가 마음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네에, 그러실 줄 알았어요. 호법당 사람들이 진 소저와 오라버니가 ‘한몸 한뜻’이라는 걸 안다면, 진 소저에 대한 공격을 멈줄 거예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호천맹의 무림대회로 가세요.”
남궁천이 확인하듯 물었다.
“그 일로 진 매에게 불똥이 튀면, 진 매와 함께 남맹을 나가겠다고 맞서라?”
“맞아요. 그때가 되면 아버지가 알아서 호법당을 정리해 줄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런데…….”
고개를 끄덕이던 남궁천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중양절이 코앞이라……. 호천맹이 있는 정주까지 시간 맞춰 갈 수 있을지 의문이구나.”
그러자 연적하가 끼어들었다.
“형님, 제가 있는데 그런 걸 걱정하십니까!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정말이냐? 그래 준다면 나야 고맙지만…….”
남궁천은 말끝을 흐렸다.
‘남맹과 연을 끊은 연적하와 호천맹에 간다’고 생각하니 어째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간 것만으로도 남맹이 발칵 뒤집힐 텐데…….’
거기에 연적하까지 가세한 게 알려지면 남맹은 초상집 분위기가 되고 말 터였다.
“연아, 적하와 함께 가도 괜찮겠느냐?”
“훗! 누가 말리겠어요? 중양절에 맞춰 가려면 그와 함께 가는 게 나을 거예요.”
십전무후라 불리는 남궁연이 반대하지 않자 남궁천은 마음을 놓았다.
만약 연적하가 호천맹에 가려는 이유를 알았다면 극구 사양했을 테지만, 지금의 남궁천은 무림대회에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
중양절.
하남성.
정주 칠리하촌
이른 아침.
한적하던 칠리하촌이 모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모두 호천맹에서 열리는 무림대회에 참가하거나,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다.
남맹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떠오르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호천맹의 세가 더 강했다.
연적하와 남궁천도 사람들 속에 섞여 자연스럽게 호천맹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정문에서 내방객의 신분을 확인했겠지만, 무림대회라 그런지 무사통과였다.
덕분에 연적하와 남궁천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고 안쪽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
높게 세워진 연무대 주위는 벌싸부터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연적하와 남궁천은 연무대가 잘 보이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쪼그리고 앉았다.
“적하야.”
“ 예.”
“무극상인(호천맹주)께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자신이 호천맹의 무림대회에 왔다는 걸 소문내려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 전에 형님을 알아보고 사람들이 올 거 같은데요?”
“정말 그럴까?”
“우리보다 높은 위치에 상석이 있잖아요. 무림대회가 시작되면 분명히 우리가 보일 거예요.”
“그렇겠구나.”
남궁천은 이런 대형 사고가 처음인지라 괜히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에 반해 제멋대로 살아온 연적하는 먹잇감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왜 그렇게 두리번거리느냐? 찾는 사람이라도 있느냐?”
“아, 호천맹의 총사가 어디 있나 싶어서요.”
“공손일랑 대협?”
“예.”
“그분은 왜?”
“계산할 게 좀 있어서요.”
“무슨 계산?”
남궁천이 불안한 눈으로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비우호적인 호천맹에서 그가 사고를 치면 수습이 난감해서다.
“남맹과 호천맹의 총사들이 사람 목숨으로 장난질을 쳤잖아요. 호천맹의 총사도 몇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죠. 남맹의 총사만 맞으면 형평성에 어긋나잖아요.”
“설마 그 일로 나를 따라나섰던 게냐?”
“예. 일석이조(一石三鳥)잖아요.”
“저어, 혹시 그 일은 나중에 따로 하면 안 되겠느냐?”
“에이, 진 소저를 위해 남맹을 버리고 호천맹 행사에 오신형님답지 않게 왜 그러세요?”
“큰일 날 소리 하지 마라. 버리긴 누가 버렸다고?”
“남맹에서는 다 그렇게 생각할걸요?”
“그건 네 생각이고.”
“떠나기 전에 연 누님이 그랬는데요? 형님이 보기와 달리 외유내강한 분이라면서.”
“연이가 정말 그런 소리를 했다는 거냐?”
“예. 왜요?”
“아니, 내가 남맹을 버리고 호천맹에 온 게 아니라는 건 너도 알지 않느냐? 그래서 그러는 거지.”
“엎어치나 메치나 마찬가지죠. 어차피 남맹에서 욕먹을 거 알고 온 거잖아요. 아니지. 진 소저를 대신해서 욕먹으려고 온 거였나? 아무튼 그거 각오하고 왔잖아요.”
“내가 남맹을 버리고 호천맹에 왔다는 건 너무 극단적인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
마음 약한 남궁천은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변명을 했다.
잠시 후 비어 있던 상석이 칠파일문의 장문인들로 빠르게 채워졌다.
곧이어 호천맹 총사 공손일랑 공손기가 나와서 무림대회의 취지와 목적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하여 저 간악한 유명교의 척결을 위해, 천하에 흩어져 있는 협객들을 다시 한번 모으기로, 결의하였던 것입니다.”
뻔한 소리를 한쪽 귀로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종사의 연설 중에 자기들끼리 열심히 떠드는 두 청년은 남천 연적하와 청운검 남궁천이었다.
영결상인은 급히 다른 장문인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칠파일문의 장문인들이 근처의 호위들을 불러 끊임없이 뭔가를 지시했다.
연적하와 남궁천의 열띤 대화가 잠시 소강상태에 빠질 즈음, 밀집한 구경꾼들을 가르며 호천맹 총사부 고수들이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혹시 석경장의 남천 대협과 남궁세가의 청운검 대협이 아니십니까?”
‘남천’과 ‘청운검’이라는 말에 좌중이 술렁거렸다.
천하제일인으로 알려진 남천은 남맹 맹주의 사위고, 청운검은 남궁세가의 소가주다.
그런 두 사람이 왜 경쟁 상대인 호천맹의 무림대회에 참가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