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13
913회. 이의 있소!
한윤의 말을 듣고서야 연무백은 자신이 귀빈석으로 불려 가는 이유를 알았다.
솔직히 자신의 명성은 십대상방의 귀빈과 거리가 있다.
십대상방에 귀빈 대우를 받으려면 칠파일문의 장로 이상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남맹과 싸움이 일어날 때를 대비하시겠다?’
지난번 상월정에서 금와상방 방주를 보호한 게 꽤나 인상 깊었던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촌구석 무관 관주의 자리를 굳이 귀빈석에 마련할 이유가 없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알려 줘서 감사합니다.”
연무백의 인사에 한윤이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어차피 알게 되실 일인데요 뭐. 실은 저도 맹진현 출신입니다. 송중문에게 연 관주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송중문과 잘 아십니까?”
“그 정도는 아닙니다. 송중문과는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됐으니까요.”
“아, 그러시군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어느덧 귀빈석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한윤은 눈치가 보이는지 입을 꾹 다물고 거리를 살짝 벌렸다.
새로운 귀빈이 다가오자 금와상방의 구본웅 방주는 고개를 힐끔 돌렸다.
연가무관의 연무백이었다.
그는 환하게 웃는 낯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백 내외를 맞이했다.
“오! 어서 오시오, 연 관주. 그런데 부인은 혹 양주가인이라 불리던 분이 아니오?”
양이화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그런 과분한 이름으로 불린 적이 있어요.”
양가장이 한참 무가로 이름을 날릴 때 양이화의 미모 또한 하남성에 널리 알려졌었다.
양가장의 쇠퇴와 함께 양주가인이라는 이름도 잊혀졌지만 말이다.
“과분하다니요! 천만의 말씀이오. 내 오늘 소문이 부족할 때도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소. 자 자, 이쪽으로 오시오.”
너스레를 떨던 구본웅 방주가 빈자리를 가리켰다.
방주에게서 아주 가까운 귀빈석 중에서도 상석에 속한 자리였다.
귀빈석에 있던 칠파일문의 장로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연무백을 힐끔거렸다.
그제야 구본웅 방주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귀빈들께 소개를 안 했구려. 여러분, 이쪽은 연무백 대협입니다. 와룡검객이라는 별호로 더 알려진 분이지요.”
천지맹 시절에 그를 보았던 장로들은 이내 관심을 접었다.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의 입에서 ‘아!’ 하고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룡검객 연무백은 하남성에서 유명한 후기지수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남직례성의 남궁천과 비슷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하남성 신비문파인 와룡장의 후계자이자, 남궁세가에서 십 년 동안 무공을 연마한 까닭이다.
후기지수들 간의 무위를 논하면 청운검 다음으로 와룡검객을 꼽는 사람도 많았다.
비록 남천 연적하의 이름에 묻혀 있지만, 그의 무위는 결코 낮지 않았다.
연무백은 귀빈들에게 읍을 하며 짧게 인사했다.
“연무백입니다.”
이윽고 그는 구본웅 방주가 가리킨 빈자리에 처와 함께 가서 앉았다.
그를 향한 귀빈석의 관심이 식을 즈음 구본웅 방주가 슬며시 다가왔다.
“연 관주.”
“ 예?”
“나는 우리 금와상방과 연 관주의 인연이 깊다고 생각하는데, 연 관주는 어떻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연가무관의 제자들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싶소. 연 관주의 추천장을 들고 오는 사람이 있으면 믿고 고용할 생각이오.”
“감사합니다.”
연무백은 담담하게 인사했지만 내심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구본웅 방주가 약속을 지키면 연가무관은 맹진현뿐 아니라 낙양 제일의 무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말씀인데. 내가 연 관주를 믿고 의지하는 만큼 연관주도 나에게 힘을 좀 실어 주었으면 하오.”
연무백은 속으로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특히나 구본웅 방주는 금와상방을 십대상방으로 키울 정도로 계산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아무 연고도 없는 자신에게 조건 없이 퍼 준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제가 힘을 쓸 일이 있다면 돕겠습니다.”
“말씀만 들어도 든든해지는구려. 허면 이후로 연 관주를 우리 금와상방의 형제로 생각해도 되겠소?”
“그래 주신다면 저야 영광이지요.”
연무백의 말을 듣고 있던 양이화가 그를 힐끔 보았다.
싸움밖에 모르던 사람이 상인의 비위를 맞춰 주는 걸 보니 신기했다.
그 꼿꼿하던 사람이 와룡장의 흥망성쇠를 거치면서 많이도 유해졌다.
한편 연무백이 숙이고 나오자 구본웅 방주의 입가에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실 장사꾼인 그에게 연무백은 금은보다 귀한 인맥이었다.
연무백은 무위도 뛰어나지만, 무려 남천 연적하의 배다른 형제인 까닭이다.
‘정사파 할 것 없이 모두 남천의 눈치를 살피니 연무백의 보호가 가장 값지다 할 수 있지.’
그는 상체를 연무백에게 기울여 속삭이듯 말했다.
“남맹에서 우리 금와상방의 신년 하례식을 노리고 있다는 정보가 있네. 상월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패악질에서 나를 지켜 주게.”
형제 운운하던 구본웅 방주는 은근슬쩍 말을 놓았다.
세상의 온갖 풍파를 헤쳐 나온 연무백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형제로 생각하는 것’과 ‘누군가를 지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구본웅 방주가 계속해서 말했다.
“호위에 대한 사례는 잊지 않고 해 주겠네.”
그제야 연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방주님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지켜 드리겠습니다.”
“하하. 내가 이래서 연 관주를 좋아한다니까. 사람이 경우가 밝고, 맺고 끊음이 분명하거든. 연 관주, 자네는 장사를 했어도 크게 성공했을 걸세.”
껄껄 웃으며 연무백을 칭찬하던 구본웅이 만족한 얼굴로 돌아갔다.
마침내 신년 하례식이 시작됐다.
제사가 끝나자 곽양인 대행수가 방주를 대신해 업무 협약식을 진행했다.
“다음으로 금와상방과 호천맹 간의 업무 협약식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당에서 구경하던 하객(賀客)들 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이의 있소!”
곽양인 대행수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받아쳤다.
“아직 아무것도 말한 게 없는데 이의라니요? 게다가 본방과 호천맹의 업무 협약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상대는 뻔뻔했다.
“이의가 있다 하지 않소!”
고개를 젓던 곽양인 대행수가 구본웅 방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구본웅 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그리고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는지 들어나 보자’는 뜻이다.
곽양인 대행수가 하객들 중에서 사십 대 장한을 콕 찍으며 물었다.
“거기 이의 있다는 분, 어디의 뉘시오?”
“나는 진평상방의 백익이라는 사람이오.”
“백 형, 이제 보니 생판 남은 아니었구려. 도대체 무엇에 대해 이의가 있다고 하는 거요?”
“지난해 상월정에서 금와상방이 진평상방, 일심상방과 맺은 계약에 이의가 있소!”
곽양인 대행수의 눈에 긴장이 스치고 지나갔다.
드디어 올 것이 온 모양이다.
그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세 분의 방주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작성한 공정한 계약에 무슨 이의가 있다는지 모르겠으나, 들어나 봅시다. 말해 보시오.”
곽양인 대행수는 은연중에 ‘공정한 계약’을 강조했다.
그의 주장이 단지 시비를 걸기 위한 것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하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백익을 향했지만 백익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난해 상월정에서 금와상방은 호천맹의 고수들을 동원해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의 호위를 죽였소! 그리고 피로 얼룩진 상월정에서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을 헐값에 매수했소!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의 방주들은 살기 위해서 수결할 수밖에 없었단 말이오!”
백익이 돌연 하객들을 향해 돌아섰다.
“여러분! 금와상방은 상인이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습니다! 그들은 호천맹을 등에 업고! 칼로 경쟁 상방을 겁박해 빼앗아 갔습니다! 그래놓고 모든 걸 호천맹이 남맹과 싸워 이긴 것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천인공노할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의 호소력 짙은 말에 하객들이 술렁거렸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금와상방이 호천맹을 끌어들인 것은 사실이고,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이 예상보다 헐값에 팔리기도 했다.
뒤이어 금와상방을 성토하는 하객들이 하나 둘 나왔다.
“구 방주! 저 사람의 말이 사실입니까?”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을 겁박해 계약했다면 사과하시오!”
“어째 진평상방을 시세보다 싸게 팔았다 했더니만 그런 내막이 있었구먼!”
“호천맹은 정파로 알고 있는데, 왜 그랬지? 호천맹도 한 말씀 해 보시오!”
“난리 났네! 호천맹과 보란 듯 손을 잡았으니 앞으로 더 해 처먹겠구나!”
비난의 수위는 점점 올라가 마침내 육두문자까지 튀어나왔다.
“구 방주! 이 후레자식아! 호천맹과 흘레붙어서 상계를 다 말아먹을 작정이냐! 작작 해 처먹어라! 그렇지 않아도 장사하기 힘든데, 강도짓까지 해야겠느냐!”
간간이 ‘금와상방의 말도 들어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묻혔다.
한순간 금와상방과 구본웅 방주는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금방이라도 난리가 날 듯하자 구본웅 방주는 슬금슬금 연무백의 곁으로 이동했다.
호천맹의 대표로 참석한 총사부의 공손찬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남맹의 반격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치밀하게 나올 줄이야.
무엇보다 저 백익이라는 남자가 말을 너무 잘했다.
상방의 방주도 아니고, 행수도 아닌데, 저런 달변이라니!
그의 말에 엄숙하던 신년 하례식은 난장판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목소리가 큰 사람들은 분명 신분을 위장한 남맹 고수들이리라.
마침내 호천맹까지 욕을 먹는 지경에 이르자 공손찬은 연단으로 나섰다.
“멈추시오!”
그의 외침에 소란이 잠시 멈추었다.
공손찬은 유난히 나대던 사람들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본 후에 말했다.
“본인은 호천맹 총사부의 공손찬이오. 남맹이 금와상방의 신년 하례식에서 분탕질을 일으킬 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소. 백익!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에 당신처럼 선동에 능한 일꾼은 없는데, 뭐하는 사람이오?”
그러자 백익이 냉소를 쳤다.
“흥! 나는 이미 진평상방의 사람이라고 말했소! 호천맹에서 나오셨다니 나도 물어봅시다! 그날 당신들이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의 호위들을 죽였소? 안 죽였소? 그리고 그 피로 얼룩진 자리에서 곧바로 매매 계약이 진행됐소? 안 됐소?”
하객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공손찬에게 주목했다.
‘이런 제길.’
백익의 자백을 받아 내려던 공손찬은 자신이 너무 안일했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는 자신보다 더 말싸움에 능수능란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상대의 농간에 놀아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호천맹은 상월정의 일과 무관하오. 그날 남맹 고수들과 싸운 것은 금와상방의 호위들이외다.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그날 상월정의 호위 책임자인 와룡검객께서 보증해 주실 게요. 그렇지 않습니까? 연 관주?”
공손찬이 갑자기 일면식도 없던 자신을 끌어들이자 연무백은 당황했다.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애써 무덤덤한 어조로 답했다.
“그날 상월정의 호위 책임자였던 연무백입니다. 제 휘하의 호위들은 전부 금와상방의 호위들이며, 그들과 함께 구 방주님과 다른 두 분의 방주님들을 지켰습니다.”
연무백은 ‘자신의 휘하’라고 단서를 달았다.
백익은 그 미묘한 차이를 간파했지만 그걸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연무백을 이 난장판에 끌어들였다가 남천의 분노를 사게 될까 두려워서다.
‘치졸한 놈. 할 말이 없으니 연무백의 뒤에 숨으려는구나.’
이를 갈던 백익은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공손찬에게 내던졌다.
“공손찬! 그날! 상월정에서 죽은 남맹 고수들의 시체에 대한 검시 보고서다! 소림사의 대력장! 화산파의 매화검! 무당파의 칠성검, 의천문의 현천팔극검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뻔뻔한 놈! 그러고도 아니라고 발뺌할 생각이냐!”